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들어간 프랑스 경찰, 군기반장이 되다
사회문제 은폐 위해 고압적 치안 정책 채택
군사화된 대민관계, 폭력 수위 높이는 악순환
청소년 재범 땐 부모 처벌 추진
그런데 이런 발언을 한 정치인이 대중의 신뢰를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안에 대한 논쟁에서는 사실에 대한 과장이 자주 이성적 사고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정부와 집권당 의원들이 내놓은 제안을 보라. 그들은 재범을 저지른 청소년의 부모에 대한 형사처벌, 일부 범죄자의 국적 박탈, 10월 이전 집시들의 불법 거주지 300곳 강제 철거, 치안 의무를 소홀히 한 지자체 정부 제재 등을 선언했다.
2002년 이후 치안에 관한 사안들은 대중운동연합에 유리하게 전개됐으며, 이들은 치안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왔다. 그 예로, 2002년에서 2010년까지 13건이 넘는 치안 특별법이 통과됐으며 형사소송법 40여 개와 형법 30여 개가 개정됐다.
이처럼 법 개정이 과도하게 이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사람들은 치안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사회문제를 은폐하고 연일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고 있는 ‘뵈르트 스캔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세르주 알리미 칼럼 참조)과 말썽 많은 연금개혁안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1990년대 말,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과 벨기에에서 ‘치안’ 문제는 사회·경제 문제와 동등한 정치적 현안으로 떠올랐으며, 사회·경제 문제와 분리된 고유한 문제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치안 문제는 정치인이 국민의 일상 현실에 대해 얘기할 때 끌어다 쓰기에 가장 좋은 주제가 되었다. 2009년 3월 18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 연설을 보자. “치안 불안이야말로 불평등과 사회적 불의의 가장 심각한 예다. 사회의 가장 불안하고 취약한 계층, 다시 말해 안전한 동네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치안 불안의 희생자가 된다.” 이것이 취임 초기부터 세금상한제를 통해 부자들의 납세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런 치안 담론은 이제 정치적 상식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는 좌파 정치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오랫동안 범죄 현상을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로 생각해온 사회당(PS)은 이제 치안 문제를 당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서민은 범죄 현상의 사회적 근본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원인으로는 가령 거주지나 생활 조건의 불안정, 일자리 부족, 사회적 차별 등을 들 수 있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근본 원인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선 치안 문제라도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1) 프랑스 전 총리 리오넬 조스팽의 설명이다.
치안 문제와 사회·경제 문제의 이런 분리를 인식해야만 치안을 둘러싼 현재의 쟁점을 이해할 수 있다. 범죄의 원인이 되는 사회문제 해결 시점을 먼 미래로 미뤄버리면 범죄에 대한 공적 개입의 대상으로 개인의 (더 나아가서는 부모의) 책임이라는 문제만 남게 된다. 이런 식의 자유주의 철학은 사회가 단순히 자유롭고 평등한 이성적 개인들로 구성됐으며, 각 개인들은 비용·이익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은 대중운동연합의 치안 문제 담당 사무국장 에리크 클로티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범죄 예방을 위한 최상의 수단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다.” 에손 지역구 사회당 의원 쥘리앙 드레이가 2002년 7월 16일 국회에서 한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곳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지는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범죄자가 되는 것도 선택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개인을 고립된 존재로 보는 관점은 개인의 행위(일탈 행위 포함)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범죄 책임 개인에게만 돌려
