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근본주의 사이
아랍 지식인의 침묵, 또는 아첨
우리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 대립과 갈등을 상상하지만, 사실 불균등한 세력들이 지속적인 연합을 이루고 있다. 정부 당국은 영향력을 확장하려 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정권 장악 목표를 포기한 채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독재권력의 과오에 침묵하고 있으며, 지식인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에 침묵하는 등 항구적인 연합게임, 즉 암묵적인 협정을 맺고 있다. 이렇게 해서 권위적인 국가는 영속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문 1면을 종종 장식하는 지정학적 분석 기사를 통해 아랍 세계를 이해하거나, 아랍 세계가 직면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관련된 문제들을 운운한다. 그러나 이 기사들은 이 지역에서 태동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인을 숨긴다. 정작 이런 동력이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규정하는데도 말이다. 가령 히잡 착용이 근동과 마그레브(북아프리카)에서 정책 결정 없이(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예외다) 단지 사회적 압력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슬람 법학자들은 지난 2세기 내내 현대적인 문화 표현 형태를 경계해왔다. 이런 표현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와 무관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게 될까봐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교도들의 거센 항의에도, 대부분의 예술과 문화 관행(현대적인 표현 형태)은 그대로 수용됐다. 실제로 서양식 일부 문화상품(현대 회화 등)은 서구화된 부르주아 계층인 ‘에펜디’(Efendis)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슬람의 위대함은 문화 흡수력
이런 신중한 관용주의는 이슬람 사변신학인 칼람(Kalam)과 관련이 있다. 칼람은 이슬람 종교를 이슬람 율법 샤리아(Charia)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종의 다원주의도 수용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소 세속적인 문학과 예술 관행(시, 서예, 조형예술, 음악)들이 종교와 호환이 가능하다고 여겼고, 심지어 이것들이 이슬람 관습을 저해할 때조차 그렇게 판단했다. 놀라운 다양성과 종종 대담한 창의성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이슬람 역사의 일부다.
이슬람의 위대함은 확실히 무수한 문화의 영향을 흡수하는 능력에 있다. 이슬람 세계는 위대한 문학과 고전철학의 전통을 보호하고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서적을 불사르는 대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을 건립했다. 이후 도서관은 오랫동안 서구의 형성에 필요한 문서들의 보관 성소로서 역할을 했다. 아랍 세계는 서적이 모든 인류의 지적 유산을 구축한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던 것이다.
세속주의 외부의 이슬람 근본주의
수십 년 전, 종교 색깔을 띤 이런 규범 형태가 승승장구하며 아랍민족주의와 충돌했다. 요즘은 심지어 ‘세속적인’ 온건 이슬람주의자조차 공개적으로 이런 형태의 신앙을 비판하기 꺼린다. 정체성의 덫에 갇힌, 온건 이슬람주의자는 자신이 정권의 눈에 보수주의자로 비치거나, 대중의 눈에는 심지어 아랍의 신뢰성에 먹칠하는 적으로 비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2009년 여름, 한 젊은 모로코 그룹이 라마단 금식을 깨고 공원에서 소풍을 즐긴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종교인뿐만 아니라 모로코의 최대 사회민주당인 ‘국민사회주의연합’(USFP)도 이 사건에 분노하며, 금식을 깬 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좌파의 이런 ‘종교적인 규범’은 민족주의 언어 형식을 빌려 이 소풍을 모로코 문화를 모독하고, 모로코의 정체성 합의를 깰 위험한 시도로 간주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모로코 당국이 거의 적용하지 않는 ‘공공질서 문란죄’로 이 젊은이들의 기소를 결정했지만, 세속적인 법률을 이용해 종교단체의 반발을 차단한 것이다. 이를테면 모든 정치계가 만장일치로 <코란>의 계율을 조금도 어길 수 없다고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공공영역도 점차 엄격한 <코란> 강독의 산물인 의무와 금지 규범으로 구성된 엄격한 문화 규범의 틀 안에 갇혔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가 된 이슬람 종교는 살라피스트의 율법 해석을 축으로 하나의 논리를 구축해, 이 논리로 지금까지 세속문화로 간주되던 것들을 이교 행위로 취급했다. 문화와 관련된 개방적인 이슬람 개념은 문화를 배제하는 우둔한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해석으로 대체됐다. 그 후, 종교의 신성한 공간과 문화의 세속적인 공간 사이에 소통구가 막혔다.
