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이 된 한여름밤의 꿈, 축제
축제는 문화를 대중화하거나, 대중을 ‘교육’하기 위한 예술적·사회적 소명을 갖고 탄생했다. 축제는 매년 수십만 관객을 끌어들이며 프랑스 문화생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축제화’ 붐은 성공의 신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 취향이 획일화되거나, 점차 민간 투자자의 비중이 증가하는 병폐도 가져왔다. 축제 본연의 임무가 변질되고 있는 것일까?
축제 모델의 변질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원 축소나 예산 삭감 등 정부 참여 비중이 줄어든 것은 벌써 10년째다. 정부의 축제 지원금은 2005년 전체 투자 유치금의 6%에서 2008년에는 4%로 대폭 줄어들었다.(1)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에마뉘엘 네그리에(2)의 표현대로, ‘문화 지역 분산’의 대표적 상징인 축제가 이제 재정지출 축소를 뼈대로 한 공공정책검토(RGPP)의 일환이 됐다는 점이다.
현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오로지 현재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고는 볼 수 없다. 세계음악네트워크 ‘존 프랑슈’(Zone Franche)의 주도로 실시된 2005년 축제 경제지표 조사에 따르면, 무엇보다 축제 위기의 원인은 ‘재원 마련, 고용지원책 미비, 시설 부족 및 일반 국가 지원 부족’ 등에 있다. 문화상품의 ‘축제화’(Festivalisation)가 지닌 본연의 성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축제는 자금을 조달하기에 편리한 단어다. (중략) 기획자라면 다 안다. 재정 지원자와 잠재적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과장된 메시지가 필요하다”(3)라고 유럽축제연구회(EFRP)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드라간 클레이크 네덜란드 레이덴대학 교수가 지적했다.
아이디어·시간·장소의 삼박자
1920년 탄생한 잘츠부르크 축제는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7월이면 ‘모차르트의 고향’이라는 명성을 내건 이 문화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족히 25만 명의 축제객이 잘츠부르크를 찾는다. 최적의 아이디어, 최적의 시간, 최적의 장소로 그야말로 삼박자를 고루 갖춘 ‘비즈니스 모델’이다.
프랑스에서는 전후를 기점으로 축제라는 새로운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아비뇽 축제는 1947년에 시작됐고, 이듬해에는 시미에즈 원형극장에서 니스재즈축제가 열렸다. 비엔의 로마극장이나 주앙레팽 해변가의 솔숲 등 관광지의 면모를 갖춘 장소가 어우러지면 축제의 수익은 배가됐다. 특히 관광자원이 풍부한 프랑스는 온갖 종류의 축제가 생겨나기에 좋은 토양이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열리는 축제는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인터넷 사이트 ‘앵포콩세르’(Infoconcert)에 집계된 축제만도 2009년 6월 초에서 8월 말 사이 이미 1600개에 달했다.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시의원들이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드는 이런 단기적인 문화축제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라며 인류학자 아랭 베르토는 반문한다.(4) 사실 축제 유치에는 ‘모든 시민을 위한 문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걸고 지역 마케팅에 나서려는 시의원들의 의도가 숨어 있다. 시의원들은 고속도로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여름 축제철(5)을 맞아 조금이라도 지역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이 있으면 귀를 쫑긋 세운다.그런 행사에 걸린 돈과 지역 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6) 2001년부터 아미앵 재즈축제를 담당하는 피에르 발피츠는 “정치인이 축제를 시나 도의 홍보회사쯤으로 여기며 압박한다. 이제 축제에도 투자 수익 논리가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은 돈을 들인 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으라며 아우성친다.
