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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여름의 추억, 인간을 바라보다 <하하하夏夏夏>(2009)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여름의 추억, 인간을 바라보다 <하하하夏夏夏>(2009)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21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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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부도덕하고 고통스럽다

조문경(김상경분), 영화감독, 결혼 적령기를 넘은 듯한 그는 통영에서 왕성옥(문소리)이란 여자를 만나면서 갈등이 심해진다. 그 이유는 왕성옥에게 남자 친구 강정호(김강우)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성옥을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기적 욕망이 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짝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즉 불륜은 부도덕하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이기만 한 것인가?

문경의 선배인 방중식(유준상분)은 아내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지만 6개월 된 애인 안연주(예지원)를 통영에서 몰래 사귄다. 아내에게 정이 떨어져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고, 결혼해 달라고 조르는 안연주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그냥 즐기고만 싶은데 마음이 약해 안연주를 생각하면 어찌 할 바를 몰라 괴로워 한다. 우울증이 심해 약을 갖고 다니면서 먹는다.

시인인 강정호는 우유부단하다. 나이 많은 이혼녀 왕성옥을 좋아하여 사귀면서도 젊고 육감적인 노정화(김민선)와 어울린다. 말하자면 양다리인 셈이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부도적하고 이기적이고 고통스럽다. 갈등을 느끼는 이들은 여전히 치유 과정중에 있는 사람들이지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아니다.

 

억지스러운 자기만의 사랑

캐나다로 완전히 떠나서 살고자 하는 조문경이 왕성옥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그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캐나다로 가기 전에 여자를 반드시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의 갈등을 만들어낸 숨은 동기일 것이다. 특히 시간을 정해 놓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 사람의 마음은 다급해지고 행동도 비정상이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과장하는 마음의 조문경은 왕성옥을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면서 기회를 만들고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 거의 반 미치광이처럼 집착한 나머지 그의 꿈에는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 마치 자신을 돕는 것과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괴롭다는 조문경에 대해 이순신은 말한다. 견디라고.

그러나 왕성옥을 좋아할 만한 근거는 그저 종아리가 아름다웠다는 그 점 밖에는 처음에 없었다. 그것이 점점 발전하여 착하고 아름답다는 식으로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를 매료시킨 이상한 매력중 하나가 이순신을 숭배하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이후 거의 히스테리 증세를 갖고 있는 왕성옥은 관광객중 한 명이 이순신을 모독하는 듯한 말을 하자 거의 광적으로 흥분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설명을 해야하는 안내원 직업상 너무 도를 지나친 왕성옥이 그토록 이순신 모독에 대해 흥분하는 이유는 그녀가 이순신의 구국정신을 거의 자신의 신앙처럼 숭배하는 착각 때문이다. 그렇게 순일무구함, 충직하고 강인한 성격을 자신의 텅 빈 마음, 실패한 마음에 채워넣지 않으면 자신의 현재가 떠다니듯이 가벼워지고 헐렁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도 조문경의 자기 최면처럼 유사한 일종의 자기 동일시일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조문경은 왕성옥의 흥분을 지켜보면서 바로 달려가 왕성옥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전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문경의 사랑은 위선적인 것이다. 처음 집앞으로 갔을 때부터 애인 강정호를 마주쳤고 자리를 떠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자기가 들어가려고 계속 불순한 노력을 했으니 그의 부도덕과 집요함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고 착각이라고 봐야 한다.

처음에는 거부하는 듯 하던 왕성옥이 점점 조문경에게 끌리는 과정 역시 그녀의 이기적인 마음을 반영한다. 왕성옥은 한번 이혼 한 데다 나이도 많아 새로운 결혼에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생각 안으로 상대인 강정호를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조문경의 노력과 다름이 없다. 강정호가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점은 그녀의 이러한 집착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포용하는 사랑이 아니라, 다소 부담스럽고 강압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 때문에 수시로 정이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애인 안연주를 부담스러워 하던 방중식 역시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그녀가 결혼을 간청할 때 문득 자신의 우유부단을 자책하며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결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들떠 있고, 흥분해 있고, 과장되어 있다. 왜 나를 사랑하냐고 질문하는 안연주에게 너무 예쁘니까라는 애매한 말로 대답하며, 무슨 행동을 하든 너무 예쁘다는 말만 과장되게 반복한다. 그럼 왜 그런 사람과 살지 않냐는 질문에 갑자기 할 말을 잃고 용기가 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우울증에 빠져 버린다.

 

자기 최면에서 자기 현혹, 자기 기만으로까지

왕성옥을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한 조문경의 억지스런 노력은 이순신의 꿈에서 잘 나타난다. 꿈에서 이순신은 남의 말과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걸 믿으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유부단한 조문경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위로를 주는 생각이다. 바로 자신의 주문과도 같은 세뇌작용일 뿐이다.

 

그는 꿈속에서 자기 주문과 같은 계시를 받고, 현실에서 왕성옥을 자기 여자로 만드는 데에 용기를 내어 실천한다. 그는 심지어 왕성옥이 집에 없을 때 담장을 넘어 무단침입하여 내부를 규탐하는 행동까지 감행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탈을 자행하는 조문경은 강정호를 왕성옥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강정호의 불륜현장을 왕성옥에게 고발하기에 이른다.

