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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언어가 공해로 남지 않으려면
정치인들 언어가 공해로 남지 않으려면
  • 사회책임네트워크
  • 승인 2019.06.0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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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언∙막말, 트집잡기, 생떼로 표현되는 정치인들의 언어공해가  심각하다. 미세먼지와 체감경기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과도하게 장기화되는 국회 공전과 그에 따른 언어공해는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게 한다. 진영을 막론하고 국회에서 소통하지 않을 요량이면 모두 정치인이라는 이름을 걷어야 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펴보건대 소통부재의 시발점은 언제나 정치인의 못난 입이었다. 못난 입은 갖추지 못한 사고에 기인한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여성 상품화 발언과 장애인 차별 발언은 화자의 저열한 의식을 부지불식 간 드러내는 정도지만 최근의 세월호 유족 혐훼, 5,18 왜곡과 관련한 경쟁적 발언들은 차기 총선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의 묵은 상처를 공공연히 헤집고 애써 이룬 국민적 합의를 뒤흔드는 반사회 의도가 분명해서 한층 심각하다. 정치권력의 피해자에 대한 신중한 배려를 외면한 채 국회 밖으로 돌려 쏟아내는 드잡이식 정당 발언과 과도한 자당 의원 감싸기 또한 향후 총선을 고려하더라도 시민의 정서에 맞지 않아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정제된 사고로 시민사회의 지지를 동반할 화법은 없는 것일까? 1970년대에 청년시인 김지하는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는 산문에서 냉소∙조롱보다 더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궁극적 무기가 ‘풍자(諷刺)’라 하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풍자는 ‘영혼으로 승리하려는 자, 생생하게 불꽃처럼 타오르려는 자’가 선택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오적(五賊)』, 『비어(蜚語)』, 『똥바다(糞氏物語)』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부패와 그 바탕이 된 일본의 경제적 침탈을 신랄하게 까발리고 저항하는 풍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 기반은 닥친 현실을 시민사회에 시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면서 벼리어진 통찰이다. 노년의 김지하와 달리 청년 김지하가 훨씬 빛나고 설득력 있는 이유다.

우리 곁에도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풍자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대의 말을 멈추게 하던 정치인이 있었다. 남들에게는 풍자로 답하지만 자신에게는 너무 엄격해서 스스로 풍자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노회찬이 그다. 청년 김지하가 유장한 풍자의 대가라면 노회찬은 간명한 풍자의 모범이다. 정치수사(政治修辭)는 그의 취향이 아니다. 그의 풍자는 삶의 현장과 거리에서 풍상을 맞아가며 생성된 칼날이었다. 자신의 사고를 앞세우기 보다는 이를 수용할 사람들 관점에 기초했기에 접근이 쉽고 설득력이 높았다. 해학도 여유도 빈곤한 요즘 정치계를 보노라면 먼저 떠난 그가 야속하고 새삼 그립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정계에는 자신의 사고에 매몰된 클라망스가 많은 듯하다. 클라망스는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소설 『전락(轉落)』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뛰어난 변호사여서 법 위에 군림하면서도 정의롭다고 믿었던 그, 그러나 마땅한 도의를 방기한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의 조소를 느끼며 자신의 위선과 마주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자신이 지배하던 법에 자신이 심판 받을까 초조해하고 사람들의 비난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시달리지만 끝내 자신의 행동에 대한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참회 없이 스스로를 기망하는, 자괴와 합리화의 악순환에 갇힌 부조리(不條理), 이를 전락이라 한다.

요즘의 정치인들에게서 클라망스 데자뷰를 경험하는 시민들 대다수는 정치인들에 대한 조소를 거두지 않고 있다. 클라망스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허영과 위선이 드러날까 두려워 더욱 사납게 모진 소리를 반복하면서 다음 총선의 민의가 자기편이라고 확신하지만 스스로의 참회가 부재하다면 당락과 무관하게 전락은 계속될 것이다.

 

풍자의 수준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스스로의 성찰을 요하는 자기검열과 참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시라. 외풍으로부터 자기 중심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이 있다. 경청과 침묵이다. 정현종 시인은 ‘경청’을 이렇게 표현했다.

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 아, 오늘날처럼 /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 ∙∙∙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 세상이 조금은 좋아 질 듯, / ∙∙∙

침묵 또한 효율적 대안이다. 침묵은 입으로 재난을 부르는 정리되지 않은 사고를 진정시킨다. 하여 집착과 아집의 질주를 제어함으로써 본질을 응시할 수 있게 한다.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자신이 장미라고 착각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신이 스스로 푸른 하늘이라고 도취한 정치인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부디 정치인들의 언어가 공해가 아닌 품격의 표준으로 인용되기를 기대하며,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으로 글을 마친다.

∙∙∙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 침묵할 것 // ∙∙∙ 서둘지 말 것 / 침묵할 것 // ∙∙∙ 쉽게 꿈꾸지 말고 / 쉽게 흐르지 말고 / 쉽게 꽃피지 말고 / 그러므로 // ∙∙∙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 뒤에 있다.

 

송상훈 (사)푸른아시아 지속가능발전정책실 상근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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