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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고유명사와 대명사
[양근애의 문화톡톡] 고유명사와 대명사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19.11.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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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의 이름을 호명하는 일

인간은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짓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름은 인간이 가진 모순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기호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주어진 것일 뿐,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이름은 태어날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언어와 기호의 관계가 그러하듯, 다만 자의적으로 붙여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관련되며, 우리는 그것을 ‘고유명사’라고 부른다.

대중매체, 그 중에서도 극 장르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붙이는 일은 꽤나 중요하다. 캐릭터의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도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이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TV드라마에 나온 인상적인 캐릭터의 이름 하면 <네 멋대로 해라>(2002)의 ‘고복수’,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의 ‘김삼순’, <하얀거탑>(2007)의 ‘장준혁’, <비밀의 숲>(2017)의 ‘황시목’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만들어진 이름이지만 어쩐지 그 캐릭터들이 ‘이름값’을 한 것만 같다. 작은따옴표 속의 이 이름들은 다시는 쓰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유한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독특한 성격만큼이나 대체 불가능한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해당 배우들은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동백꽃 필 무렵>은 미덕이 많은 드라마이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에게 골고루 애정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될 만하다. 특히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열외’의 인물로 배치되었던 ‘향미’의 사연을 더듬어간 에피소드는 드라마에서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회에서 배제되기 십상인 인물, 그것도 주인공이 아닌 인물을 특수성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면을 가진 인물로 보여주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향미의 죽음은 ‘최고운’이라는 향미의 본래 이름을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향미는 고운으로 살았던 시절이 만들어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이름으로 돌아가는 일에 실패했다.

좀처럼 가시화되기 어려운 인물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드라마의 태도를 보여준다. 가령, <대장금>(2003) 49회에서 민정호가 걸립패 아이들에게 연을 만들어주는 장면이 그렇다. 연에 이름을 새겨주기 위해 이름을 물어보고 글자를 모르는 아이에게 이름을 가리키며 “이는 네 이름인 마석구다.”라고 말해주는 장면 말이다. 드라마의 사건 전개 상 필요 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장면들이 역사드라마가 해석하는 역사의 지평을 보여준다.

 

아직 종영 전인 <나의 나라> 3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발견했다. 이 드라마는 여말선초의 개국 상황을 다룬 역사드라마이지만, 기록된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극 중에는 개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이 등장하지 않고, 위화도 회군 장면도 이성계와 최영 중심이 아니라 작전에 활용된 선발대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쟁 장면에서 요동정벌군으로 억울하게 끌려온 ‘서휘’는 목적 없는 전투에 이용당하다가 상관에게 호소한다. “내 이름이 무엇이요? 우리들 중 이름을 아는 자가 하나라도 있소? 있다면 대보시오!” 망국과 개국 사이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만 바뀐 것이지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한 청년의 목소리가 거기에 있다.

 

2. 보편성, 혹은 텅 빈 기호

주인공에게 뇌리에 남는 독특한 이름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흔한 이름을 통해 서사의 보편성을 암시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미쓰백>에서 학대 당하는 아이 ‘지은’은 실제 아동 학대의 여러 사례들을 환기시킨다. 차가운 어느 골목에 방치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아이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 <벌새>의 주인공 ‘은희’는 1990년대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 속에서 겪는 여러 혼란과 가족, 친구 관계의 문제들을 중학생의 시선으로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그들에게서 기시감 혹은 공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이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은 통계 자료로 뒷받침 되는 원작 소설의 제목을 주인공 이름에 그대로 가져온다. 영화 제목에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가는 일은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유독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부각되는 것을 마뜩찮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김지영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79년생 정대현’도 아프다고 항변하며 영화 바깥으로 관심을 돌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서사가 보편적이냐 아니냐하는 질문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삶의 편린들로 가득했다.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차별, 수치심과 자기검열, 성폭력의 위험 앞에 노출된 일상, 임신과 육아에 대한 책임 전가, 유리천장, 경력단절 등 그동안 본격적으로 가시화 되지 않았을 뿐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존재했던 일들이 영화에 펼쳐진다.

 

그러나 주인공 김지영은 자신이 병들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지영은 스스로의 자각이 아니라,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증상 속에서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내면의 화를 드러낸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원망 한번 하지 않고 자기 탓을 하는 이 착하고 순한 김지영에게서 김지영 고유의 존재가 아니라 배우 정유미의 연기력만 발견했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보편성의 획득이라기보다 차라리 기의가 없는 기표라고 할 만큼 비어 있다. 소설의 논란을 의식한 영화의 전략적인 측면도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하는 목소리가 아니라면 김지영은, 말할 수 없는 ‘그녀들’이라는 대명사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 생각이 복잡해진다.

