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속에 '마르크스를 되돌아보다'

학계서 재조명…극단의 '영리추구', '소외된 노동', '도덕률의 상실' 등 예견

2008-12-01     뤼시앙 세브 | 철학자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자본주의는 모두가 만족한 가운데 사회 구조의 결정적인 형식으로 굳어졌다.'우파의 이념적 승리'는 완료되었으며 오직 일부 치유 불가능한 망상가들 만이 불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부질없는 짓을 할 뿐이다."
이러한 담론에 우리는 거의 설득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08년 10월에 발생한 엄청난 금융 대지진은 이러한 사고 구조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런던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2008년 10월 13일은 영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인정하는 날로 남을 것"이라고 논평하였다.1)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가 건물 앞에서 시위자들은"마르크스가 옳았다!"라는 팻말을 들어 올렸다. 프랑크푸르트에선 마르크스의 <자본론> 판매 부수가 3배나 급증하였다. 파리의  유명한 인문학 월간지는 흔히들 영원히 사망한 것으로 치부된 마르크스가 다시"부활한 이유"에 대해 30쪽에 걸쳐 소상히 설명했다.2) 역사의 또 다른 문이 다시 열리는 것일까?
마르크스의 저작을 정독하면, 한 세기 반 이전에 쓰인 그의 글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현재의 우리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금융 귀족이 법을 명하고 국정을 지도하며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여론을 지배한다. 이들이 궁궐에서부터 누추한 카페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생산에 의하지 않고 타인의 부를 강탈하면서, 매춘, 뻔뻔한 사기, 치부(致富)를 향한 갈증을 재생산해 내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3) 이런 글을 통해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 직전의 프랑스를 묘사하고 있다.

 <자본론>, 시스템 붕괴 예견
그러나 이처럼 확연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차이로 인해 그의 모든 지적을 그대로 현재 상황에 대입시킬 수는 없다. 다만 <자본론>에서 보여주는 이런 놀라운 정치·경제 비판의 근저엔 현재와 같은 상황에 대한 더욱 날카로운 분석이 숨어있다.
오늘의 이 세계적 위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복잡한 금융 상품의 휘발성, 자체 규제가 불가능한 자본시장,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등이 거론된다. 흔히 말하듯이'실물경제'에 대한'가상경제'의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가상경제'가'비가상적'현실임을 인식하지 못한 관찰이다.
즉 위기의 시초였던 서브프라임 사태는 은행 융자를 안고 집을 산 수 백만 미국 가계의 부채 상환 불능 상태에서 야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가상'의 비극이'실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이'실물'은 구매력의 세계화된 총체이기도 하다. 투기성 자본의 거품 붕괴 뒤에는 노동에 의해 창출된 부에 대한 자본의 독점, 그리고 신자유주의 도그마의 이름으로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시행된 긴축 경제가 임금으로 돌아 갈 몫을 10% 이상 줄여놓은 것도 한 몫하고 있다.

   

