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정치, 다른 손엔 돈
절대권력이 된 미국 변호사들

2010-09-03     알랭 아우디

국제 예탁결제기구인 클리어스트림의 비자금 사건, 제롬 케르비엘 사건(2008년 1월 24일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에서 주식선물투자 조작 거래로 발생한 72억 달러의 세계 최대 규모 금융사고), 석면 사건 등 정치판을 뒤흔들어놓는 굵직한 재판을 접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변호사들이 사법부의 고위 공직을 차지하고, 이들은 수임료를 바탕으로 최상위 사회계층, 즉 자신만의 ‘별도의 계층’을 형성한다. 이들의 권력은 간혹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미국인의 일상생활을 바꿔놓기도 한다. 

프랑스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알렉시 토크빌은 “미국의 귀족은 변호사나 판사를 한다”고 했다. 그의 관찰은 정확했다. 기업 변호사 출신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은 이례적이지만, 미국에서는 변호사들이 정권의 최고위층에 많이 포진해 있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따라서 법대 교수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에는 많은 법조인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중 여성 법조인으로는 국무부 장관 힐러리 클린턴, 국토안보 장관 재닛 나폴리타노, 백악관 선임고문 밸러리 재럿 등이 있다. 남성 법조인으로는 부통령 조지프 바이든, 중앙정보국(CIA) 국장 레온 파네타,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 내무부 장관 켄 살라자르 등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오바마가 대부분 하버드 법대 로스쿨 출신들로 내각을 꾸렸다’며 저들의 네트워크를 상기시키지만, 상원의원 59%와 하원의원 40%가 변호사들이어서(1) 이런 현상이 정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의원 절반이 변호사인 나라

변호사들의 지배적인 역할은 특히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을 따르는 국가에서 두드러지는데, 그것은 ‘판례’ 규칙을 중시하는 법률 우위 원칙 탓으로 풀이된다.(2) 실제로 이 원칙은 ‘법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변호사들을 법절차 핵심에 배치했다. 토크빌은 “우리 (프랑스) 법전은 종종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 법전이 일반인에겐 몹시 애매모호하고, 판례에 따르는 법보다 더 공허하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법조인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점점 일반인과 분리돼 별도의 계층을 형성했다. 프랑스 법학자는 학자일 뿐이지만, 영국과 미국의 법조인은 이집트의 사제들과 유사해 법조인이 사제들처럼 유일한 심령술사 역할을 한다”(3)고 했는데, 이 또한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 ‘특별한 계층’에 들어가는 문은 로스쿨이다. 학생들은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안 대부분 대법원의 판결에 초점을 맞춰 판례를 분석한다. 미국의 로스쿨은 거의 모든 지원자들에게 학사과정을 마친 후 로스쿨 1학년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3년간의 로스쿨 과정을 끝낸 후, 학생들은 법학박사(JD·Juris Doctor) 학위를 취득하고 자신들이 서고 싶은 법정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예일, 하버드, 스탠퍼드, 컬럼비아 등 최고 명문 대학의 최상위 학생들은 1~2년간 보조판사로 임명되어 경력을 쌓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대형 로펌에 채용되거나 고위 행정직(법무부·국무부·백악관 등)에 접근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가시밭길인 로스쿨을 거쳐야 한다.

독립은 없다, 무조건 로펌으로

학생들 대부분은 7년간(학부 4년 + 로스쿨 3년)의 학비 때문에 로스쿨은 꿈도 꾸지 못한다. 로스쿨을 시작한 학생 중 3분의 1이 12만 달러(약 10만 유로)의 빚을 안고 졸업한다. 그래서 젊은 JD 취득자들은 최대한 빨리 이 짐을 청산할 길을 찾아나선다.(4) 이들은 진로를 선택할 때, 공공서비스 부문과(5) 법률사무소 중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한다. 후자가 전자보다 보수가 3~4배 많기 때문이다.(6)

아직까지 독립 변호사들이 대부분인 프랑스와 달리, 미국에서는 주로 200~1천 명의 법조인들이 근무하는 대형 로펌을 끼지 않고 성공하길 바라는 법조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가장 영향력 있는 법조인으로 꼽히는 로진 코언(월스트리트의 스타 변호사)이나 전 미국 대통령 윌리엄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폴 울포위츠의 변론을 맡은 로버트 베닛, 그리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캐스퍼 와인버거 등은 모두 그런 구조 속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로펌은 거기에 맞는 보수를 보장한다. 로펌을 끼고 업무를 보는 변호사 중 가장 출중한 변호사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100만 달러를 벌고, 정치에 관심 있는 변호사들은 돈보다 검사의 길을 선택한다. 수십 건의 최근 사례 중 전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와, 매사추세츠주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둘 다 터프한 이미지(케리의 경우 의견이 분분하지만)를 만들어주는 검사 경험을 주로 내세워 일부 우파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런 이미지는 성범죄전담반 TV 시리즈물 <법과 질서>에서 소통되는 모델, 예컨대 언론과 개선장군처럼 기자회견을 여는 검사들의 성향에 의해 강화되고, 황색언론에 의해 증폭된 모델이기도 하다. 검사들은 주로 전문 변호사를 살 수 없어 극빈자들이 이용하는 국선 변호사들을 상대한다. 

