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재정, 처방전이 뒤바뀌었다

[Spécial] 대위기, 제2막

2010-09-03     로랑 코르도니에
줄거리는 단 몇 줄로 요약된다. 초기에는 얇아진 월급봉투와 빚에 시달리는 가계, 그리고 투자되지 않은 막대한 이익이 있었다. 그러다가 2년 전, 1929년 공황 이래 가장 격렬한 금융위기가 닥쳤다. 마침내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시장을 길들이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24개월이 흐른 지금,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얇아진 월급봉투와 빚에 시달리는 가계 (및 정부), 막대한 이익….

‘시장’을 진정시키려면 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한 유럽 정부는 긴축재정을 강요했다. 이것이 경기회복의 숨통을 조일 우려가 있음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그 사이 인간 사회가 발전시킨 최상의 것을 중심으로 인간 사회를 재편성하기 위한 각종 계획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정치적 사상은 사회적 힘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유럽 노동자들은 결국 자유주의 실패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실에 신물을 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금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브뤼셀에서는 긴축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다. 유럽의 동부와 남부,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대위기의 제2막이 사회 분야에서 전개되려는 것일까?                

리먼브러더스 은행 도산 후 2년이 흐른 지금, 금융위기는 유럽 국민에게 긴축재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과오를 속죄하기 위한 희생을 결연히 ‘권고’받았다. 레이건-대처 시절 이래로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부유층 고객에게 선사한 세금 인하로 유지된) 공공 부채라는 허수아비를 뒤흔들면서 국가 지출을 줄이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한편, 사회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약화시키려 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국가들이 다시 한번 그런 습성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만큼 이번에는 예의 ‘쇼크 독트린’(1)이 꽤 좁은 문으로 응당 줄행랑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문 보기>>

긴축재정으로 경제 성장시킨다?

정부로서는 국민이 ‘자기 분수 이상의 삶’을 마냥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정도로 공포감을 주는 동시에, 공공 부채 규모에 이미 질겁한 시장을 안심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런 이중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 능수능란함이 필요했으나, 모두가 이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헝가리의 자유주의 집권당인 피데스(Fidesz·청년민주동맹) 지도자들은 이른바 재앙에 가까운 공공 재정 상태(2)를 사회주의 전임자들의 탓으로 돌리려 했지만 상당히 미숙했다. 이들은 부다페스트와 아테네의 상태를 비교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장’은 별 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하다. 이들의 발표 다음 날, 포린트화 가치는 3% 하락하고 채무불이행 위험 대비 보험료가 폭등하는 등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했다.

그 이후로, 적어도 담론상으로나마 각국 정부의 주장은 좀더 섬세해져서 절제의 규범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공표했다. “재정 적자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이면 경제성장에도 이롭습니다. 경제성장을 해치기보다 장기적으로 도모할 것이라고 우리는 전적으로 확신합니다.” 군중심리에 정통한 쇼이블레 장관은 부연설명을 했다. “독일 국민은 통화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이들은 적자가 과연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인지 걱정합니다. 적자를 적당히 줄이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습니다.”(3) 한 침대에 누운 케인스(수요)와 긴축재정, 즉 긴축을 빅토리아 여왕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셈이다. 이런 모습을 시장이 마음에 들어 한 듯하다. 몇 주 전부터 유로화가 안정되고 있으며, 독일 및 프랑스 국채에 대한 이자율이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유럽연합 재무장관들의 모임인 유로그룹(Eurogroup)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는 상호모순적인 경제지표(4)을 뒤로한 채 이를 믿고 싶어하는 듯 “상황이 정상화 일로를 걷고 있다”(5)고 말했다.

유럽이 끝없는 잠재적 디플레이션기로 접어드는 것을 ‘정상화’ 일로라고 표현했다면, 그의 진단도 어느 정도 옳다고 할 수 있다. 정통파에 가까운 경제학자이자 <파이낸셜 타임스>의 인기 논설위원인 마틴 울프는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일본(혹은 캐나다나 스웨덴)이 1990년대 긴축정책을 실시했을 때, 세계경제는 건재했고 과잉공급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경기침체를 상쇄해줄 만큼 경제가 강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재정을 조율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각국 경제가 위축됨에 따라 더 큰 규모의 주기적 적자가 발생해 구조적 긴축 노력에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지구상 많은 국가가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의 긴축재정 정책에 맞서 자신의 몫을 챙기려는 게임에 돌입할 것이다.”(6)

