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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로맨스와 페미니즘
[이주라의 문화톡톡] 로맨스와 페미니즘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12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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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편한 로맨스

로맨스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다. 장르로서의 로맨스의 상업적 시작이라 할 수 있는 E.M.헐의 『족장(The Sheik)』(1919)(이후 할리우드에서 1921년 영화로 만들어서 대성공을 거뒀다.)은 여성주인공이 자신을 납치하고 강간까지 한 남성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전형적인 강간물이다.(관련 내용은 이주라의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가이드1-로맨스』(북바이북, 2015)를 참조.) 이 작품의 대중적 성공으로 로맨스의 상품화가 본격화되자, 로맨스는 마초적인 알파남이 평범하지만 순결하고 진실한 여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려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도식화한다. 남성의 힘, 재력 그리고 강력한 남성성에 대한 여성의 선망을 그려낸 로맨스는,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상당히 보수적이다.

로맨스는 여성의 서사이면서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가장 반여성적 성격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로맨스는 점점 덜 매력적인 장르가 되어 가는 듯하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여성의 삶에서도 사랑과 연애의 문제보다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문제 및 성공적 생존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 졌다. 결혼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결혼과 육아는 여성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공을 방해하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이미 깨어진 시대에, 구태의연한 로맨스는 공감할 수 없는 판타지가 되어버렸거나, 힘겹게 바꿔가고 있는 젠더 인식 변화의 움직임을 퇴화시키는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헬렌 호앙, 『키스의 지수』, 황소연 역, 시공사, 2019.
헬렌 호앙, 『키스의 지수』, 황소연 역, 시공사, 2019.

박현주는 「페미니스트를 위한 로맨스 소설을 질문하다」(『한겨레』, 2019년 11월 29일)에서 헬렌 호앙의 로맨스 소설 『키스의 지수』의 마케팅이 이러한 곤혹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간략히 소개하였다. 여성주의적 시각에 눈을 뜬 독자들의 내적 갈등을 익히 알고 있는 출판사 마케팅 직원들이, 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선택한 문구는 “록산 게이가 추천한 최고의 로맨스 소설”이다.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이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봐도 이 로맨스는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의 홍보가 아닌 한,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여성 독자들에게 꺼림칙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홍보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미지수다. 로맨스 독자들에게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 듯하다. 괜히 페미니즘을 내세워서 현실과 관계없는 판타지에 빠지려는 여성들을 주춤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오히려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내세우지 않는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스토리의 웹소설 로맨스 작품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시 로맨스는 페미니즘과 관계가 없어야 하나? 그러나 로맨스 장르 속 문법의 변화들을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2. 성혁명 이후 로맨스의 변화

역사적으로 봐도, 로맨스는 언제나 성, 여성, 젠더의 혁명적 변화에 동참하고자 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장 보수적인 로맨스의 대표가 할리퀸 로맨스다. 할리퀸 로맨스는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한 시대적 담론이 갱신될 때마다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라인을 론칭하였다. 1973년에 보수적 분위기를 쇄신하고 사랑의 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론칭된 프레젠트 라인은, 1968년 이후 서구의 ‘성혁명’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조치였다.(관련 내용은 이주라의 「삼중당의 하이틴로맨스와 1980년대 소녀들의 사랑과 섹슈얼리티」(『대중서사연구』 24-3, 2019)를 참조.) 프레젠트 라인의 작품 속 여주인공은 똑똑하고 독립적이며, 남주인공은 멋있고 강인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이런 변화의 지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가가 샬롯 램(Charlotte Lamb)이다. 샬롯 램은 할리퀸 프레젠트 라인의 대표 주자 3인방(앤 햄프슨, 바이올렛 윈스피어, 샬롯 램) 중의 한 명이었다. 샬롯 램은 이 셋 중에서도 가장 혁명적인 작가였다. 그녀는 로맨스 장르 내에서 거의 처음으로 여주인공이 섹슈얼한 욕망의 경계까지 나아가,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관계를 완벽하게 끌고 가는 모습을 그려내었다.

샬롯 램 소설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작품은 『파문(A Violation)』(1983)이다. 한국에서는 1984년에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삼중당 ‘프레젠트 북스’에서 출간되었다.(자세한 정보는 손진원의 「1980년대 성폭력 ‘치유’ 로맨스의 문화사적 의미-하이틴 여성잡지의 상담란과 샬로트 램의 소설을 중심으로」(JKC 학술대회 발표문, 2019.11)를 참조.) 이 작품은 고전적 로맨스의 문법에 따라 여주인공이 강간을 당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강간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없는 완전한 폭력으로 그려진다. 여주인공 클레어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강도에 의해 폭력, 상해, 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이 소설은 클레어가 이 강간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강간 사건으로 클레어는 남자친구 톰의 가부장적이어서 이기적이며 폭력적인 면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고, 남자친구와 헤어진다. 그에 반해 룸메이트 파멜라와는 그간의 데면데면했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의 공포와 상처를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다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클레어는 아버지의 외도로 평생을 가족에게 냉담하게 대했던 어머니와도 아픔을 나누며 가족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주를 이루어야 하는데, 강간 피해 여성의 트라우마 극복의 스토리가 서사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로맨스인 이유는, 여주인공의 상처 극복에 직장 상사인, 멋지고 냉철한 남자 래리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래리는 직장 상사이기 때문에 클레어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보고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 보고를 받은 후, 예전부터 있었던 클레어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클레어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는 강간 사건 이후 남성을 기피하는 클레어를 배려해, 한적한 시골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 집에서 클레어가 요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클레어가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돕는다.