말하자면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이슈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정작 독박육아를 하느라 영화관조차 갈 수 없는 김지영들에게, 영화에서처럼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얌전히 있지 말고 막 나대.”라고 응원해주는 친정 엄마가 없는 김지영들에게 변화의 순간은 어떻게 도래하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맥락은 전혀 다를지 모르지만, 역사드라마 속 민초로 설정된 주인공 개인의 이름을 오롯이 드러내기 위해 전쟁 스펙터클 장면이 강화되고 그 속에서 함부로 죽어나가는 무고한 인물들이 모조리 배경으로 지워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 같다. 요컨대 개인의 고유성은 언제/왜 대명사로 환원되는가 하는 문제를 더 붙잡고 늘어질 일이다. 자칫 조명 받지 못할 뻔했던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가시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3.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엄마-배우’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잃었다. 304개의 이름들은 결코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연극 <그녀를 말해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수연 배우는 304개의 이름을 다 외워 남산예술센터 극장 가득 울리도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정성스레 호명했다. 무대에서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일은 이름으로부터 시작되는 삶을 공존의 공간에 불러내는 의식이자 하나이면서 여럿인 삶들을 미래에 새기는 숭고한 행위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미처 지속하지 못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일. 사회적 재난을 통해 뼈아프게 배우는 일이 있다면 그런 공존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일 것이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생존자 학생 엄마로 구성된 극단이다. 그들은 치유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커피공방에서 김태현 연출을 만나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본 읽기만 하다가 15분 쇼케이스 무대에 서게 된 경험이 극단 창단(2016. 3.)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세 작품을 공연했다. 엄마들은 열심히 준비해 온 김태현 연출에 대한 고마움으로 연극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김태현 연출은 연극을 통해서 엄마들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가족밖에 모르는 전업주부이자 엄마였고 평범한 시민이었던 이들은 세월호 이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이 첫 번째로 부여받은 이름은 ‘유가족’이었고 다른 이름은 배우 ‘○○엄마’이다.

올해 공연 된 <장기자랑>은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세 번째 연극이자, 첫 번째 창작 희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작가 변효진은 『416 단원고 약전-짧은, 그리고 영원한』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다. 실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쓴 이 희곡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여고생들에 관한 내용으로 코믹하게 전개된다. 엄마-배우들은 자녀들의 교복을 입고 무대 위에 등장한다. 예진 엄마 박유신 배우는 예진이의 교복을 입기 위해 살을 빼느라 힘들었다며 자신은 춤을 전혀 못 추지만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예진이가 못했던 걸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고 했다. 영만 엄마 이미경 배우는 영만이가 좋아했던 힙합과 랩을 배워서 선보이고, 동수 엄마 김도현 배우는 동수가 좋아했던 원피스의 캐릭터 루피를 연기했다. 죽은 아이의 교복을 입고 아이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엄마-배우들은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기억하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연극을 하게 되면서 엄마들은 평범한 엄마에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시민이 되었고 연극으로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알리는 배우가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참사 이후 ○○엄마로 불리면서 엄마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인제 애들은 말을 못하니까. 살아있는 우리가 해줘야 되니까.”라는 생각은 엄마-배우들의 사명이 되었다. “진짜 응급실을 다녀와도 무대는 서야하니까. 약속이잖아요. 내가 무대에 안서면 내 자신이 아니라 수인 엄마가 못 오는 거예요. 김명임이 아니라 수인 엄마가 망친 거잖아요.”라는 김명임 배우의 말은 역설적이게도 자기의 이름에 아이의 이름을 기입한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주체성의 발현이다. 죽은 아이의 삶을 대신 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엄마-배우를 탄생시켰다는 점, 이 역설이 유가족의 정체성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죽은 자의 몫을 짊어지고, 죽은 아이의 이름을 자기 존재에 기입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장기자랑>은 연극이 실제 사건과 가장 반대편에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또한 그 사건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름은 자신의 것이지만 스스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불린다는 점에서 인간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그러나 함부로 불리는 이름이나 성찰 없이 붙이는 이름에 대해 경계할 필요도 있다. 연예 기사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해당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이름으로 극의 중요한 내용을 예고하거나(“결국 공효진 대신 죽은 손담비”-물론 이것은 지어낸 제목이지만 이와 같은 기사 제목을 연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최진실법’, ‘신해철법’ 등 각종 이름법의 이미지 정치가 갖는 폐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인격 침해를 이유로 ‘○○이 법’은 ‘조두순법’이 되었다). 오늘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무수한 이름들을 본다. 우리는 나의 이름을, 또 타인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 참고문헌

임수연, 김소미, 「<82년생 김지영> 관련 논란 타임라인」, 『씨네21』, 2019. 10. 30.

장영엽,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기의 고단함에 관하여」, 『씨네21』, 2019. 10. 30.

송김경화, 「우리가 공존하는 시공간에서」, 웹진 『연극in』, 서울문화재단, 2019. 4.

양근애, 「‘이후’의 가족, 연극적 치유와 정치적 주체화」, 『한국극예술연구』 65, 한국극예술학회, 2019. 9. (“3.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엄마-배우’들”은 이 논문의 일부분을 가져온 것임)

* 사진 출처

<동백꽃 필 무렵> : 포토뉴스

<나의 나라> : JTBC ‘나의 나라’ 공식 홈페이지

<82년생 김지영> : 네이버

<장기자랑> : 웹진 연극in 홈페이지

 

글: 양근애(문화평론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역사, 기억,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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