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고가 울려 퍼진 날
2018-11-29 소르주 샬랑동 | 기자 겸 작가
- 창문은 닫지 마세요.
혼잣말을 하듯 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스베틀라나의 목소리는 벼락을 치는 듯했다. 그녀는 간호사다. 이 병실과 담당 환자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진 간호사. 베개의 개수와 위치, 이불커버를 더 펼지, 침대커버를 걷을지 결정하는 것도 그녀였다. 죽음을 기다리는 이 방은 그녀의 것이었다. 낮에도 밤에도 그녀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천장 등을 켤지,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를 켤지 결정하는 사람이 그녀였다. 온기를 불어넣을지, 침묵이 흐르게 할지 결정하는 사람이 그녀였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가져가 버린 사람이 그녀였다.
- 밖이 너무 시끄러운데. 스베틀라나가 반대했다.
-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요. 나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몰도바 출신으로 나이가 지긋한 그녀가 아버지를 돌봐준 지도 10년이다. 아버지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는 아버지를 참아냈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러 온 사람으로서 그녀는 맡은 일을 썩 잘 해냈다.
아버지에게 잘하는 것과 나와의 관계와는 서로 다른 문제였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아들이었다. 또 경솔한 사람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차가운 화이트와인을 권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또 한 모금만 빨아 보라며 담배를 내미는 사람이었다. 평온하게 가는 길을 훼방 놓는 방해꾼이었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커튼을 걷는 사람이었다. 눈이 내린 날에는 눈 뭉치를 들고 와서 늙은 어린이와 다름없는 아버지의 입술에 대어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눈을 감고 있어도 공장에 대해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하는 아들이었다.
- 앙리, 당신이 아버지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어요!
- 기분 전환을 시켜드리는 거예요, 스베틀라나.
월드컵 때문에 초저녁부터 온 마을이 들썩들썩했다. 행복과 기쁨과 환희. 라디오와 텔레비전 기자들은 사전을 뒤져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단어를 쏟아 냈다. 보르도에서 리옹까지, 파리에서 클레르몽페랑까지, 바욘에서 마옌의 작은 마을까지 가족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도시의 대로, 시골길, 도시 중산층의 발코니, 서민주택단지, 테라스, 바닷가, 산골마을 할 것 없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떠들썩하며 걱정이 끼어들 자리라고는 없는 순수한 즐거움, 자동차의 경적, 여자들의 웃음소리, 남자들의 함성, 아이들의 환호성.
- 아버지가 저 소리를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창문 손잡이를 잡은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병실에서 나갔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아버지를 향해 몸을 숙였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숨을 옅게 쉬고 있었다.
- 제 말 들리세요?
마을을 휘감은 흥분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늘 아침, 아버지에게 공장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입장이 단호해서 포드가 공장 폐쇄를 포기했다고.
- 단호해? 어떻게 단호해?, 아버지가 물었다.
아버지 귀로 얼굴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고, 나도 눈을 감았다. 깨어 있는 두 장님. 그리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믿고 싶은 말이자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듣기 원했을 말을. 포드가 여기 블랑크포르에서 새로운 변속기를 제작하기로 했다고.
– 8F-MID 말이냐?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미소 지었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밖에 알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왕자나 기사 이야기 대신 자동차 이야기만 해주었다. 아버지의 영웅은 프랑스 내 포드 독점 수입원인 앙리 드파스였다. 1913년 퐁도데주 63번가에 프랑스 내 첫 번째 포드-T 조립 공장의 문을 연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할아버지 프랑시스는 알베르 I세 대로에 있는 그의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에서 만난 세 친구와 함께 할아버지는 그들의 ‘보르들레즈(도시아가씨-역주)’인 포드-T 모델을 보러 심지어 파리에서 열리는 자동차박람회의 21번 부스까지 찾아갔다. 거기서 포드-T 모델을 바라보면서도 감히 이 다이아몬드에 다가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부르주아들에게 미소 지었다.
- 앙리?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포드와 드파스를 친구처럼 부르며 내게 물었다.
- 돈을 구했다더냐?
그러면서 눈을 떴다. 이미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 무슨 돈이요?
- 회계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미소 지었다. 제작 라인 관련 회계를 말씀하시는 거였다. 6F35 변속기 제작 라인을 새로운 기술에 맞춰 바꿔야 할 것이다. 아마 수백만 유로가 들겠지.
- 그럼요, 당연하지요. 다 해결됐어요.
아버지는 나를 바라봤다.
- 6F15도 계속 갈 것 같아요. 노조에서는 유럽용으로 15만 개 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한 손을 가까스로 살짝 들어 올렸다. 손바닥이 침대 시트에서 떨어졌다. 눈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 그런데 정말이냐? 확실해? 공장이 살아남는 거야?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더 활짝 열었다.
