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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폭주를 망설이고 식상함을 자찬(自讚)하는 - 영화 <기묘한 가족>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폭주를 망설이고 식상함을 자찬(自讚)하는 - 영화 <기묘한 가족>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2.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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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좌표 안에서 미묘하게나마 튀어나가 ‘새롭다’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촘촘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때 촘촘하다는 것은 시대적인 맥락에서의 종적인 이동과 그 외의 소재나 표현 혹은 이것들의 활용방식까지를 포함한 횡적인 이동에 까지 영화와 관계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관객들이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한히 확대되고, 그 플랫폼에 대한 접근 역시 너무도 편안해진 이 시점에서 개성과 신선함을 바라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겠지만, 창작은 진부함과 신선함 사이를 진동하다 조금이라도 신선함으로 기울어지기를 기원한다. 창작에 있어 새로움은 당연한 가치이지만 알다시피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자기 성취에 빠져버린 상황이라면 신선함의 기준이나 의미를 명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묘한 가족>은 바로 이 진동에 민감히 반응했다는 포부를 여기저기 내비치고 있는 영화이다.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움이라는 수식어로 가득채운 것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기묘한 가족>은 충청도의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가족이 공격성이 없는 좀비를 발견하고 좀비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돈을 벌다가 동네 사람들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언뜻 흥미로워 보이는 <기묘한 가족>은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새로움’ 속에서 헤매고 있다. <기묘한 가족>이 내세우고 있는 새로움의 정체, 즉 가족의 분위기, 친근한 좀비의 등장, 전염의 잠복기로 인한 오해 등은 사실 여러 타래들로 묶여왔던 이야기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기묘한 가족>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사건을 일으키는 두 개의 키워드는 ‘가족의 욕심’과 ‘좀비’이다. 휴먼인 바이오라는 이름 모를 곳에서 불법 생체실험으로 좀비로 변한 청년에게 물리면서 회춘한 아버지 만덕(박인환)은 이 좀비를 통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우유부단하고 불안함에 종종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일을 진행하는 큰아들 준걸(정재영)과 서울에서 퇴직하고 내려와 빈둥대면서도 가족들에게 허세를 부리고 유일하게 좀비의 존재를 눈치 채는 둘째 아들 민걸(김남길), 그리고 이 집안 남자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이자 돈을 관리하는 며느리 남주(엄지원)와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막내딸 해걸(이수경)의 성격은 <기묘한 가족>안에서 가족의 욕심 제 방식으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의 욕심, 조금은 황당해 보이는 캐릭터로 역시 황당한 발상을 통해 돈을 벌려던 가족의 이야기는 이미 블랙코미디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길을 잃는다.

<기묘한 가족>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은 산장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 시체를 처리하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조용한 가족>(1998), 갑자기 등장한 맞은편 중국집 때문에 자신의 중국집이 망할 상황에 처하자 앞집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소문의 정체를 밝히려던 중국집 사장의 고군분투를 그린 <신장개업>(1999), 보험 사기로 돈을 벌기 위해 가족 전체가 목숨을 내놓으며 좌충우돌하던 <하면된다>(2000) 등에서 등장한 가족들의 성격을 정확히 관통한다. 조금은 모자라는 듯한 준걸과 상황을 알면서도 제대로 판단하지 않거나 혹은 무시당하는 민걸도 그렇지만 특히 남주와 해걸은 더욱 도드라진다. 갑작스레 뚱한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딱딱하고 기계적인 말투나 행동, 잔혹성을 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등의 모습은 위에서 나열한 세 영화 속 여성인물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서사 역시 블랙코미디로 비틀려 돈과 죽음을 연결했던 그때의 이야기 위에 <기묘한 가족>은 고스란히 놓인다. 가족들이 운영하던 주요소는 망했고,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가족들이 선택한 것은 일부러 사고를 내고 수리를 해주면서 과한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었다. 항의하려는 이들에게 남주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돈을 뜯어내는 첫 시퀀스는 이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매우 잘 보여준다. 즉 이러한 가족들의 삶은 위 영화들과 같은 궤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설정이 겹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2019년에 다다랐을 때 가족이 가지고 있을 욕심, 그리고 그에 대한 설정이 그리 설득력을 발휘하지 않으며 따라서 앞선 영화들보다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쌓아 놓고 벌어들이려 했던 돈은 극의 후반 무료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사라져버리면서 명확한 축을 찾기 어렵다.

이 영화의 특징이 쉽게 희석되어 버리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 잔인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던 욕심이 가족애라는 것으로 뭉뚱그리기 때문이다. 이는 <기묘한 가족>이 새롭다고 내세운 두 번째 키워드 좀비와 연관된다. 민걸이 굳이 설명까지 해가며 다뤄야 하는 것에서도 드러나지만 좀비는 세대적 특징을 지니는 독특한 괴물이다. 연령에 따라 좀비의 존재자체에 대한 인식, 특징 등에 대한 정보량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매니악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좀비가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며 또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그리고 좀비가 현재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등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그러니까 이 영화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상정한 관객들이게 쫑비(정가람)는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기묘한 가족>의 예고편만으로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나 <웜 바디스>(2012) 등을 떠올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은 좀비를 관심있게 보아온 이들이라면 쫑비의 특징은 분명 기시감이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밖으로 눈을 돌릴 필요 없이 쫑비의 특징은 <이웃집 좀비>(2009)나 <미스터 좀비>(2010) 등의 독립영화들이나 <좀비의 시간1,2>(2008, 2010-2011)나 <웨이크 업 데드맨>(2010-2012), <좀비딸>(현재 연재 중) 등의 웹툰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종횡으로 엮은 중심축이 새롭지 않다고 할 때, 이 영화가 가 닿고자 했던 또 다른 세계 하나가 남는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 드문드문 보여주고 있는, 그래서 성취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이는 B급 정서일 것이다. 어딘가 모자란 듯, 과한 듯, 우스운 듯 여기저기 뿌려 놓았던 B급 정서들은 <기묘한 가족>이 강조하는 ‘상업’영화에서의 새로움의 방향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충청도라는 지역이 주는 특징들, 그러니까 명확하지 않은 말로 눙치고 느리면서도 궁시렁대면서도 할 말은 하는 인물들, 갑작스레 등장하는 썡뚱맞은 음악들, 좀비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황당한 대처, 노인들의 갑작스런 회춘이 줄 수 있는 유쾌함 등. 이 특징들은 <기묘한 가족>이 ‘폭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었다.

그러나 <기묘한 가족>은 이 정서들을 뿌려놓기만 할 뿐 그 이상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이는 앞서 말한 바 있는 ‘가족의 욕심’과 ‘좀비’를 ‘가족애’라는 이야기로 쉽게 봉합하려는 데에서 기인한다.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과 세상이 실제로 좋아지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사적으로 순진한 결말이 위로나 정화라는 말로 포장되는 것이 아닌지 늘 의심스럽다. 깔끔한 이야기의 마무리 사이로, 흥미로울 수 있는 영화적 모든 상황들은 고스란히 새어나간다. 현재의 영화들에서 정작 좀비의 특징은 그리 한국영화가 상정하고 있는 새로움은 무엇인지, 그것에 도달하려는 방법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늘 묻고 싶다.

<기묘한 가족>(2019)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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