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임무를 명받은 프랑스 군대

2010-09-03     필리프 레이마리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됨에 따라 프랑스군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군사 활동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한편, 신병 지원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과거 ‘거대한 침묵자’(군의 비밀주의 때문에 붙은 프랑스군에 대한 별명-역자)가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 나선 것이다. 때로는 정보 통제력마저 상실하면서까지….

“여배우 마틸다 메이가 동아프리카의 사막 국가인 지부티의 188 공군기지를 방문해 공군 장병들과 만났다. (중략) 랠리 6연패 신화의 주인공 크리스티앙 뢰브가 ‘프로방스’ 1/7 전투비행대대의 라팔 전투기에 몸을 싣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중략) 가수 크리스토프 윌렘이 기아나 영공 방위의 현장을 찾아, 쿠루 우주기지에서 아리안 로켓 발사 과정을 참관했다. (중략) 미셸 드뤼케르가 공군 조종사들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의 현장을 함께했다.”

홍보 프로그램 줄 서는 유명인들

프랑스 공군 ‘공보홍보부’(Sirpa)가 전한 한 방송 프로그램 소식이다. 기사가 나기 얼마 전 생디지에 공군기지에서는 <공군과 함께 비행을>이란 프로그램 녹화가 있었다. 지난 3월 30일, 프랑스 2TV에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공항 활주로처럼 꾸민 기지 격납고에 여러 대의 라팔 전투기를 배경으로 전쟁영화 OST가 흐르는 가운데 촬영됐다. 장교와 하사관들은 박수 부대로 동원됐다.

이 애국심 고취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 장면에서 이런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기는 방송 생활 중 처음이라고 털어놓았다. 칸다하르 기지 내 프랑스군 지휘를 담당하는 한 대령은 진행자에게 “우리는 이곳에 전쟁을 수행하러 온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라지 2000 전투 조종사 한 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하는 자신의 임무는 “매우 숭고하고 의로운” 일이라고 증언했다. 녹화 무대에서는 장폴 팔로메로스 공군 참모총장이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롭게 살 만한 자격이 충분한 국가다.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촬영 신호가 떨어지자 생디지에 공군기지 병사들이 일제히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드뤼케르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프랑스군은 “연합군 가운데 여성 군인 수가 가장 많다”, “칸다하르 기지는 전세계 단일 활주로 비행장 중 이용률이 가장 높다”, “성능이 우수한 이 미군 무인 전투기들은 네바다에서 원격 조종된다(1)” 등 줄곧 찬사가 이어졌다. 마틸다 메이와 미셸 사르두는 경이적이라며 “군에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미는 기업인 세르주 다소가 장식했다. 자신의 기업이 제작하는 라팔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연간 15대씩만 제작되며, 심지어는 수출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드뤼케르는 “대단하다. 부친(2)께서 생존해 계셨다면 매우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장단을 맞췄다. 마침내 미션 종료. 아프가니스탄 탈출 작전을 훌륭히 소화해낸 진행자와 가수 미셸 사르두에게 감사의 표시로 ‘시민예비군’ 공군 대령 직함이 내려졌다. 사실 드뤼케르는 근 몇 년 국방부가 공동 제작에 참여한 다수의 프로그램에 진행자로 활동해왔다. <샤를드골함에서의 하룻밤> <해저에서의 하룻밤>은 물론, <프랑스 공군 곡예비행단 50년사> <소방관, 이 남자, 이 영웅들> <육군의 심장부로> 등 여러 특별기획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최근작으로는 지난 5월 4일 프랑스 2TV에서 방영된 <헌병의 심장부로>가 있다.

파일럿의 판타지를 팔아라

공군 공보홍보부 소속 프레데리크 솔라노 사령관은 “이카로스의 꿈을 상징하는 프랑스 공군 곡예비행단처럼, 공군은 사람들이 쉽게 판타지를 품게 만드는 대상이다. 공군은 젊고, 역동적이며, 첨단기술과 관련된 현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공군의 이런 이미지는 마르지 않는 광맥과 같아, 심지어는 만화나 영화에까지 이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처음에는 만화로, 그다음은 TV 드라마로 제작돼 1960년대를 풍미한 탕기와 라베르뒤르 콤비다. 1980년대 토니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톰 크루즈가 주연한 <탑건>도 파일럿을 소재로 한 영화다. 마지막으로 2005년 제라르 피레의 영화 <하늘의 기사들>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15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그뿐 아니라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부지리로 모병 사무소 방문자가 20~30% 급증하는 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

