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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칼럼] 좋은 것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다
[차기태의 경제칼럼] 좋은 것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다
  • 차기태
  • 승인 2019.03.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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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난 1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신세계나 이마트, 효성 등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그럼에도 회사측의 선임안건은 그대로 통과됐다. 지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이다. 삼성전자(20일)와 현대차(22일), 한진칼(29일)을 비롯해 국내 주요 재벌기업의 주총이 잇따라 열린다. 기업마다 사외이사 선임이나 배당 등의 사안을 둘러싸고 뜨거운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특히 한진칼의 주총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연임 여부를 두고 대결이 뜨거울 전망이다. 
 
더욱이 올해 주총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기로 한 국민연금 외에도 ‘강성부펀드’라고 칭해지는 KCGI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밖에도 국내외 여러 기관투자자와 사모펀드 및 서스틴베스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등 의결권 자문기관 등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 모두 저마다 이번 주총을 앞두고 소신을 내놓고 있다. 
 
덕분에 올해 주주총회는 여느해와는 사뭇 다르다. 전례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활기도 넘친다. 행동주의 펀드가 기세를 올리면서 자본시장에서는 새로운 물결도 일고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밸류시스템자산운용과 VIP자산운용은 지난달 행동주의 펀드를 각각 설정했다. 각 펀드의 목표자금 800억원도 이미 채워졌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직 태동단계에 있는 행동주의 펀드가 앞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 대목이다.
 
더불어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해 사회책임투자에 충실한 기업으로 구성하는 SRI펀드는 '착한 펀드'로 불린다. 이런 펀드가 새삼 투자자들의 관심과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신탁운용,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 자산운용회사들이 관련 펀드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번역 출간됐을 때 독자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던 경우가 연상된다. 한국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과 갈망이 얼마나 간절한지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최근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펀드와 스튜어드십코드나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투자자와 국민들이 한국 재벌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영구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총수 일가의 무책임한 전횡과 천민적인 지배구조에 사로잡혀 있는 한 주주행동주의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임을 예고한다. 시대의 장엄한 흐름이다. 한강물이 서해를 향해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자본시장의 새로운 흐름도 억제할 수 없다.  
 
따라서 재벌들은 이제 이런 흐름에 적응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흐름이 큰 홍수를 일으키기 전에 스스로 체질을 바꿔가야 한다. 그것이 재벌 자신과 한국의 경제를 위해 유익한 길이다. 스스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강조했듯이, 좋은 것을 얻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지배구조를 스스로 개선하고 기업문화를 현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일부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SK㈜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직을 겸직하지 않고 분리하기로 했다. 이사회 의장에는 사외이사인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을 내정했다. 염재호 전 총장은 최태원 회장과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니, 완전한 독립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대표이사의 이사회 의장 겸직을 끝내기로 한 것 자체는 일단 평가해 주고 싶다. 
 
신세계그룹과 CJ그룹, 현대차, SK, 포스코 등 13개 재벌의 21개 상장사는 전자투표제를 새로 도입했다. 최근 자본시장과 국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한진그룹도 일단 작은 몸짓을 보이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칼, ㈜한진, 대한항공 등 그룹 내 3개 계열사 이외의 계열사 임원직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일단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외형적인 변화에 그쳐서는 안된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몸을 얹고 적극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이나 행동주의 펀드와 공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이들 투자자와 다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함께 의논하면서 바람직한 발전방안을 찾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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