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상징과 반전으로 가득 찬 권력의 초상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상징과 반전으로 가득 찬 권력의 초상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05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세 여자와 권력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2018)에서 앤 여왕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먼이 차지했다. 이 영화는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와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이 영국의 앤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 2005)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레이첼 와이즈와 <라라 랜드>(La La Land, 2016)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엠마 스톤의 연기 대결을 보러 간 관객은 올리비아 콜먼의 연기에 감동을 받으며 극장 문을 나서게 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여왕을 비롯한 세 여자와 권력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2. 사라 제닝스와 사격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사라 제닝스 공작부인은 여성의 정치적 자아의 발현과 좌절을 보여준다. 사라는 앤 여왕의 연인, 군대 책임자인 말버러 경의 아내, 고돌핀 여당 총리의 정치 동료로서 권력의 핵심에 서있다. 그녀는 영국의 국력이 증대된다는 점에서 참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며, 그녀의 이러한 전쟁관, 인생관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사격이다. 사라는 자신의 사촌이자 하녀인 애비게일에서 사격을 가르쳐 주면서 전쟁터의 승리와 궁정에서의 권력의 역학관계를 연결시킨다. 사라는 애비게일에게 사격을 가르쳐주며, 모든 일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총알이 있든지 아니면 없든지 조심해야 하고 너무 많은 비극이 일어난다며 경고한다. 하지만, 사라는 자신을 모방한 애비게일의 계략에 의해서 여왕의 사랑을 잃고,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새기고, 정치적 권력에서 추방된다.

 

사격 장면은 사라와 애비게일의 권력 역학관계의 변화 과정을 암시한다. 처음에 허공에 총을 쏘던 애비게일은 ‘모든 일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라의 조언에 따라 한 발을 명중시킨다. 애비게일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라를 주의 깊게 보면서 그녀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애비게일이 여왕과 사라의 관계를 암시하며 “가장 큰 비밀”이라는 말을 하자, 사라가 애비게일에게 총을 겨누면서 위협하자 애비게일이 겁을 먹는다. 애비게일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사라와 같은 권모술수의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마지막으로 애비게일이 완벽한 사격 솜씨를 보이고, 그 죽은 새의 피가 사라의 얼굴에 튀기고, 여왕이 애비게일을 호출한다. 이로써 사격과 앤 여왕과의 관계에서 사라와 애비게일의 위치가 뒤바뀌었음을 암시한다. 이때 애비게일/여왕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영상 장면과 애비게일/사라의 사격 총소리가 결합하는 영상/사운드의 불일치를 통해 애비게일의 권력의 상승과 사라의 권력의 하강을 동시에 보여준다.

 

 

 

3. 애비게일 힐과 밀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애비게일 힐은 몰락한 귀족의 생존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애비게일은 어려서 귀족인 아버지의 도박빚으로 팔려가 몸을 팔며 살아가던 중 사촌인 사라의 하녀로 궁정에 들어가게 된다. 애비게일은 귀족으로서의 본연의 위상을 확인하는 장소인 도서관에 책을 읽다가 뜻밖에 사라와 여왕의 밀회를 목격하게 되면서 권력으로의 지름길을 알게 된다. 권력의 길에서 도서관은 권력을 얻기 위한 밀회의 공간이며, 복도는 권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암투의 공간이며, 여왕의 침실은 총애를 받은 소수의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권력의 밀실이다. 애비게일은 도서관, 복도, 침실로 나아가며, 여왕의 연인이 되는 사적 관계를 통해 다시 귀족이 되는 공적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도서관의 비밀 문을 통해 어두운 복도를 거쳐야만 앤 여왕의 침실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왕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어두운 복도처럼 자신의 속마음과 욕망을 은폐하고 거짓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휘어진 공간과 클로즈업은 권력에 대한 인물의 욕망을 드러낸다. 카메라는 궁정의 화려하고 웅장한 공간을 휘어지고 왜곡된 공간을 표현한다. 궁정은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가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 하며 모략, 살인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공간이다. 도서실에서 사라와 여왕의 키스와 애무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 장면, 복도에서 사라와 여왕의 공고한 관계를 보며 불안해하는 장면, 사라에게 독약이 든 차를 건네주고는 초조한 긴장상태에서 지켜보는 장면에서 애비게일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보여준다. 이런 클로즈업을 통해 자신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떨어뜨려야 하는 권력의 역학관계의 인물의 고뇌를 표현한다.

 

 

 

 

4. 앤 여왕과 토끼

세 여자에게 여왕과 권력의 의미는 각각 다르다. 사라에게 여왕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대변하는 군주이며, 애비게일에게 여왕은 위로를 통해 권력을 나눠가지는 파트너이며, 여왕에게 여왕은 외로운 자신이 권력을 얻기 위한 자에게 갈구하는 사랑이다. 가학적이며 남성적인 사라와 피학적이며 여성적인 여왕은 여성 동성애 관계이면서, 동시에 프리모 씨와 몰리 씨라고 부르고 진흙으로 수염과 안경을 그리는 놀이를 통해 남성 동성애 관계를 보여준다. 애비게일의 부드러운 말투와 자상한 행동은 열등감, 우울증에 빠진 여왕에게 위로를 주면서 상처받은 여성들의 공감을 보여준다. 여왕은 절대 권력자이지만 17명의 아이들을 유산하고 17마리의 토끼를 키우는 외로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극과 극을 보여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히스테릭하고 변덕스러운 앤 여왕의 연약한 인간적 내면이 드러나면서 관객이 여왕의 고통에 공감하게 된다.

 

클로즈업과 미장센을 통해 앤 여왕을 둘러싼 사랑과 권력의 관계를 보여준다. 사라가 앤 여왕에게 통풍 치료를 위해서 입히는 기구는 마치 갑옷이나 족쇄와 같은 형상화로 사라의 전쟁관, 정치관을 보여준다. 사라가 대령과 춤을 추는 장면에서 여왕이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은 점점 다가가는 카메라로 여왕의 글썽이는 눈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면서 외로운 권력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애비게일이 여왕에게 좋은 사람이며 아름다움이 있어서 남자라면 구애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광각렌즈로 심하게 휘어진 공간은 권력을 위해 왜곡된 인간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드러낸다. 결혼식 첫날밤에 성행위를 하자며 조르는 마샴 대령의 요구에 그의 성기를 잡고 기계적으로 애무하며 사라의 신변을 신경 쓰는 애비게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면서 마샴 대령의 모습을 포커스 아웃으로 처리한다. 여왕은 자신의 잃어버린 아이 17명을 상징하는 토끼 17마리와 성심성의껏 놀아주는 애비게일을 총애하기 시작하지만, 낮잠에서 깨어나 발로 토끼를 누르면서 미소짓는 애비게일을 목격하는 장면에서 여왕의 상처 받은 슬픈 눈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5. 고전 시대극 드라마의 장르 패러디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에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연출력을 과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도 고전 시대극의 장르를 패러디하면서 블랙코미디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여성들은 권력과 사랑의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반면, 남성들은 가발, 진한 화장, 오리 싸움으로 희화화시킴으로써 영국 정치권력을 풍자한다. 감독의 연출력은 사라, 애비게일, 앤 여왕으로 이어지면서 세 여성의 감정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감정이입을 시키는 한편, 정확한 시대적 고증과 충돌하지만 창조적인 패러디로 권력의 초상을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