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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미세먼지가 무거운 봄날이면 조금은 그리운 것들
[안치용의 프롬나드] 미세먼지가 무거운 봄날이면 조금은 그리운 것들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9.03.03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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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자주 문자를 보낸다. 조금 날카로운 편인 문자 수신음이 주변에서 동시에 올리기 때문에 환경부 문자는 열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좋은 소식은 아니다. 미세먼지는 나의 기관지보다는 나의 의식에 작동한다. 멀쩡하던 목이 환경부 문자를 받은 뒤에 간질간질해진다. 뉴스까지 찾아보면 목 상태가 더 심해진다.

 

삼한사미’(3일 춥고 4일은 미세먼지)였다는 겨울이 끝나도 사미는 여전하다. 서울엔 사흘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다. 다행스럽게도 다행히 할 일이 많아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 PC 모니터로 보여주는 뿌연 서울 하늘의 사진만으로 충분하다. 가야 할 곳을 가지 않고 정작 PC 앞에 앉아선 미세먼지니 한유총이니 김정은이니 하는 보지 않아도 무방할 세상사를 기웃거린다. 써야 할 글을 뒤로한 채 한가롭게 미세먼지 이야기를 쓴다. 쓰는 행위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늘 아침 산책 당번은 내가 아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일해서 살짝 늦게까지 누워있는 침대에 개 한 마리가 풀쩍 뛰어오른다. 베개를 같이 베고 등을 내 몸에 댄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하는 걸까. 개의 몸에 손을 얹어 개털을 쓰다듬는다. 짐승의 털이 주는 위로. 동시에 묻어나는 아침산책에서 묻혀온 미세먼지 냄새. 몽골의 황량한 사막과 중국 해안 공장지대의 삭막함이 녀석의 온기와 함께 묻어난다. 지구온난화로 위아래로 출렁인다는 북극 제트기류의 쾌속도.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예정해 놓은 알람이 올리기 전이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마신다. 어린 시절 칸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은 잘 몰랐으니 사상에 대한 것은 아니었고, 시계처럼 정확하다는 칸트의 산책에 대해서였다. 지금은 칸트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산책에 관해서라면, 칸트처럼 산다면 나도 가능하지 싶다. 많지 않은 나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시간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맞추는 건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즐기는 건, 서서히 잊어간다. 목을 간질이는 미세먼지처럼 귀를 간질이는 노라 존스의 노래처럼 점점 잦아든다.

 

이즈음엔 봄에 관한 시를 떠올려야 하는데,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관한 시를 떠올려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며 그저 세월을 흘려보낸다. 주말에도 아들은 집을 나선다. 어제 밤늦게 돌아온 아들이, 턱에 황사마스크를 건 채 말한다. “아침에 제가 나갈 때 그 모습 그대로 PC 앞에 아버지가 앉아 있네요.” 잠옷 차림에 감지 않은 머리, 손을 자판에 올려놓았고 옆엔 종이뭉치. 차라리 게임에 미쳐 보낸 시간이었으면 더 우아했을까. 오늘도 같은 모습으로 PC 앞에 앉아 있고, 아들은 어디론가 나갔다. 한국의 청소년은 정말 바쁘다. 밤에 아들은 미세먼지를 뒤집어쓴 채 귀가할 것이고, 나도 한 번은 개들을 데리고 미세먼지를 확인하러 공원에 가야 한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개들은 맨 코로. 아침에 내 침대에 무단 침입한 그놈과는 다른 그중 한 놈은 책상 밑 내 발 위에 있다. 내 오른발 위에 턱을 괴고 왼발은 무성한 털로 덮은 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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