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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3시간 57초 간의 ‘작별’ <어벤져스:엔드게임>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3시간 57초 간의 ‘작별’ <어벤져스:엔드게임>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24 09:4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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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영화는 인간에게 번복할 수 없는 시간을 요리해주는 셰프가 되었다.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백투더 퓨처>시리즈는 그런 시도의 첫 성공사례이다. 영화 <어벤저스:엔드게임>에서 바로 이 영화를 은근히 자주 언급하는 이유(물론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를 적어도 10편 이상은 언급하지만)는 바로 백투더퓨처 시리즈가 시도한 절묘한 시간의 요리가 루소 형제에게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특히, 내 생각에, <백투더퓨처1>에서 마티(마이클 J. 폭스)와 젊은 시절 그의 아버지가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에피소드 등을 아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존 슬래터리)가 마주하게되는 에피소드로 오마주한 것을 보면 어쩌면 지금까지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하나의 선으로 훌륭하게 엮을 수 있게 해준 영리한 아이디어는 영화<백투더 퓨처>시리즈를 통해 얻게 된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추측컨대 분명 청소년기에 루소 형제(70년생, 71년생)는 이 영화(백투더퓨처는 1985년 개봉)를 감명 깊게 보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시간여행 영화에서 늘 등장하는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만나면 시간이 붕괴된다는 이야기는 빈약한 상상력 탓일 뿐이라며 일축하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의 캡틴 아메리카와 미래의 캡틴 아메리카가 만나게 됐을 때, 미래의 캡틴 아메리카를 로키(톰 히들스톤)가 변신 한 것으로 설정한 장면을 보면 시간여행 영화의 클리쉐를 극복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쯤되면 영화<어벤저스:엔드게임>은 영화<백투더퓨처>시리즈에게 바치는 헌사다.(개인적으로는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런 저런 시간의 혼재가 노출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어벤저스:엔드게임>의 주축이 되는 선은 하나다. 그것은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를 가로 짓는 선이다. 물론 이 선은 생각만큼 간단한 직선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히로인/히어로들의 역학관계가 얽힌 탓에, 겉보기에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어벤져스:엔드게임>은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를 가로 짓는 그 선을 부식시키려 노력한다. <시빌워>에서 등 돌린 그들의 앙금은 여전했으나 우주 생명체의 절반, 아니 자신들의 동료 절반을 잃은 패배감을 복수심으로 이어가 이미 전투능력을 상실한 타노스를 급하게 협공하기에 이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늦은 이 복수는 자신들의 패배감과 절망감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그렇게 토니와 스티브는 더욱 분리된다.

하지만 그 둘이 결국 어떤 책무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토니와 스티브가 적어도 마블 세계에서는 구조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둘은 말 그대로 시간의 곡절을 함께 관통한다. 최초 뉴욕침공 때와 스티브가 캡틴 아메리카로 갓 탄생하였을 그 때 즈음에 함께 도착하게 된 것은 그들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리 없이 전해준다.

토니와 스티브가 함께 도착한 캡틴 아메리카 탄생의 그 상황을 계속 따라가 보면, 스티브는 페기(헤일리 엣웰)를 보게 되고 토니는 아버지 하워드를 만나게 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돌이킬 수 없었을 후회 하나를 만회할 기회를 각각 잡은 것이다. 그들이 기능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토니와 달리 스티브는 페기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페기가 스티브의 품에 안겨 눈물짓는 장면은 더욱 인상적일 수 있었다. 여기서 스티브는 진심으로 평범한 삶을 원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토니는 타노스의 승리 이후에 오히려 평범한 삶을 이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페기를 다시 만나 평범한 삶을 꿈꾸게 된 스티브 역시 이유야 어떻든 타노스와의 결투 이후에 평범한 삶의 기쁨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물위에 비친 이미지처럼 그렇게 묘하게 겹쳐진다. 그들의 진실은 평범한 삶이 주는 가치로 기운다. 자녀들의 등장은 특히 이를 강조한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다른데 있다. 말하자면 선불교의 화두인 본래면목(本來面目)이 그것이다. 아이언맨 이전의 토니, 캡틴 이전의 스티브, 등등, 히로인/히어로라고 지칭하거나 ‘우리는 어벤져스야’라고 말하는 규정 속에 어벤져스 이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셈이다. 토니와 스티브는 이 점에서 늘 고뇌해왔다. 아니, 모든 어벤져스들은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고 여기고는 답을 찾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왔다. 다시 말해 영웅들은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과 복수심에 사로잡히고 말았고 그 복수심은 자신을 고민 없이 영웅으로 여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거의 무능력한 상태의 타노스를 찾아가서는 그를 처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행한 이 행동. 복수하는 토르(avengers)는 모두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복수는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답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허무가 반복되고 있다고 느낄 때 ‘시간과 공간’을 뒤흔들 불가능한 미션을 발견한다. 대부분 이 방식은 사건을 결국 뫼비우스 띠처럼 대책 없이 꼬아버리는 원인이 되곤 하였지만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이를 해결책, 그 자체로 삼는다. 나에게서 출발하여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본래면목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응대한 것이다. <아이언맨> 역시 바로 나에게서 시작한 질문(나는 누구인가?)이 ‘I’m Ironman’으로 귀결되었었다. 특히 아이언맨은 영화의 서사보다 바로 “I’m Ironman.”이라는 선언으로 우리를 매혹시키지 않았나. 그 시작이 이번 영화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계보에서 보자면 스티브 로저스는 흥미롭다. ‘I’m CaptinAmerica’를 거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스티브는 평범한 삶을 택한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그 동안 마블 영화, 특히 <어벤져스>시리즈를 통해 복수의 시간을 보았다. 그것은 환멸의 시간을 겪는 것이다. 어벤져스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들이 어떤 정의를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울증적 환영에 시달리다가 결국 복수심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들의 복수심은 우리에게조차 어서 빨리 타노스를 끝장내길 원하게 만든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나 자신은 누구인지를 묻게 된다. 토니, 캡틴아메리카, 토르 그리고 블랙위도우(스칼렛 요한슨)는 복수에 실패한 것은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했었다는 데서 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블랙위도우는 자신도 몰랐던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되기도 한다.)

 

아이언맨의 성공으로 시작된 어벤져스 프로젝트. 그 성공의 문법은 복수를 거쳐 자기를 발견하는 것에서 온다. 그렇게 ‘I’m Ironman’이 또 다시 반복될 때, 비범한 <어벤져스>의 복수는 ‘우주의 본질’, ‘복수의 시간’을 거쳐 ‘자기의 발견’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아이언맨> 흥행의 시작 “I’m Ironman.”이라는 선언은 <어벤져스:엔드게임>에 이르러 그렇게 완성된다. 이로써 토니로 시작해 스티브로 향하던 경계선은 토니로 시작해 아이언맨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으로 뒤바뀐다.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토니는 아이언맨으로 영원히 남는다.

 

작별. 이 영화 말미에 느껴지는 느낌은 바로 이 단어로 설명된다. 진심으로 웃게 되고, 진심으로 울게 된다면 그게 바로 후회 없는 이별, 즉 작별의 증거일테니까. 영화가 끝나고 작별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 지난 10년간의 마무리는 이렇게 나름 꽤 훌륭한 마침표가 되어 우리를 기다린다. 

 

 

 

글·지승학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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