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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를 기억하는 영화, ‘리버풀의 추억’과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를 기억하는 영화, ‘리버풀의 추억’과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 손시내(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2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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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도시의 발달과 함께 태동한 영화는 그 초기부터 세계의 도시들을 담고 그것을 다시 전 세계의 관객들과 함께 나눠왔다. 도시의 다양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기록영상에서부터 도시의 기억들을 모으고 재조립해 도시의 가시적 풍경과 정신적 풍경을 다시 쓰는데 이르기까지, 도시는 영화에 있어 가장 흔한 동시에 특별한 대상으로서의 장소가 되어 온 것이다. 변모하는 도시의 풍경을 담은 당대의 영화들은 특정한 계보 속에 정리될 수 있을 것이고, 서사 영화들의 계열 역시 별도의 긴 지면과 연구를 통해 탐구할 수 있으리라. 여기서는 다큐멘터리 적인 틀 내에서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의 도시, 혹은 연출자의 유년기 기억을 담은 도시, 혹은 영화 그 자체와 지속해서 관계를 맺어온 도시를 다룬 영화들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영화가 기억하는 도시에 대해 탐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화라는 공간에 대한 탐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1895년 프랑스, 촬영기와 투사기를 겸한 시네마토그래프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는 이후 세계 각지로 그들의 영사기사들을 보낸다. 영사기사들은 도시를 포함한 세계의 모습을 그들의 카메라에 담았고, 세계의 풍경은 말 그대로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필름 속에 모여들게 된다. 뤼미에르 형제 그 자신들의 영화도 당대 도시의 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도시의 특정한 풍경, 즉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찍고 상영했다. 이후 영화감독들은 언제나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에 이끌리고 그것을 찍으며 거기 설명을 덧붙이고 싶어 했다. 1929년 소련의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는 오데사를 비롯한 소비에트 연방의 도시의 모습과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한 필름들을 가지고 <카메라를 든 사나이>(Человек с Киноаппаратом, Man with a Movie Camera, 1929)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기록영상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장치로서의 카메라와 영화에 대한 탐구를 담은 에세이이기도 하다. 혹은 다음 해인 1930년, 장 비고는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의 풍경을 담은 <니스에 관하여>(A Propos De Nice, 1930)를 만든다. 영화는 프랑스의 상류층의 생활상뿐 아니라 니스 노동자들의 모습과 빈부격차 등의 사회문제를 다룬다. 6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각을 담은 두 영화를 언급해 볼 수도 있겠다. 영화감독이자 인류학자 장 루쉬와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어떤 여름의 기록>(Chronique d'un été, Chronicle of a Summer: Paris, 1961)에서 파리의 젊은이들에게 ‘행복’에 관해 물으며 동시대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크리스 마르케의 <아름다운 5월>(Le Joli Mai, The Merry Month of May, 1963) 역시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적이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파리의 공간적이고 사회적인 풍경을 몽타주하는 작품이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 도시의 전경과 카메라맨

때로 영화가 기억하고 복원하고자 하는 도시의 풍경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이거나, 단순히 동시대적인 영상들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일 때도 있다. 이때 영화들은 이미 존재하는 푸티지 영상, 사진기록, 이전에 제작된 영화의 영상, 더러는 새로이 연출한 장면과 같은 것들을 가져와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며 기억한다. 톰 앤더슨의 <로스앤젤레스 자화상>(Los Angeles Plays Itself, 2003)은 아마 그 탁월한 예시가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무수히 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영상의 대상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실제로도 할리우드가 있어 영화산업의 흥망과 스타들의 탄생과 쇠락을 지켜봐 온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를 조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로스앤젤레스의 다양한 모습이 담긴 많은 영화와 영상들의 조각을 통해 그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영화들 속의 그리고 영화 바깥의 로스앤젤레스는 그렇게 이 영화 안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여준다. 제니 올슨의 <로얄 로드>(The Royal Road, 2015)는 캘리포니아로 간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 1958)에 등장했고 역시 많은 영화의 촬영지가 되어왔던 캘리포니아와 로얄 로드의 풍경들 위로, 감독 자신의 영화광으로서의 어린 시절,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한 기억과 성찰에서부터 멕시코-미국 전쟁에 대한 설명이나 할리우드 영화들에 대한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함께 펼쳐진다. 좀 더 내밀한 기억에 밀착된 영화로는 가이 매딘의 <나의 위니펙>(My Winnipeg, 2007)을 꼽을 수 있겠다. 감독의 고향이자 터전인 캐나다의 위니펙을 다룬 이 영화는 기록 영상에 연출된 픽션을 섞고 실험적인 기법을 통해 위니펙의 분위기, 혹은 위니펙에 대한 감독 자신의 기억을 표현해낸다. 도시에서의 성장과 가족에 대한 기억 등 개인적인 역사와 도시 자체의 역사가 영화 속에 흥미롭게 겹쳐진다. 