브리스 오르트푀 내무부 장관은 “불법 밀매 행위와 집단범죄에 전쟁”을 선포했다. 불법 경제 행위가 만연하고 ‘시테(변두리 집단 거주 지역)의 젊은이들’이 패거리를 짓는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불법 경제 행위는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기반으로 성행한다. 지하경제에서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불법 노동, 서비스에 대한 비화폐적 대가 제공, 마약 판매, 절도, 장물 은닉 등이 이뤄진다. 이런 비공식적 지하경제는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밥벌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의 합법적 영역에 속하는 구성원들에게도 불법 약품이나 상품을 공급하는 경로가 된다.(2) 또한 빈곤 계층 안에서도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실업 상태에 따른 수치심과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밑 빠진 독에 불 붓기’ 자탄
그러나 경찰과 사법부가 잘만 했으면 예전의 평온한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는 식의 관점은 무리가 있다. 한 사회 주체의 행동은 다른 주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또다시 새로운 반작용을 낳는다. 사르코지는 “시테에 경찰이 개입하는 방식이 폭력을 낳는다는 일각의 주장은 주객이 전도됐다”(2009년 3월 18일 연설)고 반복해서 주장하지만 현재와 같은 경찰 개입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오히려 문제를 낳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고위 경찰 책임자들도 사회 불안과 청소년 범죄 근절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찰이 항시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현장을 순찰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잠재적 범죄자를 파악하고 필요할 경우 적절한 조치(경고와 진압, 다양한 형태의 훈계나 질책)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은 합법적인 행동으로 간주된다. ‘지역사회 경찰활동’(Community Policing)의 일종인 이런 개입 방식은 시카고·영국·네덜란드 등에서 시행됐고, 프랑스에서는 ‘이웃경찰’(Police de Proximité ) 제도의 개혁(1998~2003)을 통해 도입됐다. 2008년부터는 다소 소극적인 방식이지만 경찰지구대(UTEQ)에 이 개념이 도입됐다.
그러나 경찰 개혁도 경제적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경찰 개혁 역시 정부의 기본 정책의 틀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공공예산과 공무원 수를 가혹하게 삭감하는 현재 상황에서 인력이 많이 필요한 기존 경찰 활동 방식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1998년에 시작된 경찰 개혁이 좌초한 것은 무엇보다 예산 부족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UTEQ 역시 같은 이유로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2009∼2014년 경찰 예산 항목 8천 개를 삭감하기로 한 상황에서 UTEQ에 투입할 경찰 인력을 차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좀더 넓은 행동반경을 갖는 범죄소탕부대(BAC)를 통한 개입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도보 순찰을 할 경우 한 지역당 경찰관 3명이 필요하지만 자동차로 이동하는 BAC는 단 두 팀만으로 지구대 내 20개 지역 전체를 담당할 수 있다. 한마디로 60명이 할 일을 6명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길거리 싸움을 해산시키고 현행범을 체포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청소년의 사소한 반항적 행동을 제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BAC가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검문하거나 검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청소년 패거리들의 경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경찰에게 시비를 걸거나 폭동을 일으킨 건수가 10년 사이 거의 두 배나 증가한 사실이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4) 젊은이들은 경찰이 불필요한 검문을 반복하고 협박이나 모욕적인 언사,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는 것에 대항해 검문 경찰관 주위에 떼지어 몰려들어 협박을 하거나 순찰차에 ‘돌팔매질’을 하기도 한다.
