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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 지배구조 해부)②현대차그룹, 마지막 남은 순환출자 재벌
(재벌그룹 지배구조 해부)②현대차그룹, 마지막 남은 순환출자 재벌
  • 정초원
  • 승인 2019.05.15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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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편안 엘리엇 등 외국계 거센 반대로 철회
"수정안 내겠다" 밝혔지만 1년째 '무소식'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무산된지 1년이 넘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대기업 구조 개혁을 강조하는 이번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춰 그룹의 모든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고 발표했지만, 개편안을 둘러싸고 엘리엇을 비롯한 시장참여자들의 반대가 예상 외로 거셌다. 결국 논란을 이기지 못한 현대차그룹은 처음 내놨던 개편안을 철회하고 개편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물러섰다. 

당시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완 작업을 거쳐 늦어도 연내 개편안을 다시 발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해를 넘겨 올해 2분기에 접어들기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나머지 주요 그룹들은 대부분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한 상태다. 현재 국내 1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깨지 못한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현대차 지배구조, 무엇이 문제였나

총수 일가가 극히 적은 지분으로 그룹사 전체를 지배하도록 해주는 '순환출자'는 오랜 기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고리였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지배하고, 현대차가 기아차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그룹의 기본 뼈대를 세웠다. 여기에 기아차가 다시 모비스를 지배하도록 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라는 순환출자 구조가 짜여졌다. 이 구조 안에서 총수 일가는 현대모비스 지분 6.96%로 사실상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공고하게 유지됐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 2017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커다란 지배구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순환출자 거리를 해소했지만, 현대차그룹은 그대로였다"며 "현대차그룹도 지금 같은 지배구조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국내 주요 재벌그룹 가운데 유독 현대차그룹을 거론한 것은 그만큼 이 회사가 순환출자 고리에 심각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중인 주요 계열사 지분은 현대글로비스(29.99%)를 제외하면 대부분 1%대에서 10%대 중반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룹의 매출을 견인하는 현대차(7.45%)와 기아차(1.74%)에 대한 일가의 지분도 적은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 김 위원장은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 지배권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현대차그룹 외에 없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가 지배구조 개선의 큰 계기로 작용했지만, 사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순환출자 고리를 지속하는 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재벌 총수가 자신의 자금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반면, 지배구조를 이루는 고리 하나만 끊겨도 그룹 지배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은 총수 일가와 그룹사 입장에서 일종의 약점이다. 지난 2003년 외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이 SK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겨냥해 벌였던 경영권 분쟁 사태가 대표적 선례로 남아 있다. 

또 순환출자로 말미암아 계열사의 일부 자금이 무수익자산으로 묶여 있어, 급변하는 국제경쟁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한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됨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14년 이후 정부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다. 현재 순환출자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서로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과거 정몽구 회장 체제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3세 승계 이후에도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하려면 지배구조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문제와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자료/한국신용평가
자료/한국신용평가

엘리엇 공세에 미뤄진 지배구조 개편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28일 순환출자를 해소할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현대모비스의 모듈사업과 AS부품사업을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분할합병하는 게 당시 개편안의 골자였다. 또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사들이면 현대차그룹의 모든 순환출자 구조가 모두 해소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개편안을 실행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대주주→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로 탈바꿈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 회장 일가가 1조5000억원 규모의 양도세를 내기로 한 것도 정부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그룹도 개편안을 두고 "자동차 사업 부문별 전문성을 강화해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순환출자 등 국내 규제를 모두 해소하는 최적의 안"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장의 거센 반대로 인해 이 개편안은 이행되지 못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과 의결권 자문사인 ISS, 글래스 루이스까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계열사 합병에 반기를 들었다.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외국인 주주 48%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 주주는 ISS 등 세계적인 자문사의 의견을 바탕으로 주주총회 안건을 판단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모비스 지분 9.82%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찬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민연금과 자문 계약 관계인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 또한 반대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대세를 '반대' 쪽으로 기울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엘리엇의 요구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 체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특히 엘리엇은 개편안에 담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일부 사업의 합병 비율이 현대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고 정의선 부회장에게 유리하다고 비판했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 사업부의 가치가 저평가돼 주주 보상이 적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개편안을 잠정 취소했다. 표 대결에서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무리하게 주총을 여는 것보다 일정을 뒤로 미뤄 전략을 다시 짜는 쪽을 택한 것이다. 당시 정 부회장은 "시장과의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며 "사업 경쟁력과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조만간 지배구조 개편안을 다시 들고 나올 것 같았던 현대차그룹은 개편안을 철회한 이후 1년을 넘긴 지금까지 별다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총에서 현대차가 엘리엇에 완승한 덕에, 향후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주총에서 엘리엇이 제안한 안건은 서면표결에서 모두 부결된 반면, 이사회의 제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조만간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금지와 내부거래 규제 해소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대주주와 계열사간 지분교환 또는 일부 매각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의 사익편취 규제리스크 해소를 위한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미 시장에서는 다양한 개편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우선 지난해 3월 제시했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계획을 큰 틀에서 유지하되 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안이 꼽힌다. 이 안을 택할 경우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않아 합병법인에 대한 대주주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또 다른 시나리오로는 기아차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매입해,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4개의 순환출자 고리 중 3개를 해소하는 방안이 있다. 기아차와 현대제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16.9%, 5.7% 보유했다. 이를 위해서는 재원 마련이 가장 중요한데, 계열사 상장이나 합병 후 매각을 통해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시나리오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지주회사 체제를 택하면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등 금융사를 모두 매각해야 한다. 그럴 경우 카드사와 캐피탈사는 자동차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진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한국신용평가는 "결국 현대차그룹은 대주주와 계열사간의 지분교환 또는 일부 매각을 통해 기아차, 현대글로비스,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차 간에 형성된 순환출자고리를 제거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에 대한 대주주의 지분율(29.99%)을 20% 이하로 낮추거나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는 방식의 사업구조 개편 등을 통해 규제리스크를 해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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