발피츠는 예술문화기업조합(Synde ac)이 제출한 ‘위기에 처한 문화’ 탄원서 서명에 참여했다. 그는 “위기의 원흉은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이며, 장빌라르와 앙투안 비테즈 이후 등장한 ‘스펙터클(볼거리) 사회’가 문제의 본질”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정성적 축제에서 정량적 축제로
“사람들은 낭트의 라폴주르네(La Folle Journée) 축제는 대단하다고 떠벌린다. 관객 증가에서 보듯, 축제가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위장 논리에 불과하다. 국민 선동이다. 도서축제에서 음악축제까지, 문화의 전 분야가 그런 식의 논리에 감염됐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다. 고작 유명인을 출연진에 끼워넣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축제 유치에 지역 인사의 의지가 작용한다. 장루이 길로몽의 행보가 대표적인 예다. 마르시아크중학교 교장이던 그는 마르시아크시에 재즈축제를 유치했다. 축제가 33회째를 맞는 지금, 제르 지역에 위치한 이 도시는 세계적 재즈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교장은 시장과 도의회 부의장이 됐다. 그가 맡은 책무는 다름 아닌 ‘관광경제’다. 다른 두 명의 행보도 의미심장하다. 우선, 크리스티앙 크로아덱은 1992년 탄생한 카르에의 비에유 샤뤼 축제의 공동 창안자로, 2002년 좌파 연합 후보로 선거에 나와 피니스테르 지역에 속한 카르에시의 시장으로 당선됐다. 다른 이로는 음악가 베르나르 뤼바가 있다. 그는 1977년 고향으로 귀향해, 같은 해 위제스트 뮤지칼(Uzeste Musical)을 탄생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둘 다 ‘잊혀진’ 지역을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에유 샤뤼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장자크 투는 “비에유 샤뤼 축제는 어려움에 처한 지역 전체에 자긍심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브르타뉴 정체성을 앞세운 비에유 샤뤼는 카르에시의 디반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도 기여했다. 한편 뤼바는 중소도시 오크에 오케스트라 악단을 창설했고, 1937년 부모님 마리 뤼바와 알방 뤼바가 세운 에스타미네(Estaminet) 카페를 예술 연구 및 혁신의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나머지 행보에서 두 사람은 판이하게 갈린다. 1993년 2천 명 규모의 성인축일을 기념하는 시골장터축제(Kermesse)로 출발한 비에유 샤뤼는 예산 600만 유로에 방문객 20만 명이 찾아오는 7월의 중요한 축제로 성장했다. 반면 공공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위제스트 축제의 경우 10년 전부터 내리 예산이 깎이고 있다.(7) 뤼바는 “사회당 성향의 시가 공포에 떨고 있다”고 빈정댔다. 그리고 “예술과 정치 사이에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일종의 중대한 변증법적 필연이다. 우리의 일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 해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매사를 예리하게 바라보는 그는 지난 30년간 ‘축제화’의 변모를 걱정스러운 시각으로 지켜봤다. “그동안 공연은 기술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대형 스크린이 걸리고, 무대 위 난쟁이들은 관중 10만 명을 향해 저항을 부르짖었다. 그것은 프랑스 혐오(Francophobies)이며 낡은 결점(Vieilles Verrues)이다(‘프랑스적인 것에 대한 광적인 열기’를 의미하는 축제명 ‘프랑코폴리’(Francofolies)와 ‘낡은 쟁기’를 의미하는 축제명 ‘비에유 샤뤼’(Vieilles Charrues)를 비꼬는 언어유희-역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대중 선동이다. 이제 그런 식의 대중화는 힘들다.” 이 문제에 대해 뤼바는 “문화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공공 지원은 전체 예산의 3%다. 자체 자금 조달이 주를 이룬다. 입장료 수입과 부가 수입으로 모든 경비를 충당한다”고 반박한다. 그는 비에유 샤뤼는 수익을 내고 있고, 이 수익금은 축제를 돕는 자원봉사단체 100여 곳에 나눠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술과 정치 사이의 변증법
그렇다고 해서 대중화(Massification) 모델이 지닌 본연의 모호함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에게 문화를 보급하려면 반드시 획일화된 취향의 문화를 제공해야만 하는 것일까? 허울 좋은 말로 문화 향유층을 넓히고,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 초기 축제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교육한다는 말인가? 이 질문의 답은 대개 해결되지 않은 미결 상태다. 다른 질문들도 마찬가지다. 관객의 호응이 높은 콘서트가 반드시 예술의 질도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런 식의 문화행사가 예술 창작에 기여하는가? 다시 말해 음악은 축제를 필요로 하는가?
