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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서로의 가치를 확인해야하는 이유 - 영화 <엑시트>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서로의 가치를 확인해야하는 이유 - 영화 <엑시트>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8.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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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에서 용남(조정석)과 의주(윤아)는 급박한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빌딩 벽을 기어오르고 그 사이를 뛰어 넘는다. 그 와중에 자기들의 구조 순서를 기꺼이 양보하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완성된 체력과 윤리의식마저 선보인다. 특히 절박한 상황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상황은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뉴스와 함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장르로 구분하자면 액션물이지만, 한 사건을 거의 동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면 다큐멘터리 특히 페이크 다큐 같다가도 동시대의 젊은 세대가 가진 고민을 종합선물 세트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사회학적 드라마로 읽히기도 한다. <엑시트>가 용남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주면서 그들이 처한 문제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사회학적 드라마가 맞을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보게되면 먼저 용남이가 처하게 된 갑작스런 사고는 마치 회사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던진 상황질문과 같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그 질문에 대한 용남이의 대답은 사실 ‘이 곳에 뼈를 묻겠다.’는 식의 절박함을 담아낸다. 현실 속에서 대개 이러한 대답은 면접 탈락이라는 쓴 맛을 제공 할 테지만 <엑시트>에서는 이게 ‘정답’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용남이가 몸소 보여주려던 이 정답은 기성세대가 개입하면서 통제의 대상이 된다. 쉽게 말하자면, 빌딩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정답으로의 행동은 부모로부터 곧바로 제지받게 됐다는 뜻이다. 이를 사회학적 차원으로 넓혀보면, 용남이와 부모의 관계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관계로 보이고 제지는 일종의 ‘간섭’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관계’는 사회적으로 너무나 결정적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극복의 대상이 되다가도 어떤 때는 순응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런 관계와 조건은 결국 왜 영화 <엑시트>가 용남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어쩌면 기성세대들이 마련한 사회적 조건이 견고하다고 할지라도 젊은 세대들이 나서야 결국 일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무능해 보이기만 했던 용남이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을 때 갑자기 나는 용남이가 사실은 자신의 사회적 무능력을 극복하고자 발버둥친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적 조건에 저항하려고 몸부림친 것은 아니었을 까라고 달리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니 용남이가 괴로워했던 자기의 무능력은 결코 자신만의 무능력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기성세대의 간섭은 꽤 견고한 벽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좌절은 자기 무능력을 확인하는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철옹성과 같은 견고한 벽 앞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용남이의 ‘무능’은 도시 전체를 위험에 빠트린 사고 속에서도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할 수 있는 ‘힘’으로 돌변하여 한국 사회의 견고한 벽 한 면을 그렇게 눈에 띄게 만든다. 게다가 그 힘은 서로의 가치를 확인하기만 하면 꽤 강력한 전략적 단호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곁들인다. 그 가치는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써도 변할 수 없는 그런 가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용남이와 의주의 관계는 거기에서 빛을 발한다. <엑시트>의 흥행 성공 요인은 여기에 공감한 세대들의 격한 함성 때문이었으리라.
 

 

 

글·지승학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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