채권시장 또 한 번 공황 맞을 수도

최악의 경우가 무엇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에, 시장에서는 긴축정책을 지지할지도 모른다. 2013년을 겨냥한 공공 적자 감축 목표(조만간 신용평가기관들의 발표에 힘입어 그 기만성이 드러날 것이다)의 현실성에 시장이 눈을 뜨면 채권 시장이 또 한 번 공황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극단적 상황에서 발표된 유럽경제 구제 방안은 심각한 채무를 안고 있는 국가들을 공동으로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지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기에, 이를 실행조차 못할 가능성이 있다. 채권자들의 눈에는 프랑스 축구대표팀이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선발선수 24명이 각기 성공을 거둘 가능성보다 불확실해 보인다. 유럽의 구제 방안은 결국 썩은 나무판 두 개에 각자 피곤한 몸을 기대고 지탱하려는 형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재앙이 닥칠 우려가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구사할 반작용 전략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선사한 경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다른 타당한 선택도 있으니 말이다.

공공 부채의 규모가 (경종을 울릴 만하지 않으나) 우려할 만한 수준이며 가장 큰 위협이 디플레이션이라고 볼 때, 이에 대한 처방약은 명백하다. 디플레이션의 원동력을 저지하고, 고소득 및 자본소득에 합당한 조세제도를 복원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각국 정부가 실시한 경쟁적 탈인플레이션 전략 때문에 위험이 가중된 상태다. 이 정부들은 임금 긴축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자신보다 긴축 성향이 약한 이웃 국가에서 나오는 외부 수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했다(12면 기사 참조).(7) 경제적 유럽공동체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조직이라면, 무역 흑자를 쌓고 있는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임금을 증대시킴으로써 경쟁력 격차를 (상위에서부터) 평준화할 수 있도록 임금정책을 함께 조정할 것이다.

임금 리플레이션은 일거삼득

이처럼 유럽 차원에서 조율하고 노사와 협의한 임금 ‘리플레이션’ 정책(원래는 통화 재팽창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임금 인상을 의미한다. 리플레이션 정책은 불황기에 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재정·금융을 확대하면서 경기의 회복·확대를 도모한다-역자)의 장점은 비단 적절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유럽중앙은행의 도움 없이도 통제가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부채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다. 이런 정책 덕분에 ‘경쟁력 과잉상태’의 수출 지향 기업들이 자신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마진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부가가치가 더 바람직하게 분배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리플레이션’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춘다면 유럽 공공 재정의 회복을 달성하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따져볼 때 공공 적자는 경제·금융위기, 경기부양정책, 그리고 경제활동 및 소득 감소에 따른 조세수입 감소가 거의 전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발생하기 전인 2007년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공공 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0.6%(신규 회원국을 포함해 27개국 기준으로 0.8%)였다. 2년이 지난 2009년에는 비중이 6.3%(27개국 기준 6.8%)에 달했다. (다름 아닌 긴축정책 중단을 통해) 재정 상태가 나아지면 공공 적자도 바람직한 한도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시장 회복을 재촉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들이 탈세 방지를 위해 (긴축재정을 가지고!) 노력하기로 뜻을 모으면 된다. 유럽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탈세가 유럽연합 GDP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2.5%나 된다.(8) 공무원들의 임금 1% 인상(프랑스 GDP 중 0.06%)(9)을 가로막기보다는 탈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얻는 부분이 더 클 것이다.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특이하다. 이웃 유럽 국가의 추세를 역행한 조세 인하가 바로 적자의 주요 원인이다. 프랑스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정부의 ‘구조적’(10) 적자는 2009년 GDP 중 5%에 해당했으며, 1년에 약 1천억 유로 선이다. 이는 공공 지출의 ‘구조적’ 파행에서 비롯된 것이 전혀 아니다. 프랑스의 공공 지출은 2000년대 초 이래 증가 폭이 미미하다.(11) 재정 적자의 원인은 프랑스 하원 재정위원회를 대표해 대중운동연합당(UMP) 소속 질 카레 의원이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2000~2009년 프랑스 정부 총예산에서 줄어든 조세 수입은 1012억 유로(GDP 대비 5.3%)에서 1193억 유로(6.2%) 정도로, 이 가운데 3분의 2는 ‘조세 인하’라는 새로운 조치의 순비용에 기인하며, 3분의 1은 조세 수입이 타 공공 행정기관(주로 사회보장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으로 이관된 결과이다.”(12)