어린이 과학채널에까지 진출

공군 조종사는 정예로 선발되며, 전투기 한 대를 띄우는 데 수십 개의 전문 분야와 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공군 직군이 무려 65개에 달한다는 점 등을 설명하는 것은 군 홍보 담당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솔라노 사령관은 “아예 프랑스 곡예비행단을 주제로 한 방송을 여럿 거절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공군을 소재로 한 주제 중에 ‘제2의 9·11 사태를 막기 위한 하늘의 파수꾼’ 등의 영공 방위나 구조 작업, 실종 항공기 수색, 특공대원에 관한 테마도 인기가 높다. 공군 공보홍보부는 주로 18~24살의 젊은이를 타깃으로 <카날 지미> <디즈니 채널> 등에 이런 주제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차라리 비행장 인근 새떼를 쫓는 맹금류(3) 등의 주제와 어울릴 법한 <마법은 없어> 같은 청소년 과학 프로그램에까지 방영되고 있다.

매년 젊은 신병 2만4천여 명을 모집해야 하는 육군도 동일한 연령층을 노리고 있다. 육군은 <스카이록> 방송사와 <몰입 방식>이란 프로그램을 공동 제작해, 2009년 10월 <M6>와 <W9> 채널을 통해 방영했다. 가프 지역 제4전투비행연대에서 일주일간의 훈련소 생활에 자원한 남성 3명과 여성 3명의 훈련 모습을 담은 일종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각 인물들은 갈등과 좌절, 로맨스를 배경으로 모험과 도전을 펼치며, “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군복은 소수 정예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육군 매거진>은 이를 두고 “참신한 콘셉트의 프로그램”(4)이라고 평했다.

프랑스군은 오랫동안 비난받아왔던 ‘거대한 침묵자’가 더는 아니다. 공공기관 중 가장 두꺼운 전문인력을 보유할 정도로 전문화된 홍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방홍보영상제작청(ECPAD)의 인력까지 포함하면 군 홍보 담당자는 대략 1350명에 이른다.

냉전 종식 이후 실체를 갖춘 명확한 적이 사라진데다 징병제까지 폐지되면서 프랑스 제일의 채용기관 역할을 하게 된 군은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비교적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에도(여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0~85%가 군에 호의적이다) 끊임없이 군의 유용성과 우수한 훈련 환경, 고성능 장비 등을 홍보해야 하는 입장에 선 것이다. 그것만이 우수한 신병을 모집하고, 현재의 국방예산을 유지할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의 1.8%를 차지한다. 이는 교육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인력감축안 발표(5년간 3만5천 명을 감축하며, 이 중 8천 명을 2011년까지 감축해야 한다)에도 불구하고, 예산 규모는 성역이라도 되는 양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편, 프랑스군은 ‘군 커뮤니티'를 안심시키고,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장병 가족, 국방 관련 민간 인력 등 군의 사회 기반을 이루는 이들의 수는 약 300만 명에 달한다.

젊은이들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국방공보홍보국(DICOD·국방부 산하 군 홍보기관-역자) 부국장으로 재직하는 크리스티앙 바티스트 장군은 군인이란 직업을 ‘판매’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 군의 임무는 이제 자국의 영토를 방위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국경에서 평균 4천~7천km씩 떨어진 타국이 활동 영역이다. 대개의 경우 국민은 그곳이 지도상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프랑스군은 이제 상대적으로 ‘국가’의 의미가 축소된 “다양한 형태의 연합군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티스트 장군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지정학 교육이 미비한 현실을 우려했다.

오늘날 프랑스군은 비슷한 규모(전세계에 나가 있는 헌병을 포함해 40만 명)의 유수한 민간 기업의 홍보 시스템을 적극 벤치마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임무 시간별(상시 주둔, 단기 작전, 예측 가능한 사건, 혹은 우발적 사건 등)로, 지주회사(주무부처)와 자회사(육·해·공), 본사(파리)와 지사(국내, 국외 영토, 아프리카 및 기타 해외국)를 서로 연계해 운용하고 있다. <국방>(Defense Nationale)지(5)는 “오늘날 프랑스군이 민간 기업이 상품을 팔듯 군의 이미지를 팔고 있다”고 평가했다.

