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없인 자유 없다!

유엔 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2018-11-29     쿠미 나이두 |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12월 10일,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을 목도할 것이다. 48개국이 파리에 모여 범세계적 인권법인 유엔 인권선언에 서명한 지 70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인권선언의 채택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 자유와 권리를 전 지구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여러 나라들이 처음으로 동의한 사건이었다. 

 
우리는 그 강력한 30가지의 권리와 자유가 인권선언에 명시된 이후로 먼 길을 왔다. 아직 그 선언문을 읽지 않았다면,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그 원칙들은 오늘날까지도 세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가장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위대한 법안의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이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업적을 함께 이뤄냈는지에 대해 축사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18년 현재 우리는, 점점 더 커지는 무관용과 극도의 불평등, 그리고 글로벌 위기들에 대처하기 위해 간절히 필요한 공동의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한 정부들을 목격하고 있다. 인권선언에서 각국 정부들이 방지하기로 약속한 바로 그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축사는 접어두고, 이 역사적인 시점에서 문제를 재점검하고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권선언 제2조는 이런 권리들이 재산, 국적, 성별, 인종, 언어, 사상이나 종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 보편성은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에 전제돼있는 이 핵심원칙 또한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와 다른 인권 기구들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비난, 증오, 공포를 표출하는 발언들은 1930년대 이후로 최대 수위에 올라 있다. 
 
지난 10월 말 선거에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그의 공공연한 반인권주의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우리가 처한 위기를 명백히 보여준다. 만일 그가 선거공약에서 내세웠던 반인권주의적인 수사법이 실제 공공정책으로 실현된다면, 그의 대통령 당선은 브라질의 토착민들과 킬롬보(농촌이나 교외 지역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 후손들의 공동체-역주), 전통적인 시골마을들, 성 소수자들, 흑인 청년들, 여성, 사회운동가들과 시민운동기구들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인권선언문에서 방지하고자 했던 바로 그 상황, 인권이 우리 모두가 아닌 ‘저들’만 보호한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 우리가 처한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이렇게 된 원인들은 여러 가지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권이란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돼 분리 불가능한 일괄적인 패키지임을 인식하지 못한 우리에게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인권선언문은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구별하지 않았다. 먹을 것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성을 구분 짓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그 둘 사이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 후 수십 년간, 각국 정부들은 그 두 종류의 권리 사이에 구별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그 권리들이 인식되고 보호되는 데 있어서 불균형이 생겨났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 인권기구들 또한 이 불균형에 일정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믿음 때문에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을 위한 캠페인이나 고문, 사형제 폐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활동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그에 대한 캠페인을 펼친 것은 불과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그로부터 우리는 충분한 주거, 의료, 교육에 대한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국제적인 업무체제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인권 문제에 있어서 이런 활동이 중요한 가장 극명한 이유는 국제적 경제위기의 긴 후유증에 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의 경험은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취약하고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국가들에서는 경제적, 사회적 권리의 법적 구제 역시 제한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법적 대응의 발판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몇몇 국가들에서 정부는 재정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이 정책은 국민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고 의료, 주거, 식료품을 포함한 기본 생필품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이런 긴축정책의 두드러진 예로 정부가 재정 위기 이후로 의료를 포함한 공공지출을 삭감한 스페인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고 비용은 커졌다. 특히 저소득층, 그중에서도 만성질환이나 장애,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문제에 대한 조사를 위해 인터뷰했던 한 시민은 의료비가 너무 올라서 식료품과 의약품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당했다고 털어놨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약이 꼭 필요합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통증으로 자살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약을 꼭 사야 합니다.”
 
정부가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또한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들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한 가지의 권리 없이는 다른 권리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차드에서 정부의 긴축정책은 국민들을 더 깊은 가난으로 몰아넣었다. 필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약화시켰고 교육 또한 일반 대중들에게 먼 이야기가 됐다.
 
정부의 긴축정책의 여파에 대항하기 위해 곳곳에서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정부는 반대 의견을 전부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과도한 공권력으로 시위자들을 체포하고 무력화시킴으로써 평화적인 집회에 대한 권리를 침해했다.
 
국제적 경제위기가 이제는 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그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파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 부정부패, 실업률, 경기 침체는 분열을 조장하는 리더들에게 분열과 증오의 메시지를 확산하는 근거를 마련해줬다. 이런 현상은 일촉즉발의 결과를 가져왔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점점 증가하는 분열적 정치 세력이 뿌리내리는 것을 우려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고 국수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0월의 한 대중 연설에서 마크롱이 한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시민들은 노동권, 연금, 대학교육에 대한 마크롱의 정책들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과거에 프랑스 정부가 비상사태법이라는 명목하에 시민들의 집회에 대한 권리를 축소하는 과정을 추적해왔다. 그 결과, 환경주의자들, 노동권익 증진활동가들이나 다른 시민운동가들이 부당하게 시위참여를 제한당하는 장면들을 목격했다.
 
2018년에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존중하는 법안을 요구하는 집회들은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무시당했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경찰에 의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제압당했다.
 
이것은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각국 정부들이 어떤 종류이든 인권과 관련한 그들의 의무를 저버린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민들의 발언권과 집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애초에 목소리를 내려고 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난 10월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예를 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른 인권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표현의 자유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국가의 표적이 됐다.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마지막 기사에서 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동료 아랍인들이 그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관해서 공공연히 토론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해 썼다.
 
“우리는 가난과 부실관리와 열악한 교육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아랍세계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에 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려면, 선전을 통해 증오를 퍼뜨리는 국수주의 정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독립적인 국제포럼을 형성해야 한다.”  
 
카슈끄지는 왜 인권이 분리될 수 없는 통합 패키지인지를 완벽히 설명했다. 다른 권리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표현의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됐을 때 시민들이 “빵, 자유, 그리고 정의”라는 구호를 들고나왔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7년 전 이집트 타리르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게도 명백했던, 인권은 “All or Nothing”이라는 진실을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모두 행사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진실을. 
 
우리가 전 인류에게 인권을 실현할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제 자명하다. 
인권운동에 있어서 우리는 표현하고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 금융 정책과 그것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동료조직들과 협력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부에 묻고 부패와 불법자금의 흐름과 취약한 국제적인 조세구조를 밝혀내야 한다. 카슈끄지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친구, 동료들과 연합을 구성해야만 가능한 거대한 일이다. 인권운동가, 변호사, 노동조합, 사회 운동가, 경제학자, 종교 지도자 등 여러 조직에 걸친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을 넘어 꼭 전해져야 할 메시지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증폭될 수 있도록 힘을 합해야 한다. 
오직 결속을 통해서만이 세계인권선언에 새겨진 약속을 지키고 불평등과 부당함이 없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글·쿠미 나이두 Kumi Naidoo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사회정의운동가로 현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세계시민단체연합회(CIVICUS) 사무총장(1988~2008), 빈곤퇴치행동을 위한 세계캠페인 초대의장(2005~2010), 기후대응을 위한 세계캠페인 의장(2009~2012), 그린피스 사무총장(2009~2018) 등을 지냈고, 아프리카 대륙의 부의 재분배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범 아프리카 단체 아프리카 궐기(Africans Rising)의 공동창립자다.
 
번역·이유민 yoomineverything@gmail.com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프리랜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