어설픈 ‘국제 보안관’ 수단을 꼬이게 하다

2010-08-06     제롬 투비아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수단의 현직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가 지난 4월 26일 대통령에 재당선됐다. 비록 선거 때 명백한 부정이 있긴 했지만, 바시르는 자국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듯하다. 실제로 국제사회와 국제형사재판소 그리고 현지 당사자들은 다르푸르 정부의 반인륜 범죄를 놓고 이상한 사기 포커게임을 벌이고 있다.
 

반군 대장 자카리아 애드더쉬는 지난 4월 11일 수단 총선 때 투표를 하지 않았다. 정부에 저항하는 그는 투표 전날 국경에서 불과 몇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차드의 비라크 시장에 있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기를 실은 픽업트럭을 타고 자유롭게 차드 영토를 드나들었다.(1) 하지만 오늘 그는 차드 군대로부터 비라크에 오는 허가증을 발부받아야 했고, 아랍 전통의상 젤라바 속에 권총 한 자루만 숨긴 채 민간인 차림으로 왔다. 지난 5년 동안 게릴라의 개입으로 분쟁을 겪은 차드와 수단은 최근 몇 달 동안 예전보다 더 진지한 친선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인다.(2) 그리고 이드리스 데비 차드 대통령은 화해 제스처의 일환으로 애드더쉬가 소속되어 있고, 차드 정부가 오랫동안 지지한 단체 ‘정의와 평등을 위한 운동’(JEM) 쪽에 차드를 떠날 것을 명령하며,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 멋진 선물을 했다.

 

반인륜 범죄 피의자 대통령 당선

차드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수단 정부와 협상에 나선 반군 JEM은 선거 연기를 요구하며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수단 정부는 JEM의 요구를 일축했다. 21년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알바시르는 최초의 다당제 국민투표를 통해 합법성을 획득하려 했다. 예상한 대로 현 대통령이 68% 득표율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야당과 반군의 보이콧도 그에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알바시르 대통령의 주적은 수단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2009년 3월, 아르헨티나 출신 오캄포가 다르푸르에서의 전쟁과 반인륜 범죄로 수단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선거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알바시르가 지휘하는 집권당 ‘국민협의회’의 실세 부대표 나피 알리 나피는 “대통령의 재선이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거짓임을 증명할 것이며, 국민이 국제형사재판소의 입장을 거부함을 확실히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3)

투표가 국제형사재판소의 수석검사인 모레노 오캄포의 전략에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오캄포는 ‘최고 위선자’인 알바시르부터 잡고, 곧바로 하르툼이 2003년부터 무장시킨 이슬람 민병대 잔자위드를 덮쳐 다르푸르 반군을 척결하겠다고 공언했다.(4) 애드더쉬 대장도 척결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2003년과 2005년 사이, 그는 아랍계 마하미드 부족 추장이자 요즘 가장 유명한 잔자위드의 지도자인 무사 힐랄이 후원하는 사령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2004년 초반, 나는 무사 추장에게서 서부 다르푸르에 위치한 수라 주민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무장한 주민이 일부 있었지만, 그렇다고 반군은 아니었다. 50~60대 차량과 말, 낙타, 그리고 600~700명의 전투원이 투입됐다. 우리는 어린이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 민간인과 민병대원 346명을 도륙했다”고 밝혔다.

2003년과 2004년, 수단 정부는 이슬람 민병대 잔자위드에 전권을 주어 반군을 소탕하게 했다. 특히 애드더쉬 대장처럼 아랍 유랑민 중에 징집된 민병대원은 비아랍계 소수민족(푸르족·자그하와족·마살리트족) 부락을 반군 지지 지역으로 내몰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하르툼에 대한 다르푸르 아랍인의 충성도가 차츰 퇴색했다. 민병대원은 점차 정부를 위한 전투를 그만뒀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반정부군에 가담했다. 애드더쉬는 2009년 수백 명에 달하는 수하들과 JEM에 합류했다. 이 단체의 수장인 카릴 이브라힘 박사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사면만 약속한다면 다르푸르 사건에 대해 기꺼이 증언하겠다는 전 이슬람 민병대 잔자위드 대원이 2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애드더쉬도 그중 한 명이다.

학살 증언하려던 반군은 사면초가

국제형사재판소는 다르푸르를 기반으로 하는 부족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아랍계를 수단 정부에서 떼어놓는 데 기여하는 한편, 공동체 간 갈등을 마치 현 정권과 그 아래서 일하는 ‘아랍’ 민병대원의 비아랍 국민에 대한 ‘집단학살’처럼 소개하며, 공동체 간의 화해를 저해하고 있다. 아직 진정한 화해가 불가능한 마당에 국제형사재판소는 범죄를 자백하면 사면과 보상을 해주며 화해를 성사시키던 현지 당사자들의 전통적 화해 방식마저 배제시켰다. 갈등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국제형사재판소는 주로 현재 수단 정부와 다르푸르 반군이 벌이는 프로파간다전에서 정보를 얻는다. 두 진영(수단 정부와 다르푸르 반군) 사이에서, 사람들은 알바시르에 대한 체포영장을 서양의 반군 지지로 이해하지만, 수단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국가 부흥에 호소하고, 반군은 모레노 오캄포의 수사(修辭)를 인용하며 자신들이 협상을 벌여야 할 정권을 ‘집단학살’ 정권으로 내몰고 있다.