부족한 인력, 장비 고도화 부추겨
대민관계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인력이 부족한 경찰은 장비를 고도화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제 경찰관들은 고무총만으로도 부족해 테이저건(Taser Gun)(5) 사용으로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군사화’된 경찰 개입 방식이 폭력 수위를 높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2007년 빌리에르벨 폭동이 그 예이며, 최근의 그르노블 사태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조건 속에서 치안을 강조하는 담론은 내재적으로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이 담론들이 폭력 근절을 위해 내세우는 방식이 실제로는 부분적인 해결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논쟁과 입법을 둘러싼 싸움이 격해지는 가운데 비판자들은 정부의 치안 대책과 그 성과를 비교함으로써 정부를 몰아세우고 있다. 당 대표 마르틴 오브리를 포함한 일부 사회당 지도자들은 ‘공공의 자유 수호’라는 주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가령 경찰 감치 제도와 관련된 논쟁). 이들은 마뉘엘 발스 같은 당내 치안 ‘강경론자’과도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다.(6)
치안 불안감 퍼뜨려 통치 체제 유지
경찰의 대민 활동과 범죄 단속 활동 사이의 균형을 되찾고 지나친 형사처벌을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서민 지역에 상존하는 긴장과 충돌을 해결하고 과격한 집단에 규율을 부과하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사회에서 규율은 일터, 지역사회, 학교, 거주지, 교회, 정당, 노조 등의 조직을 통해 개인의 일상적 존재에 깊이 새겨진다. 중층적인 관계망이 개인을 구속함으로써 규율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런 규율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구성원에게 반대급부가 제공돼야 한다.(7) 그러나 오늘날 상당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을뿐더러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것은 형량 하한제, 경찰 감시 강화(한때는 이들도 ‘이웃경찰’이었다), 집단범죄 단속법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 조치들은 반대급부 없는 일방적인 규율 강화일 뿐이며,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반발심만 부추기고 있다.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집단 폭력 사태들(볼상블랭, 클리시수부아, 망트라졸리, 그르노블)이 그런 예다. 또한 젊은이와 공공기관(학교, 경찰, 시 조직, 대중교통 수단) 사이에 일상적인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경찰과 사법부가 죄질이 나쁜 범죄를 소탕하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작은 범죄를 사회적 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되찾아야 할 때다. ‘치안 불안’의 위협 속에서 통치 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유일한 예는 12세기 ‘연옥’(煉獄·죽은 사람의 영혼이 정죄를 위해 거쳐가는 곳)을 발명한 사제들이었다.(8) 가톨릭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 연옥이라는 협상 장소를 도입함으로써 서구 사회에서 세속적 권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범죄 소탕 활동에 비해 당시는 진실이 들통 날 확률이 훨씬 적었다.
글•로랑 보넬리 Laurent Bonell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Lionel Jospin, <내가 바라본 세계>, Gallimard, 파리, p.249, 2005.
(2) Alessandro Dal Lago & Emilio Quadrelli, <La città e le ombre. Crimini, criminali, cittadini>, Feltrinelli, 밀라노, 2003.
(3) Gérard Mauger, <패거리, 뒷골목, 보헤미안적 서민: 서민층 청소년 탈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1975~2005)>, Belin, 파리, 2006.
(4) 1998년 3만2938건에서 2008년 5만7903건으로 증가했다. 자료: <프랑스 범죄와 위법행위의 양상>, La Documentation française.
(5) 고무총은 고무 탄환을 발사하는 진압용 총이다. 테이저건은 5만 볼트의 전기 충격을 가해 근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
(6) 피니스테르 지역구 의원이자 사회당 치안 문제 담당 Jean-Jacques Urvoas, <국가 치안에서 시민 보호로>, Fondation Jean Jaurés, 2010년 1월.
(7) <프랑스는 두렵다: ‘치안’ 문제의 사회·역사적 고찰>, La Découverte, 파리, 증보개정판, 2010.
(8) Jacques Le Goff, <연옥의 탄생>, Gallimard, 파리, 1991.
[박스기사] 영리해지는 ‘범죄와의 전쟁’
1971년 리처드 닉슨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그동안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감옥에 보내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미국인, 빈곤층이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2009년 7월 “특정 부류, 특정 집단에 속하는 미국인들에게 불공평하게 작용하는 법원 판결”이 과연 범죄 소탕에 효과적인지 의문을 표했다. 그는 “범죄가 발생하는 맥락을 먼저 생각하자”고 주장하면서 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보다는 ‘지능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시애틀 경찰청장에서 국립마약통제정책국(ONDCP) 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리처드 길 컬리코우스키는 “마약에 대한 전쟁은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한 대응이었다. 마약 중독은 도덕적 실패가 아닌 병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단지 사람들에게 마약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더 네이션>, 2010년 7월 5일자).
현재 미국에서는 마약 문제를 단속 대상이 아닌 공중 보건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주정부가 늘고 있다. 텍사스주도 2007년 지역사회에 기반한 마약 중독 퇴치 계획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교도소 확장 계획을 취소했다. 교도소 확장 계획 예산은 6억 달러, 마약 중독 퇴치 계획 예산은 2억4100만 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