축제를 유형화하는 것은 어렵다. 축제에 따라 형태가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가치가 높은 저예산 축제가 있는가 하면, 예술적 기획이 형편없는 고예산 축제도 있다. 시시한 여흥거리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축제가 있는가 하면, 지원금 없이도 대중의 반응이 좋은 참신한 축제도 있다.
관객의 유형도 마찬가지다. 별의별 축제가 다 있듯, 관객도 가지각색이다. 더욱이 매년 축제에는 새로운 관객이 생겨난다. 겨울철 찬바람 속에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들으러 축제를 찾는 음악 애호가는 대개 가벼운 노래나 흥얼거리는 여름철 해변 축제는 찾지 않는다. 독창적인 음악축제를 일부러 찾아온 음악광이 있는가 하면, 명성만 듣고 단순히 호기심 차원에서 축제에 들른 이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매년 관객 수가 늘어나면서 문화행사가 전문적·체계적 형태를 갖춰간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이브 미쇼는 <르몽드 2>(2009년 6월 13일)의 분석 기사를 통해 “박물관에 이어 축제에도 인증제가 도입되고 있다. 특히 음악축제가 그렇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기록적인 관객 수다”라고 밝혔다. 2009년 11월 실시된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의 축제 관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처음 축제를 방문한 관객이 전체 관객의 39%에 이르렀다. 특히 이런 현상은 현대음악이나 재즈음악 축제의 경우 더욱 도드라졌다. 한편 관객의 대부분은 여성 혹은 평균 51살의 장년층으로, 70% 이상이 고등교육을 받은 지역민이고, 축제 방문 때 평균 23유로를 지출했다.
하지만 관광의 색채가 덜한 ‘겨울 음율’(재즈와 블루스 음악이 중심이 된 발드마른 지역의 겨울철 축제명이기도 하다-역자)의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면, 축제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27년 전 시작된 ‘방리유 블루’(Banlieues Bleues)처럼 파리 외곽에서 열리는 축제가 그렇다. 2000년 재즈축제를 감독한 자비에 르메트르는 “이 축제는 휴가철이 아닌 기간에 열린다. 이 축제의 차이라면 관중과 장소다. 해변가 반바지 차림으로 이 축제에 오는 관객은 없다”며 “우리 행보는 독특하면서도 좋은 본보기가 된다. 제작과 창작 활동을 자극하고,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 활동, 다시 말해 공공서비스와 관련한 임무를 확대하고 있다. 예술적 모험이 필요한 축제는 지속적인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젠 축제도 인증 시대
방리유 블루는 매표 소득에만 의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유료 콘서트 관객이 1만~1만2천 명이라면 무료 음악행사는 8천~1만 명 정도 된다. 더욱이 이 축제는 ‘저렴한 입장료’ 정책을 펴고 있으며, ‘대중을 상대로 한 홍보와 교육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다양한 지원금(2009년 전체 예산의 14.68%인 280만 유로)을 받고 있지만, 문제는 국가 지원(35.46%의 도의회 지원처럼, 이미 20.18% 수준으로 축소됐다)이 RGPP와 관련한 개혁으로 더욱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르메트르는 “전체적인 축제의 일관성을 보장해주는 게 국가다. 전국에서 동일한 작품이 공연되지 않게 감시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다양성의 원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자체의 새 의무 지원에 관한 토론은 중요하다. 시·도·지방이 축제 예산의 대부분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중복 지원하는 자금은 우리 축제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다”라고 말했다.
