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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쁜 남자의 생존 성장기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쁜 남자의 생존 성장기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01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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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실화가 아니라고 해도 모두 믿을만한 혼탁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고발성 영화거나, 실화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라마틱한 개인의 삶을 그려낸 영화이거나……. 후자에 속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픽션보다 더 극적인 실화를 통해 벼랑 끝에 몰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과 함께 타인의 삶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개인이 되기까지의 성장담을 때론 재기 넘치게, 때론 묵직하게 감정 조절을 하면서 그려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HIV 바이러스 감염으로 30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가 7년을 더 살았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픽션보다 더 극적인 7년의 성장기

1970년대 발병이 시작되었지만, 1985년 세계적인 미남 배우 록 허드슨이 사망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일명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는 동성애자들이나 걸리는 저주받은 병이라는 편견 속에서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수많은 감염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끔찍한 병이었다. 최근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뉴스도 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이 병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차별받는 병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 론 우드로프(매튜 매커너히)는 어느 날 쓰러져 실려 간 병원에서 HIV 양성 반응 판정을 받는다. 술과 도박, 여자, 마약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벌이던 그는 동성애자도 아닌데, 그 병에 걸린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평소 동성애자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던 그는, 같은 이유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는다. 게다가 의사는 앞으로 남은 생명이 고작 30일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론은 좌절하지 않는다. 주저앉아 과거를 후회하지도, 남은 생을 위해 반성하는 삶을 살지도,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도서관에 가서 에이즈에 대해 공부한다. 그러다 임상실험 중인 치료제의 존재를 알고, 병원 직원을 매수해 약을 빼돌려 스스로에게 투약하다 죽을 뻔 하지만, 30일이 지난 후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멕시코 무면허 의사로부터 FDA 승인을 얻진 못했지만 해외에는 이미 다양한 AIDS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트랜스젠더 레이언(자레드 레토)와 함께 불법 밀수한 약을 팔기 시작한다.

주인공 론 우드로프,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기는 보수적인 마초에다 대화의 절반은 상대를 비하하는 욕설이다. 상대와 수를 가리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에 마약, 술은 일상이다. 철저한 비호감 캐릭터 론 우드로프에게 동성애자, 특히나 AIDS에 걸린 동성애자는 철저하게 무시해도 좋은 벌레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오만방자한 태도로 살아온 그가 맞이한 병은 그를 벌레취급 받는 존재로 추락시킨다. 그렇게 소외받는 사람이 되고서야 소외받은 자들에 대해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밀수한 약을 팔기 시작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병에 걸린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 병자들은 그에게 돈벌이 수단 이상의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존법을 터득하고 레이언과 사업적인 파트너가 되었을 뿐이지만, 레이언과 소소한 감정들을 나누면서 친구가 된다.

 

장 마크 발리 감독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손잡고 스스로 체득하면서 변해가는 론 우드로프의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을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보여준다. 동정심을 가지고 감정을 속이거나, 개과천선을 설파하지 않기에 우드로프의 변화 과정은 더디지만, 결국 울컥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영화의 제목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우드로프가 AIDS 환자들에게 약을 팔아 수입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회원제 회사 이름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공권력을 이용해 약품을 압수하고 제재를 가하지만, 론의 밀수는 멈추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론은 드디어 자신이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치료제를 구매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신이 나서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회의 제도과 관습이 만들어낸 편견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 스스로 깨닫는다. 제도권에 맞서 싸우는 우드로프의 정신은 7년 동안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과 그의 손에 달린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과 함께 성장해왔다.

 

몸의 변형, 그 아름다운 투혼

영화가 끝나면서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은 온전히 배우들 때문이다. 배우가 연기를 위해 처절하게 자신의 몸을 변형시켜 관객들에게 보여줄 때, 그 숨겨진 고통을 감내하는 직업의식이 때론 관객들에게 흥분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영화를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두 사람의 뛰어난 앙상블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배역을 위해 무려 20kg의 몸무게를 감량한 채 보여주는 시체 같은 두 사람의 몸이다. 지적이고 섹시한 이미지였던 매튜 맥커너히는 깡마른 얼굴과 퀭한 눈으로 우드로프의 7년간의 변화를 몸으로 각인시킨다. 2012년 <매직 마이크>에서 80kg대의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였던 그는 61kg까지 체중을 줄였다. 자레드 레토의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존 레넌의 살인범을 연기하기 위해 <챕터 27>에서 무려 30kg의 체중을 늘린 바 있는 그는 론의 파트너 트랜스젠더 레이언이 되기 위해 몸무게를 줄여 53kg의 젓가락 몸매를 선보인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릴 것 같은 그의 몸매는 안타까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더불어 여성에 가까운 목소리와 몸짓으로 죽음을 앞둔 트랜스젠더의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들의 아름다운 몸의 연기를 칭송하며 2014년 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제50회 방송영화비평가협회에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각각 시상했으며, 시카고, 뉴욕 등 총 6개 비평가협회에서 남우조연상을 주었다. 그리고 2014년 아카데미 역시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을 시상하여, 누구도 이견을 달기 어려운 두 배우의 연기를 인정해 주었다. 2005년 기묘한 성장영화 <크.레.이.지>, 두 가지 서사적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엮었던 2011년 <카페 드 플로르>로 주목받았던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동성애, 마약, AIDS로 얼룩진 80년대의 여러 불편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려내지만, 영화는 줄곧 기묘하게도 아름답고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투혼이랄 밖에 없는 두 배우의 처절하면서도 몸으로 체화된 연기는 아름답달 밖에…….

 

* 사진 출처 : imdb.com _ Dallas Buyers Club _ photo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2018년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텐아시아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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