상품을 팔듯 군 이미지를 팔다

군 홍보 분야는 1994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모습을 갖췄다. 1998년에는 합동 군 조직인 국방공보홍보국이 군 홍보의 주무부처로 선정됐다. 한편, 공보홍보부에는 각 군의 이미지 홍보, 사기 진작, 신병 모집 등을 담당하는 세분화된(육군, 해군, 공군, 헌병, 병기, 군의) 공보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자율권을 보장했다. “잘 돌아가는 군일수록 홍보 활동을 중요시한다. 군인은 국민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에 합리적 선택이라는 확신이 없는 자를 전쟁터에 내보낼 수는 없다”고 법률 전문가 로랑 테세르는 설명했다.

국방홍보 분야에 프랑스 공공정책검토(RGPP)라는 개혁의 칼날이 드리워졌다. 국방공보홍보국 국장에게는 일단 올해 예산지출을 12%가량 줄이라는 로드맵이 제시됐다. 국방공보홍보국의 본부 인력도 4년 후 220명에서 160명으로 감축해야 하고, 각 군의 참모본부도 수도 서쪽의 한 장소로 통합하기로 결정됐다.

또한 이미 활성화된 외주 홍보(여론 분석, 언론 감시, 언론 브리핑 자료 제작, 군 홍보행사 조직 및 진행) 비율을 더 확대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군 잡지의 편집 및 제작 업무의 대부분은 이제 민간 대행사가 맡게 된다. 대신 국방 홍보담당관은 ‘핵심 업무’, 다시 말해 언론을 상대로 작전 수행 중인 부대의 공보활동을 하는 데 치중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해적 소탕 작전이 시작된 이후 이미 지부티에, 그리고 2008년 8월 우즈빈 계곡 매복 공격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홍보 인력이 대폭 보강됐다. 로랑 테세르는 “해외 군사작전에 배치할 150명의 홍보장교가 늘 대기 상태인 것은 아니다”며, 업무 교대나 비상사태를 위해 언제든 ‘투입이 가능한’ 인력 300명을 교육할 양성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보 담당자와 기자들의 밀월

광고 종사자보다 한 수 위인 군 홍보담당자는 거짓말 대신 능구렁이처럼 에두른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예를 들면 “현재로선 정보를 제공하기가 힘들다. 좀더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식이다. 한편 거짓말이 들통 나는 경우엔 “그 질문은 듣지 못했다”며 시치미 떼기 작전을 편다. 하지만 정보가 전세계로 실시간 전파되고, 전문화된 ‘군사 전문 블로그’가 감시망을 좁혀오는 오늘날 이런 식의 군 홍보는 때때로 난관에 봉착한다.

소수의 친숙한 기자들을 상대로 한 공보 업무는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다. 물론 공모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서로 가까이서 지내다 보면 상호 신뢰 관계가 구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정보를 주면, 기자는 그 정보가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 홍보장교가 말했다. ‘자기’의 홍보 담당자가 “더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 기자는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안다. 하지만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경우, 홍보 담당자는 “정보를 줄 테니 몇 시간 혹은 며칠 후에 기사를 내라”고 말한다. 프레데리크 솔라노 공군 공보홍보부 미디어국 국장도 이런 관행을 시인했다. 그는 “군 배속 기자들과 우리 사이에는 공통의 암묵적인 언어법이 있다. 그래서 더 대담한 정보 제공이 가능하고, 정보를 ‘통제’(off)하거나 ‘전달’(on)하는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기자와 홍보 담당자가 한통속이 되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예로 피에르 세르방(6)은 기자 겸 주요 TV 및 라디오 방송의 컨설팅을 맡고 있다. 동시에 특수작전사령부(SOC)의 자문관이자 고등군사교육기관(CID) 강사이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저명한 군사전문기자협회(AJD) 회원처럼 예비역 군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자협회 로고는 한 군부대 로고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원칙적으로 군 홍보 담당자는 기사의 기획 방향에 직접 관여하거나 홍보 간행물의 내용을 검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부 차원의 얘기다. 각 부대를 홍보하는 경우 상황이 다르다. 군사전문기자협회 회장인 프레데리크 퐁스 <발뢰르 악튀엘> 편집장은 2008년 초 바욘 해병 낙하산 제1연대(PRIMa)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부대 쪽은 우리가 말하고, 쓰고, 보여주는 것들을 통제하기 원했다. 하지만 홍보물을 사전에 검열하는 것은 우리 업무 관행과 어긋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군 홍보는 더욱 어려워진다. 비근한 예가 우즈빈 계곡 매복 공격으로 인해 발생했던 ‘언론 위기’ 사태다. 당시 카불에서 공보를 담당했던 루이페르 대령은 “우리 역할은 부대가 수행 중인 군사 임무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군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7) 기자들이 군 부대에 배속되는 경우, 취재 조건은 상황별로 까다롭게 협의된다. 지난 3월 발생한 프랑스 3TV 취재진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이후, 프랑스군을 지휘하는 한 참모총장은 몇 달간 전투 중인 부대에 취재진 출입을 금지했다. 프랑스 파병 예산을 갉아먹는다는 이유였다.(8) 매년 군은 몇십 명의 소수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초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이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미군과 이스라엘군을 비롯한 몇몇 군대가 요즘 ‘임베디드 프로그램’(작전 중인 군부대에 배속돼 함께 활동하고 취재하는 종군기자 프로그램-역자)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자들에게 취재권을 주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임베디드 프로그램에 가입하려면 취재 제약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에 서약해야 한다.

