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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우먼스플레이, 더 자유로운 몸을 위해
[양근애의 문화톡톡] 우먼스플레이, 더 자유로운 몸을 위해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19.12.16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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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몸이 나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겁게 가라앉은 몸이 침대에 붙어 있으려 할 때, 거의 애원하다시피 몸을 질질 끌고 하루를 시작하며 정신이란 몸의 컨디션이 허락해야 움직이는 노예에 불과하다는 자조가 생겨난다. 아무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늙었나봐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사실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인생의 여정에는 성장보다 노화가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길어도 성장은 이십 년. 그 이후는 노화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늙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 자연스러운 현상 앞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유예시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신체 나이’ 운운하는 경고 앞에서 헬스장을 등록하고 식단을 관리하며 몸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운동은 ‘관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지만, 아무래도 여성들은 ‘관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미의 기준이 여전히 일상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려보이는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추구해야하지만 수술이나 시술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게 덜 늙으라는 요상한 주문을 받으며 여성들의 자기관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수행된다. 운동의 경우는 어떨까. 남성에게는 요가나 필라테스 등 유연성 운동이, 여성에게는 근력 운동이 더 필요하다지만 조기축구나 사회인 야구 등 운동장을 점유하는 여성과 요가나 필라테스 등 거울을 바라보며 바른 자세를 체크하는 남성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한때 유행했던 ‘힐링’ 열풍으로 생활체육이 어느덧 일상에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운동이 젠더화 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어떤 욕망을 이길 수 있는 건 공포가 아니고 그보다 더 강렬한 다른 욕망이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라는 중요한 목표를 받쳐 줄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몸’에 대한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 기존의 욕망들을 압도했다. 그 어떤 종류의 몸보다도 두 시간을 전력으로 뛰어도 지치지 않고, 상대 팀 선수들의 강한 압박 수비도 다 버텨 내는 “힘들어 죽겠어도 다리가 ‘저절로’ 앞으로 막 가”는 몸이 갖고 싶었다. 내 몸을 축구하는 데 최적화 된 상태로 만들고 싶었다.”(155쪽)

2018년 민음사에서 나온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작가 김혼비는 축구를 하게 되면서 ‘핏 좋은 몸매’가 아니라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몸이 되기 위한 욕망이 자라나는 과정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 도지던 ‘단발병’도 축구를 하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단숨에 극복할 정도였다고. 이 책을 읽으면 왜 축구가 남자들만의 스포츠라고 생각했을까, 왜 한 번도 축구를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운동장은 남학생들의 것이었고 그들이 운동장을 거의 다 차지하며 축구를 할 때 여학생들은 구석에서 피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학생들도 공을 맞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몰고 나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면 적어도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의 선택지에 들여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책을 펼치자마자 거의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재미있고 흡인력 있는 글이었다. 인사이드킥, 스텝오버, 로빙슛, 아웃사이드 드리블 등 축구 용어로 목차를 구성하고 그 용어를 축구를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일로 확장해내는 전개도 흥미로웠다.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조직된 경기라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들과 다양한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언니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개되었다. 20년 경력의 국가대표 출신에게 ‘맨스플레인’을 시전 하는 남자들의 못난 모습에 답답해지고 출산과 육아로 인해 30대보다 40-50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여자 축구의 현실에는 입이 썼지만, 이 책에 대해 설명하라면 다른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부터 나올 것 같다. 나 역시 평생 운동과 먼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겨우 하루치의 체력을 위해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사람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기도 했다.