‘만딩고족 노엘’ 공연이 대미를 장식한 ‘아프리콜로르’(Africolor) 축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프리콜로르 설립자인 필리프 콩라트 회장에 따르면 1989년 12월, 역시 센생드니에서 탄생한 이 축제는 ‘현대적인 색채가 강한 전통 음악’을 표방한다. 기자 출신인 그가 느끼기에 아프리콜로르만의 특성은 관중에게 있다. 폐쇄적 의미가 아닌 화합의 의미의 공동체주의적 성격을 띤 관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늘어나고 있다. 또한 예술적·인적 교류를 촉진하는 것도 특징이다. 콩라트는 “문화 예외성이 예외적인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2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축제 기획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때로는 행정 절차의 높은 장벽 때문에 아프리카 뮤지션의 입국이 좌절되는 뼈아픈 경험을 한다.(8) “요즘은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그 결과 관객 동원이 가능한 유명 음악인을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 이제는 매표 수입에 따라 그다음 지원금이 결정된다.” 아프리콜로르는 그동안 35만 유로에 달하는 예산으로 그럭저럭 수지를 맞춰왔다. 하지만 몇몇 지원금이 끊긴데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지원금 분배 개혁의 여파로 4만 유로의 손실을 겪었다. 담당자들 입에서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줄어드는 지원금, 흔들리는 미래
12월 렌에서 열리는 트랑스뮤지칼(Transmusicales) 축제는 ‘새로운 발견’이라는 카드를 뽑아들며 시류를 거스른 선택을 했다. 반면 ‘프랭탕 드 부르주’(Printemps de Bourges) 축제에는 이제 전문인들이 대거 참여한다. 1977년부터 줄곧 음악 동향을 살피고 새로운 신예를 발굴하는 장으로 자리해왔지만, 올해는 이기 팝과 디암스는 물론 M까지 출연시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축제 담당자가 ‘음악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라는 악보를 연주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 후원자와의 유대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기부금 60%에 대한 세제 혜택을 뼈대로 한 2003년 아이야공법이 실시되면서 예술 후원자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프랭탕 드 부르주 축제를 후원하는 샤를 로비야르(10)에 따르면, 축제는 신상품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다. 얼마 전 이동전화회사 SFR는 부르주에서 ‘3G 세대’ 공략에 나섰다. 프랭탕 드 부르주 축제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다니엘 콜링은 “우리는 여러 명목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그중에는 공익 축제(11)에 주는 국가 지원금도 포함된다. 하지만 민간 분야의 후원도 받는다. 지원 통로를 다각화하면 공공 지원으로 인해 축제가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이 적어지고 중립적 성격을 띨 수 있다”고 말했다. 콜링은 1976년 공연 기획사인 ‘에쿠트 실플뢰’(Ecoute s’il Pleut)를 창설했다. 연예가요재즈국립센터(CNV) 대표로 재직했고, 공연장 ‘제니트’(Zenith·여전히 파리 및 낭트시 공연장을 맡고 있다)의 대관 관리에도 관여한 전력이 있다. 그렇다면 축제 태동의 동의어나 다름없는 ‘문화적 예외’는 더 이상 미래의 수익 모델이 될 수 없을까? 콜링은 “예술 후원에 관한 법 덕분에 이제 공공 지원과 민간 후원 사이를 오가는 선택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점차 앵글로색슨 분야로 나아갈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잘 운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로 공연장에는 스폰서 천막과 VIP석이 가득 들어서고 있다.
