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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주의 발원지에서 초국경 교류의 관문으로
한국 사회주의 발원지에서 초국경 교류의 관문으로
  • 신성은 l 여행전문가
  • 승인 2019.06.28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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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의 소비에트군 기념상

블라디보스토크가 아주 뜨겁다. 특히 한국인들의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바롭스크를 제치고 극동러시아의 중심으로 부상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원래 군항이다. 지난 1992년까지 내국인에게조차 출입이 제한됐었다. 그러나 소련의 몰락과 함께 외국인에게 개방되면서 국제도시로 빠르게 발전했다. 지난 2015년 자유항법이 발효된 후, 발전에는 가속이 붙었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에는 ‘동방을 정복하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마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을 상징하는 듯한 이름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러시아에 복속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 청나라에 속했던 곳이나,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해 러시아에 복속됐다. 처음부터 태평양진출을 위한 군항으로 개발된 이곳은 극동러시아의 정치·군사 요충지로, 러시아극동함대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다.

 

  2015 2016 2017 2018
한국▶연해주 3.3만 5.1만 10만 17.5만
연해주▶한국 11.1만 12만 14.1만 10.7만

 

지난 6월 4일 유리시아21, 하나금융연구소 주관 ‘초국경제협력포럼’에서 이고르 흐루쇼프 러시아연방 교통부 블라디보스토크 대표는 “2018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한국 관광객은 22만 명에 달한다. 최근 3년간 연 100% 이상 급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성장세다.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토크의 향기

연해주와 한국의 관광객이 역전된 시점은 2017년이다. 한국의 해외여행객은 매년 급증하는 반면, 러시아는 소외지역이었다. 오히려 연해주 지역 러시아인들은 가까운 한국을 즐겨 찾았다. 이렇게 한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유럽을 찾는 관광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해외 관광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60% 이상이다. 유럽은 한국에서 멀다. 그럼에도 유럽은 한국인들에게 선망의 여행지다. 세계적인 여행예약 사이트 ‘스카이스캐너’가 2017년 10월부터 2018년 9월 사이 한국인 검색 증가 데이터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위 포르투갈 등 10위 내 8개 지역이 유럽이다. 세종대학교와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여행지 관심도 조사결과에서도 유럽과 대양주가 1위로 나타났다. 이렇게 대부분의 조사에서 유럽은 단연 선호도 1위를 차지한다. 

출국자 통계는 지난 2006년 출국카드가 폐지된 이래 정확하지 않다. 각국의 입국데이터를 활용하거나 항공사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정부 관광빅데이터센터 자료에 의하면 유럽 여행객은 2012년 한-EU FTA 시점을 전후해서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11년, 17만 2,866명에서 2017년 36만 7,172명으로 증가했다. 6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영국도 약 14만 명에서 20만 7,550명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대부분 비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유럽에 대한 선호도는 무역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2년 한-EU FTA 타결 이전 한국은 무역 거래에서 매년 흑자였다. 2007년 232억 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매년 적자다. 2014년에는 적자가 140억 달러에 이르렀다. FTA 발효 이전 5년간 무역수지는 820억 달러 흑자였으나, 이후 5년간 무역수지는 359억 달러 적자다. 백화점이나 홈쇼핑에는 유럽제품이 가득하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제품, 이후에는 미국제품이 유행의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럽제품에 대한 신뢰도와 선호도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유럽은 지리적으로 멀고 비용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가장 가까운 유럽’이다. 유럽에 대한 선호도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유럽으로서의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는 짧다. 러시아는 태평양진출의 교두보로 극동러시아를 개발했으며, 다양한 이주정책을 펼쳐왔다. 이런 역사로 도시 전체에 유럽의 향기가 그윽하다. 유럽으로서의 전통과 역사는 미약하지만, 전통적인 유럽의 소도시 분위기를 물씬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 여행객들에겐 ‘가장 가까운 유럽’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주의, 항일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

