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하는, ‘잡독가’의 생명 에세이
[서평]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최성각 지음, 동녘 펴냄
이 책도 책에 대한 책이다. 40여 꼭지의 글에 표제로 다룬 책만 100권 안팎에 이른다. 물론 글 가운데 언급한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게 만들 만큼, 재미있다. 자주 무릎 치며 공감하다 간혹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한다. 지금 나도 서평이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솔직히 서평이란 게 그리 재미있거나 감동스러운 글은 아니지 않은가. 흔히 아끼며 야금야금 읽는다는 김현이나 장정일의 독서일기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셈인데, 왜인가.
이 책은 책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책은 쓸쓸한 젊은 날, 책에 빠져든 이후 배움과 위로와 즐거움의 샘이었지만, 또한 “책보다 더 놀랍고 대단한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책에만 빠져 있는 삶이 매우 한심하고 불쌍”하며 “이 세상이 한번 살아볼 만한 곳이 되도록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지극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에게 책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따라서 책은 서평 모음집이라기보다 자신의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을 자유롭게 풀어낸 에세이집이라 하는 게 옳다.
책의 글은 편의상 3부로 나뉘어 있지만 이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빈곤의 악순환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를 공격하며 토지 공유화를 주장한 헨리 조지의 책에서 체 게바라를 다룬 일련의 저작과 피터 드러커 등을 거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스코트 니어링, 이반 일리히, 다카키 진자부로, 권정생, 김종철 등으로 대표되는 근본 생태주의자의 책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관심은 하나로 꿰어진다. 인류가 산업사회로 돌입한 이래 인간의 자연에 대한 마구잡이 폭력으로 위기에 처한, 전 지구적 생명의 문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닌 이 신비로운 생태계의 일원일 뿐이라는 겸손한 자각은 이에 무감각한 현대 문명과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반(反)권력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철거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여버리기도 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세계적 인터뷰어인 오리아나 팔라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 <한 남자>와,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처럼 전혀 관계없는 듯한 책들을 묶어 풀어내는 식이다. 팔라치의 책을 이야기하며 “때로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기를 쓰고 만나 몇 마디를 붙여보니, 권력자라는 족속들이 우리 보통 사람들보다 결코 더 똑똑하지도, 더 성실하지도, 더 부지런하지도, 더 현명하지도 않더라는 이야기, 단지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잔인하고 더 무책임할 뿐 아니라 남달리 탐욕적이더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더란다. 그러니 4대강 삽질에 목을 맨 이 나라의 대통령이며, 대학교수라는 위광에 온순하고 우아한 얼굴에 탐욕을 감추고 삽질을 뒷받침하느라 여념없는 이른바 ‘전문가’들에 대한 맹렬한 분노도 당연하다.
환경이며 정의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며 누릴 것 다 누리는 이들과 운동한답시며 자신의 주장을 ‘예수천국 불신지옥’처럼 되뇌는 인간들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1인당 국민총행복(GNH)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소국 부탄을 소재로 <행복의 경제학>을 쓴 쓰지 신이치나 그와 함께 부탄에서 머문 인연으로 추천사를 써준 국내의 한 여류 여행가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탄이란 곳이 알고보면 입국세만 하루 200달러(인도인 평균 월급의 서너 배에 해당)를 받아내는 고약한 나라인데, 그곳에서 (입국세만 4천 달러를 내고) 20일이나 체제하며 ‘행복 현장 탐방’ 운운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이야기다. 돈의 힘만 과신하며 이 나라를 능멸하는 삼성 못지않게 그곳에서 7년간 100억 원의 돈을 받으며 누릴 것 다 누린 김용철 변호사가 과거에 대한 참회도 없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으며 구토와 욕지기를 느끼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향락과 소비와 탐욕에 눈이 어두운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 시대’, 그럼에도 책에는 등불처럼 여겨지는 이들도 많다. “복순아, 가난할수록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착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못 빼앗아간단다”라며 나직한 목소리로 권하는 작가 권정생, 베이징대학 신입생이 좀 봐달라는 가방을 붙들고 땡볕에서 한나절을 기다린 중국의 대학자 지셴린, <유쾌한 행복론>이란 책 한 권을 유작으로 남긴 뒤 출장 가듯 죽음을 맞이한 재미 무명 철학자 전시륜, 자살 직전까지 가면서도 끝내 무농약·무비료 사과밭에서 기적의 사과를 일궈낸 농부 철학자 기무라 아키노리…. 이들이 발산하는 빛을 갈무리하고 키워 독자에게 전하는 책을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희망이 생긴다. ‘외로운 잡독가’였던 저자가 생태주의 작가, 생태 운동가로 변신해 “이제 바로잡을 시간밖에 없다”고 외치며 강원도 산골에서 자신의 삶을 바꾸려 애쓰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책 말미에는 환경책큰잔치를 하며 뽑은 ‘우리 시대의 환경고전 17권’과 ‘다음 100년을 살리는 환경책 141권’을 부록으로 실었다.
글•김종락
농부. 오랫동안 신문의 문화부·국제부 등에서 일하다 문화부장을 잠시 지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