프랑스의 민간 후원자 비율은 아직까지 유럽 평균에 못 미치지만(후원 예산은 전체 축제 예산의 12% 이상을 넘지 않는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12) 이 새로운 광맥을 두고 업계 간 경쟁이 치열한 반면, 국가의 지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 지자체는 재정 곤란을 겪고 있으며, 음악저작권관리단체(Sacem), 실연자권리집중관리단체(Adami), 실연예술인저작권징수분배단체(Spendidam)도 선정 기준을 강화하며 참여를 줄이고 있다.(13) 다른 많은 이들처럼, 르메트르도 민간 후원을 받았다. 그는 “부족한 자금을 충당해야 했다. 그저 본래의 정신만은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그램이 100% 맘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매년 방리유 블루를 그럭저럭 잘 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중이 소화하기 힘든 예술지상주의적 성격의 축제, 즉 후원자의 구미를 당기기 힘든 축제다. 자선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클레이크는 그처럼 “재정 마련과 마케팅 전략에 중점을 두는 축제와 예술적 목적만을 중시하는 축제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14)고 말한다.
스타를 모셔라, 그래야 산다
그나마 대형 행사에만 정부 지원이 국한되는 상황에서, 현재 진행 중인 개혁은 지원금 혜택의 공정한 배분을 교란시킬 염려가 있다. 국립연예가요재즈센터(CNV)의 보고서만 봐도 그렇다. 과감한 기획의 축제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기획의 축제 사이에 예산 배분 격차가 심각하다. 이런 집중화 현상은 몇몇 사업자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 더욱이 출연 예술가에게 편성된 예산은 높은 반면 정작 출연자 수는 적은 것으로 볼 때, 대부분의 예산은 유명 음악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하다. 2009년 비에유 샤뤼는 브루스 스피링스틴의 ‘독점’ 출연에 100만 유로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6월 라디칼(Radikal) 대표이자 프랭탕 드 부르주 공연기획자인 크리스토프 다비는 “간판스타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스타 사이에 편성된 예산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결국 얼굴 없는 그룹에는 돌아가는 게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15) 최근 바벨 메 뮈지크 축제가 한창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1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최근 정책 변화로 심각한 국면에 접어든 이 불균형 현상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실연자권리집중관리단체에서 일하는 방자맹 소제는 “1980년대 말 서류를 찾아 비교해보니 예술가 수입이 형편없이 줄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절반으로 준 경우도 있다”며,(16) 축제가 예술가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편견을 불식시켰다.
성인 축일에 열리는 소규모 축제에서 생산성을 갖춘 대규모 성격으로 변모하면서 “100여 개의 규모 있는 축제가 속속 생겨났다. 이에 대해서는 예술가도 대중도 불만을 가질 수 없다. 문화부의 지원 덕에 25년 만에 축제 프로그램이나 설비가 향상됐다. 60여 개 공연이 SMAC(현대음악공연) 인증을 받아 지자체 및 지역문화사업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콜링은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공연 배급, 다시 말해 (연 단위로 운영되는 공연장, 클럽 등) 지역 내 문화 활동을 위한 전용 장소가 부족하다. 그 때문에 오베르는 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음악을 지원하는 것에는 공연 장소 확충도 포함된다. 공공장소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르세유는 공연 인프라가 열악하다. 인프라야말로 이 분야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조건이다.”
