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대신 신화가 된 아이랜드 모델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는 “아일랜드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더블린은 긴축계획이 경기침체를 악화시키고 도리어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음을 확인하는 중이다. 이로써 ‘우등생’이던 켈트 민족의 나라가 ‘열등생’인 그리스와 더불어 채무 변제 불능국이 될 위기에 처했다. 아일랜드 모델은 다시금 새로운 환골탈태를 시도하고 있으나, 그 경이로움은 이전보다 못한 듯하다.
“아일랜드 모델에서는 장점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진정한 성공 스토리는 프랑스에 메시지를 전해준다”며 장피에르 라파랭 당시 총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더블린, 2004년 3월 24일).
그로부터 1년 뒤, 리투아니아 정부는 “아일랜드 경제성장 시나리오의 재현”을 목표로 삼았다는 공식 발표를 한다.(1) 곧이어 영국 보수당도 교훈을 얻기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한다. 퀘벡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다. “아일랜드는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2)
리투아니아 우파에서 온두라스 기업 대표 조직에 이르기까지, 미국 공화당에서 우루과이 미 상공회의소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동일한 분석이 나왔다. “아일랜드 모델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주효한 전략”이라는 것이다.(3)
“아일랜드 모델엔 장점밖에 없다”
모든 것의 시작은 1990년대 말, 아일랜드 경제가 갑자기 활황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1994∼2004년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증가율은 7%에 달했고, 이는 미국 경제보다 두 배, 유로존보다는 세 배 빠른 성적이었다.
모든 언론은 이런 ‘기적’이 ‘자유주의’ 성향의 개혁 결과라고 평가했다. 1988년 1월 16일, 아일랜드에 ‘최악의 나라’라는 선고를 내린 <이코노미스트>는 10년도 안 돼 판결을 번복한다. “아일랜드는 세계화의 신봉이 곧 번영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르 피가로> <리베라시옹> 등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아일랜드의 기적이 곧 자유주의의 기적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 모델은 이렇게 탄생했다.
1995년 12월, 프랑스에서 거리시위가 벌어지자 프랑스의 <카피탈>은 더블린에서 “노사 대표가 원칙에 따라 행동하며, 기업에 숨통을 틔워주었다”고 설명했다. 1987년 이후 아일랜드는 ‘임금 완화’라는 주된 목표를 위해 노사정 세 주체가 하나로 단결한 결과, “낮은 수준의 임금과 온건한 노조 문화가 정착돼 ‘무기력한 농촌 국가’라는 고착된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르푸앵>, 1996년 4월 6일).
임금 억제와 법인세 인하
아일랜드의 노력은 비단 노사관계의 노하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르푸앵>은 “과감한 경제정책이 외국계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며 찬사를 보냈다(1997년 8월 23일). 아일랜드는 법인세를 유럽 최저 수준인 10%로 끌어내렸다.(4) 게다가 ‘이전 가격’을 허용했다. 이 분야에서 아일랜드를 당해낼 나라는 없다. 당국이 감시 권한을 약화시키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5)
다국적기업이 몰려오고, 아일랜드는 과실 송금 면에서 (버뮤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조세 천국’으로 우뚝 선다. 이는 자그마치 GDP의 20%에 달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GDP보다 국민총생산(GNP)를 기반으로 아일랜드의 경제활동 수준을 측정하는 걸 더 선호한다.(6) (유럽 인구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임에도 아일랜드는 신규 부지 개설과 관련한 미국 투자의 4분의 1을 유치하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세입에 그렇게 이례적인 부분이 있는 건 아니다. ‘구조조정 계획’이라는 미명하에 세금 부과와 관련해 벌어지는 상황은 라틴아메리카 같은 다른 국가에서도 대동소이하다. 그렇다면 이 ‘자유주의 모델’은 왜 이 나라들에서 그만큼의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한 걸까?
미국 경제 둔화하자 동반 경직
아일랜드의 기적은 다른 요인으로 설명된다. 먼저 점진적으로 이룬 여성 해방이 아일랜드의 기적을 가져온 한 요인이다. 1992년 피임약의 합법화는 상당한 출산율 감소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아일랜드 여성이 대거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며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던 생산력을 강화했다.
또한 아일랜드의 기적은 그저 뒤처졌던 경제 수준을 단순히 따라잡은 것으로도 설명된다. 달리 말하면, 아일랜드가 외국자본의 덕을 봤다기보다는 외국자본이 저렴한 가격의 왕성한 생산력 덕을 본 것이다. 그럼으로써 외국자본의 활동이 둔화되면 아일랜드가 그 결과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 예로 2000년 말부터 미국 경제가 둔화되자, ‘켈트 호랑이’의 경제도 점차 경직됐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닥치든 아일랜드는 모범적인 해법을 내놓는다. 아일랜드 경제는 새로운 활력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고, 아일랜드 모델은 제2기에 접어든다. 미국처럼 아일랜드도 채권시장의 발달, 은행의 ‘창의성’, 그리고 특히 부동산 투기를 장려한다. 아일랜드의 부동산 시세는 프랑스보다 세 배 빨리 뛰었으며, 수요와 무관하게 건설 붐이 일었다. 정부 수입의 17%가 건설 부문 관련 세금에서 충당됐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이에 동요하지 않았다. 2004년 IMF의 상임이사들은 “다른 나라에도 유용한 교훈을 제공해주는 아일랜드 경제정책의 여전히 놀라운 성과를 치하”한다.(7) 부가가치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급감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은 프랑스와 독일이 선택해야 할 대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아일랜드로 바뀔 것인가, 아니면 박물관으로 변할 것인가?”(2005년 7월 1일)
가장 먼저 금융위기 직격탄
그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세계는 점차 금융위기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아일랜드 경제는 추락하며, 더블린 증시는 폭락한다. 2008년 실업률 증가(85%)는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고, 정부 수입은 13% 감소했다. 아일랜드는 가장 먼저 침체기에 들어간 나라가 됐다.