군사 블로그들에도 신경 써야

몇 년 전부터 프랑스군은 군사 전문 블로그의 압력까지 고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군사 전문 블로그에는 작전 중인 장병들이 매일 ‘전투일지’ 형식으로 경험담을 올리거나, 전문가가 군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올린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장병이나 장병 가족에게 유용한 정보원이 되는 것은 물론, 딱히 발언대가 없는 병사들에게 배출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군 홍보 담당자는 이런 유의 블로그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반면 각 군의 참모본부는 좌불안석이다. 그러나 부하에게 의견을 묻거나, 대개는 형식적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인 ‘대화’라는 공식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 대신, 블로그에 올라온 개인 글이나 토론 게시판을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부대의 분위기를 점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2008년 육군 참모총장도 육군 인트라넷에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했다. 육군 참모총장의 공보자문관이자 육군 공보홍보부 국장인 브누아 르와이얄은 블로그를 “지휘체계를 교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병들이 서로 전우 대 전우로 직접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통로”(9)라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예비역이나 퇴역 군인뿐 아니라 군인의 배우자, 군사기술 애호가, 대학교수, 군사전문기자, 그리고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들까지 이런 유의 블로그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국방공보홍보국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군사 전문 블로그 수는 400여 개로 집계됐다. 이 중 50여 개는 군부대 뉴스나 전쟁, 지정학 등의 주제를 밀도 있게 다루었다. 대표적인 예가 ‘열린 국방’, ‘국방 기밀’, ‘매머드’, ‘브뤼셀2’, ‘전략지정학적 연합’, ‘아테나와 나’, ‘설득을 위해’, ‘화성 공격’ 등이다.(10)

군은 개인 신분에 관한 너무 자세한 정보나 시설물, 해외 군사활동 등이 담긴 사진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유포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 소셜 네트워크는 오늘날 국방 정보의 5분의 1이 유포되는 통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은 홍보 수단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군사지대’라는 제목의 블로그에 따르면, 2007년 11월 프랑스 해군은 ‘세컨드 라이프’ 게임 홈페이지에 신병 모집 게시판을 열었고, 지금도 인터넷 사이트 ‘에트르마랭’(Etremarin.fr)을 신병 모집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해군 각 부대의 ‘병영일지’도 트위터로 유포하고 있다.

대개 유머를 곁들인 부드러운 방식의 이런 홍보물은 전황이나 작전 진행 상황, 훈련 과정, 평화 유지 작전에 관한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11) 이런 정보는 특히 작전에 투입된 해군 장병 가족에게 유용하다. 하지만 때로는 이 홍보 수단이 오히려 (쌓인 감정의) ‘배설 장소’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우즈빈 사태로 한 번에 8명의 장병을 잃은 해병 낙하산 제8연대(PRIMa) 사령관은 ‘제8연대 장병 가족’이라는 제목의 블로그 폐쇄를 명령했다. 월간 기관지 <오늘의 군대>는 “작전상 필요하다면 사령관은 소셜 네트워크를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 접속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도록 요청할 권리가 있다”(12)고 밝혔다.