그렇더라도 이런 ‘이슬람 근본주의화’의 동력이 텔레비전, 비디오, 인터넷 혹은 대중문학을 통해 전파되는 문화상품의 향유를 막지는 않는다. 서양과 세계화를 접하려는 사람들의 열정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이런 열광을 ‘이상한’ 현상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이것은 온갖 종류의 현대적인 문화상품에 적응하는 아랍인들의 천재성을 무시한 처사다.
한편 이슬람 엘리트들은 차츰 서구의 문화재단, 비정부기구, 걸프 지역 왕국들이 후원하는 시스템을 통해 장려되는 현대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국민은 급격히 확산되는 다국적 오락물과 미디어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북미 규격 제품의 확산에다 뉴스 채널인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가 대량 유통시킨 TV 시리즈물과 대중문학, 특히 실용적인 처세술이나 연인의 삶에 대한 책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인터넷을 통해 창작이 가능해진 음악과 예술품이 봇물을 이루며 아랍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이런 혼합문화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이 현대 아랍 문화의 상업화와 ‘축제화’다. 현지 사업가, 프로모터, 유통업자가 확산시키는 이런 현상은 아랍 세계의 고유 문화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다.
TV·인터넷 통한 대중문화와 동거
대부분 이런 문화 관행은 종교적인 맥락을 배제시켰다. 서구뿐 아니라 인도,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화의 영향에 포화상태가 된 이런 문화행사들은 완전히 세속적인 성격을 띤다. 이슬람 정치의 도약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문화를 이슬람화하려는 시도들은 상대적으로 성과가 미미하다. 그러나 예술가와 제작자들은 글로벌화된 문화와 종교적 규범의 상충된 요구를 수용해, 종교와 무관하거나 사회 세속화에 기여하는 자신의 작품에 기꺼이 ‘이슬람교도’라는 라벨을 단다. 예컨대 이들은 이런 소속감을 내세워, 종교적인 관행이 아닌 어떤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분열증이 아랍 지역에 번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사적으로 혹은 준(準)공공장소에 삼삼오오 모여 세속문화를 즐기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자신들의 정체성, 즉 이슬람교도임을 드러낼 궁리를 한다. 예를 들어 영화관에 가는 것을 회피하고, 모스크에 가거나 수염을 기르고, 혹은 히잡을 쓴다. 문화생활은 이 두 영역에서 서로 병렬로 진화했지만, 종교적 규범이 공공장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선 여전히 종교 규범
우리가 이런 현상을 엘리트와 대중 간의 사회적인 분열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난 세기에 서구화된 부르주아 계급은 모든 세속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일반인은 보통 이슬람이 지배하는 전통문화에 안주했다. 이런 간극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20여 년 전부터 교육이 향상되고 문맹 퇴치가 진전돼 상황이 바뀌었다. 이는 TV와 인터넷을 필두로 한 기하급수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증대와 연관이 있다. 다른 언어와 문화의 접촉이 더 이상 부자만의 특권이 아닌 것이다.
점점 더 다양한 문화 관행이 등장했다. 젊은이들은 종종 아랍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문서를 참조하고, 음악을 듣고, 블로그에서 정보를 얻고 있다. 이들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질적으로 중동·북미·남미를 포함한 서구의 영향을 받은 문화 관행들을 행하며, 이따금 상품들을 스스로 유통시키기도 한다.
대중문화의 다양화가 세속화와 민주화의 프로세스를 기계적으로 생성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오늘 연애소설을 읽는 자가 내일은 종교 전단을 읽을 것이다. 예컨대 이슬람 전용 위성채널인 <이크라>(Iqraa TV)를 시청하며 점심을 먹는 자가 아랍 <MTV> 채널에서 인기 여가수 로타나 뮤직비디오를 보며 저녁을 먹는 것이다.(1)
게다가 살라피스트들은 인터넷처럼 새로운 도구(<이크라>와 아랍 <MTV>)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종교인들은 세속적인 문화상품의 소비를 ‘비밀스러운 죄악’으로 간주하겠지만, 아랍의 독재체제들은 이를 어떻게 볼까? 아마 사회적·정치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오락거리로 여기는 것 같다. 다만 비록 사적인 영역에서 종교적 규범이 배제되지만 모두가 살라피스트적인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여가’를 즐기다가 <코란>의 규율을 사적으로 위반하며 종교의 장악력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위반은 사적이지만, 살라피스트의 규범은 공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유연한’ 이데올로기적 권력 형태로 합치면 관료적인 검열보다 더 효과적이다.
