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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문화톡톡] 너와 나의 서사가 만날 때, <유열의 음악앨범>
[송연주의 문화톡톡] 너와 나의 서사가 만날 때, <유열의 음악앨범>
  • 송연주(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16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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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1. 순수한 관계에서 소통하는 너와 나의 서사

오랜만에 만난 사이에 흔히 오가는 질문이 있다.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어?” 두 질문에는 차이가 있다. “잘 지냈어?”라는 질문에는 “응” 혹은 “아니”라고 하면 되지만, “어떻게 지냈어?”라는 질문은 상대의 지난날이 고단해 보인다면 쉽게 던지기 어려운 질문일 정도로 질문을 받는 사람의 지난 서사를 파고든다. 답하는 사람이 스스로가 잘 살아왔다고 믿지 못하면 구체적으로 답하기 난처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지난 시간에 대해 답하고 싶은 만큼의 설명을 붙이고)~ 지냈어.”라고 답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의 정보를 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관심을 의미하고, 어떤 정보를 얼마만큼 주느냐는 답하는 사람이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출 것이고, 알리고 싶은 것은 어쩌면 묻지 않아도 먼저 말할 수 있다.

연애는 나와 너의 만남에서 관심이 싹트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관심 없이 만남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것은 사랑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일회적인 관계일뿐이다. 문제는 상대에 관한 관심이다. 연애의 주체들은 자기의 서사를 가지고 만난다. 연애 이전의 삶을 함께 가지고 오는 것이다. 서로의 서사에 대한 관심은 질문을 부른다. “너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이 괜찮았는지...” 그 서사를 상대에게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공유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가 살아온 삶의 영역을 공유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공유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서사는 자기 검열되어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판단되고, 상대는 듣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마치 라디오에 보내는 사연처럼.

앤소니 기든스는 친밀성을 사람들이 서로 평등한 맥락 속에서 타자와 그리고 자기와 감정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며, 자유롭고 공개된 의사소통은 ‘순수한 관계’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또한 순수한 관계란 혈연, 전통, 관습 등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각각의 개인이 그 관계에 부여하는 의미와 관계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유지·변화되는 친밀성과 애정에 기초한 관계라고 본다. 타인과 열린 대화를 위한 조건으로 자기-자율성 그리고 강박성과의 단절을 말하며, 그러한 대화는 관계가 성찰적으로 조직되는 수단일 뿐 아니라, 개인적인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말한다. (1)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를 배경으로 자신은 좀 후지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미수(김고은)와 자신의 비밀 서사를 가진 현우(정해인)가 기적처럼 우연히 마주치고 어그러지는 11년의 세월을 그린다. 영화에서는 어두운 자신의 서사를 미수가 만나기 않기를 바라는 현우의 마음과, 어두운 현우의 서사를 만나려는 미수의 노력이 충돌하고 있다.

 

2. <유열의 음악앨범> 속 질문들

1) 서로의 서사를 공유하는 첫 질문

1994년 10월 1일 가수 유열이 음악앨범의 DJ가 되던 날, 미수제과에 들어와 두부가 없냐고 묻던 현우. 미수는 처음에 ‘고등학생이 감방에 다녀온 건가?’하며 신기한 듯, 두려운 듯 현우를 보았다. 그 뒤 현우는 미수제과에 아르바이트생을 자처하며 은자(김국희)와 미수를 돕기 시작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너 진짜 거기 갔다 왔어?”

미수가 현우에게 꺼낸 첫 질문이다.

“가족 아니죠??”

현우는 미수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바로 이어서 자신의 질문을 한다. 은자와 미수의 관계를 묻는 말이다. 은자는 차마 답을 하지 못하는데, 미수가 어머니와 은자와의 추억을 말하며 가족과 같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난 현우는 자신의 소년원 생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서로의 서사를 처음으로 공유한 것이다. 그 뒤로 현우는 종종 질문을 던진다. “누나 몇 년생이세요?”, 벽에 쓰인 낙서를 보고 “이건 뭐예요?”라는 질문으로 미수의 서사에 접근한다. 그리고 현우는 미수와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날, 현우의 비밀 서사에 얽힌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이들의 인연은 끝나게 된다.

 

2) 우연 속 미수의 질문, 먼저 고백하는 현우의 서사

“어떻게 왔어?”

“나 좋은 일 있는데, 검정고시 패스.”