사실, 샬로트 램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강압적인 성의 요구와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여성들이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랑의 애드벌룬』은 강제 결혼으로 인해 강압적으로 남편과 성관계를 갖게 된 아내가 남편을 계속 피해 다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남편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함을 알고 남편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여주인공의 엄마가 자신의 딸이 모든 남자들에게 냉담하자, 자신의 딸이 불감증이라고 판단하고, 이 불감증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결혼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 엄마는 딸이 남자와 한 번만 잠자리를 가지면 불감증 따위는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남성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인식을 보여주었다. 다른 작품인 『밤의 이방인』의 경우, 시골에서 성장한 여주인공이 도시로 나가 독립을 한 후 처음 간 파티장에서 한 남자를 만나 술에 취한 상태로 그의 집까지 함께 갔는데, 그 과정에서 정신이 든 여주인공이 남성과의 관계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관계를 맺게 되자 그로 인해 충격을 받고, 이후 모든 남성과의 관계를 거부하며 직업적 성공에만 매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여주인공은 옆에서 끝까지 함께 해 준 신뢰할 만한 친구가 자신의 강간 피해 사실을 알게 되자, 그에게 든든한 위로를 받으며 그와의 사랑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샬롯 램의 작품이 어쩔 수 없는 로맨스임은 부인할 수 없다. 강간의 트라우마를 신뢰할 만한 남자의 진정한 사랑을 통해 씻어나가기 때문이다. 로맨스의 세계에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남성의 사랑에 의존하는 여성, 이성애 중심주의 등등의 비판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샬롯 램은 여성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마초 남성들의 리드가 여성에게 분명한 폭력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당대까지 로맨스의 보편적 문법으로 기능했던 ‘강간 후 사랑’이라는 서사를 비판적으로 패러디하였다. 이렇게 샬롯 램은 성혁명 이후 대두된, 여성의 관능,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통제권, 성에 있어서의 자율권 등의 이슈를 로맨스의 문법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3.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와 역할전도 로맨스

최근 로맨스 작품들은 사랑의 서사를 담당했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의 눈에 띄어 사랑을 받기만 하면 충분한 존재인가. 남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가. 현실 속 여성의 삶은 사실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내기에도 힘겹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혹은 직장을 다니면서, 통장이 텅 비지 않게 관리하면서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혹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속에서 온갖 부당함을 겪으며,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이 큰 피해를 입지도 않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사회생활에 지친 여성에게 사랑은 사치다. 그러니 여성이 사랑만 하는 서사에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것은 판타지도 아니다. 사랑만 하는 여성의 모습은 요즘 감각에서는 구리다.

그러므로 여성은 일을 한다. 로맨스 속 여성도 일만 한다. 최근 웹소설 로맨스에서 여자주인공은 대부분 예전 연애에서 상처를 받은 후, 연애와 결혼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캐릭터로 설정된다. 이들은 남성과 사랑으로 엮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이 두렵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성공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옆에서 사랑을 하는 이는 남성이다. 남자주인공은 당연히 여자주인공이 사랑의 상처를 받는 과정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가, 그 순간 여자주인공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직장에서 만나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사랑을 거부하니 어찌하겠는가. 남자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여자가 마음을 돌릴 때까지 사랑을 퍼줄 수밖에 없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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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일을 하고, 남자는 사랑을 한다.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전도시킨다. 이것이 최근 로맨스의 문법이다. 2019년 6월에서 7월까지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는 이러한 역할전도 로맨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포털 회사를 이끌어가는 멋진 여성 3인방의 등장에 꾸준한 시청률 상승을 보이며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호응하였으나, 한편으로는 2017년 할리우드 영화 <미스 슬로운>의 표절이라는 시비에도 시달렸다. <미스 슬로운> 또한 여성 로비스트가 거대 권력과 당당히 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표절 여부를 떠나서 중요한 점은, 할리우드 시장과 한국 시장에서 동일하게, ‘능력 있는 여성이 일을 잘 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성의 사랑은 부차적인 문제로 빠진다. <미스 슬로운>에서는 로맨스 서사를 아예 넣지 않았다. <검블유>의 여주 배타미(임수정 분)와 남주 박모건(장기용 분)과의 관계에서는, 박모건만 사랑을 한다.

