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부 인권단체를 제3의 적으로

2010-08-06     토머스 키넌, 에얄 와이즈먼

이스라엘 해군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을 공격해 9명이 숨진 사건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 쪽 과오로만 보기 어려운, 국제인권법과 인권보호단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급진적 태도 변화를 시사하는 큰 사건이다.

지난 5월 31일 오전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단 ‘마비 마르마라’호가 이스라엘 해군의 공격을 받고 나포된 경위는 아직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다. 조사 결과를 떠나,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인도적 구호 활동이 점차 정치화된다는 점과, 국제인권법과 인권보호단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경계심이 점차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서로 연관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흔치 않으나 그간의 사례를 살펴보면, 구호활동가와 (중립 원칙을 위반한 사람들을 위시한) 인권운동가에 대한 직접적이고 계획적인 공격은 무장 저항 세력, 범죄자 집단, 경찰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탈레반이나 보스니아세르비아공화국 군대, 이라크 저항 세력, 남미의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자행한 이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행위도 이들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

구호 선박 공격은 전투 행위

답을 찾기 위해 잠시 사건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마비 마르마라’호에 대한 공격 및 나포에 이어, 지난 6월 5일 구호 선박인 ‘레이철 코리’호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박 검사는 이스라엘 태도 변화의 정점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이스라엘과 이를 지지하는 민간단체에서 국제인권법과 인권보호단체를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구호선단이 출발하기 전, 대니 아얄론 이스라엘 외무차관은 “가자지구는 인도적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며, 따라서 구호선단의 주목적은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려는 도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홍보부서는 기자들에게 가자지구 안에 있는 식당의 메뉴를 발송해, 그곳 주민의 영양섭취 상황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선단 나포 후 이들을 “테러 조직인 하마스를 지지하는 폭력과 증오의 함대”라고 비난한 아얄론 차관의 말은 인권보호단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식 입장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이었다.(1)

이스라엘의 이런 주장은 2009년 여름 즈음 시작되었다. 인권보호단체가 2008년 12월에서 2009년 1월 사이 가자지구를 공격한 이스라엘의 ‘캐스트리드’ 작전을 비난하는 보고서들을 발행하면서부터였다.(2) 이미 지난 임기 동안(1996~99) 강경파임을 확고히 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신정부는 이 보고서 집필자들과 이들의 논리에 거세게 반발했다.

네타냐후 정부 각료 중 한 명인 론 데르메르는 <예루살렘 포스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권보호단체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 단체들에 맞설 것입니다.” “여기에 동참하는 비정부기구는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를 하는 것과 같으며, 하마스를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마스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지요.”(3)

“인권단체는 바이러스”

참모총장 출신으로 전략 문제를 담당하는 모셰 야알론 부총리는 2009년 8월 식민지회의 당시, 온건 성향 운동으로 알려진 ‘피스나우’(Peace Now)를 ‘바이러스’라고 지칭했다. “다시금 우리는 피스나우 같은 바이러스들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엘리트 계층이 많은 피해를 낳고 있습니다.”(4)

야알론 부총리의 말은 네타냐후 총리의 비난을 샀지만, 데르메르의 선동적 언행에 이은 그의 말은 이후 이스라엘의 입장 변화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리처드 골드스턴 판사가 주도한 유엔인권위원회의 가자전쟁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이스라엘의 태도는 더욱 확실해졌다. 보고서는 전쟁 당시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의해 자행된 심각한 인권유린을 비난하며, “전쟁범죄 내지, 경우에 따라 반인류범죄로 볼 수 있는 행위가 자행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보고서를 무시하거나, 흔히 하던 대로 ‘반이스라엘적’이라고 비난하는 정도에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보고서가 담은 권고안을 무시한 채, 오로지 비난에 대응하는 자세를 취했고, ‘골드스터니즘’ 혹은 ‘골드스턴 효과’라 부르는 현상에 맞서기로 결정했다. 골드스터니즘이란 이스라엘이 보기에, 자신들의 존립 정당성을 부정하는 국제적 흐름을 가리킨다.(5)

네타냐후 총리는 2009년 11월 이스라엘의 대표적 전략 문제 연구기관인 사반 포럼 강연 당시 “이스라엘의 안보와 관련된 3대 중대 위협”에 대해 발표했다.(6) 첫째, 이스라엘을 세계 지도에서 지워버리려는 핵무기로 무장한 이란이다. 둘째, 헤즈볼라와 하마스 같은 이슬람 무장 세력의 로켓 및 미사일 공격이다. 새삼 놀라울 것이 없는 기존의 적들과 동등하게 취급된 세 번째 안보 위협은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부정하려는 세력으로, 유엔 골드스턴 보고서가 좋은 예였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는 골드스턴 보고서가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른 국가도 비난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
에 그 위협 또한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유엔 보고서가 비난하는 대상은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테러에 맞서는 모든 국가를 제재하려는 목적인 것이지요.” 그는 국제인권법이 ‘민간 지역에 침투해 무고한 사람에게 공격을 일삼는 테러리스트’를 보호하는 근거 없는 법이며, 오히려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려는 국가의 법적·도덕적 권위를 약화시킨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네타냐후 총리는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국제인권법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설적이지만, 국제적 법률전문가 및 각국 지도자들이 이치에 어긋난 골드스턴 보고서에 단호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테러와의 전쟁 시대에 걸맞은 전시국제법 정립을 촉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인권법을 전시국제법으로”