문화의 대들보인 언어도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역사적으로 이슬람교도는 항상 글을 인간 정신의 최고의 표현으로 추앙했다. 그런데 아랍 지식인이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아랍어권 문학이 도외시되고 있다. 이슬람 민족주의자와 근본주의자는 문화의 표현 수단으로 고전 아랍어, 즉 <코란>의 언어인 포샤(Fosha)만 허용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 일각에서는 포샤가 아랍 국가를 융합시킨다고 하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포샤가 움마(oumma), 즉 이슬람 세계의 연결고리라고 한다. 물론 이런 포샤에 대한 개념은 코란 학교 밖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고전 아랍어와 길거리 아랍어, 혹은 심지어 미디어, 대중연설 그리고 대중소설에 쓰이는 ‘표준’ 아랍어 간에 심오한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게다가 소설은 종교에서 벗어나는 방식과 아랍어를 포샤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방식, 즉 이슬람 규범을 이중으로 위반하는 방식으로 실존 문제를 탐구하며, 반종교적 의혹을 받는 장르로 낙인찍힌 탓에 작가들의 임무 수행이 고달프다. 소설의 이런 실패가 대중적인 표현의 출현을 저해하고 있다.
근본주의와 독재정권의 공생관계
법률 분야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이 발견된다. 각 아랍 국가는 이슬람 율법을 자체적으로 해석해 만든 고유의 법률과 법안에 종종 현대 법률의 원칙을 통합한 ‘이슬람주의적’인 법률, 즉 궁극적으로 ‘샤리아’를 토대로 법률을 제정했다. 여태껏 이런 양가감정이 정치적 가능성을 제한했다. 그렇더라도, 다시 말하지만 종교적인 규칙의 부과가 반드시 법정이나 행정의 실제 관행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현대 아랍 국가는 히잡을 착용하도록 한 사회적 규범이나 영화관 폐쇄 등 이슬람 극단주의적 정책을 수락하며, 이슬람의 공식 수호천사인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암묵적인 동맹 정책을 공고히 하고 있다. 한편 이 수호천사들은 정권 개혁보다는 정권의 신임을 받는 데 더 신경을 쓴다. 국가는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을 수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경찰이 아닌 종교 이론가들을 동원해 공동체를 경건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국가는 자신의 활동 영역을 극단적인 샤리아 조항(예를 들어 간통 여성과 남성을 돌로 쳐 죽이는 조항)을 금지하는 것으로 국한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살라피즘의 규칙을 사회규범으로 인정하면서도 국내의 온건 이슬람주의와 서양의 옵서버와 함께 전면적인 이슬람화를 막는 성벽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민주개혁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국가가 기꺼이 이슬람교도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로부터 자신의 신변을 지켜주기 바란다. 그 대가로 이들은 이따금 자신의 지도자를 지지하는 데 동의한다. 극히 권위적인 정부일지라도 이슬람주의보다는 덜 악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정부는 문화의 자율성을 일부 유지하며, 미래의 자유화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제리 정부는 이슬람주의자들과 전쟁 중이고, 이집트에서는 작가 사이드 알 켐미가 파트와(Fatwa·이슬람 고위 성직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내놓는 권위 있는 결정-역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국가는 그를 보호했고 심지어 2009년 6월 그에게 훈장까지 수여했다.