<노동자>, 1931-하인리히 호엘르



 '부와 빈곤의 반비례적 축적'
금융규제 장치의 결함? 경영에 관한 책임 의식 결여? 증권계의 도덕적 해이? 물론 이러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기를 불문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자. 현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도그마 그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마르크스가'자본주의 축적의 일반 원칙'이라고 칭한 것의 궁극적 실체에 시선을 돌려 보자. 그는 생산의 사회적 조건이 자본가 계급의 사적 소유에 기반을 둔 곳에서는 "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은 지배의 수단으로, 그리고 생산자에 대한 착취의 수단으로 전복된다"고 설명한다. 생산자들은 자본가가 추구하는 부의 증식에 희생되며 이러한 자본 축적은 자체 동력을 얻으면서 광적으로 비약하곤 한다."한 극점에서의 부의 축적"은 필연적으로 정반대 극점에서는 "빈곤의 비례적인 축적"을 초래한다. 이로부터 격렬한 상업·금융 위기의 전조가 부활한다는 사실이다.4) 이는 현재 우리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위기는 신용 영역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위기의 파괴적인 힘은 생산의 위기로 전화되었으며, 이는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부가 가치의 더욱 불평등한 분배를 야기한다. 마르크스를 '병든 개'취급하는 사회민주주의자와 연대를 맺은 노동 운동이 이 위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장 자유주의의 적실성에 대하여 한 치 의심도 용납하지 않았던 정치인, 경영인 및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본의'도덕화', 금융에 대한'규제'라는 것을 생각해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본의'도덕화'? 블랙코미디상을 받을 만한 구호가 아닐까? 이른바 그토록 고귀하고 신성한 자유경쟁 체제가 망가뜨려 놓은 사회적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도덕을 고민'하는 것이다. 냉소적인 효율성은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확실하게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을 집어 삼켰다.'윤리'에 대한 관심은 선전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자신의 <자본론> 서문에서 밝혔다. "나는 자본가와 지주라는 인간을 절대로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 형태로서 사회 발전을 일종의 자연적 역사의 과정으로 보는 나의 관점에서 볼 때, 개인도 사회적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 개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나의 관점을 장밋빛으로 그릴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명백하다."5) 이는 영리 추구가 유일한 목적인 한, 경제체제를'개혁'하기 위해서 단순한 도덕적 방망이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소외'개념으로 사회적 관계 해석
이는 사물의 도덕적 측면에 무관심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보자면 근본적인 문제는 나쁜 기업주의 부도덕한 행위, 무의식적인 상거래 관행, 때론  낙하산 인사의 꼴불견의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개인적 행위 너머에 있는 자본주의의 원칙, 바로 그 자체 때문에 자본주의가 옹호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부를 창출하는 인간의 행위를 '상품'의 지위로 전락하며,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수단으로 다뤄진다. 자본주의 체제의 영속적인 비도덕적 원천을 보기 위해 칸트를 읽을 것까지도 없다.
경제생활을 진정 도덕적으로 영위하길 원한다면, 이를 비도덕적으로 만드는 원인을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이는 국가의 규제 기능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자에게는 세금을 감면해주고, 우체국을 민영화하는 사르코지 정부와 같은 우파 정부에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함, 혹은 위선의 경계를 넘는 것이 된다. 규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소외의 개념을 가지고 현 상황에 대해 외면하기 힘든 시각을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 저작인 <1844년 수고>에서'소외된 노동'의 개념을 고안했다. 이 개념은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도덕적 결핍을 초래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부를 창출해야 하는, 즉 타인의 치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잃어야 하는 저주스런 상황을 지칭한다. 산업 재해로부터 정리 해고 및 저임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임금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다양한 형태의 비인간적 상황은 마르크스의 분석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적실성을 잔인할 정도로 여실히 보여준다.6)
그러나 후기 저작에서 마르크스는 소외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였다. 자본은 끊임없이 생산 수단과 생산자 사이의 괴리를 재생산하면서, 생산자들의 생산적 그리고 인지적 행동을 마냥 무정부적 경쟁 상태에 방치하고, 그들의 행동을 통제되지 않는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과정으로 포섭해 종속하고 짓누르는 맹목적이고 거대한 힘으로 변환된다.

   
 