1997년 IMF로 취업난을 겪는 미수는 현우와의 추억이 가득한 ‘유열의 음악앨범’ 프로그램 보조작가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출판사 정규직으로 안전한 취업을 선택한다. 안정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미수의 신념이 기대로 가득 찬 날, 폐업한 미수제과 앞에서 미수는 현우와 우연히 재회한다.

미수는 현우에게 어떻게 왔냐고 묻지만, 현우는 자신이 검정고시 패스한 것을 먼저 알려준다. 뜻밖에 현우가 먼저 그동안의 자기 서사를 말했고, 잘 살아가고 있었구나 싶은 안도감에 미수는 현우를 기꺼이 축하해준다.

“내일 같이 갈래?”

은자가 수제빗집을 한다는 안부를 전하며 함께 은자에게 갈 수 있는지 묻는 미수의 말에 현우는 “내일 군대 가는데”라고 답한다. 미수는 현우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자기 집에서 현우를 재운다. 그리고 미수는 그동안의 기다림을, 현우는 돌아오고 싶었음을 공유한다. 현우에게 메일 계정을 만들어준 미수는 실수로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못하고 현우가 비밀번호를 풀어주기를 기도하면서 읽지 못하는 메일을 계속해서 보낸다. 잘 지내는지, 군 생활은 어떤지 미수는 현우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자기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2000년, 신기술 개발로 사진을 저장하는 핸드폰이 나왔다는 유열의 멘트와 함께, 현우는 메일의 비밀번호를 풀고, 미수와 통화로 재회한다. 그러나 만나기로 한 약속에서 또다시 현우의 비밀 서사에 얽힌 친구 태성이 때문에 미수와 연락할 수 없게 된다. 현우는 미수에게 자신의 서사를 전하려 메일을 쓰다가 차마 보낼 수 없어 지워버린다. 자기 검열이다. 미수만큼은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몰랐으면 하는 검열. 미수 역시 현우에게 마지막 메일을 보낸다. 영세한 출판사에서 꿈을 접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후져 보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우리 서로 좋은 일이 생기면 연락하자고. 현우와 미수 모두 스스로가 초라할 때는 서로에게 서사 공유를 거부하고 있다.

 

3) 미수의 감정을 확인하는 현우의 질문

2005년 미수와 현우는 또다시 우연히 만난다. 그러나 미수는 선뜻 반가워하지 못한다. 불안함이다. 그렇게 헤어져 버렸던 불안함,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랐던 불안함의 끝에 미수는 웃지 못한다. 그러나 현우가 과거 미수가 살았던 집에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수는 현우에게 반갑다고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현우가 묻는다.

“지금도 내가 무서워?”

미수 자신이 살았던 공간에서, 언제 만날지도 모를 자신을 기다려준 현우는 이제 미수의 서사 중 일부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는 미수에게 신뢰를 주고, 미수는 현우가 이제 무섭지 않다.

 

4) 현우의 서사에 뛰어든 미수의 질문

미수는 현우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 장난처럼 “결혼할까?” 묻는다. 그러나 현우는 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현우의 비밀 서사 속 친구들이 현우를 소환한다. 미수에게 아무 말 없이 과거 아픈 기억을 되짚고 돌아온 현우에게 미수는 묻는다.

“바빴어? 뭐 했어?”

현우는 미수에게 거짓말을 한다. 미수에게 세상 단 한 사람 미수만큼은 자신의 비밀 서사를 모르기를 바라고, 그래야 자신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미수는 현우의 서사로 뛰어든다. 현우의 친구 태성이를 찾아가 현우가 꽁꽁 감추려 했던 비밀 서사를 만난 미수. 현우는 믿어줄 수 없었냐고 화를 내는데. 미수는 현우에게 묻는다.

“그럼 언제 괜찮아져? 언제까지 불안해해?”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3. 연애, 너와 나의 서사가 공유되는 시간

우리는 라디오의 사연처럼 각자의 서사들을 갖고 살아간다. 불행도, 행복도, 기적도, 우연도 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서사는 고칠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연애한다는 것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각자의 서사 속에 서로가 묻어 들어간다는 의미다. 미수와 현우 각자가 가진 과거의 서사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 서로를 치유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현우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기적처럼 각자의 이야기라고 느꼈던 라디오의 사연 속에서 '나'를 부르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래서 서로의 서사가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기든스가 말한 순수한 관계로서 상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상대의 비밀 서사가 어떻든 말이다.

 

참고자료 : (1)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새물결, 서울, 2003.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 송연주

세종대학교 영상예술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화를 연구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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