미국 정치에서 미국의 전형인 법정 변호사(Trial Attorneys)의 하위 범주를 언급하지 않은 채 변호사의 역할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밀히 말하면, 법정 변호사는 변론(예를 들어 협상을 벌이는 기업 변호사와 반대 개념으로 쓰인다)을 하지만, 실제로는 이 용어가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민사소송, 즉 소비자 권리, 생산자 책임, 의사나 병원의 의료사고 등을 다툴 때 변론을 맡는 비교적 적은 수의 전문 법률가들을 지칭한다. 이를테면 여러 원고를 한데 묶는 집단소송제를 주로 전담하는 법률가들인 셈이다. 전 대통령 후보 존 에드워즈가 전형적인 예다. 정치인이 변호사로 수백만 달러의 개인 자산을 모은 뒤, 서민에게 봉사하는 변호사의 이미지(치밀하게 각색한)를 명백한 모순 없이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 말고 또 있을까?

집단소송 변호사의 두 얼굴

미국의 이런 상황은 프랑스 법률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보상하고 가해자의 잘못을 처벌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사의 재량에 따라 배상금은 수백만 달러에 이를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원고 쪽 변호사들은 종종 승소 때 원고가 받을 금액의 3분의 1 정도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무상 변론을 선호한다. 공화당과 재계는 이런 시스템, 특히 집단소송제를 규탄하는 데 반해 민주당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미국정의협의회(AAJ)(7)가 2009~2010년(8) 선거 기부금의 96%를 민주당 후보에게 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컨대 사적으로 기부한 선거자금이 법정 변호사들에게 창창한 미래를 열어주고, 이들은 이런 미래를 활용하는 것이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시장은 주가 하락으로 연기금 잔고가 타격을 입었을 때, (투자 회사를 상대로) 12개 항목의 소송을 냈다.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선거 캠페인에 한 로펌 소속 변호사 68명이 개별적으로 기부금을 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소송을 맡겼다. 이런 일은 아주 평범한 사례다. 요컨대 칼럼니스트 마이클 킨슬리의 주장처럼 “워싱턴에서의 스캔들은 불법이 아니라 합법”이기 때문이다.(9)

정치권력 후원하고 사건 수임 

이런 현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종종 검사나 판사가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한다. 이런 변호사 선임 방식의 위험을 이미 간파한 토크빌은 “내가 감히 예언하건대, 이런 혁신적 방법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차 사법관의 독립성이 줄어들며, 사람들이 사법부뿐 아니라 민주공화국 자체를 공격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최고재판소 소장인 브렌트 벤자민 판사의 경우가 의미심장하다. (선거 출마를 준비한) 이 판사는 분쟁에 휘말린 자신의 캠페인에 기부금을 내는 기업의 소송에서 재판관 임무를 단념하지 않고 자리를 유지했다. 2009년 6월, 미국 대법원은 그가 잘못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놀라웠다. 현직 판사가 캠페인 기부금을 받은 것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기부금(300만 달러)을 받은 것을 문제 삼아 내린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이 판결로 300만 달러 미만이거나 그보다 더한 은닉된 기부금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글•알랭 아우디 Alain Audi 변호사, 뉴욕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각주>
(1) www.abanet.org/poladv/documents/lawyerleg110thhouse_nofooter.pdf 참조.
(2) 판사는 법률 해석을 통해, 사건에도 활용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 수 있다.
(3) 알렉시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포켓-플람마리옹, 파리, 1999년 제2부, 제8장 참조.
(4) <Lifting the Burden: Law Student Debt as a Barrier to Public Service>, American bankers association (ABA) Commission on Loan Repayment and Forgiveness,  Washington, 2003.
(5) 1970년대 수백 명의 젊은 변호사들이 이 길을 선택하며 랄프 네이더의 투쟁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들보다 미디어의 주목을 덜 받긴 했지만, 수백 명의 젊은 변호사들이 ‘국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6) www.nalp.org/2008sepnewfindings 참조.
(7) 예전에 사용하던 ‘미국법정변호사협회’(Association of Trial Lawyers of America)란 명칭이 지나치게 경멸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8) www.opensecrets.org/orgs/summary.php?id= D000000065.
(9) Mark Maremont, Tom McGinty et Nathan Koppel, ‘Trial Lawyers Contribute, Shareholder Suits Follow’, <월스트리트 저널>, 2010년 2월 3일.


[박스기사]  고위 공무원에게 ‘특혜’를 주는 프랑스 법조인 코스

2008년 프랑스 헌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될 때 1971년의 변호사법도 개정돼,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이 최소한의 교육 수준만 증명하면 변호사가 되었다. 이 새로운  규정의 첫 번째 수혜자들로 여성은 전 대통령 후보 세골렌 루아얄, 전 법무부 장관 라시다 다티가 있다. 남성은 사회당 제1서기 프랑수아 올랑드, 대중운동연합(UMP)의 장프랑수아 코페 하원 원내대표, UMP의 대변인 프레데리크 르페브르, 재무장관 프랑수아 바루앵, 국회의원 마뉴엘 애쉴리망, 전 법무부 장관 파스칼 클레망, 전 국무총리 도미니크 드빌팽, 녹색당 국회의원 노엘 마메르, 사회당 국회의원 크리스토프 카레쉬, 농림부 장관 장글라바니, 전 외무장관 에르베 드 샤레트, 전 재경·산업부 장관 에르베 게이마르, 공보실장 조르주 트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