 '공산주의'관념어로 전락
인간들은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바로 그들의 역사가 인간을 만들 뿐이다. 금융위기는 환경위기, 인류학적 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의 위기로 불려야 할 만큼 끔찍한 방식으로 이러한 소외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무도 이 위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 위기에 노출된다.
여기에서 자본주의는'일반화된 규제 철폐'를 극단으로 몰아붙이면서 규제 부재의 황무지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규제할 능력이 명백히 결여되어 우리에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이러한 체제에 대항하여, 우리는 즉시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작업에 착수하여야 한다. 이는 인간이 새로운 조직 형태를 갖추고 미쳐 날뛰는 사회적 힘을 다함께 통제해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 조직을 향한 긴 발걸음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비판에는 강했지만 대안 제시에 있어선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흔히 평가받는다. 동유럽에서'실험한'그의 공산주의는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망한 스탈린-브레즈네프식 사회주의가 마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무엇인가 공통점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공산주의'라는 낱말에 담는 것과는 정반대 편의, 진정한'공산주의'의  의미를 아무도 포착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진정한 마르크스적인 의미로서 21세기의 자본주의에 대한 '초월'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그려진다.7)
그러나"다른 사회를 원하는 것은 파멸적인 유토피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냉소가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자유주의 사상에 따르면,'인간'이란 인간 사회로부터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의 유전자로 결정되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 대한 계산으로 충만한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동물에게는'자유롭고 공정한'경쟁이 지배하는 사유 재산의 사회만 가능하다는 말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 역시 파산 선고를 받았다. 실용적 자유주의의 처절한 균열 속에 이론적 자유주의와 호모 에코노미쿠스 인간관은 최소한의 반증에도 붕괴된다.8) 두 가지 측면에서 이들의 붕괴는 분명하다. 우선 과학적 측면에서 보자. 생물학에서조차 모든 것을 단순한 유전자적 요인에 근거한 설명과는 거리를 두는 현재,'인간 본성'에 관한 자유주의 사상의 순진함은 오히려 놀라울 정도이다. 과거 자유주의가 공언하였던 지능, 중성 혹은 동성애의 유전자는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를 들면 유아 성도착증이 유전적이라고 아직도 믿는 순진한 자가 있을까?
그리고 윤리적 측면을 보자. 오래전부터'경쟁적 인간'이데올로기가 권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살인자가 되자'는 비인간적인 교육이다. 비극적인 사회적 연대의 청산이며'자본주의의 도덕화'를 외치는 것이 낯 뜨거울 만큼, 손쉽게 번 돈의 광풍에 의한 전 방위적 탈문명화이다. 금융 독재의 역사적 침몰의 밑바닥에는'인간'에 대한 자유주의 담론의 침몰이 있다.

 인간은 '추상물' 아닌'사회관계 총체'
그리고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에서 채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혜안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에 관한 그의 놀라운 비판은 인류학에 있어서도 진정한 혁명의 초안을 제시한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그의 여섯 번째 테제에서 다음과 같은 두 문장으로 핵심을 보여준다.
"인간의 본성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개인의 고유한 어떤 추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전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인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상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역사적으로 발전된'인간'은 우선'인간의 세상'이다. 예를 들면, 언어는 유전자 속에 각인된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으로부터 유래한다. 즉 인간 세상에서 최고의 정신적 기능의 원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20세기 위대한 심리학자중의 한 명이고 맑스주의자이며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레프 비고츠스키가 명료하게 밝힘으로써, 인간의 개인성에 대한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향한 길을 열었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조건 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번역 | 김태수 asticot@ilemonde.com*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1) <The Daily Telegraph>, Londres, 14 octobre 2008.
2) <Le Magazine litt?raire>, n° 479, octobre 2008.
3) Karl Marx, <Les Luttes de classes en Franc-e>, Ed. sociales, Paris, 1984, p. 84-85; 'citㅤㅁㅐㄼdans L'international des riches', <Maniㅤㅁㅏㅊre de voir>, n° 99, juin 2008.
4) Karl Marx, <Le Capital, Livre I>, Editions socia-les, 1983 ou PUF, 1993, p. 724.
5) <Le Capital, Livre I>, p. 6.
7) Christophe Dejours, Travail, usure mentale, B-ayard, 2000 ; Actuel Marx, <aliㅤㅁㅐㄼnations>. n° 39, Paris, 2006.
8) <Futur prㅤㅁㅐㄼsent:l'aprㅤㅁㅏㅊs-capitalisme>(La Disp-ute, Paris, 2006)에서 Jean Sㅤㅁㅏㅊve는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관측될 수 있는 초월의 시작에 대한 인상적인 전망을 그리고 있다.
9) Tony Andrㅤㅁㅐㄼani, <Un ㅤㅁㅏㄲtre de raison - critique de l'homo œconomicus>, Syllepse, Paris,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