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가 사랑한 탱고의 비극적 리듬

2018-11-29     알리오샤 발드 라조브스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930년에 쓴 『에바리스트 카리에고』에서 꽃과 피를 노래한 시인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시 팔레르모를 예찬한 친구 카리에고의 초상을 그린다. 여기에서 부랑자들은 밀롱가(1)를 추고, 매춘부들은 탱고의 음악에 맞춰 허리를 흔들며 걷는다.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에서 보르헤스는 탱고의 음악에 담긴 시가 어떻게 방대하고 복잡한 인간희극을 형성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반항, 증오, 사랑, 원망을 담은 탱고의 곡을 썼다. 도시의 모든 비극이 탱고에 녹아 있었다.” 
19세기 말 사창가에서 탄생한 탱고는 길에서 남성들이 짝지어 추던 것이었다. 서민 여성들은 문란하게 비춰질까봐 탱고를 공개적으로 추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탱고는 단검, 그리고 단검이 상징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탱고의 역할은 아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자존감, 용기와 명예를 안겨주는 것일지도 모른다.”(2) 보르헤스는 탱고의 곡을 쓰면서 ‘결투’라는 야만적인 의식이 죽음과 관련 있다고 강조했다. 
 
“노란색 황혼을 배경으로 / 내가 본 탱고 춤은 / 또 다른 춤, 단검의 춤을 출 수 있는 / 남자들의 춤”(3)
 
1965년 가을에 보르헤스는 탱고의 역사와 정신을 주제로 특별한 강연을 네 번 했다. 이 강연집은 프랑스에서 처음 번역됐다.(4) 보르헤스는 개인적인 추억을 탱고와 연결시켰고, 직접 만난 탱고 작곡가들을 떠올리며 열정적으로 강연했다. 보르헤스는 188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 탱고의 다양한 버전을 살펴봤다. 가우초(아르헨티나 목동-역주), 말 탄 고독한 목동, 복서 또는 콤파드리토(가우초의 후예-역주)와 같은 특정 유형의 사람들이 구현한 탱고의 변형을 제안했다. 『알레프』의 작가 보르헤스는 탱고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설명했고 크레올 탱고와 프랑스 탱고로 서서히 분화되는 과정을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콤파드리토들과 가난한 크레올 여성들이 춘 정통 탱고는 밀롱가와 쿠바춤 ‘하바네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르헤스는 밀롱가의 서민적인 성격에 애착을 보이면서도, 낭만적이고 멜로드라마처럼 느껴진 모던 탱고에는 약간 거리를 뒀다. 다른 한편으로는, 1910년과 1914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유럽 탱고가 있다. “파리, 이후에는 런던, 로마, 비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탱고를 췄다.” 그리고 탱고는 관능적인 산책 같은 형태로 변했다. 보르헤스는 탱고가 상투적이고 지루한 것으로 쇠퇴돼 안타깝다고 결론을 내렸다.
 
보르헤스는 역사가 가장 긴 탱고, ‘엘 초클로’를 특별히 아낀다. ‘엘 초클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고기와 채소로 만든 스프, 푸체로의 재료인 ‘옥수수 이삭’을 뜻한다. 탱고에는 죽음이 깃들어 있다. 마치 비단 밑에 숨겨진 단검과 같다. 페르난 실바 블라데스의 시 『엘 탱고』에 소개된 비유다. 서민들, 특히 변두리 지역의 작곡가들이 노래한 탱고에는 아르헨티나의 영혼이 반영되어 있어서 용기와 강인함을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우리 모두에게 몽환적인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진짜 탱고”라고 말하며, “탱고를 들으면서 우리는, 변두리 동네 길가에서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슬프게도 죽음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라고 결론 내린다.  


글·알리오샤 발드 라조브스키 Aliocha Wald Lasowski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졸업.

(1) 춤과 음악 장르인 밀롱가는 플라멩코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6현 기타로 연주되며 탱고와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밀롱가가 탱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2) Jorge Luis Borges, 『Evaristo Carriego』, Seuil, coll. ‘ Points’, 파리, 1999.
(3) CD El tango,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작사, 아스토르 피아졸라 작곡, Milan Music, 2011, 39분.
(4) Jorge Luis Borges, 『Le Tango. Quatre conférences(탱고 - 네 가지 강연)』, Gallimard, coll. ‘ Arcades’, 파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