- 이 소리 안 들리세요?
공장을 유지하게 돼 프랑스 전역이 기뻐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드파스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던 우리 할아버지를 기리며. 17살부터 기계공으로 살아온 아버지를 기리며. 1974년 자크 샤방델마와 헨리 포드 2세가 참석한 개관식이 있고 1년이 지나 블랑크포르 공장에 입사한 그의 아들을 기리며. 투쟁 중인 직원 862명은 물론 2000년대처럼 곧 동참할 2천 명을 기리며. 조만간 완성된 차량으로 가득 차게 될 대형 서열장을 기리며. 조립 라인 아래에 줄지어 서 있는 모든 친구들과 생산, 조립, 열처리 지구에 있는 동료들을 기리며.
조정자와 관리자와 원자재 구매 부서를 기리며. 일터가 존엄을 지키는 장소라고 믿는 모든 이들을 기리며. 은행원에게 당당하게 포드 사원증을 보여주던 우리의 선조를 기리며. 헨리 포드가 “사람들은 월급,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 두 가지 이유로 일한다”라고 말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푸른색 타원형 마크(Ford의 로고-역주)를 평생 가는 부적으로 믿던 이들을 기리며.
두려움의 대가로 받는 급여를 거부한 남성들과 여성들을 기리며.
- 들린다,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그는 고함소리, 노랫소리, 호루라기 소리, 폭죽 소리를 음미했다.
그러다가 무중 호각의 나팔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이마에 내 이마가 닿았다.
- 텔레비전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수상기를 켰다. 스베틀라나가 되돌아올까 걱정이 됐다. 처음으로 나오는 스포츠 채널에 멈췄다. 뜨겁게 달궈진 샹젤리제가 화면에 등장했다. 승리의 미소를 띤 수만 명의 사람들, 고난의 시절이 오기 전의 프랑스.
아버지가 눈을 뜨셨다. 가까스로. 소리를 껐다. 그는 어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아이의 환희에 찬 얼굴이 클로즈업된 화면을 바라봤다. 아버지의 얼굴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텔레비전을 껐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르쳐준 자동자 전문 용어를 따라 하지 못하자 지은 표정, 바로 그 표정이었다.
- 플래니터리 기어 세트라니까,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만!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아버지는 나를 포드-T에서 키웠다.
자동변속기의 선조 격이라니까!
레버, 페달, 스핀들 모터 구동 테이프 등의 세계가 그의 왕국이었다. 아버지의 보석은 콘솔, 조디악, 제피르라고 불렸지만,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일해서 만들어낸 자동차를 가질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부자들 좋으라고 일하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씁쓸하지도 슬프지도 그렇다고 역정이 난 것도 아니었다. 포드는 그에게는 일이지, 여가활동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핏기없는 입술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
- 아버지, 괜찮으세요?
어깨가 보일 듯 말 듯 약간 움직였다. 나이와 흡연으로 지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붉은 깃발이 없어. 노조 플래카드가 없다고. 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축구 경기라도 보러 온 거야?
아버지의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저기는 파리예요. 파리 사람들은 원래 저렇잖아요. 일어서서 창가로만 가 봐도 아실 텐데, 여기 페-베를랑 광장에는 붉은 깃발밖에 없어요. 노동자들의 벅찬 기쁨이 가득해요. 긍지와 존엄과 아름다움도요.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눈을 뜨셨다.
- 그러니까 우리가 이겼다는 거지, 아들아?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 우리가 이겼어요, 아버지.
그리고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다시 잠들었다.
가방을 집어 드는 참에 스베틀라나가 왔다. 그녀는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 아버지 진을 빼놓은 건 아니길 바라요!
그녀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췄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을 슬며시 해봤다. 나비가 스치고 지나간 듯한, 정을 담은 가벼운 입맞춤. 그녀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나와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국기를 볼에 그려 넣은 어린아이들이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춤을 추며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러댔다. 그리고 나는 나와는 관계없는 이 기쁨의 한복판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대성당까지 걸어가 가방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웁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포드 노동자들의 단체복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 나서 샤방의 동상 받침대 위로 올라가서 하늘로 팔을 쳐들었다.
한 아이가 나를 따라 했고, 그 아이의 엄마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따라 했다.
그리고 또 한 젊은이도.
그리고 또 다른 사람도….
글·소르주 샬랑동 Sorj Chalandon
기자 겸 작가. 이 글은 블랑크포르 소재의 포드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리베르탈리아 출판사(몽트뢰유)에서 출간된 모음집 『블랑크포르, 죽지 않았어!』에서 발췌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