그러나 “군 홍보도 명령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프랑스 장병을 후원’하는 페이스북 그룹에만 8만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프랑스 3개 군도 데일리모션에 계정을 만들었다. 국방공보홍보국은 데일리모션과 ‘국방채널’ 개설에 합의하고, 100여 개 동영상(군사작전 중인 군부대, 작전에 투입된 군장비에 관한 자료나 고문서의 흥미로운 사진)을 올리기로 했다. 테세르는 “우리는 시대 조류에 발맞춰 네티즌이 있을 만한 곳을 알아서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셀린 브리옹 포르테(13)에 따르면, 이런 홍보 정책은 ‘인간적인’ 차원을 강조하고, 평화적인 시민으로서 군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대중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군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상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 때문에 “국민이 군 생활에 내재된 제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자원입대하거나, 군의 사기가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카르카손 실탄 발사 사건(14), 우즈빈 계곡 매복 공격, 소말리아 해적 공격 등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한 여러 사건은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브누아 루와이얄 대령이 ‘보조 수단으로서의 군 홍보’(15)라는 글에서 지적했듯, 군에 “홍보는 일종의 명령 행위”다. 그는 이 글에서 군의 홍보 담당자도 “결국은 군인”이며, “아무 정보나 내보내는 것이 군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글•필리프 레이마리 Philippe Leymarie 
국제 라디오프랑스 기자. 현재 블로그 ‘사이버 국방부’(blog.mondediplo.net)를 운영 중이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로랑 셰콜라, 에두아르 플림랭, ‘스마트한 미국의 저승사자, 무인항공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2월.
(2) 다소를 창립한 마르셀 다소(1892~1986년)를 의미한다.
(3) 비행장 활주로에서는 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근처의 새떼를 쫓기 위해 실제 맹금류를 날리거나 맹금류의 울음소리를 녹음해 방송한다.
(4) <육군정보지>(TIM), 2009년 11월. ‘육군과 함께 하는 자아 찾기’, 사이버 국방부, blog.mondediplo.net, 2010년 2월 11일 참조.
(5) 셀린 브리옹 포르테, ‘군 홍보: 정체성 위기인가?’, <국방>, 파리, 2005년 2월.
(6) 장 기스넬, ‘한 행정병이 바라본 현대전’, <르 포앵> 인터넷판 , 2009년 7월 6일.
(7) <육군정보지>(TIM), 2009년 7~8월호.
(8) 2010년 3월까지 참모총장을 맡았던 장루이 조르줄랭 장군은 특파원 구조비를 언론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언론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9) <육군정보지>(TIM), 2009년 7~8월호.
(1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홈페이지에 링크된 블로그 ‘사이버 국방부’ 참조.
(11) www.jdb.marine.defense.gouv.fr, www.twitter.com/marinenationale.
(12) ‘국방부 인터넷을 감시하다’, <오늘의 군대>, 2010년 4월.
(13) ‘군 홍보: 정체성 위기인가?’, <국방>, 위 책 참조.
(14) 해병 낙하산 제3연대(RPIMa)의 한 중사가 2008년 6월 카르카손에서 인질 구출극 시범 도중 관중석을 향해 실수로 실탄을 발사해 시민 17명이 다쳤다. 이 사건으로 육군 참모총장 브뤼노 퀴슈 장군이 사임했다.
(15) <육군정보지>(TIM), 2009년 7~8월호.


[박스기사1] 소셜 네트워크 붐

지난 3월 이스라엘에서는 한 장병이 남긴 귀환 예정 메시지(문제의 병사는 인터넷에 “수요일에 우리는 카타나 마을을 소탕하러 간다. 목요일쯤엔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로 인해, 사령부가 몇 주에 걸쳐 준비한 군사작전을 전격 취소하는 일대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마이페이스·페이스북·트위터 등의 소셜 네트워크로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우려한 해군이 업무용 컴퓨터에서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미 국방부는 소셜 네트워크를 군 홍보 수단으로 제도화하는 내용의 지침을 내렸다. 민감한 정보나 사진을 유포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화 통화, 메신저, 블로그에 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올릴 수 있게 미 장병들의 자유로운 컴퓨터 이용을 허락했다.

