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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화염 속의 천사와 Z세대
[이혜진의 문화톡톡] 화염 속의 천사와 Z세대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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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1년 봄날의 프쉬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 지명 과정은 한국 현대사의 중심 세력들 사이의 격차, 그중에서도 세대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었던 386세대가 형성한 질서에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는 자유분방한 개인주의를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 386세대에게 마음의 빚을 품어왔던 X세대와도 차이가 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386세대와 X세대, 그리고 Z세대의 격차를 서로 인정하고 봉합해가는 일들이 주요한 현실적 사안으로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의 한국 사회는 이른바 ‘X세대로 지칭되는 신인류가 주도해간 포스트 혁명의 시대였다. 그렇다면 19915월은 혁명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최후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76월 항쟁과 1989년 전교조 투쟁을 거쳐 1993년 문민정부가 수립된 과정에는 유례없이 폭발한 대중의 정치적 감수성이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구태의연하게 이어져오던 군부독재정권을 탈환한 대중투쟁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이자 권위적인 국가권력에 대항한 시민민주주의의 승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운동사의 절정기였던 1991년 봄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이 번져가면서 그 거대한 혁명적 열정이 급격히 냉각되어버렸는데, 이때가 바로 분신정국이었다.

 

1991년 4월 27일 강경대 노제(출처: 21세기대학뉴스)
1991년 4월 27일 강경대 노제(출처: 21세기대학뉴스)

사상 초유의 이 분신정국은 19915, 당시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 학생이었던 강경대 폭행치사사건으로 촉발되었다. 1991년 교육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학은 평균 15.5%의 등록금을 인상했고, 그해 명지대는 16%가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학생들에게 통보했다. 10년 가까이 등록금 인상이 제한되고 있는 현재의 대학 사정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인상률이었다. 학생들은 대학 측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사인은 전두부 함몰골절에 의한 뇌손상과 심장막 내출혈’. 이 사건으로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과 함께 전국적 규모의 민주화 시위운동이 확산되었다.

강경대가 사망한 지 사흘 뒤인 429일 시위에 참가한 전남대 박승희가 분신을 했고 이어서 51일 안동대 김영균, 53일 경원대 천세용이 잇따라 분신을 하자 강경대 치사사건 규탄살인독재정권 퇴진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던 중 56일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5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유서 두 장을 남기고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그러자 이날 당시 서강대의 박홍 총장이 학생들의 분신에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홍 총장의 이 발언은 분신정국의 양상을 삽시간에 뒤바꿔놓았다.

검찰은 곧바로 분신자살 배후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던 중 510일 가방공장 노동자 윤용하가 분신했다. 이어서 강경대 노제가 있던 518일 전남 보성고 학생 김철수, 광주 시민 이정순과 차태권이 연이어 분신했다. 525일 성균관대 김귀정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압사했고, 529일 노동자 정상순, 68일 이진희, 615일 석광수가 분신하는 등 약 두 달 사이에 총 13명이 노태우 정권에 맞서 최후의 항거를 선택함으로써 군사독재시절에조차 없었던 초유의 분신정국을 조성했다.

 

2. 분신정국에서 공안정국으로

 

그런데 뜨겁게 달궈진 분신 행렬이 노태우 정권과 대치하는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1991.5.5.)에서 청년들의 잇따른 죽음을 냉정하게 비난했던 것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김지하는 이 글에서 죽음을 숭배하는 청년들의 태도를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충동으로 폄하했다. 그리고 그들의 태도를 혁명의 이름으로 자신의 동지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며 몰락해갔던 일본연합적군파와 동일시했다. 훗날 김지하는 이 글에 대해 더 이상의 죽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노라고 해명했으나,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지하의 회원자격을 박탈했고, 운동권에서는 그를 변절자로 낙인찍는 등 이 일은 박홍 총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마침내 진보진영과 김지하의 영구적 불화의 단초가 되었다.

