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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양지의 그녀> ― 첫사랑과의 운명적인 결합과 판타지 로맨스영화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양지의 그녀> ― 첫사랑과의 운명적인 결합과 판타지 로맨스영화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01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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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번의 삶을 사는 고양이

고양이 목숨은 9개여서 고양이는 9번의 인생을 산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빛내는 고양이의 눈빛을 보며 미묘한 느낌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고양이의 신비한 능력을 왠지 믿게 된다. 한 번뿐인 삶을 사는 인간으로서는 부러울 수 있는 지점이다. 드나 베치나의 책 《파란만장 빅토르》는 다양한 삶을 살았던 고양이 빅토르의 9번째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인생은 그냥 ‘나’로 살고 싶다는 빅토르의 대답은 본연의 자신을 찾는다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마키 타카히로 감독은 2017년에 개봉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통해 로맨스영화와 판타지영화를 결합시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선보인 바 있다. 최근 개봉한 타카히로 감독의 <양지의 그녀>(2013)도 첫사랑의 재회와 고양이의 9번의 삶을 통해 로맨스영화와 판타지영화의 혼합장르를 보여주며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 첫사랑과의 운명적인 만남

<양지의 그녀>는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과 운명을 이야기한다. 마오는 과거 공부와 생활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여 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 여학생이었지만, 현재 능력 있는 미인으로 업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는 직장 여성으로 변모한다. 코스케는 과거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그녀에 대한 애정에 당황하지만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그녀를 보호하고자 한다. 하지만 마오로 인해 자신마저 반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해 도망치듯 도쿄로 전학 감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 현재 개인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면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코스케는 마오와 재회하여 첫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고, 그녀의 격려로 직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라이벌인 산도를 따돌리고 마오의 사랑을 쟁취함으로써 사랑과 일에서 모두 상승의 곡선을 보여준다.

 

첫사랑과의 운명적인 재회와 사랑을 시점숏, 오버더숄더숏, 역광으로 표현하고 있다. 15살 반 아이들로부터 왕따와 이지메를 당하는 마오와 그녀를 보호해 주려는 코스케의 미묘한 심리를 시점숏으로 표현하여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25살 능력 있는 직장 여성으로 변모한 마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코스케, 그녀를 사랑하는 동료 산도를 오버더숄더숏으로 잡아내며 삼각관계의 미묘한 기운을 표현한다. 이때 마오의 모습을 역광의 신비한 분위기로 보여줌으로써 코스케의 마음속에 다시 빛나기 시작하는 사랑의 순간을 포착한다.

 

 

3. 과거의 미스터리한 비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가 20살을 기점으로 서로 어긋나는 시간을 살아가는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보여준다면, <양지의 그녀>는 15살 과거와 25살 현재를 교대로 보여주면서 과거의 비밀이 현재의 행복에 서서히 침투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양이를 안고 뛰어가는 어린 코스케, 거리에 나체로 나타나 13살 이전의 기억이 없는 마오, 고양이들을 기르는 언덕 위 허름한 집의 이상한 할머니가 현재의 상큼한 사랑 이야기에 간간히 나오면서 행복한 로맨스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마오의 비밀스러운 과거와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로맨스영화는 어느새 미스터리영화로 장르적 성격이 변해간다.

 

과거의 미스터리한 비밀은 교차편집을 통해 표현된다. 첫 장면에서 고양이를 안고 뛰는 어린 시절의 코스케를 핸드헬드로 보여줌으로써 잔잔한 로맨스영화에서 변주로 작용하는 복선을 보여준다. 나체로 거리를 헤매는 13살의 마오의 뒷모습을 익스트림롱숏으로 잡아내면서 현재의 행복을 뒤흔드는 마오의 과거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준다. 에노시마에서 고양이들을 기르는 은발의 할머니를 형상화할 때 카메라로 그녀의 모습을 부분적인 파편으로 보여주는 정보 지연 전략을 통해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로맨스영화와 미스터리영화의 장르 혼합은 13살 마오의 등장(과거), 15살 마오와의 만남(과거), 25살 마오와의 결혼(현재)라는 세 가지 시간대의 교차편집을 통해 마오의 정체와 과거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4. 마오의 정체에 대한 복선

<양지의 그녀>는 후반부에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는 마오를 보여주면서 비극적 드라마를 예고하다가, 9번의 삶을 살아가는 고양이 이야기를 삽입함으로써 판타지영화로 급선회한다. 정글짐에서 한 번에 뛰어내리는 과거의 마오, 모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마오, 갑자기 사라진 금붕어 브라이언, 베란다에서 떨어진 아이를 구해내는 마오 등 여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복선을 영화 내내 조금씩 보여줌으로써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마오의 정체에 대한 비밀에 대한 복선은 더블링으로 계속 강조된다. 15살 코스케와 마오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정글짐에서 마오가 순식간에 뛰어내려 코스케가 당황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마오가 떨어뜨린 주머니를 산도가 주워 코스케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클로즈업으로 그 주머니에 새겨진 코스케의 이름을 보여줌으로써, 마오가 예전부터 코스케의 물건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또한 마오가 뛰어내려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내 무사히 살려내는 장면에서 놀란 코스케의 표정을 올려다보는 마오의 시점에서 로우앵글로 강조한다.

 

5. 컨벤션에서 벗어난 혼합장르

전체 영화는 세 가지 장르로 구성되며 전혀 다른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는 10년 만에 만난 첫사랑과 다시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 왕따와 이지메, 구원의 기사, 삼각관계라는 로맨스영화의 전형적인 플롯을 보여준다. 중반부는 13살 이전 기억이 없는 마오의 비밀, 갑자기 사라진 금붕어, 희미하게 나타나는 이상한 여인 등 미스터리영화의 특징을 드러낸다. 후반부는 갑자기 찾아온 마오의 원인불명의 병과 정체 등으로 판타지영화적 요소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왕따, 사랑, 병환, 환생 이야기를 혼합장르로 풀어내면서, 로맨스영화의 상투적인 컨벤션을 벗어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연을 맡은 마츠모토 준과 우에노 주리는 둘다 가수이면서 동시에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코스케 역을 맡은 마츠모토 준은 <꽃보다 남자>의 츠카사와 <나는 여동생을 사랑한다>의 요리에서 보여준 까칠한 성격 연기와는 밝으면서도 섬세한 감수성을 웃음과 울음을 결합한 표정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마오 역을 맡은 우에노 주리도 <노마메 칸타빌레>에서 남다른 재능을 가진 독특한 성격의 노다메에서 보여줬던 엉뚱한 매력과 함께 비밀을 간직한 슬픈 미소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작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캐릭터와 <양지의 그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희극과 비극의 교차로를 보여주는 영화의 이야기에 매력을 더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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