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파리고교 평교사 앙드레
[Spécial]시장으로 간 교육
미국에서는 전직 교육차관보를 비롯한 일부 지도자들이 학교 간 경쟁 유발과 학생 평가를 비판하고 있는 마당에, 프랑스에서는 미국에서 비판받는 논리를 바탕으로 개혁이 추진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통적으로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해온 직군인 교사의 지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이들의 채용을 개별화하는 등 각종 조처를 취하고 있다.
학업감사관, 교사 작업반장 노릇
10여 년 전부터 여러 명의 장관들이 국가교육 공공서비스에 ‘현대적’ 경영 원칙을 접목시키려 안간힘을 써왔다. 민간 부문의 사회적 관계 모델을 본떠서, 학교를 하나의 자율적 중소기업으로 변모시키려 해온 것이다. 지난 4월 개최된 ‘학교 안전에 관한 공청회’에서 뤼크 샤텔 교육부 장관이 조용히 발표한 ‘CLAIR’(중학교(C)·고등학교(L)·야망(A)·혁신(I)·성공(R)) 프로그램은 이런 개혁을 대표하는 최신작이다. 이 제도는 아직 실험적 단계로 “학업 분위기와 폭력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1) 100여 개 학교에서만 시행 중이며, 이에 따라 각 학교 교장은 “프로필에 따라 교사를 채용”(2)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하면 중등교사 및 고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비롯한 교사들이 이제 국가 차원의 발령을 거치지 않고도 학교에 부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발령제도는 수십 년간 교사들이 학교 행정 당국에 대해 어느 정도 행동의 독립성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왔다. CLAIR 프로그램의 또 다른 핵심적 조처는 ‘학업감사관’ 임명이다. “학년별로 지정되는 학업감사관은 관행의 일관성과 공동 규칙 준수, 가족의 참여를 위한 중심 요소로, 교수법 및 교육에 관해 책임을 행사한다.”(3) 일종의 작업반장 역할을 담당할 이들의 등장과 더불어 지금까지는 비교적 평등했던 교사 집단 내부에도 위계질서가 생겨나게 됐다. 이는 ‘기업’ 모델을 재생산하기 위한 핵심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RAR’(성공(R)·야망(A)·네트워크(R)) 학교는 2006년 가을 개학과 함께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질 드 로비앵이 시행했다. 이는 2005년 가을 언론을 뜨겁게 달군 대도시 외곽 지역의 폭력적 저항 사태의 대응책이었다. 클로드 텔로가 이끄는 ‘학교 미래에 관한 전국토론위원회’(2003~2004)의 제안에 따라 2005년 프랑스 교육부는 일종의 ‘슈퍼교사’를 도입하고 이를 ‘기준교사’라 명명했다. 이 교사는 주당 수업 시간이 9시간(정규직 교사는 18시간)으로 축소되는 대신, 기업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수사법에 따르자면, “가르침의 역동성을 촉진”하고,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역동성을 장려”(4)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프로필형 직책’의 도입은 교사의 공무원 지위에 변화의 물꼬를 텄다. 더 이상 행정적 발령이 아닌 임무수행 계약에 따라 채용되는 기준교사는 교장 또는 장학관에게 보고하며, 목표 달성도를 평가받는다. 마치 기업의 관리자처럼, RAR에 속한 교사 중 일부는 교육부의 개혁 의지 실현에 고심하는 학교 당국과 교사진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교사는 평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당신이 내 수업을 존중하니 나도 당신의 수업을 존중한다는 논리였다”고 루베에서 현대문학 교사로 근무하는 엘렌 두그는 말한다.(5) “교사들은 동일한 업무를, 동일한 시간 동안, 동일한 조건에서 수행합니다. 그런데 다른 지위를 가진 교사가 등장해서 아이들 앞에 서는 시간은 줄인 채 상급자와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교무실에도 일종의 분열이 생겼습니다. 이는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교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
2007년 1월 질 드 로비앵 교육장관은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저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혁신적 프로젝트와 창의적 교육을 촉진하며, 경제활동 및 시민사회 주체와의 제휴를 장려하는 수단으로 ‘야망·성공’ 네트워크의 자율성이 활용되기를 바랐습니다.”(6) 그러니 슈퍼교사들이 종종 초등학교 6학년의 주제별 수업(이집트, 음악, 연극, 천문학 등)과 같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기계로 변신하는 것도 놀라울 게 없다.
