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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부재에 대한 단상, 영화 <인사이드 르윈> 다시 읽어보기
[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부재에 대한 단상, 영화 <인사이드 르윈> 다시 읽어보기
  • 조한기(영화평론가)
  • 승인 2019.11.0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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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면을 떼어 놓은 듯한 영화였다. 불운한 일상은 쳇바퀴처럼 돌고 내딛는 걸음은 미끄러지기만 한다. 냉담한 현실 속에서 열망은 빛을 잃어 간다. 삶과 음악이 삐딱하게 기댄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 대한 첫인상이다. 영화는 포크 씬을 전전하는 가수, 르윈 데이비스를 관찰한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애먼 데로 향하는 르윈의 여정은 인생의 아이러니한 순간을 담는다. 르윈은 앞으로 나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운명의 굴레에 붙잡힌 것처럼 보인다.

르윈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버텨온 일상에서 마주한 삶의 너절함은, 내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닫아버린다. 그의 경험과 노래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자리에서 고이는 정감은 씁쓸함을 더 한다. 조금 더 촉각을 곤두세워 보면 그를 옭아맨 현실 너머에는 항상 흐릿한 어떤 부재가 체감된다. 이 글은 소박하나마 그 부재에 대한 해명으로 <인사이드 르윈>을 읽는 한 가지 관점을 보태려 한다.

 

<인사이드 르윈>은 코엔 형제의 영화 스타일에 충실하다. 예기치 못한 사건과 블랙유머, 이를 조망하는 건조한 시선이 영화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사후적으로 봤을 때 르윈이 겪는 일주일간의 방랑은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무의미한 행보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포크송의 역사에서 <인사이드 르윈>의 시간 배경인 1961년은 특별한 해이다. 포크송의 전통과 미래를 이었다고 평가되는 밥 딜런의 태동기에 해당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말미에서 르윈은 밥 딜런과 스치듯이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영광의 순간과 상관없이 르윈의 행적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암담함은 낭만으로 윤색된 1960년대 포크씬의 비애를 드러낸다.

르윈은 두 장의 앨범을 낸 베태랑 가수이다. 비록 잘 나가는 가수는 아니지만 노래 실력과 무대 매너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술가로서 프라이드는 높지만, 빈털터리인 르윈은 겨울을 지낼 코트 한 벌도 없다. 르윈은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던 중 르윈은 실수로 신세를 지던 골페인 교수의 고양이와 길거리를 나서게 되고 이후 포크씬과 그 주변부를 떠돌게 된다. 그 여정에서 음악에 대한 희망과 잃어버린 파트너는 르윈의 내면을 헤집는 갈등의 근원이 된다.

 

영화에는 직접적인 등장 없이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르윈과 듀엣을 이뤘던 마이크이다. 마이크는 포크 씬의 암담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르윈에게 마이크의 죽음은 쓰라린 상처로 기억되며, 마이크는 잃어버린 짝패처럼 부재로서 르윈의 현재에 영향을 끼친다. 코엔 형제는 도입부에서 르윈과 마이크의 듀엣곡을 영화의 유일한 외재음향으로 사용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넌지시 알린다.

서사무대에서 마이크의 흔적은 르윈의 일상에 깊이 결부되어 있다. 르윈은 음반사에 저작권료를 요구하지만, 사장은 마이크가 없기에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며 르윈의 정산을 거부한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난 시카고의 음악 프로듀서 역시 르윈의 노래를 듣고 헤어진 파트너와 재결합하기를 추천한다. 음악가로서 르윈에게 파트너인 마이크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재인되는 것이다. 실제로 온갖 모욕에도 비교적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르윈이 드물게 분노를 표출한 순간도 마이크와의 듀엣곡을 타인이 마음대로 불렀을 때이다.

이처럼 마이크는 서사무대에 실존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르윈의 주변을 떠돌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마이크와 르윈의 재회가 영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현재에 교착되어있지만, 동시에 죽음이라는 장벽 아래 막혀있다. 르윈이 음악을 하는 한 마이크에 대한 애도는 실패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맺음 없이 지연되는 셈이다.

 

르윈은 시카고에서 오디션을 계기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가수의 꿈을 접기로 한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선원이 되려 하지만 그런 시도마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해 그르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르윈은 당장의 끼니를 잇기 위해 포크 씬으로 복귀한다. 르윈은 포크송과의 결별마저 실패한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초반 시퀀스를 거의 그대로 반복한다. 르윈은 남의 집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어제 부렸던 꼴통 짓 때문에 흠씬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 그를 폭행한 남자는 첫 시퀀스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포크 씬을 떠나겠노라 선언한다. 반면 그보다 앞서 포크 씬을 떠나고자 했던 르윈은 제자리에 머무른다. 르윈이 포크 씬에게 느끼는 애증은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다는 점에서 마이크와의 관계와도 닮아있다. 그렇게 마이크와 포크송은 르윈에게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 남은 듯하다.

영화에서 르윈의 갈등은 심화될 뿐 한순간도 해소되지 않는다. 갈등의 원인은 평생 짊어질 업보처럼 느껴진다. 영화보다 현실에 가까운 감각이다. 언제까지고 반복될 듯 보이는 르윈의 일상이 전달하는 비애감은 그런 맥락에 연루되는 듯하다. 사실 <인사이드 르윈>에는 마이크의 빈 자리 이외에도 기묘한 부재와 현전이 공존한다. 단일한 의미로 포착되지 않는 고양이‘들’의 존재가 그렇고, 만날 수 없는 르윈의 아이가 그렇다. 이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르윈의 고뇌를 상징하거나,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의미들을 재구하자면 <인사이드 르윈>엔 또 다른 해석의 층위가 열린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영화의 풍부한 뉘앙스를 예각적으로 살핀 미완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조한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수료. 2018 영평상 신인평론상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2018 만화비평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문화와 스토리텔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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