스폰서와 VIP의 구미에 맞춰라
몇 년 전 문화부의 고문 한 명(17)이 “의원들에게 축제는 적은 비용을 들여 연내 문화 활동에 대한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대부분 지역마다 여러 문화 활동이 영구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는 논리로 반박된다. 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여러 전문가는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다. 음악가 뤼바는 “지난 30년간 음악예술 보급 사업이 늘어났다. 하지만 주로 몇 주간의 문화관광 사업에 편중됐다. 이벤트가 일상의 문화를 죽였다. 인생은 한 달 혹은 1년에 한 번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콘라스는 여전히 모든 이를 위한 문화가 가진 인본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문화적 여백을 창조하는 것은 축제가 아니라 환희다. 하지만 아무도 작은 콘서트홀과 대형 올랭피아 중간에 해당하는 연주 장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발피츠는 한발 더 나아가 “축제는 예술가·대중·세대·예술애호가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역점을 둘 부분이 이 대목이다.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사회·문화적 유용성에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극소수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모두 여파를 겪고 있는 것이다. 소외 지역에 대한 문화 보급의 성과는 어떠한가? 30년간 전혀 나아진 게 없다. 공공 극장의 대표도 늘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반대의 예도 있다. 1995년 쥐티크 프로덕시옹(Zutique Production)을 창립한 프레데리크 메나르가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양심에 의해 대표직을 고사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대표직에 있다. 이 단체는 디종에서 열리는 두 개의 축제를 주관한다. 1999년 탄생한 ‘트리뷔’(Tribut)와 후발 축제인 ‘일루만 비트박스’(Iluman Beatbox)가 그것이다. 디종의 임대주택단지(HLM)에 자리잡은 쥐티크는 건축재정비국(OPAC)과 함께 디종을 예술창작의 거점도시로 만드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창 재정비 중인 동네 이름을 딴 이른바 ‘쿠르시브 데 그레지유’(Coursive des Grésilles) 프로젝트다. “이것은 단순히 버려진 산업시설 부지의 재정비 사업이 아니다. 주민과의 상생이 목적이다. 주민축제는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조직됐다. 시설을 만들기에 앞서 문화 활동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이벤트보다 일상의 문화적 환희를
분위기 조성을 위해 그는 임대아파트 밑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연간 단 한 번 열리는 트리뷔 축제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문화 활동을 다각화하는 노력과 함께 2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다. 쥐티크는 현재 지역 콘서트를 주최하고 몇 가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으며, 자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앙드레 말로나 자크 랑의 모델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시대다”라고 말한다. 방법은 “사업자 간의 상호성을 존중하고, 복합경제를 검토해야 한다. 시장의 법칙(매표 수익, 민간 차원의 순회 공연 등)과 분배의 경제(지원금)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처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문화적’ 계약이 지닌 초기의 목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소외 지역을 위해 문화를 보급하고 참신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중략) 공공서비스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책과 구조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1999년 이래 견인차 노릇을 해온 축제다.”
글•자크 드니 Jacques Deni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진보 매체에 주로 문화 관련 비평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매표소득세 징수 및 분배에 관한 내용을 뼈대로 한 예능가요재즈국립센터(CNV)의 기밀 보고서.
(2) 에마뉘엘 네그리에, 마리 테레즈 주르다, <축제라는 새 영토>, 프랑스 페스티벌-미셸 드 몰르, 파리, p.180, 2007.
(3) 안 마리 오티시에(외 공저), <축제의 유럽: 자그레브에서 에든버러까지, 시각의 교차>, Culture Europe International-Edition de l’attribut, 툴루즈, p.212, 2008.
(4) 위의 책, p.23.
(5) CNV 보고서에 따르면, 축제의 45%가 여름에, 22%가 봄에, 26%가 가을에, 7%가 겨울에 개최된다.
(6) <뮈지크 앵포 에브도> 2009년 6월호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축제 중 305개 축제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총금액은 1900만7천 유로에 달한다.
(7) 1999년 이후 지롱드 도의회의 지원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07년 공공 지원금은 5만6천 유로에 달했는데, 2006년에는 7만1550유로였다.
(8) <르몽드 2>, 2008년 6월 7일.
(9) 40만 유로의 예산. 반면 피에스타의 경우 100만 유로로, 30%가 민간 후원, 40%가 공공 지원이며, 30%가 매표 수입(유료 입장객 5만8천 명)이다.
(10) 2007년 3월 출간된 <라 센> 기사에서 그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
(11) 2003년 1월 31일자 국가기본지침에 따르면 “더 이상 문화통신부는 축제에 재정 지원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한 자금 지원은 “예술적 가치가 인정되거나, 국가 차원에서 열리는 행사나 해당 지역에서 1년 내내 문화 활동을 진행하는 축제”에만 한다.
