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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로 게임이 된 ‘한국형 오컬트’ - <사바하>
[정지혜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로 게임이 된 ‘한국형 오컬트’ - <사바하>
  • 정지혜(영화평론가)
  • 승인 2019.02.25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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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는 <검은 사제들>(2015)로 ‘한국형 오컬트’ 장르 영화를 선보인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이다. 이번에는 고대불교를 배경으로 한 ‘토종형 오컬트’ 영화다. 명동의 뒷골목에서 악마의 숙주가 된 소녀를 구마하는 신부의 이야기를 들려준 <검은 사제들>의 감독 장재현이 이번에는 신흥종교집단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물론 ‘장르가 강동원’ 마법 같은 것은 없다.

 

이정재가 분한 박 목사는 그 진의가 선하고 성스러운 것인지 편협하고 세속적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종교문제연구소를 운영하며 신흥 사이비 종교의 일탈, 범죄를 추적하다가 태백지역의 신흥종교 ‘사슴동산’을 만나게 된다. 그는 외견상 종교를 수호하는 선교자이지만 실상은 연구소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 싶은 직업인일 뿐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내는 대단한 이론이 있을 것 같지만 진정성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박 목사의 역할은 관객을 이야기 입구로 유인하고 조각조각 나눠진 비밀들을 꿰어나가는 것이다.

영화는 구성상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신흥 종교의 범죄를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고 추적하는 목사(와 그의 조수)가 비밀 결사대의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퇴마사가 악의 존재를 맞닥트리는 것이 아니라 박 목사가 사이비의 종교의 범죄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박 목사는 기적과 악의 존재를 느끼거나 믿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합리와 이성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 지성과 권위가 있지만 약간은 대중을 기만하는 사람이다. 이런 인물이 극을 끌고 가다 보니 관객은 영화의 심리스릴러, 오컬트 장르 특유의 악마적 사인에 대한 몰입이 어려워진다. 자연스럽게 영화는 오컬트보다는 범죄 스릴러의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국형’이라는 미로

종교를 다룬다는 시한폭탄

장르란 뒤섞이기 마련인 것인데 이 영화에서 범죄 스릴러 장르는 왜 오컬트 장르와 부딪치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뉴스에서 이와 비슷한 살해, 집단 자살 등의 불행한 이야기를 여러 번 목격했다. ‘사이비 종교’의 범죄에 대한 추적이 주요 플롯이고 이 사이비 종교를 범죄의 관점에서 보자면 죄와 악의 답은 정해져 있고 동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때 이 영화에 남은 오컬트의 동력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영화에서 오컬트적 요소는 절반 이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에 새로움이 있다. 장르는 하나의 미로다. 비슷한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헤쳐나간 이야기의 길을 유사히 따라가면서 전혀 다른 출구 전략을 세워야한다. 출구는 정해져있지만 출구가 드러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장르에 MSG를 뿌리는 강동원은 없지만 악마와 한배에서 태어난 소녀가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긴장감, 그녀에 다가서는 탈색머리를 한 수호신이 있다.

상업영화에서 종교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영화는 종교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종교의 실체를 펼쳐가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는 미로를 빠져나가는 똑똑함이 있다. 지난 영화에서 현대 가톨릭이 퇴마를 부정하듯이 현대의 선불교는 악의 존재를 부정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강원도 지역의 신흥 종교 ‘사슴동산’은 민족종교와 고대불교, 밀교 등이 뒤섞여있다. 사슴동산의 교주는 근현대에 부흥했던 민족종교의 교주나 차경석 같은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검은 사제들>이 우리에게 올 때 그것은 낯선 ‘오컬트’ 장르라기보다는 ‘신부 옷을 입은 순결한 신입 구마사제의 신비한 아우라’의 장르였다. 이것은 새로운 장르를 헤쳐나가는 데에 대한 영화의 전략이다. <사바하>에서 이 부분을 <곡성>을 떠오르게 하는 수수께끼로나 제작사 ‘외유내강’의 범죄영화로 삼은 것 같지만 그것이 <사바하>의 핵심은 아니다. 영화 <사바하>의 연쇄 살인범은 우리 안의 비밀과 연결된다. 그 리얼리티가 실은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누가 연쇄 살인범인지 찾으실 수 있겠어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숫자, 116의 비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사바하, 사파하는 만트라 뒤에 붙이는 말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주문이다. 기독교식으로 보자면 ‘아멘’에 가깝다. 무언가를 바란다는 희망과 기대, 혹은 욕망의 양면적 속성이 영화의 전반에 전개된다. 도시의 주인공이 사건의 정체를 찾아 지방의 낙후된 도심을 찾아간다. 우리는 아직 이 신흥종교의 정체를 모르지만 낙후된 도시는 의례 공포심을 키운다. 한때는 기대와 기회가 있었으나 이제는 낙후된 도시에 대한 공포,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시선은 우리가 이 고조되는 긴장감을 느낄 때 목격하는 또 다른 공포다. 이 ‘한국형’ 오컬트의 세계에서 낙후된 도시의 신흥종교는 미개함을 전제로 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 미개함은 숨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특정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이 실종, 사망하는 것은 90년생 여자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116은 1990년생 백말띠의 남녀 성비의 숫자다. 여자 100명당 남자 116명인 기형의 출생 비율이다. 이유는 알다시피 백말띠 여아에 대한 미신의 작용이고 순화해서 여아감별낙태, 혹은 젠더사이드(성 학살)의 결과다.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미신, 아들을 가지고 싶은 순진한 희망과 기대의 사바하가 116을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소녀가 좀비처럼 죽지 않는 노인을 끝낸다. 영화의 카타르시스가 현실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사바하’

 

 

글·정지혜

영화평론가. SIDFF 프로그래머. 아티스트그룹 ‘맨션나인’이사로 아티스트와 함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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