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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해적인가
누가 진짜 해적인가
  • 김완/<미디어스> 기자
  • 승인 2011.02.14 15: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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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애초, ‘소말리아 해적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가장 낯선 타자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항쟁이 이집트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는 화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갑자기 동시간대에 인식해야 하는 가장 낯선 타자가 복수로 ‘유한’ 확장됐다.

소말리아 해적과 이집트 민중 중에 누가 더 낯선 존재인지를 경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불편하고 게다가 어리석었다. 행여 국가적 몽매주의에 빠져 “자국민이 연관된 소말리아 해적과 전혀 그렇지 않은 이집트의 문제를 동일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던질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연찮게, 같은 시간에 바다를 건너온 두 무리의 타자들은 지구 차원에선 전혀 다른 맥락이겠지만 한국 사회에는 하나의 기의로 전달된다.

우리의 무지 앞에서는 모두가 ‘해적’

한국 사회에서 지구의 문제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세계였다. 소말리아 해적 문제는 그간 한국 사회가 지구의 문제를 미·일·중과 그 밖의 나머지 것들로 인식해왔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확인사살이다. 애석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소말리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그 민중이 왜 해적이 됐는지에는 딱한 감정 정도의 궁금증조차 품지 않는다. 이집트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백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이집트 대통령의 이름을 알았을 따름이다. 전 지구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민주화 경험을 가졌다고 자평하면서도, 우리는 한순간도 다른 사회의 민주적 진화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바다 건너 국가의 거의 대부분은 그래서 여전히 미지고, 난제다. 해적이다.

대다수 국내 언론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군사작전을 ‘통쾌한 승리’(1)라고 평했다. 과연 그런가? 군사작전 종료 뒤, 소말리아 해적들은 공공연히 한국 선박에 대한 복수를 경고하고 있고, 억류 중인 금미호 선원들의 신원은 더욱 불안해졌다. 무엇보다 구출작전이 시작된 뒤 표적사격을 당했다는 석해균 선장의 상태는 여전히 위중하다. 이 모두는 ‘통쾌한 승리’라는 선언적 명명이 배제한 현실이다. 탑승 선원의 생명이 보장되지 않고, 이후 그 바다를 건널 배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미 납치된 선원들의 신원이 보장되지 않는 ‘통쾌한 승리’란 과연 무엇일까?

통쾌한 승리를 검증하기에 앞서, 소말리아 해적의 발생 기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말리아는 지금까지 내전으로 숨진 사람이 최소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가장 최악의 ‘실패 국가’(Failed State)(2)다. 소말리아에서 정부 통치력이 미치는 영토는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한 수도 모가디슈의 몇 블록뿐”이며, 그 밖의 지역은 모두 무장한 군벌이 통치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국가적 통계를 정확히 낼 수 없는 수준의 나라이고, 그런 통계가 의미 없는 ‘절대 빈곤’ 국가(3)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엘리트 직종 

▲ 굶어죽은 소말리아 난민의 주검. <한겨레> 자료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창궐하는 근본적 이유는 ‘절대 빈곤’에 기인한 ‘실패 국가’의 구조적 문제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1인당 연간 2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평균 소득의 33배가 넘는다. 산업은 물론 변변한 농업조차 없는 사회에서 해적은 차라리 ‘엘리트 직종’으로 받아들여진다. 웃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또한 일찍부터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불려온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관문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다. 소말리아의 지정학은 일찍부터 소말리아를 냉전의 격전지로 만들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자신에게 종속된 소말리아 군벌에 무기를 제공했다. 소말리아가 겪고 있는 극단적 실패의 1차적 이유는 바로 이 가난하고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나라에 무기를 쏟아부은 미국과 소련의 행태였다. 이때 제공된 무기가 지금의 해적을 무장시키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지원 아래 무장한 소말리아 군벌은 1991년 대통령을 밀어냈다. 그러곤 국가적 규모에 해당하는 무력을 동원해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다.(4) 이런 혼란을 극복한다며 1992년 유엔은 평화유지군 투입을 결정한다.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평화유지군은 1993년 소말리아 군부의 수장을 제거하려는 무모한 공격을 감행한다.

결과는 처참했다. 미군 18명이 사망하고 84명이 부상당한 ‘블랙호크 다운 사건’(5)이 발생했다. 블랙호크 다운의 실패를 경험한 평화유지군은 1995년 소말리아에서 완전 철수한다. 제프리 제틀먼 <뉴욕타임스> 동아프리카 지국장은 미국의 실패에 대해 “미국은 소말리아의 위기를 이끄는 두 동인, 즉 파벌 체제와 종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개입 결과 “소말리아는 국제외교의 실패가 묻히는 무덤이 되었으며, 국민은 급진화되고 정치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위기가 초래됐다”고 진단했다.

블랙호크 다운의 치욕을 당한 미국이 소말리아에서 철수한 이후 국제사회는 소말리아에 엄청난 무기만 뿌려둔 채 개입 전략을 일방 철회했다. 이후 소말리아는 군벌과 일부 재벌이 국가적 통치 영역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았다. 변변한 산업이 없던 국가에서 군벌은 몇몇 위험한 ‘테러리스트’를 보호하는 것으로 재미를 보기 시작했고, 곧 그것을 주요한 사업으로 확장하는 길을 택했다.