 

김지하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조선일보》, 1991.5.5. (출처: 제3의 길, http://road3.kr/?p=7335&cat=119)
김지하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조선일보》, 1991.5.5.
(출처: 제3의 길, http://road3.kr/?p=7335&cat=119)

19876월투쟁 이후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과 노태우 정권을 군부독재시절의 연장으로 간주한 운동권의 입장 차이가 폭력시위와 분신자살을 초래한 것에 대해 김지하는 시대가 변하면 투쟁의 방식도 변해야 하거늘 운동권이 구시대의 유물을 답습하고 있음을 일축한 것이었다. 사실 재야단체나 종교계에서도 청년들의 분신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는 칼럼이 자주 등장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인간의 생명을 정치적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삼는 운동권의 교조성을 질타한 김지하의 비판은 어쩌면 관록 있는 운동권 대선배의 격정에 찬 분노의 표출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에 연속된 그의 행보에 있었다.

2008년의 촛불시위를 폄훼하고,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객들을 봉하마을에서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들로 비난한 데 이어 2012년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48%는 국가전복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등 배타적인 정파성을 드러내는 행보를 이어가자 세간에서는 김지하가 유신독재와 박근혜의 나팔수가 되었다고 맹비난했다. 또한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상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약 40년만인 20131월 무죄선고를 받은 김지하는 완전히 무죄를 선고하지 않은 이유는 돈을 적게 주려는 것이라며 재심판결에 항소하는 등 한때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전설로 불리던 원로지식인에 걸맞지 않은 파행을 잇달아 선보였다.

 

김기설 유서대필 및 자살방조혐의로 구속된 강기훈(당시 27세)-1991년 10월 23일 공판이 열리는 법정으로 걸어가는 중 (출처: 경향신문)
김기설 유서대필 및 자살방조혐의로 구속된 강기훈 (출처: 경향신문)

한편 박홍 총장의 분신배후설은 자살 방조 및 그 배후세력에 대한 검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운동권 진영은 뜻밖의 역풍을 맞았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의 분신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을 지목하여 검찰이 자살방조혐의 및 분신의 배후라고 공격하자 언론이 그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추기면서 순식간에 양상이 뒤바뀐 것이다. 김기설 유서대필 혐의로 지목된 강기훈에 대해 속전속결로 진행된 국과수의 필적 감정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기설의 유서와 강기훈의 필적이 같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일방적인 주장은 그대로 사실로 채택되었다.

결국 강기훈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되자, ‘죽음의 굿판을 벌인 운동권의 분신배후설이 그대로 대중에게 사실로 각인되면서 운동권 세력이 참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운동권의 도덕성을 둘러싼 국민의 의혹이 마침내 사실로 확증됨과 동시에 분신정국의 정세가 순식간에 유서대필 공방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게다가 199063일 총리취임을 앞두고 한국외대 교육대학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고 나온 정원식에게 학생들이 달걀과 밀가루를 투척하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을 치른 사건은 제자가 스승을 능멸한 패륜으로 치부되면서 운동권의 도덕성에 대한 세간의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출처: 미디어SR)
(출처: 미디어SR)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도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유례없는 청년들의 연쇄분신사건이 가져온 노태우 정권의 위기상황에 효과적인 돌파구가 되었다. 유죄가 확정된 강기훈은 32개월을 복역하고 1994817일 만기출소했다. 이후 2007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서 이 사건이 재검토되었고, 그 결과 필적 감정이 번복되었다. 마침내 2015514일 대법원은 강기훈의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 실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에 해당한다. 공공의 안보와 산업화를 최우선시 했던 노태우 정부의 민주화 전략이란 1980년대에 자행되었던 폭행이나 고문 대신 사법 권력을 동원한 합법적인 방식으로 공격하고 안보 위협을 과장하면서 대중의 원초적인 공포심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있었다. 그것이 바로 공안정치다. 그런 점에서 한때 진보를 자처한 신부였던 박홍 총장의 분신배후설죽음의 굿판으로 상징되는 김지하의 운동권에 대한 매도가 보수 언론과 결합하면서 사실로 구성되고, 또 그것이 사법 권력에 의해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으로 조작되면서 새롭게 구성된 현실이 법률적 사실로 재정립됨으로써 급격한 반전 사태를 유도해간 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시사적이다.

