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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인공지능 시대의 컬트영화 <서스페리아(Suspiria)>
[영화평] 인공지능 시대의 컬트영화 <서스페리아(Suspiria)>
  • 정지혜(영화평론가)
  • 승인 2019.08.01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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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판단은 이제 기계가 맡게 됐다. 아직은 모든 문제에 대한 값이 입력돼있는 소 인공지능의 시대일 뿐이지만, 소 인공지능만으로도 인간은 단순노동의 영역에서 이미 밀려나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영화 <서스페리아>(1)에 인공지능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197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인공지능을 암시하는 그 어떤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관객이 느낄 혼돈과 충격, 추리와 해석은 극히 인간적인 작용이다. 따라서 영화란 무엇인가? 또는, 동시대 인간의 지적유희의 세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단순한 판단은 이제 기계가 맡게 됐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는 무엇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한 편의 컬트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서스페리아>는 1977년 개봉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마녀 3부작 중 하나로, 지알로 장르의 영화에 속한다. 지알로 장르는 피와 살인, 기괴한 시체로 가득 찬 과시적인 이탈리아 공포영화 장르를 말한다. 1977년 작 <서스페리아>는 2018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혹자는 원작의 파괴, 혹자는 원작의 주석, 혹자는 원작을 뛰어넘는 문제작으로 이 새로운 버전의 <서스페리아>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관객의 어떤 해석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컬트영화이기 때문이다.

 

서스페리아 포스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꽉 찬 필모그래피로 최근 이탈리아 영화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 고전영화를 포함해 이탈리아 영화미학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방식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공공연하게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나 루키오 비스콘티, 혹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의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는 서사의 안팎에서 과거와 현재, 혹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충돌하며 관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전영화의 미학이 그의 손을 거치면 동시대의 미학으로, 미래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블랑의 무용단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의 오하이오에서 수지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지는 조롱 같은 오디션에서 마술적인 에너지를 보이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블랑의 눈에 띄어 합격한다. 이 무용단은 마녀들의 소굴로 작품의 주인공을 맡는 소녀들에게는 기이한 일들, 숨 막히는 입문제의가 일어나는 듯이 보인다. 

수지역을 맡은 배우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다코타 존슨인데, 그녀의 전작이 이 영화의 서사에까지 따라온다. 수지는 BDSM의 은유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이 세계를 역전, 전복할 준비가 돼 있다. 이 인물은 한편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렸던 미국의 참전이나 세계정세 속 미국으로 확장될 수도 있고, 자유주의나 68혁명 등을 떠올리게도 하는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고도 비밀스러운 인물이지만 그녀의 춤, 표정, 눈빛은 난해한 서사를 짊어질 만큼의 에너지가 충분하다.

 

수지 역의 다코타 존슨

<서스페리아>의 핵심은 나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기괴한 공포의 감각, 과시적인 폭력성, 비일상적인 이미지가 오늘 어떤 컬트영화로 부활했기에 심지어 한국 개봉의 포스터는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일까?

<서스페리아>의 배경이 되는 헬레나 마르코스 아카데미는 세계 질서에 대한 탐구 또는 우화다. 그 내부의 관계를 보면, 감독이 이 세계에 새로운 세대가 도래했음을 포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알려지다시피 주요한 모든 역에 여성이 캐스팅됐고 영화는 페미니즘을 언급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페미니즘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다층적인 서사를 전개한다. 무용단과 마녀와 비밀의식에 대한 표면적인 이야기, 베를린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충돌, 베를린이라는 우화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는 세계정세의 알레고리다. 이 층위는 춤, 음악, 패션, 배우 어느 골목을 찾아 들어가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분화해낸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나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서사의 빈자리를 몽타주로 채워 넣었다. 영화의 스타일은 낯설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 영화의 부활을 선도하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을 거쳐 영화는 2019년 도착했다. 영화의 배경은 여전히 1977년의 베를린이지만, 이 베를린을 보는 시각은 관객이 위치한 2019년에 있다. ‘왜 이탈리아 감독이 독일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독일에 대해 이야기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여기서 베를린을 상징적 공간, 혹은 영화 속 거울 방처럼 자신의 공간을 비추는 미장아빔(2)의 공간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영화는 독일 고전영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등도 비추고 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 독일 등과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서스페리아>에서 전후의 독일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후의 세계에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처럼 존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영년>의 속편, 혹은 답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은 이 불친절한 영화에서, 대립하는 이데올로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페미니즘과 BDSM, 민족주의와 유럽 공동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세대 간 갈등과 모성신화. 1977년 베를린의 한 무용단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 전시의 끝에는 충격적인 제의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서사를 전복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 이상으로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말미에 가서는 이데올로기의 전시와 경쟁이 끝나는 시대를 포착한다. 

 

포레스트 작가의 일러스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인공지능 시대에, 꽤 취향을 타는 이 컬트영화가 시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이탈리아 감독의 리메이크된 이탈리아 영화에는 이탈리아적인 것과 탈(脫)이탈리아적인 것, 해석을 위해 필요한 역사적 맥락, 혹은 영화 외부의 서사들이 뒤엉켜 생략된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유럽이라는 유기적 공동체의 생략된 서사들이 참견하고, 여러 장르의 문화적 맥락들이 첨언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복잡하고 추상화된 이야기와 감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다. 디지털 치매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택시기사들은 네비게이터 없이 길을 찾지 못하고, 우리는 전화번호를 몇 개 외우지 못한다. 그런 우리는, 컬트영화에서 마리 비그만(3), 레베카 호른(4), 아라키 노부요시를 떠올리고 충격과 불쾌의 감각을 사유로 봉합할 줄은 안다.

영화가 끝나는 곳은 어디인가? 촬영장도, 극장도 아니다. 영화는 극장에서 세계로 나와서 동네북이 되고, 놀이가 되며 대화가 되면서 무한재생된다. 그러다가 비로소 관객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담론이 이전의 담론을 전복할 무렵이 돼서야 끝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루카 구아다니노와 같은 감독을 만나 마녀처럼 소생하기도 한다. 

 

 

 

글·정지혜
극작가, 칼럼니스트,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 프로그래머, 맨션나인 갤러리의 전시기획자, 딥플레이북의 발행인으로 두서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영화로 대화하고 축제하고 전시하고 연애하는 영화주의자.

 

(1) 제목 <Suspiria>의 정확한 발음은 ‘서스피리아’다. 하지만 원작을 번역하며 ‘서스페리아’로 잘못 이름 지어져 한국어 제목은 <서스페리아>가 됐다. 제목의 오역을 떠올리며 오독의 세계로 돌입할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2) Mise en abyme; ‘액자기법’이라고도 하며, 한 작품 안에 또 하나의 작품을 집어넣는 예술적 기법을 말한다.

(3) Mary Aigman(1886~1973), 독일 하노버 출신으로 현대무용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마녀의 춤>, <죽음의 춤> 등의 대표작이 있고 죽음과 전쟁을 자주 다루는 어둡고 신비로운 이미지의 무용가. 고전발레의 세계와 대립하는 미의식을 가지고 생의 추함, 고통, 공포 등을 춤으로 표현했다.

(4) Rebecca Horn(1944~), 독일 출신의 전위 아티스트. 1968년부터 신체의 일부를 길게 늘이거나, 끈으로 묶거나 깃털로 감싸는 일종의 ‘신체조각(Body Sculpture)’을 선보였다. 첫 신체조각 작품인 <연장된 팔>(1968)에서는 여성의 속박과 신체학대를 다뤘으며, 여체를 검은 깃털로 덮은 <파라다이스 미망인>(1975)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혼성물로 쾌락과 죽음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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