양 다리를 걸치고있던 강정호는 왕성옥에 비해 훨씬 육감적인 노정화와 가끔 잠자리를 갖는데 이를 목격한 조문경은 왕성옥에게 일러바친다. 격분한 왕성옥이 달려오고 현장에서 딱 걸린 강정호는 이렇게 왕성옥으로부터 내침을 당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조종한 것은 다름아닌 조문경이다. 그리고 그의 뜻은 오직 하나, 왕성옥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강정호를 포기하게 된 왕성옥이 죽기살기로 사랑한다면서 따라다니는 조문경에게 끌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건 사랑이 아니라 꿩 대신 닭이란 상황논리일 뿐이다. 조문경은 자신이 하는 짓이 사랑이 아니라, 미친 짓이란 걸 알면서도 자행하는 뻔뻔한 인간, 즉 부도덕한 현대인이다. 그의 직업 영화 감독 답게 그는 자신의 사랑마저 배우들의 연기처럼 연출되어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 모든 게 그의 마음이 불안정한 탓이고, 그는 이런 짓을 마음이 위로 받는 것이라 착각하며 산다. 이순신 꿈속의 자기 최면처럼.

시낭송회에 갔을 때 후배 강정호는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치는 선배 방중식을 향해 저렇게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잘 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만 없으면 선배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강정호의 이 말이 단적으로 방중식의 마음상태를 잘 드러낸 표현일 것이다. 그만큼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우유부단하고 충동적이다. 평소 그저 그런 감정이어서 애인 안연주를 그저 자신을 위로해 주는 노리개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그녀가 몇 시간 자리를 비우자 문득 사랑을 느끼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한다든지, 침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다가 갑자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맨 정신으로 맞서기가 뭐하니까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큰 삼촌에게 가 어리광을 부리듯 술주정을 한 바탕 한후 잠에 골아 떨어지는 만행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런 철없는 행동덕에 안연주의 마음은 방중식에게 흠뻑 휩싸이게 되고 그들의 일탈을 합리화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행동으로 치장된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치부하지만 어찌 보면 방중식의 철저한 계산 하에 나온 전략과도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탈출구도 없고 이렇게라도 해서 안연주를 곁에 두고 결혼 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는 중도적인 방편을 계산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기심을 버려야 치유가 된다

영화속에서 인물들이 벌이는 애정행각은 이처럼 자기 기만 식이다. 그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자기의 본 모습은 가슴속 깊이 쳐박아둔채, 진심으로 상대에게 돌진하는게 아니라, 위선과 거짓과 계략으로 상대를 끌어들인다.

강정호의 불륜을 지켜 본 왕성옥과 그 당사자인 강정호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정호를 떠나 보낸 왕성옥이 그 빈 자리에 조문경을 들여보냈고, 그들은 황홀한 첫 날 밤을 경험한 후, 왕성옥은 사랑한다는 말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려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조문경의 엄마가 왕성옥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한 후, 그녀의 신념은 뒤집어진다. 이제 조문경과 자신의 비젼은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하필이면 전화를 건 곳이 왜 그 문제의 강정호일까? 거칠게 항의하듯 몰아부쳤던 그 대상, 자신 몰래 정분을 나누며 가슴에 상처를 안겨줬던 그 남자인 강정호에게 왜 하필 재회의 러브콜을 보냈던 것일까? 왕성옥의 가슴에는 아직도 강정호를 못 잊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조문경과 하룻 밤을 같이 하고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했을 지라도 조문경은 엄연히 급조된 인물이었고, 오랜 정분은 여전히 강정호 였던 것이다. 그런 강정호가 잠시 실수를 해서 자기 곁을 떠나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거다. 자신도 알고 보면 양다리 걸친 입장에선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든 대목도 여기서였다. 결정적으로 조문경과 안 되었다면 결국 자기도 조문경과 그냥 사귄 게 아니고 뭔가.

이건 어디까지나 진실이 아니라 그녀의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만약 조문경과 다 잘 되었다면 이제 강정호는 떠나 보내야 할 사람일 수밖에 없는 처지일 테니까. 안 되니까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밖에 없더란 말인 거다. 바로 인간의 합리화란 것이다.

강정호는 또 어떤가. 매일 시를 써야만 하는 그의 금욕적 태도는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진실해 지려고 노력하는 그의 불안한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이 영화에서는 모든 사람이 결국 시를 쓰게 된다. 시를 쓴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건 더러운 자신이 좀 더 깨끗해 지기 위한 노력이다. 강정호야 말로 위선적인 인간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물론 모든 인물이 다 위선적이지만 말이다.

졸지에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 보게 된 조문경은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경험하며 캐나다로 쓸쓸히 떠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 모래 위에 올린 성은 언제든지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읽게 한다. 자신이 외롭다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만들어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은 이처럼 위험하다. 진정한 위로란 그 이기심을 없애고 대상에 대한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이 전해져야만 자신도 깨끗해지고 맑아지면서 치유가 되는 법이다.

이 영화는 치유를 하고자 노력하지만 그 방향이 잘못되어 실패하거나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현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저 하하하라고 웃고 넘길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태의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런 모습 속에 공감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정재형
동국대 연극영화과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영화이해의 길잡이』, 『영화영상스토리텔링100』 등의 역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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