사실 정부나 비정부 조직이 제네바 협정과 국제인권법을 비난하거나 위반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국제인권법 자체를 부정하고 한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골드스턴 보고서 같은 법률 문서가 이스라엘 존립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는, 이 문서가 이스라엘의 과잉대응을 제재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스라엘군의 ‘마비 마르마라’호 공격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와 이슬람 단체의 미사일 공격과 다를 바 없는 위협이라 규정한 비정부기구나 국제인권 운동가들에 대해 향후 어떤 ‘응징’을 할 것인지 분명히 한 사건이다.

이스라엘 싱크탱크인 리우트연구소도 지난 1월 이스라엘을 상대로 발생하는 정당성 약화를 목적으로 한 전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기디 그린스타인 연구소장은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이스라엘 정치인과 군 간부들이 국외 방문 때 기소 및 체포 위협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제품에 대한 보이콧이 증가하고, 지식인층과 대학에서는 이스라엘 존립의 정당성마저 의문을 제기해, 이스라엘은 점점 더 고립 상태에 이르고 있다. 그간 이스라엘은 발전을 거치며, 국가 존립에 위협이 되는 요인을 파악해내지 못했다.”(7)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제 위협 요인을 제대로 파악한 듯하다. 이스라엘 정부와 친이스라엘 단체 하나가 ‘이스라엘 정당성 약화 시도에 대한 대응’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말을 빌리면, “인도적 단체임을 빙자한 일부 비정부기구가 정치적·이념적 잇속을 숨기고, 인권의 보편성을 내세워 반이스라엘 운동을 펼쳐, 이를 철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8) 이들은 미국에 있는 뉴이스라엘펀드(New Israel Fund) 반대 운동도 전개했다. 뉴이스라엘펀드가 골드스턴 보고서에 참여해 이스라엘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이유다.(9) 뉴이스라엘펀드는 비정부기구를 비롯한 이스라엘 시민운동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자국 시민단체에도 공세 가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스라엘은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우선 지난 2월에는 해외 정부의 원조를 받는 비정부기구에(대부분의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가 해당된다) 과세 혜택을 폐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가결되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이스라엘 고위 공무원이나 군 장교를 상대로 한 국외 법정 소송에 관련된 비정부기구를 폐쇄하는 법안이 상정되었다.

이에 힘을 얻은 이스라엘 군대는 국제 인권운동가들을 축출하겠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가차 없이 난입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입국도 못한 채 국경에서 추방당하거나, 이들만 겨냥해 특별히 설치된 텔아비브공항 내 구류소에 억류되었다.

반면, 지난 1월 이스라엘 13개 인권보호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급증하는 인권보호단체와 사회변혁 주도 단체에 대한 공격을 제지해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민사회단체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모욕적 언사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야알론 부총리가 시민단체를 “내부의 적”이라고 부른 것을 언급했다.(10) 야알론 부총리 시각에서 보면, 국외 인권보호단체는 ‘외부의 적’인 셈이다.

향후 이스라엘이 국제인권법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국제단체가 소송과 구호선단 활동 확대를 통해 대항한다면, ‘마비 마르마라’호 사건은 국제법과 인도적 구호 사이 전투의 포문을 연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토머스 키넌 Thomas Keenan
뉴욕 바드대학 인권프로젝트 대표 및 비교문학 교수
에얄 와이즈먼 Eyal Weizman
런던대학 골드스미스연구소 건축연구소장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가자행 구호선단 나포: 아얄론 외무차관 기자회견’, 2010년 5월 31일. www.mfa.gov.il.
(2) 브셀렘(B‘Tselem), <캐스트리드 작전: 2008년 12월 27일부터 2009년 1월 18일>, www.btselem.org. 쇼브림슈티카, <침묵을 깨고서: 2009년 가자 캐스트리드 작전 수행 군인들의 증언>, 2009년 7월 15일, www.shovrimshtika.org.
(3) 헤르브 키넌, ‘디플로머시: 이스라엘 대 휴먼라이츠워치’, <예루살렘 포스트>, 2009년 7월 16일(2009년 7월 18일 보도).
(4) ‘야알론, 피스나우를 바이러스라 불러’, <Ynetnews>, 2009년 8월 19일. 아틸라 솜팔비, ‘네타냐후 “야알론의 말은 비난받아 마땅”’, <Ynetnews>, 2009년 8월 19일.
(5) 알라스테어 맥도널드, ‘골드스턴 보고서 발행 후 이스라엘 홍보활동 강화’, <로이터>, 2010년 2월 2일.
(6) ‘네타냐후 총리 사반 포럼 강연’, 2009년 11월 15일.
(7) 기디 그린스타인,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협한다’, <하레츠>, 2010년 1월 14일.
(8) www.ngo-monitor.org.
(9) 뉴이스라엘펀드(NIF), ‘공격받는 NIF’, www.nif.org/media-center/nif-under-attack.html.
(10) 이스라엘 시민권을 위한 연맹, ‘인권단체 표적화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훼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