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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 탈주(脫走)는 탈선(脫線)이 되었는가? ‘마담B’에 대한 <뷰티풀 데이즈>의 몰이해에 대해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 탈주(脫走)는 탈선(脫線)이 되었는가? ‘마담B’에 대한 <뷰티풀 데이즈>의 몰이해에 대해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1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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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여인이 있다. 임시로 붙였을 호칭을 제목으로 한 <마담B>의 주인공이 그렇다. 마담B는 돈을 벌기 위해 압록강을 넘었고,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중국 시골의 한 남자에게 팔려가 결혼한다. 북에 두고 온 남편과 아들들에게 돈을 벌어 오겠노라고 했던 약속은 점점 미뤄진다.

떠올릴 수 있는 그의 이미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 둘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은 생각보다 뻔한 것들을 향할 것이다. ‘탈북’‘여성’, ‘팔려간’ ‘여성’, 자식과 남편을 ‘두고’ 온 ‘부인’이자 ‘어머니’, 맨몸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여성’. 이를 통해 엮어낼 수 있는 이야기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홀로 고향을 떠나와 외롭고 힘들게 견디며, 팔려간 곳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우울함에 갇힌 가녀린 여성.

 

여기에는 우리가 위험 속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을 얼마나 쉽게 박제화 시키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 제목 ‘마담B’를 다시 한 번 곱씹었을 때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마담 B가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닌 ‘감출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마담B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중국으로 데려오는 브로커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미 중국으로 올 수 있는 방법, 루트, 그리고 사소하게는 택시를 어떻게 타고 택시비를 언제 주어야 돈을 떼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괄괄한 목소리로 지시할 수 있는 이다. 또 그는 자신이 약속했던 것이 미뤄지자 남편과 아들 둘을 남한에 보내는 것으로 빚처럼 짊어진 마음을 갚는다. 중국인 남편과 그의 시부모는 누구보다 마담B를 아끼며, 마담B가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자식들을 잘 가르치며 자리 잡고 중국인 남편을 한국으로 불러 함께 살기 위해서이다.

<마담B>는 우리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완벽하게 벗어나는 여인을 중심에 둔다. 자신을 부끄러워 숨기는 것이 아니라 탈북을 돕고, 가족의 탈북을 주도했으며, 자신 역시 라오스와 태국의 수용소까지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기에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의 삶을 제멋대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접 대면하게 한다. 예상과 현실의 간극, 여기에 <마담B>의 성취가 놓인다. 그러나 <뷰티풀 데이즈>와 함께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의 성취가 다큐멘터리 <마담B>의 것인지, 아니면 ‘마담B의 삶’ 자체의 역동성 때문인지 문득 의심하게 된다. 당겨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후자라 단언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누고, 쉴 새 없이 떠들며 농담을 하는, 생기 넘치는 일상을 보내는 것은 오히려 팔려갔다는 중국에서의 생활이었다. 마담B가 남한으로 넘어와 온 가족이 모였을 때, 그는 늘 주방에 있으며 표정은 굳어 있고 TV만이 떠드는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한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인터뷰어에게 말한다. 자신의 남편까지 남한으로 넘어오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으며, 그와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마담B를 제외한, 특히 그의 남편은 어떠한 생기도 없이 TV 앞에 앉아 그를 기다리며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마담B가 중국인 남편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가족을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압박을 내미칠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마담B는 오히려 가족을 만나면서 생기를 잃고 자신의 삶을 잃는다. 그는 중국에서 위험한 일을 하며 자신의 생존과 생계를 위해 싸웠지만 적어도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 이들은 그저 자신의 ‘엄마’가 곁에 있길 바라고, ‘아내’가 우리를 거두어줬으면 좋겠다는 책임감 속에 던져진다. 남한에 와서 이렇게 살아야 할 줄 몰랐고, 자신의 계획대로 중국에 있는 남편을 데리고 올 수 없게 될지도 몰랐던 당혹감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중국으로 가고 싶다는, 가야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자신의 의사와 삶이 중요했던 그곳에 마담B가 있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바로 이 <마담B>를 초안으로 한 작품이다. <마담B>의 감독은 두 작품이 한 쌍처럼, 혹은 한 작품처럼 서로를 보완하는 작품이라 이야기하면서 다큐에서 풀지 못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뷰티풀 데이즈>를 내놓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뷰티풀 데이즈>에선 마담B의 어떠한 면모도 놀라울 정도로 남아 있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없앴다는 느낌이 들만큼 완벽하게 제거되어 있다. <뷰티풀 데이즈>의 주인공 역할이 ‘젠첸엄마(이나영 분)’로 명시되어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듯, 이 작품은 가족을 두고 와 수난을 겪는 여성에 대한 죄책감으로 작품 전체를 끌고 있는 영화이다.

앞서, 한 탈북여성의 상황을 통해 쉽게 떠올렸을 수 있으리란 뻔하고도 식상한 모든 설정은 <뷰티풀 데이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팔려가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포주, 아들과 병든 남편에 대한 죄책감, 남성을 위로하는 여성,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까지 해야 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아들 등. 이 모든 서사는 <뷰티풀 데이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선족 여성으로 변화한 주인공의 신분은 마담B의 삶 모든 것과 거리를 두었다.

 

아들에게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었으면서도, 끊임없이 아들의 무시를 마주했으면서도 눈물 흘리는 아들을 안아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예의 그 ‘엄마’의 역할은, 아버지가 오래 못산다는 말에 불안에 떨며 살았던 곳으로 되돌아가 남편을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아내’의 역할은 ‘젠첸엄마’에게 혹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감내를 가족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린다. 이 여인이 끼어들 틈 없는 가족을, 이 여인은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하는 가족을 왜 홀로 지켜야만 하는 것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뷰티풀 데이즈>는 그 초안으로 삼았던 <마담B>를 오히려 떨쳐낸다. 이렇게 마담B의 탈주는 <뷰티풀 데이즈>에서의 가녀린 여인의 탈선으로, 그리고 이해받아야 할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완벽한 퇴보는 고난 앞에 놓인 여성에 대한 빈곤한 상상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담B>를 초안으로 했다는 <뷰티풀 데이즈>의 변화는 경계에 서 있는 여성들이 견뎌내야 할 것이라 믿는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강요로까지 보인다. 왜 그의 삶 속에 자신만을 위한 행복이, 삶이, 언어가, 표정이, 하루하루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해 오히려 묻고 싶다. 경계에 놓인 삶이 그 밖으로 넘어갈 수도, 안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이미 훌쩍 넘어서버린 이들까지 붙잡아 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다지도 잔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담B>(2016, 개봉 2018)

<뷰티풀 데이즈>(2017, 개봉 2018)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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