그들을 무장시킨 건 미국과 소련

긴 해안을 가진 소말리아는 전통적으로 어업에 의존해왔다. 국가 경제의 대부분이 어업을 통해 구성됐다. 하지만 내전이 길어지고 군벌 간의 생존을 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어업 인프라는 궤멸됐다. 내전 과정에서 공해가 되어버린 소말리아 해역에 서구 국가들은 마음껏 폐기물을 버렸고, 물고기를 쓸어갔다.(6)

소말리아 해적이 국제적 이슈가 된 것이 바로 이즈음부터다. 2007년까지 전세계 해적 사건의 17%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전 세계 해적질의 절반 이상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벌어졌다.

해적의 발생 기원과 존재 이유는 다종하다. 하지만 서구 열강들이 서로 해상 권력을 차지하려고 할 때 해적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상 권력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 평화유지군이 소말리아에서 철수한 뒤 유엔은 20년간 소말리아 전 해안을 라이선스 없이 운항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소말리아 해안을 각국의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뒤부터, 유럽에선 t당 수십~수백 달러를 주면 소말리아에 불법 폐기물을 버릴 수 있게 됐다. 소말리아 인근 해안은 서구의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는 바다 쓰레기장이 되었고, 이 때문에 지금도 소말리아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을 앓고 있다. 소말리아 앞바다에 버려진 폐기물에는 방사능 폐기물도 포함돼 있어, 실제로 심각한 국제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또한 영세어업으로 먹고살던 소말리아 어민들에겐 한국을 포함한 대규모 원양어선은 생계를 위협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결국 ‘자경단’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7)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직접 결정권을 행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덴만 여명’ 3일 전에 있었던 1차 작전의 실패 사실을 집단적 카르텔로 보도하지 않았던 거의 모든 언론은 이후 기다렸다는 듯 정부의 ‘아덴만 마케팅’에 적극 복무했다. 애초 경미하다고 알려졌던 석해균 선장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몸에 박힌 총알 가운데 적어도 한 발은 우리 군이 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해적과 영웅의 이분법이 도식화된 유령으로 한국 사회를 떠돌아 우리는 인식의 지체를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었다. 민족 담론에 기인한 집단성과 승리의 쾌감이 전하는 감성은 심금을 울렸다.

그들 바다를 쓰레기장 만든 건 바로 우리

민족적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했기에 이 모두에 동조됐던 우리 모두는 ‘집합적 유죄’다. 사건을 은연중에 피해자 민족과 가해자 민족의 대립 구도로 정립한 정부와 언론은, 그 대립 구도를 뒤집어 우리가 가해자 민족이 되는 것을 승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기존 대립 구도가 무엇이었는지, 그 구도가 부서진 것인지 성찰하기보다는 입장이 바뀌어 가해자가 된 상황을 그저 즐기기만 한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그 이전에 우린 그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고, 물고기를 도적질해왔다. 2011년 겨울, ‘소말리아 해적’은 그래서 우리가 마주한 가장 잔인한 야만이었다.

글•김완
‘문화연대’ 활동가를 거쳐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기자를 하고 있다.

<각주>
(1) ‘아덴만 여명’으로 명명된 삼호주얼리호 군사 구출작전 성공이 알려진 지난 1월 21일 저녁, 각 방송사 메인 뉴스의 코멘트는 ‘격정’, ‘감동’, ‘환희’ 자체였다. 한국방송은 “기분 좋은 소식”이라며 “해적들은 전원 사살되거나 생포됐고 우리 쪽에서는 인질 한 명만 부상당하는 기적 같은 작전”이라고 평했다.
(2) 국제 시사 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세계의 실패국가 순위에서 소말리아는 177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8년 이래 3년째 1위라는 점이다.
(3)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발표에 따르면, 소말리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600달러다.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국민 한 명이 1년 동안 70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4) 소말리아를 오래 취재했던 제프리 제틀먼 <뉴욕타임스> 동아프리카 지국장은 이 과정에 대해 “단 몇십 원 때문에 살인이 벌어졌다. 여성을 강간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혼란이 계속되자, 전쟁에 기생하며 이익을 얻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다. 무기나 마약 밀수업자, 유효기간이 지나고 변질된 분유를 거둬 수입하는 업자 따위가 그들이다. 이들은 혼란 상황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소말리아는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삶이 피폐해지고 제 명에 죽지도 못하는 원시 상태의 현대적 구현체가 돼갔다”고 묘사했다.
(5) 2001년 개봉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랙호크 다운>은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93년 10월,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다. 군벌 사령부 파괴와 반군 지도자 납치의 명을 받고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미국 특수부대가 모가디슈에 상륙한다. 예정대로라면, 1시간 이내에 끝나야 할 작전이지만 불과 20여 분 사이에 당대 최강의 전투 헬리콥터라고 불리던 ‘블랙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6) 영국의 국제개발처 보고서에 따르면, 2003~2004년 외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한 참치와 새우가 1억 달러어치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7) 자세한 내용은 <미디어스>, ‘자국 영해에서 활동하는 소말리아 해적, 이상하지 않은가?’, <미디어스>, 2011년 1월 25일 참조, 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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