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똑똑하게…
능력 시대의 유럽 교육

[Spécial] 시장으로 간 교육

2010-10-08     니코 이르트

유럽집행위원회의 목표는 기업의 저숙련 노동자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유연성을 갖춘 인력을 배출할 양성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 교육담당 집행위원 안드룰라 바실리우의 교육론은 단 몇 문장으로 요약된다. “시장의 요구에 맞는 능력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교육 접근성을 향상한다.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유럽을 지원한다. 현 노동시장에 적합한 능력을 겸비할 수 있도록 청년층을 교육한다. 경제위기의 영향에 대응한다.”(1) 이 교육관에는 유럽 지도자들의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15년 가까이 이들은 학교의 최우선 임무가 시장을 지원하는 것이며, 실업이나 불평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대한 경제적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시장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유럽직업훈련연구센터(CEDEFOP)는 향후 몇 년간 고숙련 일자리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동시에 “판매나 유통을 비롯한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물론, 공인된 자격 요건이 필요 없거나 필요성이 극히 적은 단순직 역시 현격히 증가”(2)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센터는 이 현상을 일컬어 “필요 직무능력의 양극화”라고 표현했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이 크게 증가한 일자리 40여 개 중 단 8개만이 높은 수준의 자격 요건(4년제 대학 이상)을 요하는 일자리로 나타났다. 반면 20개에 달하는 일자리는 비교적 짧은 기간의 현장 훈련(Short-term On-the-job Training)(3)으로 족했다. 여러 영미 학자들은 양극화된 일자리를 대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각 애플사의 컴퓨터 이름을 딴 ‘Macjob’과 맥도날드의 첫자를 붙인 ‘Mcjob’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 로런스 카츠, 멜리사 커니 등은 “1990년대 이후 고용 양극화가 나타났다. 저숙련 일자리는 급증한 반면, 중간 수준의 일자리 증가는 제자리걸음을, 고숙련 일자리 증가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4)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식사회’에 관한 기존 담론과는 다소 대조적인 양상으로 노동시장이 변화하면서 당연히 교육정책도 영향을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실을 인정했다. “모두가 ‘신경제’라는 역동적인 분야의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게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고학력을 요구하는 식의 교육정책은 무의미하다”(5)는 냉소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프랑스의 클로드 텔로 ‘학교 미래에 관한 전국토론위원회’ 위원장도 2004년 프랑수아 피용 총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동일한 의견을 피력했다. “‘모든 학생을 위한 학업 성취’란 개념을 오해해선 안 된다. 이는 결코 학교가 학생 전원을 최고 수준의 학력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환상이고, 사회적 차원에서도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학력은 고용 구조와 조금도 연계성이 없기 때문이다.”(6)

교육을 관리하려는 이들에게 제기되는 문제로, 1950~80년대가 우리에게 남긴 집단화된 교육 시스템의 유산이 있다. 교육 집단화에 따라 학생들은 국가별로 8~10년씩 공통 교육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교육 집단화는 번성한 자본주의의 희망에 부응하는 제도였다. 과거에는 고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교육 수준을 끊임없이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환란의 시대이자,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시대다. 이 시대에는 한편으로 미래의 전문적인 기술 엔지니어를, 다른 한편으로 저숙련 노동자를 배출하기 위해, 대체 어떤 기반에 근거한 공통 교육을 해야 할까?

전문가와 저숙련자 동시 배출?

해답은 실제로 ‘무자격’이거나 혹은 무자격이라 알려진 새로운 일자리의 본질에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무자격’ 일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해당 직무에 필요한 자격이 진정한 직무 자격으로 인정받지 못한 일자리를 무자격이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 필요한 지식이나 노하우, 행동양식이 이미 누구나 갖추고 있는 평범한 능력이라 치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본적인 읽기·쓰기 능력은 더 이상 특별한 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운전면허증이나 컴퓨터 자판 운용 능력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직무 자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런 종류의 능력은 단체교섭 대상도 되지 못할뿐더러, 임금이나 근무조건, 복지후생에서 법적으로 보장되는 최소치 이상의 조건은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늘날 무자격 일자리의 특징은 낮은 숙련도의 다양한 능력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테제베(TGV) 고속열차 국제선 식당칸에서 일하는 ‘카운터 직원’은 유창하지는 못하더라도 다양한 외국어를 조금씩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암산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또 다양한 기기(오븐, 전자레인지, 온수기, 금전등록기, 카드판독기, 냉장고, 음성 안내 시스템, 배전반 등)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나 디지털, 과학 등의 분야에 최소한의 소양을 겸비해야 한다.