 

<로스앤젤레스 자화상> 로스앤젤레스의 모습

도시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 혹은 도시의 역사와 영화의 역사를 함께 이야기하는 두 영화에 대해 보다 자세히 말해보기로 하자. 하나는 테렌스 데이비스의 <리버풀의 추억>(Of Time and the City, 2008)이고 다른 하나는 빌 모리슨의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Dawson City: Frozen Time, 2016)이다. 두 영화는 도시를 기억하는 영화들인 동시에, 도시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기억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은 영화감독 테렌스 데이비스의 고향이자 유년기의 추억을 간직한 도시다. 1945년생인 그는 리버풀에 대한 애정과 언제나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던 리버풀에서의 삶을 담은 두 편의 자전적인 극영화를 찍었다. <먼 목소리, 조용한 삶>(Distant Voices, Still Lives, 1988)과 <긴 하루 지나고>(The Long Day Closes, 1992)가 그것이다. 이 영화들에선 1940~1950년대의 리버풀의 풍경과 노동자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들의 모습이 서정적이고도 때로 우울하게 그려져 있다. 가톨릭 교회와의 불화나 게이 정체성에 대한 숙고, 세상에 잘 스며들지 못하면서도 영화를 사랑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두 영화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작은 환희와 기쁨, 고독과 우울 속에서 서로 미워했다가도 다시 함께 모여앉아 종종 노래를 부르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는 영화의 장면들은 더없이 아름답고 때로 사무치기까지 한다.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자신이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리버풀의 풍경과 삶의 모습을 그려냈던 테렌스 데이비스는, 2008년에 이르러 첫 다큐멘터리 영화인 <리버풀의 추억>을 내놓는다. 원제 ‘Of Time and the City’는 ‘시간과 도시에 대하여’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편의 자전적인 영화가 그랬듯이, <리버풀의 추억> 또한 도시에 대한 찬가로만 이루어진 작품은 아니다. 5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리버풀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기록 영상들 위로 클래식 연주곡, 가곡, 포크송과 같은 음악들이 겹쳐지거나 감독 자신의 목소리로 작가와 이론가들의 글을 읊는 방식으로 편집된 이 영화는, 리버풀의 역사와 그 틈새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불평등, 또 변해버린 리버풀의 모습에 대한 탄식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거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테렌스 데이비스 자신의 내밀하고도 치열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드러내는 내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담담하고도 거침없이 도시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포개놓는다. 영화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은 한없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영화의 시인이라는 그의 칭호를 떠올리게 하듯 압축적이며 간결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리버풀의 추억> 리버풀 골목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포스터

영화는 리스트의 피아노 독주곡과 함께 어느 극장의 빈 스크린을 비추며 시작한다. 데이비스가 어린 시절 위안을 찾았던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이기도 할 이러한 선택은, 동시에 도시에 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모든 개인을 포함하는 기억이나 기록은 있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동계층 집안의 게이 소년이었던 자신이 속할 수는 없었던, 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기록과는 살짝 어긋난 곳에서, 그 자신의 눈으로 도시의 기억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또 하나의 틀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가난한 이들의 주거지가 밀집된 높은 언덕에서 바라본 리버풀의 전경은 그러한 시선을 보여주는 이미지 중 하나일 것이다.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리버풀에는 시간이 흐르고, 건물들은 사라지거나 새로이 생겨난다. 혹은 리버풀을 가로지르는 철로와 기차를 통해 도시의 변화를 포착해내는 장면들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상들의 출처인데, 데이비스가 매일 보아왔을 풍경이지만 결코 그 자신이 직접 촬영하지는 않았을 푸티지 영상들이라는 점을 짚어야 할 것이다. BBC 아카이브나 영국 필름 아카이브 등에서 찾아낸 이러한 이미지들은 이제는 정확히 누군가의 기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기록들이다. 다양한 의도와 목적에서 비롯되었을, 오직 카메라의 기록이 되어버린 이미지들은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다른 이미지들과 부딪치면서, 다양한 목소리들과 만나면서 특정한 의미를 생성한다. 퍼시 셸리의 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프리드리히 엥겔스나 칼 융의 에세이가 여기 겹쳐진다. 예컨대, 도시가 성장하면서 배를 타고 대양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들과 중산층이 생겨나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지는 흐름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와 해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찍은 기록 영상을 함께 두는 것만으로도 표현된다. 그리고 그 위에 감독이자 내레이터는 행복과 상대적 박탈감 사이의 관계를 짚는 엥겔스의 말을 옮긴다. 

 

<리버풀의 추억> 새로 짓는 건물과 무너지는 건물

여왕의 대관식이나 지역 축제들을 기록한 영상 속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하고 기뻐 보이지만, 왕실의 행사에 사용될 부와 노동을 지탱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혹은 축제 속에 완전히 빠져들 수 없이 사춘기 시절의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테렌스 데이비스는 그처럼 행복한 이미지 속에서도 고통과 불안을 길어 올린다. 도시 전체의 전경만큼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건, 남루하고 지저분한 동네의 풍경과 끊임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거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장소로서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덤덤한 뭉클함을 자아내지만, 여기에 스키너즈의 ‘남루한 내 동네’(Dirty Old Town)나 페기 리의 ‘언덕집 사람들’(The Folks Who Live On The Hill)과 같은 노래가 흘러나올 때, 도시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생성되는 것임을 문득 깨닫게 된다. 흑백 이미지들은 점차 컬러 이미지가 되고 리버풀에는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며 옛 기억이 담긴 건물들은 부서지기 시작한다. 데이비스의 탄식이 여기 겹쳐진다. “이제 나는 고향에서 객이 되었네.” 그러나 도시를 사람들의 삶과 함께 생각하려는 영화의 치열함이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끈질기게 비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리버풀이라는 도시에 대한 송가인 동시에 찬가일 수 있는 것이다.

