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의 독버섯
독일의 무차별 ‘신중상주의’

[Spécial] 대위기, 제2막

2010-09-03     틸 판 트레크

독일 정치인들은 독일 경제의 견고함에 철석 같은 믿음을 과시한다. 사민당이나 보수당 할 것 없이 독일이 ‘수출 최강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2009년 중국에 내주긴 했지만 가치상으로는 전세계 최고 수출국) 지난 10년간 경제구조 개혁을 펼친 덕분이라고 자평한다.

그러나 독일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세계 교역량 급감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009년 유럽 다른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이 3.7% 하락에 그친 데 반해 독일은 5%나 하락했다. 그런데도 독일은 여전히 유럽연합 내 경제 안정의 모델로 간주된다. 이는 특히 유럽 주변국(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 스페인·아이슬란드)과 비교할 때 그렇다. 그 예로 독일 예산 적자의 건전성을 언급한다. 포르투갈은 8%, 그리스는 거의 14%, 프랑스는 8%대인 데 비해 독일의 예산 적자는 2009년 GDP 대비 3% 미만이었다(2010년에는 5%대로 달라질 것이다). 독일은 나름의 노력과 규칙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은 이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일을 지배하는 이런 식의 경제위기 해법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최고 경제대국(독일 혼자서 유럽연합 GDP의 4분의 1을 차지)이 수출 기반의 성장 전략을 지속한다면 교역 불균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역 불균형으로 다른 회원국은 독일에 대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혹독한 예산 긴축과 임금 삭감을 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런 정책들이 도입되면 실업률 상승과 디플레이션, 사회 불안을 동반한 악순환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이는 케인스가 16세기에 발전한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내린 진단과 같다. 중상주의는 국가마다 이웃 국가를 희생시키면서 자국의 무역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논리로, 필연적으로 국제수요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결국 전체 체계를 와해시킨다. 현재 독일의 신중상주의는 유럽 통화 공동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2009년까지만 해도 신중상주의는 하나의 합의였다.

보수주의자(CDU)가 주도하는 연립정부를 이끈 메르켈이 슈뢰더에 이어 총리직을 맡기 전인 1998~2005년에 독일을 이끌던 당은 사민당(SPD)이다. 사민당으로서는 ‘어젠다 2010’이라 명명한 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2년 시작된 ‘구조적 개혁’이 독일 내수를 약화시키고 불균형을 가져왔다는 점을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사민당 후보 슈텐마이어는 2009년 연방 선거를 위해 공개한 ‘독일 계획’에서 어젠다 2010의 성공을 이렇게 자화자찬했다. “1998년 이후 우리 사민당은 독일을 현대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회복시켰습니다. 사회적 동반자들과 협력하며 임금을 억제한 덕분에 우리 기업들을(우리 제품들을) 전 세계 시장에서 최고 위치에 다시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국제 언론들이 ‘유럽 내 중환자’로 부르던 나라가 유럽연합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임금 억제와 수출 드라이브

여기서 고용시장의 규제 완화를 에둘러 표현한 ‘현대화’는 실상 1990년대에 시작되었고, 어젠다 2010의 영향으로 가속화했다. 현대화는 국가의 전체 부에서 임금의 비중을 줄이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2005년 슈뢰더 당시 총리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현대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저임금 노동시장 분야를 창출했고, 실업수당 체계를 수정해 근로를 적극 독려했다.” 독일 경제 분석위원회와 대다수 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정부는 항상 법정 최저임금 도입을 거부했다. 이런 선택은 임금협상 법안에 대한 공공연한 거부와 함께 전후 시작된 독일 임금협상 체계를 해체시켰다. 독일 정부는 매우 영향력 있는 고문인 한스 베르너 진과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것 같다. 그는 2009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저임금 분야의 발전은 어젠다 2010이 실패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성공했다는 증거다.”(1)

지난 10년간 독일 경제의 성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 이들에게는 이런 낙관이 구체적 수치에 근거하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신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단일통화가 출범한 1999년과 금융위기 발발 전인 2007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함께 유로존 중 가장 낮은 성장을 기록했다. 독일 경제의 고용 창출은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의 그것보다 낮았다(그리고 GDP 격차를 고려할 때 독일의 뒤처짐은 지속적이다). 독일 정치 지도자들이 주저 없이 독일 경제의 ‘신기적’이라 평한 2005~2008년 경제 번영기에도 고용 창출은 프랑스보다 적었다. 이는 2000년대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35시간 근무제 도입 직후).

이와 동시에 독일 내 빈부 격차는 너무 빠르게 벌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OECD는 한 보고서에서 “2000~2005년 독일에서 임금 불평등과 가난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2)고 지적했다. 2005~2008년에도 불평등과 비례하는 독일의 ‘지니계수’는 4점이나 급등했다. 고용시장의 규제 완화로 경기가 침체하고 임금이 삭감된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복지국가의 후퇴와 일반적인 공공 비용 감소를 들 수 있다. 유럽 의회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1998~2007년 인플레이션 조정 공공 비용을 삭감한 유일한 유럽 국가다. 유로존에서는 같은 기간 공공 비용이 14%나 증가했다. 국가의 기능이 후퇴한 데는 기업과 상류층에 유리한 실질적인 세금 인하, ‘국가 예산 균형’ 및 공공 부채 감소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빈부 격차 커지고 고용 창출은 바닥

