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미래는 전설 속에 있다

2010-08-06     휴고 해밀턴

1953년 민족주의자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반나치주의자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휴고 해밀턴은 더블린의 가난한 마을에서 성장했다. 자전적 이야기의 제목인 <불결한 피>처럼, 그는 근대성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와 내부에서 추방된 자에게 유대감을 느끼며 아일랜드 문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신작 <아무도 아닌 듯> 등 그의 모든 저서는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아일랜드인은 상상력을 다루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극(劇)으로 표현해내는 독특한 재능은 전세계가 인정한다. 연극으로 옮기는 이야기는 종종 실제 사건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우리 삶과 국가를 이야기하고, 과장하고 비평하는 일은 객관적 현실만큼 의미가 있다. 상상력이 아일랜드 사회 발전에서 담당한 역할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장점과 단점에 많은 것을 암시해준다. 현재 아일랜드인은 깊은 자기 성찰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일랜드를 새롭게 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도처에 걸려 있다. 우리의 상상력이 소비욕으로 바뀌어 미친 듯이 쇼핑을 일삼던 꿈같은 20년이 지나고 선조의 절제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상상력으로 이겨온 고난의 세월
아일랜드 국민의 기질은 열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일랜드 역사는 자유를 꿈꾸는 민족주의적 희망, 고국을 되찾겠다는 바람을 간직한 채 외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민자의 희망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1990년대 경제 붐으로 마침내 벗어난 기나긴 빈곤과 기아, 그리고 전망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버리지 않은 번영에 대한 희망에서 세워졌다. 교육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아 아일랜드에 마침내 번영이 찾아왔고, 우리의 모든 꿈이 이루어졌다. 이민자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경제의 급성장에 도취되어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의 종교 논쟁을 뒤로한 채 평화협상을 전개했다. 이는 다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여기는 지금까지도 업적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느닷없이 우리 희망은 무너져버렸다. 현재 아일랜드가 위기에 처한 원인은 아마 경제학자에게 앞으로 수십 년간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에 놀란 나머지 우리가 길을 잃고 실패할 가능성을 묵과한 건 아닐까? 혹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모든 주머니에 가득 돈이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소비하면서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 바로 이 황금기에 아일랜드가 가난에 대한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두 권을 배출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랭크 매코트의 <안젤라의 재>와 빌 컬른의 <사과 파는 소년에서 CEO까지>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니던 시절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경제가 원만하게 돌아갈 때 국가는 가장 추악한 비밀까지 밝혀내 대처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나 교육기관에서 일어난 섹스 스캔들에 대처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부동산 업계나 은행 업계를 배경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이 팔린다. 우리의 불행에 대한 책임자를 찾는 일은 아일랜드 문화의 일부다. 아니면 아일랜드인은 식민지배, 가톨릭교회(1), 정치적 부패, 악천후 등을 견뎌내는 민족이라는 견해에 그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매한 희생자’라는 태도는 우리 정신세계에 깊이 자리잡아 오늘날에도 실패를 비웃으며 희생양을 지목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우리는 가히 세계 챔피언급이다. 우리에게는 패배에 기꺼이 승복하는 패자의 이미지가 있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프랑스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2)가 ‘신의 손’으로 아일랜드의 본선 진출을 좌절시키면서 그는 정직한 패배자, 무장하지 않은 채 불행을 당한 품위 있는 패전자라는 고귀한 애초의 지위를 아일랜드에 부여했고, 이를 통해 여러모로 아일랜드에 호의를 베풀었다.

최근 20년의 호황, 느닷없는 붕괴

그러나 아일랜드공화국은 변했다. 우리는 자기 연민에 빠진 청소년기를 벗어났다고 믿고 싶다. 연속적인 베이비 붐 세대에 이어, 이제 이민자의 아이들까지 더해져 두꺼운 젊은 층을 지닌 나라에서 우리는 현실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경제 체제라는 거대한 질서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책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최소한 우리는 그렇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현실 사회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느니 스토리텔링 재능을 되찾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지금 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우리는, 생각 없이 돈을 써대던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잠든다. 슈퍼마켓에서 가격 비교조차 하지 않던 시절을 회상한다. 무료급식을 다시 하게 될지 모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과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가 절망적인 빈곤보다는 추악한 부유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그건 아마 단순한 노스탤지어 때문은 아닐는지. 번영 시절의 이미지는 더블린의 백화점에 명품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모습이다. 경제가 호황이던 시절에는 앞다투어 구입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면 환불하고 싶은 명품이다. 매달 할부금도 내지 못하는 판에 정원에 환상적인 인공폭포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면 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사물의 가치가 가격표에 기재된 가격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듯한 시기를 보냈다. 아일랜드 작가 앤 엔라이트가 황금기의 열기를 묘사한 것처럼 “모든 것은 버려지거나 대체될 운명이었다. 심지어 배우자까지 말이다”. 아일랜드가 성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의존한 산업, 바로 건설업에서 호화스러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더블린에서 부동산 개발업자가 부동산 거래로 매달 약 100만 유로를 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거물 비즈니스의 집에는 유리 천장이 있는데, 이 천장이 내려와 수영장을 덮으면 댄스 플로어가 된다고 한다. 유명한 스누커 선수를 초대해 새로 구입한 당구대에서 시구를 하게 하거나, 세계적 스타를 비행기로 모셔와 개인 사교모임에서 공연하게 한다. 아일랜드 유수의 건설업 인사가 몇몇 친구를 파리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해 만찬을 열었다. 그의 부인은 한 참석자가 오트쿠튀르 백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 매장에 가서 2천 유로 하는 동일한 발렌티노 백을 사들고 디저트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고 한다.