배타미는 연애와 결혼이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비혼을 선택한다. 그러나 박모건은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가정을 가지고 싶다. 그러니 박모건이 이미 지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박모건은 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배타미를 기다리고, 연애하자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에 비해 배타미의 삶에서는 자신이 평생 몸 바쳐 일한 회사의 부정과 비리의 문제, 그로 인한 실직, 새로운 회사에서의 성공 여부 등등이 최우선 순위로 그려진다. 지금 일에 집중해야 하니 연애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둘이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도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둘의 연애 관계를 그리는 장면에서 <검블유>는 의도적으로 남녀의 역할 전도 상황을 보여준다. 장면 하나. 고정적으로 출퇴근해야하는 직장을 가진 배타미는 박모건과 사랑을 나눈 후에 일터로 나간다. 타미가 없는 타미의 집에 남은 박모건은 타미를 기다리며,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든다. 장면 둘. 바닷가 여행에서 한 방을 쓰게 된 모건과 타미는 아침에 눈을 뜬다. 타미는 그냥 다시 자지만, 모건은 얼굴과 머리를 타미 몰래 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타미를 향해 누워 자는 척을 한다. 타미에게 이쁘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장면 셋. 술에 취한 타미를 모건이 데리고 들어간다. 타미를 침대에 눕히고 나가려는 모건을 타미가 잡고 껴안으며, 오늘 자고 가라고 한다. 모건이 그냥 가야 된다고 하자, 타미는 손만 잡고 자겠다며, 자고 가라고 조른다.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결혼하고 합시다』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명성식품을 다니는 손모아는 팀장인 차건후가 차갑고 냉정하고 지루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으로 회사 워크숍을 갔다가 실수로 온천의 남녀 혼탕에서 차건후와 마주치게 된다. 그 이후로 차건후의 몸이 잊히지 않아서, 매일 밤 벌거벗은 차건후와 뜨거운 관계를 가지는 꿈에 시달린다. 결국은 손모아의 꿈은 차건후에게 들통 나고, 예전부터 손모아에게 관심을 가졌던 차건후와 손모아는 실제로 뜨거운 밤을 보낼 뻔 한다. 그런데, 둘 모두 서로에게 탐닉하고 있던 순간, 차건후가 선언한다. ‘저는 혼전순결주의자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성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는 남자와 결혼이 두려운 비혼주의자 여자가 펼치는 아슬아슬 밀당 로맨스가 시작된다.

『결혼하고 합시다』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등과 같이 최근 유행했던 작품들의 모티프들을 흥미롭게 결합시켰다. 성형 사실을 숨긴 한지수가 손모아와 차건후의 관계를 방해하며, 완벽한 남자 차건후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수아와 미래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는 하자고 하고, 남자는 혼전에 순결을 지키겠다고 하는 이 역할전도의 구도이다. 온천 사건 이후로 꿈속에서 계속 팀장님이 보인다고 고백하는 것도 여주 손모아이며, 팀장에 대한 욕망에 시달리다 술을 먹고 팀장 방에 쳐들어가는 것도 손모아이다. 그리고 완벽한 순결주의자 팀장에게 계속 거절을 당하는 것도 여자주인공이다. 물론 로맨스 소설이기 때문에, 팀장의 거절 이유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니 우리 결혼합시다, 이와 같은 달콤한 말로 전달되기는 하지만, 기존 로맨스 소설의 문법을 뒤집어 놓은 이 작품은 꽤나 경쾌하고 발랄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연애의 모든 과정과 섹슈얼한 관계로 이르는 모든 순간에 여성의 동의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로맨스가 가능하겠냐는, 보수적인 질문들이 난무했었다. 남주의 벽치기도 안 되고, 남주가 여주 손을 잡고 끌고 나가는 것도 안 되면, 로맨스는 도덕 교과서처럼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로맨스는 남성의 거친 리드만으로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한국 드라마와 웹소설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을 지켜봐주고, 존중해주며, 그래서 스스로의 적극적인 표현을 끌어내 주는 남성들 또한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로맨스가 남녀의 역할전도 정도로 기존 로맨스의 문법을 비틀고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현재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남녀 관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리라 기대한다. 그 상상 속에는 물론, 로맨스 장르가 이성애의 정상성이라는 한계 또한 넘어서리라는 기대 또한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사랑에 대한 모든 상상력이 로맨스를 통해 재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이주라,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가이드1-로맨스』, 북바이북, 2015.

박현주, 「페미니스트를 위한 로맨스 소설을 질문하다」, 《한겨레》, 2019.11.29.

이주라, 「삼중당의 하이틴로맨스와 1980년대 소녀들의 사랑과 섹슈얼리티」, 『대중서사연구』 24-3, 대중서사학회, 2019.8.

손진원, 「1980년대 성폭력 '치유' 로맨스의 문화사적 의미」, JKC 학술대회 발표집, 2019.11.

 

글: 이주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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