여기 나열된 능력은 유럽집행위원회가 작성한 ‘기본 능력’ 목록과도 일치한다. 집행위는 초등, 중·고교 교육, 직업훈련 등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 개혁의 중심축이 될 기본 능력으로 “모국어 및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 산술 능력, 기본적인 과학 및 기술 능력, 디지털 운용 능력, 학습 능력, 시민생활 및 사회생활 능력, 진취적 기상과 도전의식, 문화적 감수성 및 표현력”(7) 등을 꼽았다.

잡다하게 조금씩 다 잘하라

여기 나열된 능력을 갖추지 못해, 신규 무자격 고용 경쟁에서 소외된 노동자 수는 유럽에서만 3천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고용주가 해당 직무 자격보다 월등한 자격을 지닌 노동자를 과도한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앞서 말한 기본 능력의 교육을 일반화하면 임금에 대한 압력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정 능력을 요구하는 해당 수요에 대해 공급이 증가한다면 이미 이 능력을 겸비한 노동자 전원의 실질임금이 하락할 것”(8)이라는 생각이다.

총임금 낮추기 위한 교육 정책

지식이 아닌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고용은 유연성이나 적응 능력이 뛰어난 인력 수요를 증가시킬 것이다. 오늘날 (새로운 시장 창출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급속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는 동시에 경제적 불안정성까지 가세하면서, 어느 때보다 미래 예측 범위가 협소해졌다. 누구도 10년 뒤 기술적 생산관계가 어떤 모습일지 가늠할 수 없고, 미래에 요구되는 지식이나 직무 자격에 어떤 것이 있는지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집행위가 나열한 기본 능력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적절히 적응할 수 있는 노동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확실한 가치로 여겨진다. OECD에 따르면, “고용자는 이런 종류의 능력을 역동성과 유연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이런 능력을 갖춘 인력이라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동 수요나 생산수단에 계속 적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9)

능력을 중시한 교육은 학습 과정의 개별화를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 교사는 학급 전체가 소기의 학업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전체를 끌고 갈 의무가 없다. 단지 개개인이 각자 알맞은 속도로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을 수 있게 지도하면 된다. 그 일환으로 유럽집행위원회는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는 국가의 사례’, ‘개인별 학습평가계획’, ‘공인받지 못한 교육 및 직업 연수에 대한 인정’ 등을 일반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학위와 자격증으로 대표되는 기존 제도적 틀에 의한 강제적 규율에서 시장을 해방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니코 이르트 Nico Hirtt 
교사이자, 벨기에 소재 단체 ‘민주적 학교를 위한 호소’(APED)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http://ec.europa.eu/commission_2010-2014/vassiliou/about/priorities/index_en.htm.
(2) 유럽직업훈련연구센터(CEDEFOP), <Future skill needs in Europe: medium-term forecast. Background technical report>, 유럽연합출판국, 브뤼셀, 2009.
(3) 더글러스 브래독, ‘2008년 직업별 고용 전망’, <월간 노동리뷰>, 제122권 11호, 1999년 11월.
(4) 데이비드 오토, 로런스 카츠, 멜리사 커니, ‘미국 노동시장의 양극화’, 전미경제연구소, 내부 보고서, 제11986호, 케임브리지, 2006.
(5) OECD, ‘우리 학교의 미래는?’, 교육정책분석, 파리, 2001.
(6) 클로드 텔로, ‘학생 전원의 학업 성취를 위하여: 학교 미래에 관한 전국토론위원회 보고서’, 라 도큐멍타시옹 프랑세즈, 파리, 2004.
(7) ‘변화하는 세계의 중요한 능력’, 벨기에, 2009년 11월 25일.
(8) ‘교육 및 직업훈련의 리스본 목표를 향한 성과’, 유럽집행위원회, 내부 보고서, 2005.
(9) 베아트리츠 퐁, 파트리크 베르캥, ‘새로운 능력, 사실인가?’, <OECD 옵서버>, 파리, 2001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