비록 문제의 주인공들(이슬람주의자들) 중 그 누구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지만, 국가는 이따금 덜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는 이슬람 단체, 가령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단체와 협상한다. 국가는 심지어 이들 중 소수에게 ‘온건 야당’ 타이틀을 붙여 국회에 안정적인 자리를 내주겠다는 보장까지 한다. 이런 협상이 국내 정책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를 동시에 제압할 수 있도록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양한 사회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이런 불안한 균형 덕분에, 정부는 잔인한 억압 정책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 억압 정책은 이젠 살라피스트 강제 규범의 활성화로 인해 더욱 교묘해졌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지식인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투항을 야기할 수 있다. 한편, 사람들은 실질적 혹은 가상적인 ‘두뇌 유출’을 목격하고 있다. 현재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해외에 거주하거나 모국 팬이 아닌 해외 팬을 위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이집트인이나 튀니지인으로 소개하기보다는 되도록이면 ‘아랍인’과 ‘이슬람교도’로 소개한다. 자신의 정체성의 근본 요소가 살라피즘의 근본 요소와 밀접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글을 포샤로 쓰며, ‘아랍’과 ‘이슬람교도’를 동의어로 간주한다. 지리적 혹은 사상적으로 자국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어 모국이나 자국민과 접촉도 없는 이들은 생태적 호칭인 ‘아랍인’으로 불리고 싶어한다. 아랍 정부들은 자국의 지식인들이 국가의 정치생활 영역에 관여하는 대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낸 이슈, 즉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문제에 매달릴 때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또, 지식인들은 자국의 사회적 갈등에 쉽게 무관심해진다. 더구나 이들은 현지 기업들이 예술가와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세운 추상적인 국제사회단체에 자발적으로 가입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희석해버렸다. 창작을 지지하는 국가 정책의 부재가 해외에서 관중과 자금을 찾는 문화 생산자의 개인주의와 비정치화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많은 후원자들이 사회 개혁을 위해 문화 영역이 탈정치화되길 바란다. 포드재단과 소로스재단 혹은 석유 제국의 자선가들이 그런 경우다. 그래서 걸프 지역 화랑의 고급스러운 진열장에는 아랍 이슬람교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많은 제품이 진열됐지만, 사실 서구의 스폰서를 받는 화랑들은 아랍 사회와는 무관하다.
정체성 감추는 지식인들
여러 경쟁 부문에서 상이 제정된 소설은 아랍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등극했다. 국제 아랍에미리트재단 소설상, 레바논의 ‘알 마지드 이븐 다헤르 블루 메트로폴리스’ 재단 문학상, 런던 부커재단이 주관하는 국제 아랍 픽션상 등이 소설을 장려하고 있다.
아랍 지역의 수많은 예술인이 세계 문화 게임에 전적으로 동참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진보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세계 무대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아랍’ 예술인은 자국민과의 접촉이 단절될 위험이 있어, 이슬람주의 해방자 역할을 잃을 위험도 있다.
분명 인터넷은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에 새로운 공간을 열어줬다. 하지만 인터넷이 기존 이슬람 저항운동을 좀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줬어도, 인터넷은 스스로 정치의식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이집트에서 봤듯, 인터넷은 대중 동원을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투쟁 조직에 요구되는 참을성 있는 현장 활동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 또 창의성이 풍부한 무서운 네티즌인 지하디스트들은 유머나 벨리댄스를 출 때 듣는 나시드(Nashid)풍의 노래를 거리낌없이 섭렵하고 있다. 이들의 종교적 신념은 기술혁신과 잘 맞아떨어진다. 어쩌면 기술혁신이 이들의 존경 대상인 ‘사상가’ 무프키르(Moufkir)와 증오의 대상인 ‘지식인’ 무타카프(Mouthakkaf)를 구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인터넷은 고립과 세분화에 기여한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보통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소그룹을 형성해,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닫힌 공간에서 스크린을 통해 주로 익명으로 소통한다. 불만을 지닌 자들은 적과의 공개적인 마찰을 피한 채 익명으로 급진성을 표출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정권을 조롱할 수도 있고 현실 세계에서 도피할 수도 있다.