하지만 ‘아일랜드 모델’은 불사조처럼 다시 기사회생해, 또 다른 활로를 제시한다. 바로 긴축이다. 거의 습관이 돼버린 ‘엄격한’ 긴축정책 덕분에 아일랜드는 “다른 유로존 국가의 귀감이 된다”(<파이낸셜타임스> 2010년 7월 21일). 공무원 급여 20%와 가족수당 10% 삭감, 그와 비슷한 수준에서 한 모든 사회수당의 축소 등 대대적인 긴축정책이 펼쳐진다. 지난 4월, 아일랜드는 다시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칭찬을 듣는다. ‘사회적 단결력’에서 모델로 손꼽히던 아일랜드가 ‘긴축의 전형’까지 된 것이다.
아일랜드 국민은 분노를 겉으로 표출하기 힘들었다. 과거에는 독립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로 각 정당의 정체성이 구축됐으나, 자유주의적 합의가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아일랜드 노조는 ‘노사 간 대화’의 장점을 익히 배운 터였다. 아일랜드 국민은 여전히 신교와 구교 사이의 종교적 대립을 우려하는 반면, 사회적 반목은 등한시하는 편이다. 결국 불만이 가장 심한 이들은 현재 ‘해외 이민’에서 해법을 찾는다.(8)
초긴축, 그러나 ‘제2의 그리스’ 위기
2009년 4월이 되자 브라이언 레니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우리의 고난 극복 능력에 감명을 받고 있다”고 자축했다. 1년 뒤 영국 정부는 긴축정책을 발표하기 앞서 다시 아일랜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일랜드 연립정부가 어떻게 그리스 같은 사회적 동요를 야기하지 않고 예산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중략) 재무부 대표 인사들이 더블린과 상당 시간 전화 통화를 했다.”(<파이낸셜타임스> 2010년 5월 23일)
이어 아일랜드의 네 번째 ‘변신’이 이어진다. 그러나 세간의 감탄은 예전에 못 미친다. 2010년 5월 10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일랜드가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국 그리스 같은 결말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3개월 뒤, 아테네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고, <월스트리트저널> 또한 원고를 고쳐 쓴다. “아일랜드의 문제가 미결인 상태로 남아 있는 데 반해, 투자자 사이에서 아일랜드의 신용도는 약화되고 있다”(2010년 9월 9일)고. 이제 아일랜드 투자자들은 아일랜드의 긴축정책으로 야기된 경제적 손해 때문에 ‘그리스식’ 시나리오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자는 2008년 15% 감소했고, 2009년에는 30%가 줄어들었다. 예산 삭감과 임금 인하, 사회수당 축소 등의 압박으로 2009년 소비가 7% 이상 감소했다. 그만큼 과거의 경제활동이 더 호황을 누렸다는 뜻이다. 2008년에는 GDP가 3%, 2009년에는 11% 줄어들었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에 따르면, 은행 원조로 밑 빠진 독이 돼버리면 부채의 골만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01년 GDP의 33%였던 아일랜드의 부채는 2012년 11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예산 적자는 2010년 GDP의 20%, GNP의 23%가 될 전망이다. 그다지 정상적인 수준은 아니다.
‘아일랜드 모델’의 마지막 변신은 세간의 확신에 약간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IMF는 확실히 아닌 듯하다. 지난 8월, 굳은 의지의 IMF는 더블린에 “시장의 신뢰 유지를 위한 새로운 예산 삭감 진행”을 권유했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각주>
(1) 핀튼 오툴이 <Ship of fools>(Public Affairs·New York·2010)에서 인용한 발표 내용.
(2) <Perspectives>, 2008년 4월 30일.
(3) 2007년 8월 ‘전미협회’(Société des Amériques) 주최 회의의 결론.
(4) 2003년부터는 12.5%.
(5) 앞의 책에서 핀튼 오툴이 인용한 정부 브로슈어.
(6) GDP는 경제주체의 국적을 고려하지 않고 한 나라의 전체 생산가치를 측정하며, GNP는 한 국가의 거주민이 국내 시장과 해외에서 생산한 부를 반영한다. 따라서 GNP는 해외 다국적기업이 본국으로 송환한 이익은 배제한다.
(7) 짐 올리어리가 ‘External surveillance of Irish fiscal policy during the boom’에서 인용, <Irish economy>, n˚11, 2010년 7월.
(8) 2009년, 아일랜드는 (1천 명에 9명꼴로) 유럽 순수 이민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였으며, 리투아니아(1천 명당 4.6명)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