조세 인하분의 절반(330억~415억 유로)은 소득세에 해당하는데, 과세표준 구간의 잇단 축소와 세금공제 확대에서 비롯됐다. 또한 상당 부분(약 100억 유로)이 법인세 인하 조치에 따른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사회분담금 감면의 경우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조치로서, 해당액을 국가가 사회보장기관에 보상해줌으로써 발생하는 조세 수입 손실은 약 270억 유로에 달한다. 이런 여건에서 공공 재정을 회복시키려면 재정 집행의 긴축재정보다는 정신적·도덕적 긴축재정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소득자와 자본소득자에게 선사한 선물 때문에 발생한 낭비를 점검만 하면 된다.

과세제도 개혁만으로 재원 충분

매년 놓친 400억 유로의 소득세를 되찾아오기는 식은 죽 먹기다. 공제율 50~80%에 해당하는 과세표준 구간 1~2개를 복원하고, 해당 금액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게끔 구간 경계선을 제대로 설정하면 된다. 채권 시장이 다시 폭락할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납세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400억 유로의) 추가 세금을 납부하거나, 아니면 그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좌에 저축해 7년간 묶어둠으로써 이런 ‘조세 옵션’으로 재정 적자를 지속적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선택은 부유층이 오래전부터 누려온 것이다. 자신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정부에 투표하고, 덕분에 절약된 돈으로 정부의 공채를 사주며 반대급부를 제공했다. ‘조세 옵션’을 실시할 경우, 저축에 대해 이자를 지급해 이중 배당금을 주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이자율 0%의) 적금을 신설하고 선택이 ‘자유롭다’는 의미로 ‘Liberal’의 알파벳 첫자를 따서 ‘L적금’이라 명명해도 좋다. (7년 후) 확정지급형인 이 적금을 통해 모을 수 있는 금액은 8400억 유로로 추산된다. 정부가 채무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절약하는 금액은 연간 약 320억 유로에 달할 것이다. 이로써 프랑스 공공 부채의 절반은 시장 밖에서 안전하게 확보하게 된다. 아울러 ‘시장’이 느끼는 채무불이행 위험도 거의 사라지는 동시에 안정화 협약 기준도 가뿐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 프랑스 외 국가에서 이를 따라하는 것도 언제든지 환영이리라.

글•로랑 코르도니에 Laurent Cordonnier 
노동경제학 전문가로서 현재 릴 제1대학 교수 및 릴 정치대학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주류 경제학의 기초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금융과세연합’(ATTAC) 회원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토암바픽인들의 경제>(Raison d’Agir·Paris·2010) 등이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나오미 클라인의 책 이름. 친자본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포와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전략을 뜻한다. 클라인은 그 주체를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표현했다-역자. 프레데리크 로르동, ‘은행에 굴종하는 정부 ‘경제 쇼크’ 막을 수 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3월.
(2) 사회주의 정부는 이미 헝가리 국민에게 전례 없는 긴축요법을 실시해 공공 적자를 2006년 10% 수준에서 2009년 5% 이하로 끌어내렸다. 
(3) 프랑스 경제 일간지 <레제코> 인터뷰, 2010년 7월 21일.
(4) 미국의 경기회복은 힘겹게 진행되는 듯하다. 2010년 2분기의 연 경제성장률은 2.4%로 추산된 반면, 직전 두 분기에는 이 수치가 각각 5.6%와 3.7%을 기록했다. 지난 7월 미국 경제에서 사라진 일자리만 13만 개가 넘는다.
(5) <AFP>, 2010년 8월 3일.
(6) ‘두려움 때문에 디플레이션 위험을 못 봐서는 안 된다’,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2010년 7월 8일.
(7) ‘유로메모랜덤 그룹’의 2009, 2010년 보고서 ‘위기의 유럽, 유럽연합의 대응 실패에 대한 비판 및 민주적 대안을 위한 제안’ 참조.
(8) 유럽집행위원회 실무문서, 2006.
(9) 필자가 직접 계산.
(10) 다시 말해 위기로 설명할 수 없는 공공 적자 부분.
(11) 국내총생산 중 공공 지출의 비중은 1993년 55%, 2000년 51.5%, 2009년 52.5%를 기록했다(경기부양책 배제).
(12) 재정위원회 보고서 2689호, 201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