서구 자본 후원받아 작품 활동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예술인과 지식인(이따금 이란이나 튀니지 같은 무슬림 국가에서는 아직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은 더 이상 사회·정치·문화 운동의 선봉장이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국가의 비호를 받거나 일부 강력한 힘을 지닌 부유한 후원자의 비호를 받는 아첨꾼과 흡사하다. 이전에 이집트 작가 소날라 이브라힘이나 모로코 밴드 나스 엘 귀완이 구현한 예술인의 저항적 이미지는 종적을 감췄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전위화가 파룩 호스니가 현재 문화부 장관을 하고 있고, 시리아에서는 2008년 장 주네 문학을 전문 번역해 소개한 하난 카삽 하산이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다마스, 아랍문화 캐피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비엔날레에 출품한 바 있는 와엘 차우키나 ‘두바이 아브라즈 캐피털 아트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할라 엘 쿠시 같은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는 무척 흥미롭지만 정치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아랍 세계 문화운동의 현대화가 태동하고 있다. 문화운동의 현대화에 동참하는 예술인들은 상징적인 규모의 자금, 즉 각기 자국에서 변화를 추진하는 데 위신을 세울 수 있을 만큼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현지 정부에 의존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자율성과 실험성을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만이 아랍 세계 대부분을 지배하는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야권 세력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예술과 지적인 활동은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를 촉진한다. 그래서 예술과 지적인 활동은 자신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살라피스트의 규범에 항의하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준비된 모델을 채택할 것이 아니라, 지난 수세기 동안 자율적인 문화 공간을 확장시켰던 아랍 이슬람교도와 이슬람 전통에서 모델을 찾아야 한다. 세계와 아랍 고유의 전통에 합당한 이런 공중 규범이야말로 모든 민주화 프로젝트의 기둥 중 진정한 기둥이다. 공중 규범은 살라피스트의 도전에 거부하거나, 저들의 조건을 수락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글•히참 벤 압달라 엘 알라우이 Hicham Ben Abdallah El Alaou
미국 스탠퍼드대학 프리먼 스포글리(Freeman Spogli) 국제학연구소의 이사 및 민주주의·개발·법률의 규칙에 관한 센터 연구원, 캘리포니아대학 기후변화와 인간안보 도전센터의 이사회 회장, 미국 인권감시센터(Human Rights Watch) 자문위원회.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마니에르 드부아> 2010년 6~7월호 참조.
[박스기사] 아랍문화의 상업적인 축제화
아랍문화의 세분화가 아랍문화의 ‘축제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업적인 걸음은 문화 엘리트들이 ‘아랍의 정체성’을 알리는 라벨을 단 작품에 열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세속화된 현대적 정체성은 당연히 서양의 산물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향 전환이 서양 패션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많은 아랍 기업인들도 열정적으로 나서서 ‘아랍 이슬람교도’에 바치는 축제와 이벤트(전통적이거나 현대적인)에 이런 패션을 접목해 확산시키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북아프리카 및 근동 국가의 서구화된 중산층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싶어한다.
이런 현지 문화의 이국적인 비전은 아랍 국가가 예술을 경제처럼 민영화해놓고, 자신들의 특권인 감시 활동을 저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처사다. 문화부 장관은 문화 예산으로 할당된 자금을 축소해 일부를 관광 활성화 자금으로 쓰면서, 그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자금을 마땅히 축제에 써야 해외에서 현대적이고 친절한 자국의 이미지와 축제 이미지를 부각시켜 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축제를 은행, 호텔 체인, 항공사, 미디어 그룹, 걸프 지역 재단들이 후원한다.
최고의 축제는 단연 레바논의 바알베크시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과 모로코 수도 라바트와 페스에서 열리는 ‘국제 마와진’ 음악 페스티벌이다. 이 페스티벌들은 단지 볼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주로 유럽과 아랍 국가로부터 수많은 청중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재능 있는 음악가와 예술인이 이런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음악과 예술은 현지 문화와는 동떨어진 것들이다. 이를테면 ‘세계의 신성한 음악’ 페스티벌을 기치로 내세운 페스 페스티벌은 ‘톨레랑스'(관용)를 확산하는 데 기여하지만, 음악에 쓰인 공식 ‘안무’의 특성 때문에 그 여파는 제한적이다. 심지어 내용 면에서도 이런 행사들은 현지 주민에게 침투하지 못한다. 일단 축제가 끝나고 차분해지면, 아랍 국가는 일상으로 돌아가 사회를 ‘톨레랑스 제로’ 상태로 통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