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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 좌절된 욕망과 화해하다
<패터슨> - 좌절된 욕망과 화해하다
  • 김미진
  • 승인 2019.01.3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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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가고 또 다른 월요일이 온다.

한 개인으로서 삶을 살면서 우리는 아이였다가 성인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가 때로는 이별을 하고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역할을 하며 동시대의 다른 이들과 비슷한 인생을 산다. 영화 안에서 표현하는 패터슨의 일상 또한 산책길에 마주친 에버렛의 대사처럼 매일 아침 해가 뜨고 밤에 지는 세계와 같을 것이다. 이때 영화 ‘패터슨’ 속 시간의 미묘한 구분은 요일의 변화로 표현된다. 영화는 매일 아침 패터슨과 아내 로라가 누워있는 침실을 직부감으로 포착한다. 같은 앵글 유사한 숏 크기의 이미지 위로 매 요일 자막이 뜨며, 이들의 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각 요일마다 두 사람의 누운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영화의 시간이 끝나는 시점인 다음 월요일에는 또다시 첫 월요일과 흡사한 자세로 침실에 누워있는 패터슨과 로라를 담는다. 월요일부터 시작해 다시 월요일로 돌아오는 영화 속 시간과 다른 두 월요일에 담긴 두 사람의 유사한 자세는 일련의 회귀로서, 영화 속 세계가, 두 인물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거친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같은 금요일은 아니다.

금요일 아침 패터슨은 눈을 뜨고 여느 때와 같이 협탁에 두었던 손목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침대에 로라가 없다. 그녀는 주말에 마켓에서 팔 컵케이크를 만드느라 마빈과 함께 부엌에 나와있다. 패터슨이 부엌으로 나와 로라와 키스 하는 모습을 보고 마빈은 짧게 짖는다. 이때 패터슨과 마빈은 약간의 눈싸움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 둘의 적대 관계는 영화 초반부터 간접적인 방식으로 계속 해서 드러난다.

하지만 패터슨은 딱히 누군가의 세계에 틈입하여 세계를 바꾸어 놓으려 하지 않는 인물이기에 마빈을 나무라거나, 해하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또한 아내 로라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들인다. 대신에 그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한다. 점심시간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시상을 노트에 적고, 버스 승객의 대화를 엿들으며, 퇴근 후 단골바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긴다. 그렇다면 이 욕망의 대체재들의 궁극적인 주체는 무엇인가?

 

부유하는 욕망의 대체재들

패터슨은 로라를 욕망한다. 그러나 이는 로라의 공간에 의해, 반려견 마빈에 의해 좌절된다. 최소한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로라의 세계는 패터슨보다 마빈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벽에 걸린 마빈의 초상화만 봐도 그렇고, 패터슨이 버스 운행을 하고 있는 동안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로라의 시간 속 마빈의 등장도 그러하다. 패터슨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로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마빈이 이 둘 대화에 반응하는 숏이 끼어든다. 패터슨의 로라를 향한 욕망은 로라의 집이라는 공간에 억압되어 가장 낮고 좁은 창고라는 공간만이 그를 위한 장소가 되고, 마빈에 의해 억압되어 다른 대체재들을 찾아 부유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로라에게 칭찬을 받는 시 노트이기에 패터슨은 매일 시상을 옮겨 적는 것이다.

점심 시간 폭포 근처 벤치에 앉아 노트 위에 옮겨 적는 텍스트는 떨어지는 폭포수 이미지 위로 겹쳐 지고, 그 이미지 위로 로라의 얼굴이 또 다시 오버랩 된다. 이는 패터슨의 욕망의 가시적인 표현과도 같다. 실제적 욕망의 대상인 로라를 직접 소유하지 못하는 패터슨은 대신에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한다.

 

그가 호명되는 공간, 단골바

버스가 고장난 금요일 밤, 패터슨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길에 항상 들르는 단골바에 들르게 되고 그 곳에서 권총 난동에 휘말리게 된다. 패터슨은 용기를 내어 권총을 든 남성을 제압하고 마리로부터 영웅같았다는 칭찬을 듣게 된다. 또한 닥은 패터슨에게 가게 벽에 붙을 패터슨시 유명인사 심사를 부탁하기도 한다.

이 ‘단골바’라는 공간은 좌절된 패터슨의 욕망을 대체하는 공간이다. 바 주인 닥과 여자 손님 마리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다.알튀세르 이론을 빌려 말하자면 단골바는 그가 호명되는 공간이며 그의 이데올로기가 인정받는 공간이자 가게 밖에 묶어둔 욕망의 적대자 마빈으로부터 독립된 주체로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세계이다.

 

 

세계와 격리시키다

아내 로라와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고 돌아왔을 때, 패터슨은 그의 시 노트가 갈기갈기 찢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욕망의 대체재의 상실, 소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패터슨과 로라 두 사람이 애착을 갖는 성냥갑 또한 결국 불타 사라지는 소멸을 의미한다. 또한 그가 매일 점심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폭포수는 로라에 의해 집안 공간의 일부 (액자) 로 포획되고 대체재로서 가치를 상실한다. 욕망하는 대상에 의해 혹은 적대자 마빈에 의해 좌절되고 마는 패터슨의 욕망, 그것의 대체재의 소멸들, 이를 지켜보는 패터슨의 태도는 어떠한가?

감독은 씨네21과 진행한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영화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에 대해 “그의 섬세한 세계가 무너질 때, 패터슨이 화를 푸는 방법은 그저 그 자신을 세계와 격리시키는 것이다.” (씨네21, 장영엽) 라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태도는 영화 속 주인공 패터슨이 자신의 시상을 담아 놓은 노트가 찢어진 후에 거실에서 마빈을 바라보며 “I don’t like you, Marvin.” 이라고 조곤히 말하는 발화와, 아내의 위로 후 홀로 걷는 산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계와 화해하다

노트가 사라진 후 패터슨은 폭포수 앞 벤치에서 한 일본인 여행객과 조우한다. 그는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선물하며 텅빈 노트는 오히려 가장 큰 가능성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이는 욕망의 덧없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채워지지 않는 궁극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대리 만족하고자 하지만 그것의 소멸과 상실은 계속될 것이니 당신의 세계와 격리하지말고 마주보고 화해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패터슨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떠올리는 시상은 욕망의 덧없음을 알지만 계속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갈구 할 것임을 암시한다. 마지막 월요일의 로라와의 침실 숏은 그런 의미에서 패터슨과 세계의 화해의 숏이며 계속해서 좌절되어도 다시 욕망할 것이며, 그의 세계는 계속해서 순환할 것이라는 윤회의 메세지가 아닐까.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김미진

유럽 영화에 대한 덕심으로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예술 영화를 탐닉하던 것이 지금은 업(業)이 되었다. 현재 영상 편집가, 독립영화 제작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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