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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간의 마지막 구원처 :<바그다드 카페>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간의 마지막 구원처 :<바그다드 카페>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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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너를 부르는 소리

찻 장면은 남편으로부터 내쳐진 아내 야스민이 황량한 황야 한 가운데서 끝없는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가는 장면이다. 이때 나오는 주제가 ‘너를 부른다(Calling You)’는 가사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고적한 노래이다. 역시 남편과 불화를 통해 혼자 쓸쓸하게 일을 하는 브렌다가 한쪽에 있다. 이 둘이 서로를 부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노래다. 그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표면적으로 이들이 만나야만 할 어떤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만날 뿐 아니라 천생연분 연인처럼 찰떡궁합이다. 둘이 남녀였다면 같이 살림을 차릴만 하다.

이성간의 사랑이 동성간의 사랑 보다 못하다면 오히려 동성간의 사랑이 더 애틋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다. 그렇다고 여자 동성애를 다룬 영화는 아니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를 아껴주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우정 정도로 봐주면 된다. 이 영화는 남성 가부장 사회에서 외로운 여자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썩은 웅덩이 같은 도시에서 탈출

황야 한 가운데 덜렁 주유소와 숙박업을 하는 바그다드 카페는 현대 사회의 단절되고 소외된 썩은 웅덩이 같은 곳이다. 여기에 들어와 세들어 사는 타투업자 여자는 손님이 없어 고적하니까 한가하게 유럽 소설을 읽는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이 책은 영화의 분위기를 잘 설명하는 문학적 인용이다.

 

19 세기말 베니스 해변가에서 페스트가 창궐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한 노교수가 젊은 청년의 미모에 매료되어 계속 그를 훔쳐보며 연모하다가 페스트에 걸려 해변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슬픈 내용이다. 슬플 뿐만 아니라 부조리하기 까지 하다. 대체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젊음과 늙음의 대비, 늙어서 젊음을 동경하지만 그것을 이룰 순 없고 그 꿈마저 냉정하게 깨버리듯 그는 허무하게 죽고 만다는 것.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이 영화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 퇴페적이면서 세기말적인 종말론적 분위기를 이 황량한 미국에 비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바그다드 카페의 밀폐된 분위기를 썩어들어가 결국 파멸되고 마는 몸과 정신으로 비유한 것이다. 무책임한 남편과 제멋 대로인 자식들, 육아, 비즈니스에 치이고 차인 브렌다의 지친 정신과 몸을 소설이 비유한다. 영화는 소설에서만 머물지 않고 희망과 긍정적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독일여자 야스민의 등장은 운명적으로 전개된다. 그것이 주제가 ‘콜링 유’의 미덕이다. 야스민은 둔중한 여행가방을 끌며 바그다드 카페의 장기 투숙을 신청한다. 딱딱한 껍데기에 둘러싸여 비뚤어졌던 카페는 활기를 되찿기 시작한다. 점차 인기 명소가 되면서 브렌다는 삶의 희망을 말하게 되고 더 이상 우울하지 않게 된다.

 

여자 속은 여자가 더 잘 안다

브렌다 남편은 브렌다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집을 나온다. 남편은 간간이 등장하여 망원경으로 브렌다를 관찰한다. 영화속에서 남편은 브렌다에게 있어 무력한 존재로 나온다. 그는 아내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한다. 육아, 가사, 경제, 모든 면에서 브렌다가 처한 어려움을 남편은 어쩌지 못한다. 그런데 브렌다의 고민을 해결하는 사람으로 나타난 존재가 야스민이다.

야스민과 브렌다는 그런 점에서 한쌍의 부부같기도 하다. 야스민이 브렌다의 부재한 남편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처음엔 야스민을 오해했지만 브렌다는 점점 야스민을 의지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야스민은 마술을 통해 고객을 불러 모으게 되고 카페는 유명해지며 돈도 많이 벌게 된다. 야스민은 경제활동까지 도와서 남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게다가 브렌다의 딸과 아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준다. 한 마디로 이 썩은 웅덩이를 완전히 개조하여 빛과 희망이 넘쳐나는 낙원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이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라는 장소 개념을 빌어 다양한 인간군상을 나름 연출하면서 현대 사회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우화적 구성 영화라 볼 수 있다. 70년대에 유행했던 일종의 전형적인 틈입자 서사이다. 외부에서 틈입자가 가족 구성 내부에 침투하고 썩어있는 내부를 대 수술하여 새로운 세계로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다. 그 원형은 예수 일생이다. 예수는 타락한 세상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깨우친 후 세상을 뜬 것이다.

이런 틈입자 이야기가 주는 주제는 예수 일생이 그렇듯이 타락한 세상은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그 구세주를 기다리며 살아가면 된다. 이 영화에서 구세주는 야스민이다. 그녀는 난데 없이 예수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기적을 행사하듯이 마술을 구사한다. 그녀는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렀듯이 브렌다를 위시한 모든 사람들이 야스민의 매력에 매료된다.

바그다드 카페는 타락한 도시 예루살렘처럼 답답하고 희망이 없는 장소 였다. 그런데 야스민이 온 이후로 사람들을 희망에 넘쳐나고 매일 외부인들이 북적 거리는 인기장소로 변해갔다. 야스민은 현대판 예수, 구원자인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들을 살아나게 한 원동력이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들의 음악, 미스터 콕스의 미술, 야스민의 마술 등이 그것이다. 예술이 없으면 이 세상은 삭막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글·정재형
동국대 연극영화과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영화이해의 길잡이』, 『영화영상스토리텔링100』 등의 역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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