빌 모리슨의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은 도시와 영화에 관한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잊을 수 없는 사연을 보여준다. 우선 영화를 따라 도슨 시티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도슨 시티는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1970년대 후반 이곳에서 공사를 위해 땅을 파던 중 다량의 질산 필름이 발견되는데, 영화는 이 필름의 사연과 도시의 역사를 기록사진과 무성영화 푸티지를 통해 추적하고 재구성한다.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현재의 도슨 시티가 위치한 클론다이크강과 유콘강이 만나는 지점은 캐나다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땅이었지만 곧 골드러시의 타깃이 된다.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고 풍경이 심하게 훼손되는 동안 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금광마을이 생겨났고, 금 채굴량에 따라, 또 다른 골드러시의 발생에 따라 지역은 흥망을 거듭한다. 그러다 1900년경이 되며 사람들이 평생 정착할 마을이 조성된다. 여기에 도서관과 영화관, 무도회장, 체육관과 같은 시설들도 자리를 잡는다. 도슨 시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한편에는 영화의 역사 또한 시작되고 있었다. 초기 무성영화는 대부분 질산 필름으로 촬영되었는데, 질산과 황산을 면직에 합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질산 필름에는 쉽게 불이 붙었고 폭발이나 대형 화재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를 트는 자선 바자회나 상영회에선 종종 큰불이 났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보다 안전한 필름이 곧 발명되었지만, 상대적으로 값싼 질산 필름은 계속해서 사용되었고, 사람들도 끊임없이 영화를 보았다. 도슨 시티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끝자락에 있는 이 도시에선 매년 사람들이 수백편의 영화를 통해 도시 밖 세상을 접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팔레스타인의 풍경, 아프리카 대륙의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사람들을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접속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발굴된 필름을 보여주는 영화 포스터

도슨 시티는 지리적 위치 탓에 영화 유통망의 가장 끝단에 있었고, 2~3년간 세계를 떠돌다 여기서 마지막 상영을 마친 질산 필름들은 다시 회수되지 않았다. 물론 이 필름들이 화마로부터 안전했던 건 아니다. 도슨 시티의 영화관은 종종 불에 탔고 때로 전소되었으며, 계속해서 쌓여가는 필름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성영화가 담긴 질산 필름들 대부분은 말 그대로 버려진다. 스케이트장을 만들기 위해 메꾼 수영장 아래에, 떠내려가는 유빙과 함께, 하키장 아래에 얼어붙은 채 필름들은 도슨 시티의 땅 아래 잠들게 된다. 그리고 40여년이 흘러 그 필름들이 다시 발견된 것이다. 마치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이미 모든 질산 필름이 불타 없어지거나 부패하여 대부분의 무성 영화가 소실된 시점이었다.

이 사연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의 더욱더 흥미롭고 특별한 점은 이러한 도슨 시티와 영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70년대 후반 발견되어 복원된 372편의 무성 영화들은 그 자체로 도슨 시티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재료가 된다. 골드러시를 소재로 한 다수의 무성영화 장면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도슨 시티를 기록한 사진들과 함께 ‘많은 이들이 산맥을 넘어 금을 찾아 도슨 시티로 향했다’는 내용을 전달하며 서사를 구성한다. 혹은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있다. 수많은 질산 필름들이 버려지고 도슨 시티에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다는 내용을 전달할 때이다. 여러 편의 무성 영화에서 가져온 우울해하고 슬퍼하며 잠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끝없이 이어진다. 서로 다른 영화에서,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내용을 비집고 밖으로 나온 영화의 형상들이 필름의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금방 타버리고 곧 사라질 유한한 몸을 가진 필름 그리고 다시 발견되고 다시 살아나는 ‘영화’가 한 도시의 역사 속에서 마주치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골드러시를 보여주는 영화의 이미지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이미지

이와 같은 구성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매년 도시의 영화관을 다니며 수백편의 무성영화를 보았다는 도슨 시티 주민들을 떠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 영화들을 찍은 사람도, 영화에 찍힌 사람도, 그리고 그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도 세상에 남아있지 않지만, 영화만큼은 살아남아 도시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옛날 도시를 세우고 삶을 만들어나갔던 사람들이 보고 또 보았던 영화들이 그들을 보아주던 사람들과 그들의 도시를 기억하고 있었다고도 말해보고 싶다. <리버풀의 추억>에서,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에서 우리는 영화 속에 재구성되어 거주하고 있는 도시를 본다. 도시를 기억하는 영화란 어쩌면 도시를 자신의 안에 다시 살게 하는 영화를 이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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