하지만 로비앵 장관의 열정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 교사인 세실 풀라우앵은 이렇게 말한다. “프로젝트는 무엇보다도 부진한 학교에 긍정적 이미지를 주려는 상급자의 뜻에 얽매이게 됩니다. 특히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학군제가 폐지된 현 상황에서는 말이죠.” 그러나 엘렌 두그 교사는 “이 프로젝트들이 학생의 학력 증진 등에서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진지하게 평가하는 데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프로젝트라는 콘셉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거죠.”(상드린 가르시아의 글 참조) 기준교사들이 제출하는 RAR 학교 활동보고서는 이런 신생 교육규범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한 예로 클레르몽페랑 학구에서 작성된 어느 보고서를 보면 “RAR 네트워크의 모든 학교에서 실행되는 횡적 프로젝트들은 해당 부문에서 학생들의 성취를 위해 함께 기울이는 수단과 노력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나와 있다. 이 보고서에는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9쪽에 걸쳐 무려 21번이나 등장한다.
중등 교육도 프로젝트 시대
2006년의 ‘야망·성공’ 개혁이 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동시에 교사 집단 내부에 위계질서를 창출하고, 아울러 알맹이 없는 콘셉트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의아할 것도 없다. 사회학자 뤼크 볼당스키와 에브 치아펠로는 1999년 발간한 공동 저서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20여 년 전부터 ‘네트워크’, ‘프로젝트’ 등의 조잡한 장신구들로 치장하면서 현대화됐는지를 파헤친 바 있다.(7) 대중교육운동가인 프랑크 르파주는 사회·문화 부문에서 발생한 수사학의 오염이 중상주의적 영향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에는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함께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젝트를 들고 다른 프로젝트 구축자들과 경쟁해 이기면 그 대가로 보조금을 받는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해 또 다른 보조금을 노리기도 한다. ”(8)
이제는 교육부까지 여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두그 교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 중학교의 교장은 학기가 시작되자 교사에게 프로젝트를 제출해도 좋으며, 다만 그중 5개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쟁 유발로 교사들 간에 분열이 생기고 ‘수상’ 프로젝트를 내지 못한 교사들의 입지가 약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만큼 교육의 자유도 축소되지요.”
한편 프로젝트는 교장이 학교를 학부모에게 ‘판매’하는 데 기반으로 삼는 논거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북부 루베의 어느 중학교 교장이 개학하는 날에 이렇게 말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대대적 광고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공략할 대중이 있습니다.”(9) 그 공략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지역 언론의 호의적 중계다. 가령 릴 학구에서는 <라봐뒤노르>나 <노르에크레르>와 같은 신문이 ‘축구클럽 RC 랑스가 랑주뱅 다비옹중학교에 기념품 판매점 개장’, ‘미셸드스웽중학교에서 암산대회 개최’, ‘카뮈중학교의 음악교육: 팡파르 속의 마지막 해’, ‘반데르미르슈중학교의 화두는 수월성과 통합’ 등의 제목으로 각 학교의 활동을 홍보하는 기사를 수시로 싣는다. 2009년 회계감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RAR에 해당하는 중학교 254곳 중 186곳의 학생 수가 학군제 완화와 더불어 10%까지 감소했다는 사실을 보면 언론의 이런 지원은 더욱 수긍이 간다. 프 랑스 북부와 남부를 막론하고 모든 학교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전국중등교육노조(SNES)의 엑스-마르세유 학구 지부의 부사무국장이며, 북부 지역에서도 8년간 근무한 바 있는 스테판 리오는 이같은 방향 선회의 증인이다. “많은 동료들은 2010년 학기 시작과 함께 교장들에게서 경영자 같은 연설을 들었습니다. 교장들은 목표 달성과 능력 및 행동 평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이는 국가교육이라는 공공서비스 본연의 임무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처사입니다.”