그뿐 아니라 미군은 아예 페이스북에 공식 홈페이지를 마련하고, 입대 자원자들의 문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을 지휘하는 레이 오디노 장군은 페이스북에 5천 명의 ‘친구’를 거느리고 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트룹튜브 TV’는 일정 규칙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해외 군사 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이 군사작전과 관련된 내용만 아니면 가족과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천만 명의 가입자 수를 자랑하는 ‘밀리터리닷컴’은 병사와 장병 가족, 퇴역 군인을 서로 연결해주는 한편, 군 커뮤니티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모아놓은 포털 사이트다. 이 사이트 집계를 보면, 군 부대원이나 퇴역 군인, 장병 가족, 심지어 민간인이 운영하는 ‘군사 전문 블로그’는 1800개에 달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라크의 자정’, ‘불과 얼음’, ‘브라보 컴퍼니’, ‘어느 애국자의 정치학’ 등이 있다. 가장 인기가 높은 블로그 중엔 여성 해군의 삶을 소개한 ‘아키놀루나’ 같은 사이트도 있다.

영국 국방부는 군인이 블로그나 온라인 게임 사이트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를 두고 ‘펜과 칼’ 사이트는 “이 사이트들에서 유포되는 정보는 대부분 회식 자리나 머리맡에서 나올 법한 사사로운 이야기인 만큼” 그렇게까지 통제할 이유가 없다며 ‘구시대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1) 이에 질세라 영국군도 지난 6월 초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전투 중인 군인과 장교들의 증언을 담은 ‘영국군의 공식 블로그’(2)를 개설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놀라운 일을 이루어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브뤼셀에 소재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사무총장도 블로그와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을 마련했다. 나토 최고사령관을 맡고 있는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해군제독은 런던 회의에서 “모두가 우리를 싫어하는 만큼, 나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3) 

<각주>
(1) ‘인터넷과 군 기관: 시대의 조류에 맞춰 사는 어려움’, ‘펜과 칼’, 2009년 3월 31일,
www.laplumesabre.com.
(2) http://britisharmy.wordpress.com.
(3) ‘군 사회적 네트워크에 참여하다’, ‘군사지역’, www.opex360.com, 2009년 4월 29일.  


[박스기사2] 아프가니스탄 정보전

아프가니스탄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미군은 2009년 8월 임베디드 프로그램을 신청한 기자들의 자료 목록을 작성했다. 미 국방부는 홍보회사 랜던 그룹에 각 기자들이 쓴 기사를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 기사로 분류해달라고 의뢰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을 지휘 중인 그레고리 스미스 해군소장은 “군의 효율적 홍보 능력을 평가하는 데만 자료를 사용했다”고 변명했다.(1) 하지만 미국 군사 전문지 <성조>(Stars and Stripes)지는 랜던사가 작성한 기자 ‘프로파일’ 중에는 이들이 작성한 기사 중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기사를 ‘무력화’하라는 내용의 제안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2008년 말, 나토가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치안유지군(ISAF)의 홍보 활동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군 합동군사령관 데이비드 매키넌 장군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치안유지군의 공보 업무를 담당하는 공보실(PAO·언론을 상대로 검열이 완화된 정보를 제공한다)과 선전 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미군의 정보작전(Info-ops) 및 심리작전(Psy-ops) 부대를 서로 통합하려 했기 때문이다.

심리작전부대는 1950년대부터 미군에서 전문화된 부대로 자리잡았다. 특수부대에 편입돼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등 거의 모든 대규모 군사작전에 투입됐다. 선전이나 작전상 홍보를 맡은 전문인력이 1200명에 이른다. 공보실과 심리작전부대의 통합 소식에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국이 강하게 반발했다. 진실 추구는 멀리한 채 적의 사기를 꺾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흑색 작전’과 공보 활동(담화문 발표, 언론 브리핑)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토는 공부실 업무와 관련해 “업무는 연계하되 서로 별도의 보고 체계를 갖춘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며, “정보, 심리작전이나 기타 공작 행위를 계획하거나 실행하는 데 전혀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나토 최고사령관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치안유지군 사령부에 두 기관이 서로 개별적인 업무 영역과 보고 라인을 갖는 방향으로 통합 계획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전 국방부 대변인에서 공공외교 담당차관으로 변신한 장프랑수아 뷔로는 나토와 시민 사이 군사적 차원의 관계와 민간 차원의 관계를 서로 통합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과거 언론을 상대로 한 공보 활동과 정보작전, 심리작전의 주체들이 귀중한 시간에 서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심지어는 작전 현장에서마저 그런 모습을 보였다”(2)는 게 이유다. 물론 이는 나토가 좀더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갖추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각 군 홍보 영역의 경계가 서로 침범당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각주>
(1) <AFP>, <로이터통신>, 2009년 8월 28일.
(2) 공군 뉴스,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