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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유언비어’ 날조방식
우파의 ‘유언비어’ 날조방식
  •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3.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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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선거기간이면 ‘극우’의 돌풍이 휘몰아쳤지만, 이는 좌우를 불문하고 자유주의를 표방한 후보들에게 확실한 승리의 보증수표가 돼줬다. 용인하거나 상대할 가치도 없고, 차마 견뎌내기도 힘든 극우 정당의 정치인과 결선에서 맞붙게 된 온건 우파 후보라면 누구든 상대를 가볍게 꺾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장마리 르펜(극우)은 1차 투표에서 16.8%의 표를 얻었으나, 2차 투표에서 17.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1차 투표에서 19.8%를 얻었던 경쟁 후보 자크 시라크(중도 우파)는 2차에서는 무려 82.2%의 표를 쓸어 담았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 2017년 대선에도 같은 구도가 연출됐다. 비록 2002년 대선처럼 압도적인 표 차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최근 우파 자유주의 진영은 과거 극우진영에 대응하는 데 통했던 전략을 좌파진영에 그대로 적용하려 하고 있다. 좌파진영이 득세하는 상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가치관의 벽’을 쌓아 올리고, 흑색선전과 유언비어를 날포해 세인들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식이다. 그 어느 진영보다 강력한 위력을 행사하는 자유주의 정치인들을 평소 불쾌하게 여기더라도 정치권의 난전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세간에 떠도는 뜬소문에 쉽게 편승하고 만다.

공교롭게도 좌파진영에 반유대주의자의 프레임을 씌우는 중상모략이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명성에 흠집을 낼 정파의 주요 공격대상이 정해지면, 그다음엔 해당인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계정에서 설익고 극단적이거나 졸렬해 보이는 발언을 추려내기만 하면 된다(참고로 영국 노동당의 경우 팔로워가 무려 50만 명에 이른다). 나머지 뒷일은 모두 언론의 몫이다. 

반유대주의자라는 허상을 덧씌워 경쟁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공격대상으로 지목된 특정인이 소수의 거대언론과 은행의 과두제적 집단주의 체제를 지적한다면, 그의 발언은 곧 “민주주의와 언론, 그리고 금융이 모두 유대인의 손아귀에 있다”와 같은 내용으로 변질, 왜곡돼 구설에 오르게 된다.

그럼 지금부터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프랑스 한림원(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 알랭 핑켈크로트는 “만약 제레미 코빈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에 오른다면, 그는 히틀러 이후 유럽 국가를 통치하는 첫 번째 반유대주의자가 되는 셈”이라며 짐짓 경고하듯 말했다.(1) 미국의 행보도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늘날의 민주당은 반(反)이스라엘 정당, 반유대인 정당이다”라고 말하며 “민주당은 유대인을 증오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프랑스 지식인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언론인이자 하원의원인 프랑수아 뤼팽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자, 그를 과거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가득 채운 작품 『폐허(Les Décombres)』의 저자인 뤼시앵 르바테, 비시 체제하에서 ‘유대인 문제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자비에 발라, 그리고 프랑스 해방 이후 나치 협력 행위로 총살된 로베르 브라지야크와 같은 인물들에다 빗대기도 했다. 

뭇 언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프랑수아 뤼팽의 글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그렝고와르(Gringoire)> 지에서 인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장을 발견했다면서 억측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꾸며댔다.(2) 반유대인 정서가 흥건했던 <그렝고와르> 지는 1936년 ‘인민전선’ 내각의 한 각료에게 맹렬한 인신공격을 퍼부어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사건으로 유명한 우익 주간지다(1944년 폐간됨).

수많은 유대인이 프랑스와 미국에서 반유대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됐다. 이런 비극을 초래한 반유대주의가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 정부, 지식인들의 날조행위에 이념적 무기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글·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이푸로라 poorora@daum.net
번역위원.

 

(1) 알랭 핑켈크로트,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Ich bin kein Opfer)’, <디 차이트>, 함부르크, 2019년 2월 21일.
(2) 베르나르-앙리 레비, ‘고드윈 법칙의 한계를 뛰어넘어야(Il faut franchir le point Godwin)’, <르 푸앵>, 파리, 2019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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