모레노 오캄포 검사는 2008년 7월 한 인터뷰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80개 비정부기구(NGO)와 14개 유엔 산하기관을 계획된 인종말살정책의 공범으로 몰아세우고, “사막이 (난민을) 죽여주니 이들에겐 가스실도 필요치 않다”며 다르푸르의 난민수용소를 나치 수용소와 비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다르푸르 반군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인 아브델와히드 모하메드 아메드 누르가 수단 정부와 협상을 반대하고 나섰는데, 그것이 놀랄 일이겠는가? 사법적 선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까운 오캄포의 선언은 급진 반군세력에 논거를 제공했다. 오캄포는 2009년 2월 “만약 알바시르에게 혐의가 있다면 그와 협상해서는 안 된다. 난 협상자들이 현실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정은 현실이다”라고 천명했다.(4) 하지만 오캄포 검사는 게임에서 졌다. 왜냐하면 그가 발부한 알바시르에 대한 ‘역사적인’ 체포영장이 수단 정권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대선에서 보았듯 오히려 정권의 국가 장악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무기조사기관인 ‘스몰 암스 서베이’는 최근 연구 보고서에서 “국제형사재판소가 수단의 민주화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했다. 이 보고서는 “국민협의회(알바시르의 당)의 목표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을 수호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권력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선거 제도가 알바시르를 합법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알바시르는 재선에 성공해 대통령궁에 입성하는 것이 체포를 막는 최상의 보호책이라 확신한다”고 했다.(7) 일부 옵서버들은 만약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면 수단 대통령이 자신의 당 색깔을 지향하는 다른 후보를 낼 수도 있었다고 한다.

부메랑 맞은 국제형사재판소 검사

한편, 재선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 알바시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소중지 처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강성단체로부터 압박을 받는 오바마 행정부가 그에게 그런 기회를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로 수단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2009년 7월 아프리카연합 국가는 국제형사재판소와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다수 아프리카인은 모레노 오캄포가 다르푸르,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오로지 아프리카 대륙만 조사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수단에서 알바시르의 당선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수단인이건 아니건 간에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선 기간에 알바시르의 선거부정을 지적했지만, 선거위원회는 어차피 그가 재선됐을 것이라고 해괴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일부 선거부정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투표소의 부정행위를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발견됐다. 수단 정부는 이미 2008년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300만 명에 이르는 다르푸르의 난민 대부분을 선거인명부에서 누락시키며 이 정부의 철두철미한 의지를 드러냈다. 결국 이 선거구 분할은 논란이 됐다.(8)

어설픈 정의관, 민주화에 되레 찬물

수단인은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어떻든 간에 서구의 일관성 없는 태도 앞에서 당혹스러워한다. 서구가 한편에서는 국제형사재판소를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거의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카터재단의 옵서버들은 단지 “투표가 국제 기준에 일치하지 않았다”는 지적만 했다. 이런 모순은 미국 탓이 크다. ‘당근’ 정책을 표방하는 스콧 그레이션과 ‘채찍’ 정책을 표방하는 수잔 라이스를 수단에 특사와 유엔대사로 각각 파견함으로써 이들 파벌 간 조율이 불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9)

‘국제사회’는 수단 대선 전 몇 주간 다르푸르 반군, 특히 JEM이 평화협상에 응하도록 강하게 압박하며 자신들이 하르툼을 좌지우지한다는 인상을 풍겼다. 결국 평화협상은 연기됐지만, 만약 반군이 대선 승리로 강화된 정부와 바겐세일 평화 협상에 서명한다 해도, 이 협상은 2006년 5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 협상처럼 현장에서 거부당할 위험이 있다.(10) 

국제사회는 정말 의지가 있는가?

대선 1주일 전, 아프리카연합과 유엔 다르푸르 중재팀은 차드 비라크 동쪽 50km에 위치한 코우농고 난민수용소에서 난민들과 대화를 했다. 이들은 난민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들 대표의 평화협상 프로세스 참여를 허락했다. 몇 시간 동안 신랄한 성토가 이어졌다. 한 교사는 “300만 명이 인구조사에서 빠졌다.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잊혀진 존재이다. 국제사회는 저들을 체포할 능력이 없는 것이냐? 우리는 더는 유엔의 평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제, 신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글·제롬 투비아나 Jérôme Tubiana
차드, 수단 분쟁 전문 연구원·기자. <관타나모 키드: 모하메드 엘가라니의 진실 Guantánamo Kid: The True Story of Mohammed El-Gharani>의 저자.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2008년 4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무기조사기관인 ‘스몰암스서베이’가 발표한 보고서 <The Chad-Sudan Proxy War and the ‘Darfurization’ of Chad: Myths and Reality> 참조.
(2) 제라드 프뤼니에, ‘어떻게 다르푸르의 갈등이 차드를 혼란에 빠뜨리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3월호 참조.
(3) <AFP>, 2010년 4월 26일.
(4) Julie Flint et Alex de Waal, <Case closed: A prosecutor without borders>, World Affairs, 워싱턴, 2009년 봄.
(5) 부족장
(6) <포린 폴리시>, 워싱턴, 2009년 2월 12일자 참조.
(7) ‘스몰 암스 서베이’의 2010년 2월 보고서 <Rhetoric and Reality: The Failure to Resolve the Darfur Conflict> 참조.
(8) 2010년 4월 나이로비에 위치한 ‘Rift Valley Institute’가 발행한 보고서 <Electoral Designs> 참조.
(9) <포린 폴리시>, 워싱턴, 2010년 1월 29일자 참조.
(10) 2006년 5월 5일에 체결된 아부자 평화협정은 중앙·지방 권력을 장악한 반군의 비무장화와 희생자에 대한 보상·개발 투자·화해 프로세스 등이 담겼지만, 반군 분파 중 한 분파만 서명하며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