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제목의 소설

[서평]

2010-08-06     알린 샹브라

짜깁기한 작품, 기존 문학 형식을 파괴한 작품, 정치 우화, 문학 위의 문학…. ‘러시아 문단의 앙팡 테리블’이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소로킨이 집필한 지 20년 만에 출간한 작품 <소설>에 쏟아지는 다양한 수식어다. 이 책은 문학 창작과 러시아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관련해 셀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소로킨은 이 책의 제목을 그냥 <소설>이라 지으며 모호한 느낌을 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림잡아 농노제가 폐지된 1861년과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팬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다. 발단 부분이 뛰어난 구성으로 되어 있고, ‘러시아 영혼’이라는 전형적인 무대장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소로킨이 집필한 작품 <푸른 비계> <오프리추니크의 하루>(프랑스에서 이 두 작품은 <소설>보다 먼저 출간되었다)의 등장인물 및 스타일이 대조적이다.

<소설>의 발단을 보면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문체와 비슷하다. <소설>은 고아 출신으로 변호사가 되었지만 도시와 법복을 버리고 자신이 자란 마을로 돌아가 자신을 키워준 가족 곁에서 그림에 몰두하는 주인공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문학 전통을 깨고 도발적이고 모호한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가 <소설>에 들어 있다.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자신을 길러준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다시 돌아온 <소설>의 주인공 청년, 주인공이 풋풋한 연정을 품은 여성 조이아, 주인공의 유년 시절과 함께한 장엄한 풍경은 현실 속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몽환적 전원을 느끼게 해준다.

주인공은 고향 마을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주변에서 방울져 떨어졌다.” 이 대목은 ‘근원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그렸다. 그리고 ‘낭비’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풍요로운 느낌을 묘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마을에서 부유한 공증인으로 일하는 아저씨 집의 푸짐한 식사 장면이 대표적이다. 주인공이 늑대와 오랜 사투를 벌이는 에피소드는 격렬한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 “죽였어… 널 죽였어… 죽였어….” 주인공이 늑대를 죽인 후 중얼거린 말이다. <소설>에서 강렬함이 정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볼셰비키 혁명 때처럼 역사 속에 갇힌 주인공이 큰 변화를 맞으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해체와 단절을 상징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좋아했던 모든 것, 과거와 헤어지게 된다. 소로킨은 보편적이면서 대단히 ‘러시아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구시대적 부분을 도끼로 잘라내듯 쳐낸다. “이 소설이 박물관의 유물이 되는 것이 싫다.” 소로킨이 <소설> 출간 때 한 말이다. 분명 <소설>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작품이다.

글•알린 샹브라 Aline Chambras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