물론 블라디보스토크의 의미와 역할은 정치적·군사적 측면에서 더 컸다.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갈등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유항으로 지정하고 극동러시아 경제의 중추도시로 육성하고 있다. 볼거리도 적지 않다. 혁명전사 광장, 블라디보스토크역, 아르세니에프 향토박물관, 요새박물관 등에선 유럽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더욱이 이 지역에는 발해의 족적이 남아있다. 스탈린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체취를 맡을 수 있고,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한인들은 1850년대 이후 이 지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는데, 1926년 블라디보스토크 관구집행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한인 수가 무려 18만 명이 넘었다. 이동휘는 하바롭스크에 한인사회당을 조직했는데, 그가 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고려공산당을 창설한 지역도 바로 이곳이다. 또한, 공산당 조직 내 다툼이 치열해지자 분파 해산명령을 내린 코민테른이 집행부 코르뷰로를 설치한 곳도 다름 아닌 블라디보스토크다. 항일운동 유적지도 연해주 곳곳에 남아있다. 신한촌,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이동휘 집터, 이상설 유허비, 최재형 거주지 등 30여 곳의 유적지가 산재해있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서울에서 불과 815km다. 일본 도쿄보다 가깝다. 다만 아직 북한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탓에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러시아 항공 등 러시아 국적기들은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비행기가 1일 10편이 넘고, 올해 3개의 저가항공사가 추가 선정돼 향후 증편이 예상된다. 

크루즈여행도 늘어날 전망이다. ‘초국경 경제협력포럼’ 주관여행사인 롯데JTB는 크루즈여행상품도 확대할 예정이다. 해외여행에서 가까운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비행거리도, 비용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한국을 찾은 해외여행객은 1,534만 6,879명이다. 이 가운데 일본이 약 295만 명, 중국이 약 479만 명이다. 대만이 약 112만 명 등 아시아가 약 1,236만 명이다. 80%가 넘는다. 

따라서 블라디보스토크는 천혜의 관광조건을 지닌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여행객을 보유한 합계 인구 약 17억 명의 중국과 한국, 일본이 근거리에 있으며, 최근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는 아시아가 배후에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러시아 관광객이 약 30만 명. 거의 절반 정도가 연해주지역에서 오고 있다. 그만큼 여행에서 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아직은 열악한 관광인프라 

다만 블라디보스토크의 관광인프라는 여전히 열악하다. 5성급 호텔은 이번 포럼이 개최된 롯데호텔이 유일하다. 200실이 넘는 호텔도 없고, 쇼핑 시설 및 대중교통도 아직 부족한 현실이다. 러시아는 해외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투자를 막는 정치사회적 환경도 존재한다. 사단법인 ‘유라시아21’의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기업 간 투자협약이 잘 진행되다가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온다”며, ‘정치사회적 이권세력들의 이해관계’를 러시아 투자를 막는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한러 경제협력, 특히 한국과 극동러시아의 경협은 미국의 대북제재, 러시아제재, 유엔의 양국 제재 등으로 전진이 쉽지 않다. 이에 접근이 용이하고 제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관광산업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과 러시아는 양국 모두 관광선진국이 아니다. GDP기여도, 일자리 기여도가 세계평균 절반 수준인 약 5%에 머물고 있다. 양국 모두 여행을 즐기는 탓인지, 관광수지 적자는 두 배에 달한다. 유럽관광대국들이 상위권에 포진한 세계관광경쟁력 지표에서도 한국은 20위 안팎, 러시아는 30위권 밖이다. 관광산업은 접근은 쉽지만 육성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2018 입국(천명) 출국(천명) 관광수입(100만 달러) 관광지출(100만 달러)
  한국         13,336             26,496       16,999 33,354
       러시아              24,039             39,629       14,983 35,585

 

롯데JTB 관계자는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단체관광은 아직 인두세 같은 편법모객이 거의 없다. 다만 중국은 이미 인두세 등 쇼핑 위주의 단체관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약 56만 명의 관광객을 보내 단연 1위다. 한국은 세계적인 쇼핑 대국이다. 면세점 매출이 세계 1위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국 관광객을 모체로 한 심각한 편법이 존재한다. 아직 한국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은 이런 관행에 물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적으로 자유 관광객(FIT)이 늘고 있는 추세도 한몫 거든다.  

물론 단체관광을 자본주의적 적폐로 몰 필요는 없다. 다만 극심한 이윤추구로 여행이 의미 없는 일상이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여행은 가치의 과도한 상품화에 대한 반작용이 적지 않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품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편안함과 넉넉함이 있다. 이 역시 유럽전통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급하지 않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분위기는 뜨겁지만 관광산업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그 과정에 여행의 인간적 가치와 산업적 발전이 함께 한다면, 진정한 핫플레이스가 될 것이다.   

 

 

 

글·신성은 
서울대에서 레닌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에서 창업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와 정통부산하 지식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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