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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해외 투자 러시…국내는 외면
대기업 해외 투자 러시…국내는 외면
  • 김진양 기자
  • 승인 2019.05.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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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국내투자 외환위기 이후 가장 적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대규모 해외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미국, 중국, 베트남, 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 여러가지 이유로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 대한 투자 열기는 차갑게 식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내 대기업 총수 최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했다. 신 회장의 백악관 방문은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의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공장 건설이 계기가 됐다. 약 30분간 진행된 면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루이지애나에 투자를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한껏 치켜세웠고, 신 회장도 "미국이 협조를 잘 해서 투자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졌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는 루이지애나 공장에서 연간 100만톤(t)의 에틸렌을 생산할 계획이며, 향후 상황에 따라 40만t도 추가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외에 화학 분야와 호텔 사업 분야에서도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만나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트럼프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만나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트럼프 트위터

 

급부상한 미국, 여전한 중국

롯데의 이번 투자는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를 장려하는 트럼프행정부의 정책에 호응한 대표 사례다. 롯데 외에도 국내 주요 기업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2025년까지 16억7000만달러를 투자하고 장기적으로는 총 50억달러를 투입해 생산 능력을 키울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피해 각각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에 가전 공장을 지어 가동을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는 현지 공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미국 설비투자 규모를 두배로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2869억원에서 5866억원으로, 기아차는 1144억원에서 2085억원으로 확대한다. 

2000년대 이후 투자 러시가 절정에 달했던 중국을 향하는 발걸음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지 인건비 상승 등으로 투자 환경이 예년만 못하지만 기업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평이 많다. 가장 최근에는 SK이노베이션이 5799억원을 투자해 중국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추가로 건립키로 했다. LG디스플레이도 현재 중국 광저우에 8.5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라인을 짓고 있으며 삼성전기 역시 텐진에 전장용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공장 신축을 위해 총 5733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을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다.  

 

동남아·인도 등 신흥시장으로도 보폭 확대

베트남, 인도 등 신흥 시장에 대한 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무풍지대인 데다 문재인정부의 역점 과제인 신남방정책과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베트남 하노이 인근의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에 대규모 스마트폰 제조단지를 설립, 베트남 연간 수출의 25% 가량을 전담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삼성전자의 연간 스마트폰 제조 물량의 절반가량이 생산된다. 인도에도 스마트폰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노이다 신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두 배로 확충됐고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 부품계열사들도 현지 공장 설립을 계획 중이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열린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테잎 컷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열린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테잎 컷팅을 했다. 사진/뉴스1

SK그룹도 베트남과의 밀월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 16일 베트남 최대 민영기업인 빈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6.1%를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매입 주체는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하이닉스 등 5개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SK동남아투자법인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는 마산그룹 지분 9.5%를 약 5593억원에 매입했다. 베트남 재계 1,2위 그룹의 주요 주주가 되면서 향후 베트남에서의 활동 범위를 넓힐 것으로 보인다. 

롯데 역시 베트남에 2024년까지 7100억원을 투자하는 '롯데 하노이몰'과 1조1600억원을 투입하는 '에코스마트시티' 조성을 진행 중이다. 인도네시아에는 국영 철강회사 용지를 매입해 대규모 유화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투자금액은 4조원에 이른다. 

 

국내 투자는 21년만의 최저로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 투자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LG전자는 최근 국내 스마트폰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5년간 이어온 평택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베트남 하이퐁으로 생산 물량을 모두 넘긴다.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베트남으로 거점을 옮기려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국내에서의 TV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 가능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설비투자는 전기 대비 10.8% 감소한 34조7087억원을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1분기(-24.8%) 이후 21년만의 최저치다. 산업연구원(KIET)는 올해에도 국내 기업들의 설비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6.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13년 말부터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는 이른바 '유턴법'이 시행됐지만 지금까지 돌아온 기업은 59곳에 불과하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 환경 악화를 꼽는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강화된 재벌 개혁 기조와 친노동정책 기조가 투자를 장려하는 국가들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게 한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중장기 투자 계획마저 정부의 압박에 마지못해 마련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총 18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이례적으로 국내에만 1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할 때 국내외 해외 비중을 나눠 소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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