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소통불능의 말걸기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vs. 지나이다(×)
안나 카레니나(×) vs. 브론스키
개츠비(×) vs. 데이지
리카르도 몰티니 vs. 에밀리아(×)
에구치(67) vs. 미녀(×)
콜랭 vs. 클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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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투르게네프) :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랑하기에 .. 완전한 사랑?
<안나 카레니나> : 스스로 죽음을 결행함으로써 사랑 앞에 완전해지다. 사랑 말고는 무고한 여인. 신탁에 의한 비극이 아니라, 자발적 행위의 비극 ... 근대적 사랑의 주체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 자본주의(○). 사랑과 욕망의 혼융
<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 자본주의(▲).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대화의 테이블에 억지로 앉아서 다른 언어로 말걸기. 젊은 남자/발기한 남근의 무용성
<잠자는 미녀> 가와바타 야스나리 : 자본주의(△). 늙은남자/발기하지 않은 ‘남근’의 유용성?
에구치의 남근은 발기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삽입하지 않는 발기, 또는 ‘처녀성’ 앞에서 후퇴하는 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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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Entfremdung’, ‘사물화Verdinglichung’가 각각 ‘실존을 위협하는 황폐화’와 ‘행위 불능’을 초래할 때 유대와 인간화라는 고전주의 이상이 우리에게 사랑을 복원해 줄까. 혹은 유대와 인간화라는 고전주의 이상이 우리에게 사랑을 복원해 줄 수 있다면, ‘소외Entfremdung’와 ‘사물화Verdinglichung’를 넘어서 ‘실존을 위협하는 황폐화’와 ‘행위 불능’을 탈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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