패배의식에 빠져드는 교사들
반복되는 공격과 위협 앞에서 교육계는 의심에 휩싸인 듯하다. “30년 동안 교직에 종사하면서 이런 난장판은 처음 봅니다.” 고등학교 역사지리 교사로서 열성적 노조원이기도 한 미셸 드브레드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모든 것이 대폭 축소된 재원으로 번갯불에 콩 볶듯 진행됩니다. 연수교사 훈련에 관한 개혁은 골칫거리입니다. 현재 아무 준비도 안 된 신참 교사들이 일주일에 18시간이나 교단에 서는 실정입니다.” 지난 3년간 3만4400개 교사직이 사라진 데 이어 올해에도 1만6천 개가 줄어들게 된다. 연수교사들의 경우, 예전에는 교직 생활을 파악하고 교수법을 익히는 차원에서 일주일에 6시간씩 근무했으나 이제 정규교사 선배들과 맞먹는 수업을 맡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9월 6일 파업의 참여도는 노조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퇴직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파업이 바로 다음날 예정돼 있던 특수한 상황이었으며, 실제로 여기에 많은 교사들이 참여했다. “그야말로 전복 작업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드브레드 교사의 말이다. “매년 각종 법률과 개혁 조처들이 교사들에게 강요됩니다. 이미 1989년에도 교육부 장관이던 리오넬 조스팽이 일종의 슈퍼교사를 도입해 내부 위계질서를 구축하려고 해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습니다. 그렇지만 개혁 조처가 늘어날수록 교사들의 저항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습니다. 동료들도 ‘결국 잊히고 말 것’이라 생각하며 차라리 모르는 척합니다. 하지만 실수하는 겁니다. 그러는 동안 상대편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니까요.”
공공서비스의 규제완화 정책은 교육 부문을 공략하기에 앞서 프랑스텔레콤·전력공사(EDF)·철도공사(SNCF)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지금도 이 분야들에서 유례없는 강도로 전개되고 있다. 규제완화는 여기에 유리한 이념적 환경이 조성됐기에 가능하다. 전국중등교육노조 간부인 스테판 리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른바 ‘제2 좌파’에서 우파에 이르는 지식인층과 정계 일각, 특히 파리고등정치학교 총장이자 고등학교 개혁 입안자인 리샤르 데스쿠앵 같은 인물들은 교사 집단이 그 지위와 규율적 엘리트주의에 힘입어 보수주의의 매개체 구실을 한다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이 전제는 한편으로는 교사 집단 및 국가교육 공공서비스에 유례없이 거세게 가해지는 정치적 공격을 도외시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자유주의 경제가 서민층과 그 자녀들에게 가하는 막대한 폐해를 간과한 것입니다.” 불안정한 처지의 서민을 가르치는 교사의 지위마저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그토록 추구하던 ‘프로젝트’인가?
글•질 발바스트르 Gilles Balbastre
다큐멘터리 감독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각주>
(1) 프랑스정부관보, 회람 2010년 7월 7일자, 2010-096호.
(2) Luc Chatel, <르몽드>, 2010년 8월 28일자.
(3) 앞의 관보.
(4) 프랑스 교육부 인터넷 사이트 education.gouv.fr, ‘우선적 교육’ 항목.
(5) 루베시의 공립중학교 7곳 중 6곳이 ‘야망·성공’ 네트워크 학교로 지정됐다. 2009년 전국 254곳의 지정 학교 가운데 28곳이 집중되면서 이 학구의 네트워크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6) ‘야망·성공 네트워크 세미나: 학생들을 위한 수월성’, 2007년 1월 16일.
(7)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Le nouvel esprit du capitalism), Gallimard, Paris, 1999.
(8) Frank Lepage, <미개-제1권, 그들이 원치 않은 대중교육… 혹은 또 다른 문화 이야기>(Incultures- Tome 1, L’éducation populaire, Monsieur, ils n’en ont pas voulu… ou Une autre histoire de la culture), Cerisier, 2007.
(9) 영어 교사 마리클로드 부아디에가 전해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