(12) 참고로 도의 공헌도는 26%, 시나 여러 시 합동의 경우 21%, 지방이 21%, 주무 부처가 6%다.
(13) 개인복제 저작권 사용료 징수에 관한 1985년 법이 시행된 이후, 저작권 사용료 징수단체는 징수한 사용료 일부를 창작이나 문화 활동에 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관련한 저작권 징수가 줄면서 지원금이 축소됐다.
(14) <축제의 유럽>, 위의 책, p.220.
(15) <뮈지크 앵포 에브도>, 2009년 6월.
(16) <축제라는 새 영토>, 위의 책, p.113.
(17) 위의 책, p.155.
[박스기사] 획일화의 위험성
우선 공연장 대관이 끝나면, 전문성을 지닌 유수의 프로모터(혹은 순회공연 주최사)가 한데 모여 수익 다각화와 규모의 경제 전략에 따라 철저히 축제를 조직한다. 파리의 캐어퓨전 축제에는 루프, 뮤질락 축제에는 알리아스, 니스 재즈축제에는 보위르가르와 제라르 드루오가 참여한다. 피에스타 데 쉬드의 공동 창립자인 베르나르 오베르는 “이 분야는 완전히 진화 중이다. 여전히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무른 이 분야에 산업적 성격의 물자 보급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집중화 현상은 축제 프로그램을 획일화할 위험이 있다. 유럽 전역에 똑같은 공연이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포럼(European Forum) 같은 네트워크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프랭탕 드 부르주 축제의 공연기획자 크리스토프 다비는 “요즘 이 분야는 상장기업의 투자를 받고 있다. 워너는 카뮈를, 소니는 아라크네를 매입하고, GL 이벤츠는 제니스 운영에 출사표를 던졌다”라고 말한다(<르몽드>, 2010년 4월 24일자).
2005년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스사로부터 분리된 캘리포니아의 대형 이벤트 회사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의 출연에 대해 다들 비판적이다. 세계 제일의 이 공연 회사는 27억 달러의 매출에 직원 4400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매년 6천만 명의 관객을 맞고 있다. 비에유 샤뤼의 장자크 투는 “우리는 업종도 목표도 다르다. 대중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몇몇 유럽 시장 정복에 성공한 뒤 프랑스 시장 공략에 나선 이 회사의 부상에 맞서, 브르타뉴 지역의 축제인 비에유 샤뤼는 벨포르의 유로케엔, 스페인의 베니카심, 헝가리의 지게트, 스위스의 팔레오, 벨기에의 두르 등 다른 ‘독립’ 축제들과 똘똘 뭉쳤다. 장자크 투는 “우리를 단결하게 만드는 힘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2009년 여름, 라이브 네이션이 주최한 메인스퀘어 축제에 파드칼레 도의회와 노르파드칼레 지방의회가 지원금(20만 유로)을 댄 사건으로 일대 파장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앨런 리지웨이가 유럽을 맡고 있는 라이브 네이션은 12개 유럽 지사(영국,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이탈리아, 체코공화국 등)를 한데 모아 파리 10구에 프랑스 사무소를 개설했다. 프랑스 사무소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야심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비아리츠에서 열리는 제2회 빅(Big) 축제의 공동 주최에 참여하는 한편, 2011년 6월 파리에서 열릴 축제 하나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 다른 축제들도 라이브 네이션의 이름을 내건 33개의 유럽 축제에 줄줄이 가세할 것이다. (롤링 스톤스, 스티비 원더, 제이-지, 폴리스, 마돈나 같은 수익성 높은 가수들을 거느린) 라이브 네이션은 모든 독점화 전략을 부인한 가운데, ‘티켓마스터’(티켓 발행 분야의 세계 선두 업체)와 합병 소식을 발표했다. 이들의 합병은 한동안 반독점법에 막혀 표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