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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함께를 위한 절실함, 위르실라 메이에의 <시스터>
[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함께를 위한 절실함, 위르실라 메이에의 <시스터>
  • 손시내(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18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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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관광객들의 가방을 뒤지고 옷과 장갑, 스키를 훔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년은 12살 시몽(케이시 모텟 클레인)이다. 어리숙하거나 서툰 기색 없이 목표로 삼은 스키와 잡다한 물건들을 챙겨 홀로 케이블카를 타는 시몽은 마치 자기만의 요령을 가진 전문가처럼 보인다. 눈부시게 하얀 설산의 풍경 속에 소년의 단호하고도 여유로운 움직임이 새겨진다. 산꼭대기로부터 케이블카로 이어지는 산 아랫자락, 벌판을 지나 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건너 아랫마을까지 내려오면 소년의 집이 나온다. 훔친 스키와 장갑, 고글, 점퍼를 팔고 훔친 음식을 먹는 것이 시몽의 생존방식이다. 부모가 없지만 시몽이 혼자인 건 아니다. 곧 누나 루이(레아 세이두)가 온다. 한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듯한 루이는 시몽이 훔쳐온 옷을 입고 그가 훔쳐온 관광객들의 음식을 나눠먹는다. 퍽 친밀한 것 같다가도 둘 사이에선 미묘한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는 거리인지 가늠해보려는 찰나, 루이는 다시금 데이트 상대의 차를 타고 시몽의 곁을 떠난다.

 

<시스터>는 프랑스의 영화감독 위르실라 메이에가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집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놀라운 데뷔작 <홈>(2008)에 이어 2012년에 내놓은 영화다. 여기엔 물론 크고 안락한 별장을 소유한 채 한가로이 휴양을 즐기는 휴양객들과 산 아래에서 훔친 물건을 팔며 살아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대비되어 드러나는 오늘날의 부와 빈곤의 모습이 있다. 영화엔 단지 시몽뿐 아니라 한 철 리조트에 고용되어 일하는 이들, 리조트의 정면에선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스키장이 아니라 아랫마을 작은 언덕을 놀이터 삼은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다.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몽의 동선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시몽은 리조트를 둘러싼 노동의 현장에 속했다가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훔치며 그곳에서 이탈한다. 도둑질이 발각될 때마다 그는 점차 더 곤란해지고 점차 더 외로워진다.

그럼에도 시몽은 계속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돈을 모은다. 훔친 스키와 물건들을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 리조트의 노동자들에게, 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는 통행인들에게 판다. 영화가 진행되고 시몽과 루이의 관계가 점차 드러남에 따라, 단순히 생존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보이던 시몽의 이 행동이 실은 루이와 함께 하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밝혀진다. 딱히 안정적인 일자리 없이 애인과 놀러 다니고 시몽에게 돈과 음식을 얻어 생활하는 루이는, 가끔씩 좋은 친구처럼 보이긴 해도 책임감이 있는 보호자처럼 느껴지진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시몽이 그런 루이에게 돈을 주고 훔친 스키를 파는 법을 알려주며 보호자처럼 군다. 더구나 루이는 때때로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시몽을 밀어내며 내버려둔 채 훌쩍 떠나기까지 한다. 어느 날 루이가 새로 데려온 남자와 꽤나 다정해보이자 시몽은 그 사이를 질투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비밀을 이야기한다. 루이는 자신의 누나가 아니라 엄마라는 사실을.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성된 관계, 서로에게 의지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관계 속에서도 시몽은 최소한의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 그는 종종 그것을 산 위에서 찾아 헤맨다. 산 아래와 케이블카로 연결된 산 위에는 시몽이 훔쳐야 하는 물건들이, 그러니까 돈이 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내려와 생활을 꾸려나가고 루이와 함께 하려 한다. 동시에 산 위에는 시몽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건 따뜻하고 안락한 가족과 같은 것이다. 그가 어느 날 만나게 되는 크리스틴(질리언 앤더슨)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 휴양중인 부유한 영국 여성이다. 시몽은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이 관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깨어진다. 철없는 어린 엄마와 너무 일찍 고독과 삶의 무게를 알아버린 소년의 이야기 정도로 정리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영화는 그렇게 이들의 삶을 설명하기보다 시몽과 루이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알 수 없는 시선과 미묘한 표정, 뒤엉켜 장난치고 싸우는 몸짓, 다시금 멀어진 둘 사이에 들어선 간격과 여백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들은 그 간격을 채우는 방법도, 서로에게 다치지 않고 다가가는 방법도 알지 못하지만 끝내 그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절실함으로 버티고 존재한다.

 

 

글 : 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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