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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문화톡톡] 배현진, 나경원, 임이자
[안치용의 문화톡톡] 배현진, 나경원, 임이자
  • 안치용(문화평론가)
  • 승인 2019.05.04 14: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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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은 전후 독일의 사회상을 파헤친 고전이다. 20세기 전반기 독일과 유럽의 역사를 단치히에서 뒤셀도르프 옮겨가며 펼쳐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까닭에 이 소설에서 가장 선명하게 회자되는 장면은 부두의 말대가리와 장어가 아닐까. 바다에서 건져낸 (물론 죽어서 몸에서 분리된) 말대가리에서 장어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모든 것을 다 토해 버린다. 이 사건은 이후 아그네스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정신분석학을 동원한 일부 문학평론에서는 이 장면을 오스카의 아버지 마체라트에 의한 아그네스 학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서 학대는 성적 학대이다. 대표적인 강장식품으로 분류된 장어는 이미 그 모양 때문에 확고한 성적 상징으로 사용되는데, 소설에서는 관능적인 출현이 아니라 기괴하고 공포스러우며 폭력적인 출현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자 다층적 의미를 가진 아그네스는 당대 역사와 가부장()에 의해 희생된다.

 

여성정치인의 성적 소비

선거제와 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요즘 국회가 시끄럽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 사태의 중심에서 전례 없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존재감은, 개인의 기억이고 정치에 그다지 정통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전제하고 말하자면, 지지세력 내에서도 대체로 양가적이었지 싶다. 기회에 민감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인물이란 느낌을 받았다. 이번 국면에서는 그러한 양가성을 불식하고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드러내는 데 아무튼 성공하였다.

나 원내대표의 존재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보도사진은 빠루 든 나경원이지 싶다. 나 원내대표 스스로 이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낼 이미지와 정치적 효과를 감안했을 터인데, 본인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 효과를 거뒀지 않았을까. 폭력적 충돌의 현장에서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강인한 정치지도자의 이미지. 아마도 나 원내대표가 의도한 효과의 핵심은 이것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에서 앞에서 인용한 그라스 소설의 그 장면을 떠올렸다. 무관해 보이는 두 장면을 연결 지은 데는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현실정치에 대한 페미니즘적 평가와 그 평가에 기반한 관점에 따라 상투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 나 원내대표가 여성으로 소비된 정황을 간단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자. 어느 일간지는 이 사진을 넣은 기사에서 <뺏은 빠루든 나경원 할 수 있는 수단 다해 오늘도 온몸으로 막겠다>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만으로는 온몸으로 막는주어가 나경원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실제 주어는 저희, 즉 자유한국당이다. 나 원내대표가 한 말은 저들은 국회법을 위반했고, 국회 관습법도 위반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불법에 대한 저항은 당연히 인정된다. 우리는 불법을 막을 책임이 있다. 저희는 오늘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온몸으로 저항하겠다이다. 편집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의 성적 소비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로는 그러한 소비가 인정된다.

기사댓글에서도 나 의원은 그렇게 소비된다. “‘온몸으로’!!!난 성적수치심이 느껴진다 니 몸 거부한다!! 전연이 나라의 온 남성을 성추행 한거다 전연을 고발하자!! 나경원 성추행범은 국회를 떠나라!!” 어떤 이들에게 빠루 든 나경원은 이렇게 성추행범으로 바뀐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나 원내대표를 성추행한 것이다. 나 원내대표 등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이런 식의 성적 학대, 여성혐오적 소비는 일상적이다.

이런 방식의 성적 소비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한 방편이지만 흥미롭게도 정치적 견해가 같은 이들 사이에서는 자제된다. 또한 성적 소비, 혹은 성적 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당하는 입장에서 정치적 잣대에 의거하여 선별적으로 대응하는 기현상도 목격된다.

27일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과 같은 당 한선교 사무총장이 사회를 맡은 자유한국당의 광화문 집회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그날 발언을 소개할 필요는 없고, 한 사무총장이 여러분,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는데 이 나라가, 문재인의 나라가 배현진,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는 발언에서 그 잔인한 일상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뉴스 보도만으로 판단하면 배 위원장은 무감각하다. 배 위원장은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37세 청년이다. 일 하느라 시집도 못 가고 부모님을 모시며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을 시집도 못간 청년으로 소개하며 화답한다. 배 위원장이 한 총장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한 게 당연해 보인다. 한 사무총장이나, 배 위원장, 그리고 집회에 참가한 청중까지 아무도 일상의 폭력을 자각하지 못한다.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의 이른 바 성추행 논란에 이르면 사태는 전혀 다른 차원에 도달한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4일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한 과정에서 임 의원은 팔을 벌려 나가려는 문 의장을 막았다. 임 의원이 의장님 이거 손대면 성희롱이에요라고 말하고 문 의장이 임 의원의 볼을 감싼 이후 임 의원은 강제추행 및 모욕 등의 혐의로 문 의장을 고소했다. 문제는 같은 당 이채익 의원이 임 의원을 옹호한다며 키 작은 사람은 좀 열등감이 있다. 결혼도 포기하면서 이곳까지 온 어떻게 보면 올드미스인데, ‘못난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은 모멸감을 주고 조롱하고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성추행해도 되느냐고 해 논란이 확대됐는데, 임 의원은 이 의원이 선한 의도로 한 이야기이기에 문제가 없지만 문 의장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다고 상반되게 대처했다.

