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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아침 똥을 저녁에 줍다
[안치용의 프롬나드]아침 똥을 저녁에 줍다
  •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9.09.02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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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공원에서 잠을 자는 중년 여인이 있다. 그리 초라한 행색은 아니다. 벤치 앞에 신발을 얌전하게 벗어놓고 모로 누워 잔다. 대충의 나이를 파악할 수 있는 게 항상 벤치로 등을 대고 얼굴을 앞으로 해놓고 잠들어 있다. 노숙자 같지는 않으나 종종 노숙을 한다.

휴일 날 아침에 개들과 함께 나선 길에서 노숙한 듯 잠들어 있는 그를 보았다. 한 번도 그가 앉아 있거나 눈을 뜬 것을 본 적이 없다. 미동하지 않는다. 한데 저녁 무렵 개들과 공원에 당도하니 그가 자리를 바꿔서 자고 있다. 아침 자리의 맞은편이다. 아마도 햇볕이 직접 드는 각도를 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날씨가, 공원에서 잠들기 참 좋다. 나도 어디 쾌적한 벤치 하나 골라서 잠들고 싶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한둘이 아니나, 생각해 보니 내가 코를 골 듯하여 이용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개들 산책 시중은 누가 드나. 저 사람은 언제까지 공원에서 잠을 잘까. 몇 달 후면 노숙하기 힘들어질 텐데.

 

朝花夕拾. 아침 꽃을 밤에 줍는다고. 애매하긴 하나 아침에 나의 개가 싼 듯한 작은 똥덩어리를 치운다. 아침엔 잠이 덜 깨어 놓쳤나 보다. 개는 저녁 똥을 새로 싼다. 순환은 좋은 것이다. 그가 잠든 자리를 피해 공원을 돌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슬쩍 뒤돌아본다. 그는 여전히 미동 없이 그 자세로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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