 

3. ‘화염 속의 천사와 공동의 애도

 

19876월 항쟁부터 19915월 투쟁까지 학생운동은 가장 강력한 주체적 힘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이후 다양한 학생운동 조직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했으나 1991년 봄의 기운은 일시에 절멸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후 급격히 위축된 학생운동은 모두의 골칫거리처럼 취급되었다. 특히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는 학생운동 전체를 궁지에 몰면서 결정적인 괴멸을 가져온 빌미가 되었다. 훗날 작곡가 윤이상은 1990년대 초 시위운동 속에서 연쇄적으로 숨져간 청년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교향시곡 <화염 속의 천사>(1994)를 작곡했다. 윤이상의 유작이 된 이 곡은 정치적인 이유로 199559일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에서 초연된 이후 계속된 논란 속에서 1999년에 와서야 한국에서 초연되었다.

 

고 윤이상(출처:S.CASA)
고 윤이상 (출처: S.CASA)

이 곡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사회의 불온한 공기 속에서 젊은 학생들의 밝은 학원생활이 묘사된다. 학생들은 자유를 위한 분투를 고민하고 내적 갈등이 심화되어가는 데서 1부가 끝난다. 청년들의 심적 요동이 서서히 고조되어가는 2부가 끝나면 강력한 하프 연주가 비극과 참극을 개시하고, 곧 팀파니를 중심으로 한 강한 타악기 연주가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겨서 화염에 휩싸인 학생(천사)들의 불타오르는 모습을 표현한다. 불의에 대한 항거와 자유에 대한 호소가 비통한 원한과 함께 하늘로 타오르는 최고조의 연주에 이르면 점차 불이 꺼지면서 참극의 종언을 알린다.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된 곡의 연주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대로 조용히 에필로그로 되돌아간다. 에필로그에서 소프라노 독창이 세상을 떠난 청년들의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한다. 20여 명의 여성합창단이 이미 우주로 떠난 청년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애도하면 그 원혼들이 차츰 영원의 피안으로 사라져간다.

 

Z세대 (출처: 서울경제)
Z세대 (출처: 서울경제)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일컫는 ‘Z세대는 이른바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불렸던 X세대의 적자들이다. 1995-2005년에 태어난 Z세대는 현재 한국 인구의 약 12.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UN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0년 전 세계의 Z세대는 세계 인구의 3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Z세대는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개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다양성의 추구,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부모 세대의 자유분방한 가치관을 물려받아 집단보다는 개인, 소유보다는 공유, 상품보다는 경험을 중시하고, SNS를 통한 비대면 수평적 인적 네트워크를 지향하면서 안정성과 실용성, 그리고 불안한 미래보다는 현재적 가치를 중시하는 의사결정을 추구한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워라벨을 향한 사회적 열망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들의 특징 때문이다.

과거 한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또 군부독재정권을 탈환하면서 시민민주주의를 성취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간 과거의 세대들이 현재까지 달성해내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의 근본 동력인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다. 과거 세대의 유산을 전유해버린 Z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던 지점이 바로 계급 세습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이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Z세대와 함께 공동으로 이루어가야 할 목표는 얼마든지 계층 이동이 가능한 열린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함께 화염 속의 천사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일이다.

 

참고문헌

김정남 외 지음, 990년대 문화키워드, 문화다북스, 2017.

이수자 지음, 내 남편 윤이상 2, 창작과비평사, 1998.

*사진 출처: 구글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제6회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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