문 의장의 행동이 적절하지 못했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성추행이라기보다는 해프닝으로 봐야 한다는 여성단체들의 성명이 아마도 이 사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지 싶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의전화 등 30여 개 여성단체는 연대성명을 내고 해프닝을 성추행 프레임으로 만들고, 미투 운동의 상징인 하얀 장미를 사용해 집단행동에 나선 한국당 여성위원회는 여성들의 용기로 주도된 미투 운동의 정신과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자유한국당을 규탄했다.

일련의 사건에서 자유한국당의 여성정치인들은 흑백논리로 나누면 아무튼 피해자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피해자라는 판단에는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 분명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식별된 그들이 성적 대상화에 처하고 성적 혐오의 맥락에 갇히고 그렇게 소비되고 있지만, 그라스 소설 속 가상의 인물 아그네스에게서 느끼는 공감이나 연민 같은 걸 이들에게선 전혀 느끼지 못한다. 특별히 임이자 의원의 행태에서는 더더욱 공감하지 못할뿐더러 모종의 불쾌함까지 느끼게 된다.

귄터 그라싀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양철북'의 한 장면.
귄터 그라싀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양철북'의 한 장면.

 

진보와 페미니즘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는,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생물학적인) 섹스는 없고 (사회학적인) 젠더만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젠더만 있고 (생물학적인) 섹스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버틀러에 기대어 말하면 임 의원, 배 위원장 같은 이들이 젠더적으로는 사실상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젠더적으로는 사실상 여성이 아니라는 나의 표현이 또 다른 여성혐오가 아님을 유념해 주길 바란다.

어쩌면 그들이 한남인 나보다 더 여성혐오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가부장제 폭력에 순응하는 한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 기제에 기꺼이 던져 넣는다. 동시에 여성혐오의 희생양으로 코스프레하는 몰염치를 보인다. 임이자 의원에게서 가장 전형적으로 극명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그런 유형의 여성을 명예남성또는 해부학적인 용어를 써서 (왜냐하면 남성과 명예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기에) ‘명예○○라고 (명예와 ○○도 어울리지 않지만) 말한다.

나는 앞서 나 원내대표의 빠루 사진을 보며 그라스 소설의 인용장면을 떠올렸다고 했다. ‘잔 다르크이야기도 나오는 그 사진에서 나는 생뚱맞게도 <양철북>에서 발견되는 그로테스크와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우리가 논의한 범위 내에서 나 원내대표는 임 의원이나 배 위원장이 보인 몰염치나 무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성적으로 소비된 전투적인 여성 정치인일 뿐 이 국면에서 페미니즘관점에서 특별한 흠결을 드러내지 않은 나 원내대표에게서, 그렇다면 아그네스에게서 느낀 것과 같은 공감과 지지를 찾아내어야 하였을까.

나는 반대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기이하게도 나에게는 나경원의 빠루 사진이, 어떤 인증샷 같았다(이러한 느낌은 나의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과 경박한 정신분석학적 해석 때문일 수도 있으니 혹시 불쾌하셨다면 나 의원께서는 혜량하시길 바란다.). 배현진임이자와 나경원은 과연 다른 유형의 여성정치인일까. 내가 그 사진을 인증샷으로 받아들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성공한 정치인으로서 나 원내대표는 확실히 임 의원처럼 자기 몸을 던져 수모를 자초하는 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임 의원이나 배 위원장 등과 함께 그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여성혐오가 일상적으로 무감각하게 작동하고 가부장제와 기득권이 결합한 억압의 질서가 온존하고 확대되는 곳이라는 혐의를 거둘 수가 없다. 나경원 같은 사람은 <양철북>의 아그네스처럼 핍박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지만 남성과 다름없이 아그네스 같은 이를 핍박하는 자리에 서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분명한 대조로서 빠루 사진에서 독일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았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 원내대표 자신이 아그네스와는 분명 다른 여성이며, 나아가 아그네스와 같은 여성과는 다른 이해를 가지는 사람이라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도매금으로 넘기긴 그렇지만 최소한 이번 국면에서 나 원내대표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행동한 자유한국당 여성정치인들의 정체성은 나경원의 빠루 사진에 집약됐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기득권 보호와 제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페미니즘을 정략과 엿 바꿔 먹는 정치노선을 추종한 그들을 예컨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 힘들다. 홍 전 대표와 비교해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는 여성정치인을 공개된 여성성을 근거로 여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라디칼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으나, 난 페미니즘이 보편적 진보의 편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 보편적 진보에 역행하는 사람은 결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면서, 혹은 페미니스트의 책무를 느껴야 함에도 보편적 진보에 역행하는 그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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