축구를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축구를 해본 적이 없다고 고쳐 말할 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경험에 대한 도전이 가능해지리라는 것. 어쩌면 다른 모든 젠더화 된 일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그런 걸 할 수 없어, 남자가 그런 걸 왜 해라는 질문 대신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알 수 없지 않냐고, 해보면 너무 재미있고 좋을 수 있다고 상상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몇몇 특출한 사례를 영웅처럼 묘사하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모색해볼 수 있는 이런 실제 사례들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자로 아무리 생생하게 묘사하더라도, 운동장을 누비며 경기를 펼치는 언니들의 몸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운동장을 나갈 용기는 없지만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짜릿한 순간을 대리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연극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그 아쉬움을 상쇄시킬만한 힘이 있었다. 극장에서 농구를, 그것도 여성들이 나와서 하는 장면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어둡고 캄캄한 무대 위 덩그러니 놓인 농구 골대에 빛이 들어오고 농구공이 튀기는 묵직한 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농구를 잘하고 싶어서 고민하고 농구를 그만둘 수 없어서 연습에 나오고 한 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자기 한계를 극복하며 골대에 공을 쏘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연극은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스터가 강조하듯, ‘보통의 농구 연극’일 뿐 농구를 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이나 불평등,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지점이 이 연극을 진전된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연극의 태도가 보여주듯, 농구는 농구일 뿐이다. 여자들이 하는 농구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있겠는가. 기본기를 익히고 기술을 배우고 실전 경기에 나가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일 뿐 특별하거나 특이한 일이 아닌 것이다. 농구장에서 보기 어려워서 그렇지 여자들도 농구를 하고 싶고, 할 줄 알고, 하고 있다. 이번 학기 수업 시간에 만난 한 여학생이 과 동아리와 학내 동아리에서 농구를 한다고 했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제일 어려운 게 뭐냐고 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제야 곰곰이 생각하다 나온 대답이 “대회가 별로 없어요.”였던 것도. 다음에 그 학생을 다시 만나면 농구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연극에서 재영의 대사처럼 “아까 손끝에서 볼이 떨어질 때, 어땠어요? 그 순간이 꼭 주위에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나랑 골대만 있는 것 같은 느낌 안 들었어요?”와 같은 질문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특별할 것 없는, 이제 막 팀을 이뤄 농구를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극장에서 운동하는 여성들의 몸을 보는 일이 얼마나 짜릿한 쾌감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비해 여성들이 중심이 되고 남성들에게 종속적이거나 부수적인 역할로 소모되지 않는 캐릭터들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의 몸은 성애화 된 채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또 남성들보다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더 지적인 사고를 하고 부당한 상황을 말로 제압하는 장면도 좋지만, 가시화 될 기회가 적었던 여성들의 있는 그대로의 건강한 몸을 극장에서 만나는 일이 더욱 반갑다. 넓고 높은 극장 무대를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공을 몰고 다니고 주저앉고 눕고, 그렇게 자기 존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영화에서 엘리트 스포츠에 임하는 여성을 조명한 적은 많았지만 생활체육으로서 구기 종목에 뛰고 있는 여성들을 보여주는 일은 드물었다. 게다가 연극은 영화처럼 리얼한 재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대 환영을 이용한 일종의 상상을 관객과 나눠가져야 한다. 잘 만들어진, 그래서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만든 영화가 주는 쾌감과는 다른 지점에서 이 연극이 보여준 에너지를 언급하고 싶다. 1시간 15분 정도의 공연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농구의 룰이나 포지션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던 사람들이 기본기를 익히고 이기고 싶은 마음으로 경기를 치르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연극을 위해 사전 훈련을 하고 안전사고에 대한 준비를 했을 테지만, 연극은 실제 인물들의 현존을 토대로 미숙한 상태부터 제법 노련해 보이는 자세까지를 정해진 시간 안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몇 달에 걸쳐 준비한 내용이 공연 시간 속에 차례로 녹아들어 간 것이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 마지막 장면의 암전에서 터져 나왔다고 생각한다. 공 없이 마임으로 진행되던 경기에서 농구공을 쓰는 느린 동작으로 연결되다가 마지막 3점 슛 직전에 불이 탁 꺼지고 어둠 속의 환호성이 들려올 때, 운동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그 쾌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이런 추체험이 가능한 연극을 더 자주 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가끔은 몸이 주인이고 기분이 컨디션의 노예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척하면서 자유로울 준비를 하는 노예의 심정으로, 언젠가는 자기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마음껏 몸을 부딪치고 함께 호흡하는 운동 경기를 내 일상에서 들여놓으리라 다짐한다. 연극 초반에 나왔던 대사가 계속 맴돌았다. “혼자 뛰어가는 것보다 패스하는 게 훨씬 빠르거든요.” 우먼스플레이,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사진 출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민음사 홈페이지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 플레이포라이프ⓒ김희지

 

 

글: 양근애(문화평론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역사, 기억,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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