극도의 내수 침체와 매우 역동적인 수출로 대비되는 상황은 상당 부분 이런 정책에서 비롯됐다. 1999~2007년 독일은 유로존에서 내수보다 수출이 GDP 성장에 더 많이 기여한 유일한 국가였다. 가계 소비는 실질임금 감소와 고용시장 및 사회 안전망 개혁에 따른 불안감으로 빈사 상태다. 공공 비용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바도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임금 억제’가 독일 수출의 경쟁력을 높인 것은 확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유럽이 치르는 대가는 어떤가? 통화 공동체 틀 안에서 국가 간 경쟁력 격차는 더 이상 화폐 가치 평가절하로 보완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노동 단가의 변화(국가 인플레이션율과 밀접한 관계 있는)가 나라마다 다르므로, 어떤 국가들이 다른 국가에 비해 기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1999~2007년 그리스·아이슬란드·포르투갈·스페인 등지에서 노동 단가는 28~31% 상승한 반면, 독일의 노동 단가는 2% 미만 상승에 그쳤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모든 회원국이 독일에 대해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물가인상률이 낮은 독일에서 실질금리가 가장 높았고, 이것이 내수를 더욱 약화시켰다는 사실이다. 1999~2007년 노동 단가가 17%만 상승했던 프랑스조차(유럽중앙은행이 규정한 인플레이션 목표에 근사하게 부합한) 1999~2003년에 무역수지 흑자가 이후 적자로 돌아섰고, 갈수록 심화되었다.

그러나 지난봄 투기 자본의 공격 대상은 해당 국가의 예산 적자보다는 무역수지의 불균형과 관련되어 있다. 1999~2007년 스페인의 공공 적자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유럽 안정성장협약’이 규정한 3% 한계를 넘어선 적이 한 번도 없다(비교하면 독일은 2002~2005년 이 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 기간에 GDP에서 공공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62%에서 36%로 줄었고(당시 독일의 공공 부채는 61%에서 65%로 증가했다), 2005~2007년에는 흑자재정으로 저축도 했다. 반대로 스페인의 민간 분야(가계와 기업)에서 지출은 구조적으로 소득을 초과했는데, 이는 특히 부동산 거품 때문이었다. 적자가 지속되어 몇몇 연도에서는 GDP의 12% 적자를 기록했다. 공공과 민간 분야 사이의 수지 적자로 전체 부채가 큰 비중으로 상승했다. 2008년부터 민간 부채의 거품이 꺼지고 실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스페인은 지급불능 채권을 떠안아야 했고, 엄청난 규모의 차관을 빌려와야 했다. 아이슬란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1999~2007년 공공 부채는 49%에서 25%로 줄어들었지만, 같은 기간 민간 적자는 상승했다(그리스와 포르투갈의 경우 역시 오랜 기간 재정 적자 상태였지만 민간 분야와 비교하면 양호했다). 따라서 한 국가를 채무 불능에 이르게 하고 금융 투기 자본에 노출되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재정 적자가 아니라 외채를 양산하는 무역 적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 지도자들이 ‘구조적 개혁’을 자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개혁으로 투자자들의 눈에 좀더 ‘견고’하고, 좀더 ‘안전’한 국가로 비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독일의 힘은 ‘피루스의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을 보면, 로마인에게 다시 승리한 것을 모두가 축하할 때 에피로스의 왕은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한 번 더 이런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 모두는 파멸할 것이다.” 전쟁에서 그는 상당 부분의 전력과 대다수의 장군뿐 아니라 동맹군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역수지 불균형, 유로존 위협

독일의 상황도 전혀 다를 바 없다. 세계화 전쟁 속에서 독일의 승리는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다. 우선 사회적 측면에서 불평등과 빈곤이 폭증했고, 중산층조차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정치적으로는 유럽에서 독일 우방국들은 독일의 신자유주의 결과로 피해를 입고 있고, 메르켈 총리의 유럽 연대에 갈수록 의혹을 키우고 있다. 수출 중심의 독일 전략은 다른 파트너들의 무역수지 적자를 확대해야만 가능한 전략이다. 앞서 보았듯이, 무역수지 적자는 현 경제위기의 원인이다. 국익 관점에서 봤을 때 수입 국가들의 지급불능 부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입해야 하는 구제 조처 비용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독일 전체 수출의 40% 이상은 유로존 국가로 향한다).

유럽 내 경제 최강국이 전체 수요 확대에 기여하지 않는 한 유럽통화공동체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는 지난 세기 초반기 유럽을 해체시킨 무역전쟁을 분석하며 케인스가 이끌어낸 교훈이다.

사민당은 늦게나마 독일 경제 독트린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2009년 독일 계획을 통해 사민당은 다음과 같은 점을 인정했다. “독일 경쟁력 우위를 위한 반대급부는 소비 약세다. (중략) 소득재분배를 더욱 공평하게 하고 공공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메르켈이 이끄는 보수주의자들은 현재의 정책을 바꿀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히고 있다.

글•틸 판 트레크 Till Van Treck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국제단체 남극보호연합 한국지부 담당관. 주요 역서로 <녹색희망> 등이 있다.

<각주>
(1) 한스 베르너 진이 쓴 <Die Agenda 2010 und die Armutsgefährdung>, Ifo Schnelldienst, 뮌헨, 17번, 2009, 23~27쪽 참조.
(2) OECD 보고서 <불평등 증가? OECD 회원국 내 소득분배와 빈곤 문제. 국가별 노트: 독일>(Growing Unequal? Income Distribution and Poverty in OECD Countries. Country note: Germany), Paris,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