물신화된 삶, 상상력을 잃다

우리 아일랜드인은 왜 이런 일화에 놀라는가? 몇 년 전부터 미국 영화에서 흔히 접하던 부자들의 전형적 모습 아니던가? 우리는 왜 아일랜드인은 부자가 되어도 다른 나라 부자와는 다르다고 믿었을까? 우리는 신속하게 성공의 규칙을 답습했고, 지난 시절 배고픈 기억으로 인한 열등감을 묻어버렸으며, 우리의 상상력을 물질로 바꾸었다. 꿈같은 시절은 짧게 끝나고 다시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직 완공되지 않고 비어 있는 주택을 보는 듯하다. 메이크업 제품과 액세서리 구입에 쏟아부은 돈을 생각나게 한다. 놓쳐버린 기회를 떠올리게 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드는 모습이 연상된다. 또다시 불확실한 일자리를 찾아 아일랜드를 떠나서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이민자가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사스러운 일화는 우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발전했고, 오늘날 아직 애착이 가는 ‘아일랜드적’ 신화와도 양립할 수 없다. 흔히 요즘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시기에 성장해 배고픔을 모르기 때문에 탈출구를 상상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배부르고 등 따습던 기억뿐이어서 검소함이라는 충격을 견뎌낼 능력이 없다.

자연의 규칙은 아직 살아 있다

아일랜드 서해안의 애칠섬에 가면 언제나 아일랜드적 삶의 일부였던 겸허함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매년 애칠섬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을 기리는 작은 문학축제가 열린다. 그는 1950년대 이곳을 자주 찾았고, 섬에 작은 집이 있었다. 그는 전후 물질주의의 잠식력을 경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축제에서는 주말에 멋진 해변을 여러 번 산책할 수 있었다. 발바닥으로 돌이 굴러다니고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돌묵상어를 잡아서 돌벽에 지느러미를 널어 말려 중국에까지 수출하는 일을 업으로 삼던 작은 퍼틴항을 가보았다. 오래전 우리에게는 성실하면서도 대담한 면모가 있었다. 사람들의 가슴속엔 희망이 가득했으며, 노래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일랜드인이 상상력을 품고 살던 시절이다. 그때는 마치 온건사회주의 같은 상호부조와 연대라는 자연규칙이 자리잡고 있어 어부가 뱃일을 끝내고 항구로 돌아오면 그날 잡은 어획물을 펼쳐놓고 다시 모두가 동일하게 가져가도록 분배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국가로서 우리의 뿌리를 다시 환기할 수 있었다. 또한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재능을 재평가하는 시간이었다.

아일랜드에는 ‘채찍질하다’(Donne un coup de fouet)라는 표현이 있다. ‘시도하다’ 또는 ‘기회를 잡다’와 비슷한 뜻이다. 우리는 이 표현을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를 응원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상황이 반전되기 힘들어 보이기에 최선을 다해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사용한다. 운을 걸고 해본다는 것은 아일랜드인의 낙천주의를 보여준다.

스토리텔링이 우리를 구하리라

중요한 것은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어디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아는 일이다. 최근 해외에서 성공한 아일랜드 기업인이 모여 아일랜드를 부흥시킬 방안을 모으는 세미나가 더블린에서 열렸다. 세미나에서 도출된 주요 결론은 아일랜드의 잠재된 창의력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듯 우리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예술, 문학, 아이디어 수출 같은 시장에서 말이다.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인 닐 조든은 우리가 정치인, 은행가, 교회로부터 배신을 당했지만 예술가는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 결과 현재 직면한 난제에 대한 주요 해결책으로 아일랜드인의 창의력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가 유명한 배우 가브리엘 번을 첫 번째 아일랜드 공식 문화대사로 임명한 것은 동일한 맥락이다. 결국 스토리텔링 재능이 우리를 구할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인이 예전에 그들의 음악을 세계에 전파했듯이, 오늘날 이민자들이 그들의 문화적 영향력을 우리에게 가져와 아일랜드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아일랜드는 격변의 시대를 나고 있다. 경기침체의 충격에 적응하기가 고통스럽겠지만, 비전으로 가득한 흥미로운 시대이자 아일랜드적 상상력이 새롭게 주목받는 시기가 열린 것이다.

글•휴고 해밀턴 Hugo Hamilton
주요 저서로 2004년 페미나상 수상작인 <불결한 피>와 <아무도 아닌 듯>(2010) 등이 있다. 모두 페뷔스(파리)에서 출간됐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아일랜드 문학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아일랜드인의 삶과 상상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1973년이 되어서야 헌법에서 가톨릭을 명시한 내용이 삭제되었고, 1996년까지 이혼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임신중절 수술은 임부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경우에 한해 허가된다.
(2) 2009년 11월 프랑스 대 아일랜드 경기에서 티에리 앙리는 핸들링으로 득점했으나 어떠한 벌칙도 받지 않았다. 이 골로 프랑스는 아일랜드를 제치고 201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